#872화 가짜 영웅 만들기 (10)
상식적으로 레벨 150이 레벨 300대가 넘는 몬스터를 잡고 다니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보통은 동레벨의 몬스터를 잡는 것도 유저들에게는 벅찬 일이인데.
아예 레벨 400대의 네임드를 썰고 다녔으니 전사 형이 저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슨 버그라도 쓰는 겁니까?”
오죽하면 전사 형이 저런 말을 하겠는가.
로스트 스카이가 절대적으로 완벽하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버그를 허용할 만큼 허술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버그라는 것도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말로 백 번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게 낫겠네.”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신호하자 곧장 인벤에서 테르타로스를 꺼내보였다.
“어? 그건?”
“이게 그 버그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무기에요.”
아마도 전사 형은 테르타로스를 처음 봤을 것이다.
아니지.
몇 달 전에 한 번 보기는 봤으려나?
완성된 테르타로스를 잠깐 보여주기는 했으니.
그때 기절하고는 다시 못 들어와서 그 이후로는 본 적이 없으니 기억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흐음, 그거…… 마신의 무기였지?”
“기억하시네요?”
잠깐 스치듯 본 건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기억력이 엄청나네.
“워낙 인상적이었어야 말이지. 그 정도로 특이한 무기는 못 알아보는 게 더 이상해.”
밤하늘을 별들을 수놓은 듯한 검신을 가진 무기.
확실히 외형만 보면 기존 무기들과는 좀 다른 형태이기는 했다.
으음.
아무래도 나중에 알아볼만한 녀석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좀 더 확실히 숨겨야 했나 걱정이 됐지만 이미 지난 일이라 그런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지금 걱정한다고 예전에 있었던 일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굳이 생각하고 있어봐야 내 머리만 아파진다.
“한 번 볼래요?”
그렇게 테르타로스를 전사 형에게 넘겨주려는데 전사 형의 손이 닿자마자 바로 스파크가 일어났다.
치지지직!!
“큭, 이거 바로 거부하는데?”
“으음, 이상하네요.”
내 손을 떠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거려나?
아님 다른 사람 손을 타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그럼 옵션만 보여드릴게요.”
다행히 옵션을 보여 주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일단 내가 쥐고만 있으면 되니까.
그리고 테르타로스의 옵션을 전사 형이 확인한 순간.
“헉!! 뭐야? 이 괴랄한 옵션은?”
“하하…….”
어지간해서는 놀라지도 않는 전사 형이 무척이나 당황한 듯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르타로스의 옵션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근력에…… 지력…… 마력…… 수치가 아예 미쳤는데? 거기다 이 스킬들은 또 뭐야? 죄다 네임드 최종 스킬들이잖아.”
아무래도 이런 무기 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전사 형의 눈이 더 없이 놀란 눈으로 바뀌었다.
“어때요?”
“하……. 미쳤다라는 말밖에는 못 하겠다. 이게 말이 돼? 대체 어떻게 이런 무기가 존재하는 거냐?”
“음, 테르타로스가 몬스터들을 흡수하는 무기라서요.”
“뭐?!”
“정확히는 네임드들을 좀 흡수했죠. 그럼 그 네임드의 스킬이나 스탯을 뽑아올 수 있어요.”
“미쳤…….”
전사 형이 얼마나 놀랐는지 미쳤다는 말을 연이어서 했다.
이전에 르아 카르테를 보면서도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던 것 같은데.
몬스터를 흡수한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아, 그리고 아쉽게도 흡수해 버리면 아이템을 못 먹어요.”
“흐음? 그래? 그건 정말 아쉽네.”
만약 그렇게까지 됐다면 정말 사기였겠지.
네임드 템도 죄다 가지고 테르타로스는 넘사벽으로 옵션을 흡수하면 뭐…….
“그러니까…… 이 녀석 덕분에 그렇게 네임드를 썰고 다녔던 거군. 이 녀석 하나만 들어도 대략 300레벨 대 스탯은 나올 것 같은데.”
“잘 보셨네요.”
“거기다 이 스킬들…… 네임드 스킬이 대체 몇 개냐.”
“좀 많죠?”
“하아, 좀 많은 정도가 아니지. 다 구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 적들이 꽁꽁 싸매고 내놓지 않는…….”
