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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71화 (861/1,404)

#871화 가짜 영웅 만들기 (9)

전사 형이 다크 애로우를 만들어서 정비를 한 다음 곧장 게시판을 통해 미리 약속한 내용들을 흘려보냈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적당한 내용들을 섞어서 본의를 알 수 없도록.

사실 전사 형이 새로운 길드를 만든 것 자체는 크게 특별한 것이 없었다.

안 그래도 그동안 최강 길드와 신화 길드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눈치채고 있었을 테니.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적으로 이랬다.

드디어 곪은 게 터졌다는 정도.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하다는 반응이랄까.

반응이 이래서 그런지 누구 하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없었고.

그냥 1서버에서 가장 강했던 길드 하나가 드디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 야야, 방패전사가 신화 길드에서 나왔다는데?

- 정말? 계속 있을 줄 알았는데. 거기 힘들어도 끈끈하잖아.

- 나도 모르지. 왜 나왔는지는.

- 걔들 네임드 사냥 못 한 지 엄청 됐을걸? 밀려난 지 오래돼서.

- 와, 한때 상위 네임드만 독식하던 그 신화 길드 어디 갔냐.

- 주호 있을 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지.

- 그러게. 주호는 갑자기 왜 접어서는.

- 벌 만큼 벌고 빠진 거 아닐까?

- 에이, 그냥 가만히 있어도 더 벌었겠다. 건강상 문제라던가 뭐라도 있을걸.

- 그런가? 아무튼 신화 길드는 결국 이래 무너지네. 주력 탱커가 빠져서야…….

- 아깝다. 진짜 전설적인 길드였구만.

- 아까워도 뒤처지면 없어지는 거지. 진작 길드원 늘리고 몸을 키워놨으면 얼마나 좋아?

- 하긴 나도 들어가고 싶었던 길든데 아쉽긴 하다.

- 듣기로 최강 길드 길마하고 싸웠다던데?

- 사이가 안 좋아졌나?

- 애초에 최강 길드에서 주축들이 빠져나와서 만든 게 신화 길드 아님?

- 거기도 문제가 많나 보네.

- 그럼 불멸은 어떻게 됐음?

- 요즘 잘 안 보이던데? 전에 개인 대회 우승하고 좀 잠잠해진 듯.

- 혼자 다 하는 것도 한계가 있겠지. 조만간 불멸도 매물로 나오겠구만.

- 와씨. 시장에 나오면 인기 폭발이겠다. 불멸은 혼자서도 거의 길드랑 맞먹잖아.

- 나 같아도 불멸은 잡음. 근데 몸값 엄청나지 싶은데? 원래도 프로 게이머 중에 최강인데. 지금은 뭐 부르는 게 값이겠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딱 이 정도이려나.

신화 길드나 최강 길드나 이젠 거의 무너져서 사라진 것처럼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만큼 숨죽이고 있었으니.

주변에 돈 좀 있다 싶은 길드들이 중