그때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전사 형이 나를 번뜩이며 바라보았다.
“너, 이 스킬들로 양쪽을 갈라놓은 거냐?”
“정답입니다.”
“하, 아까 형님에게 들으면서도 어떻게 이 상황이 가능한지 궁금했는데 이제 이해가 되려고 한다. 양쪽에 다른 네임드 스킬을 써서 갈라놓았으니 저렇게 길길이 날뛸 수밖에.”
그러다가 전사 형이 뭔가 생각이 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하아, 우리가 몇 달간 못 해낸 것들을 오자마자 해결하냐. 김빠지게.”
“하하…….”
말은 김빠진다고 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초롱초롱하게 빛나 보였다.
“그렇게 자신 있게 나선 이유를 알겠네. 거기다 아직 150레벨이란 말이지?”
“네, 그래서 좀 더 성장할 필요가 있어요. 부족한 것들을 채우려면요.”
그러면서 인벤에서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 녀석을 못 쓰거든요.”
“아, 르아 카르테도 있었지.”
전사 형이 화들짝 놀라면서 바로 르아 카르테의 옵션도 확인했다.
“하, 이것도 미쳤네. 테르타로스를 여기다 흡수시킨 거냐?”
르아 카르테 역시도 지금 옵션이 미친 상태였다.
제2의 테르타로스랄까.
마신급 무기를 두 개 동시에 들면 뭐…….
“네, 괜찮죠?”
“괜찮은 정도로 끝나냐 이게. 이것들만 동시에 들어도 레벨 400은 찍어.”
“하지만 이미 말했다시피 르아 카르테를 사람들 앞에서 못 써요.”
“아, 그렇지. 이건 네 전용 무기니까.”
주호라는 이름을 달고 싸우면 또 모를까.
지금은 윈이라는 가명을 계속 쓰는 중이었다.
그동안은 테르타로스에만 의존해야 한다.
“흐음, 그러니까 레벨을 더 올려야 하겠네.”
“네, 지금 상태에서 레벨만 좀 더 올라가도 어지간한 상위 랭커들도 상대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프로 팀들 상대로는 더 그렇죠.”
“그래, 가득이나 아이템도 밀리는데 레벨과 스탯도 밀려버리면 답이 없지. 네가 아무리 컨트롤이 좋다고 해도 네가 없는 몇 달의 공백동안 녀석들은 수도 없이 전투를 겪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죠.”
당장 꺾어야 하는 녀석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스펙업이 필요해.
그런데 그런 나와 재중이 형을 바라보던 전사 형이 의외의 제안을 했다.
“꼭 레벨을 올릴 필요가 있는 거냐?”
“네?”
“아니, 그러니까…… 이 테르타로스를 더 키워도 되는 거잖아.”
“흠, 그렇긴 하죠.”
그러자 전사 형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당장은 네 레벨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레벨 올리는 건 어렵진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어느 수준까지만이야. 쩔이 쉽지 않다는 건 잘 알잖아.”
전사 형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는 이야기였으니.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유저가 몬스터를 신나게 패서 넘겨줘 봐야 결국 내가 먹는 경험치는 얼마 되지 않았다.
만약 이게 가능했다면 길드마다 이미 레벨을 서로 올려준다고 난리였겠지.
순수하게 실력으로 밀고 올라와야 하는 세상이랄까.
물론 편법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게 꽤 조건이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네, 확실히 처음에야 잘 크겠죠. 그리고 나중에는 어떻게든 해봐야죠.”
“그러니까.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이백여 레벨을 올리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체 얼마나 될 것 같냐. 남들은 수개월을 하루종일 밤낮 설쳐 가면서 플레이해야 겨우 올리는 레벨이다.”
전사 형 말대로 단시간에 상위 랭커의 레벨을 따라잡는 건 역시 어려움이 존재했다.
좀 더 시간이 많다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역시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다.
“조만간 패황하고 페가수스 연합이 붙으면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해.”
“네, 알고 있어요.”
처음에야 지켜본다고 해도.
결국 초월이나 다른 프로 팀들의 연합이 가세하게 되면 패황도 어려워질 게 분명했다.
그럼 그때부터는 무조건 이 전쟁에 손을 뻗어야했다.
내 스펙을 올릴 수 있는 기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말이겠지.
만약 이런 일들을 다 무시해 버린다면야 조용히 숨어서 레벨을 올릴 수도 있겠지만.
정작 문제는…….
“고위 사냥터를 녀석들이 다 잡고 있는 게 문제겠죠.”
“그래, 사실 좋은 사냥터는 거의 다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심지어 자기들이 못 잡는 네임드의 사냥터까지 못 들어가게 막더라니까.”
“흐음, 그건 심각한데요?”
“어, 오히려 그쪽이 통제가 더 심해. 우리하고도 몇 번이나 칼부림이 났다니까.”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도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내가 레이드를 하러 들어가면 아주 기를 쓰고 막더라.”
“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형 정도겠죠.”
재중이 형이라면 정말 자기들이 못 잡는 네임드도 잡아 버릴 수도 있을 테니.
실제로 발록은 재중이 형이 잡아 냈었고.
그리고 그런 발록을 저들이 잡지 못해 헤딩을 하다가 레벨만 잔뜩 키워서 완전 괴물을 만들어 놓았고.
“아, 맞다. 그 발록 어떻게 됐어요?”
“뭐 일단은 손을 못 대고 있지. 내가 발록의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 발록과 녀석들의 공격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니까.”
요컨대 재중이 형이 레벨이 오른 발록을 잡으러 가는 순간.
저들이 개떼처럼 몰려와서 방해를 할 거라는 소리였다.
발록을 잡는 것만 해도 온 신경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우르르 와서 방해까지 해대면 레이드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흐음…… 발록이라 이거죠…….”
완전히 오버된 상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존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을 줄 수 있는 녀석이었다.
이거 퍼즐 중에 하나로 써먹을 수가 있으려나?
아직 계획이 약간은 부족한 느낌이라 손을 좀 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발록은 꽤 좋은 수가 될 것 같았다.
“패황에게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죠?”
아직은 패황 쪽 연합에 유저들이 모이려면 시간이 다소 필요해 보였다.
이제 시작인 연합이나 마찬가지라.
서로 동맹을 묶는데도 꽤 시간이 소모될 것이고.
그리고 그런 날 보던 재중이 형이 재밌는 걸 발견한 듯 미소지었다.
“발록과 시간이라…….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냐?”
“네, 어차피 못 잡는 녀석이라면서요.”
다른 네임드는 안 된다.
어차피 잡을 여력이 있는 녀석들을 풀어놔 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괜히 가서 잡히기만 하겠지.
하지만 이 발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좀 시간을 벌어봐야겠어요.”
* * * * *
얼마 뒤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예전 용암지대를 방불케하는 거대한 산악지대였다.
죄다 불과 용암으로 타오르는 매캐한 환경의 필드.
사실 이게 필드인지 던전인지 의미가 있나 싶었다.
주변 몬스터들의 죄다 시뻘겋게 보였으니.
레벨이 전부 몇 레벨 대야?
여길 뚫고 가서 발록을 잡았다고?
새삼 놀란 눈으로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웃음을 지었다.
“개고생했지.”
“그렇게 보이네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용암 지대를 들어가려는 길목에 누군가가 어슬렁거리면서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굳이 목적도 없이.
마치 순찰이라도 하듯.
“저 녀석들인가요?”
“어, 일종의 경비병이나 마찬가지지. 저들은 레벨이 그다지 높진 않지만 발견되는 순간 바로 같은 편을 부를 거야.”
아마도 레벨이 낮은 유저들을 외곽에서 순찰만 시키는 수준인 모양인데.
이렇게까지 지킬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만큼 재중이 형이 위협적이라는 말이기도 할 테고.
혼자서 판을 뒤집는 게 가능하니.
“흠, 그럼 가 보죠?”
속전속결.
도움을 청하기도 전에 바로 쓸어버려야 해.
곧장 테르타로스를 들고 녀석들에게 은신으로 다가가 죄다 목을 따내었다.
“컥!”
“뭐야!”
“크악!”
순삭.
녀무 쉽네.
정말 순찰만을 위해서 보내놓은 건가?
재중이 형과 전사 형도 동시에 두 명을 처리하자 이내 순찰병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서로 눈을 맞추고는 서로 마주 웃어 보였다.
이건 일을 작당하고 있을 때 나오는 딱 그런 웃음이지.
“그럼 가죠. 미친개를 풀어놓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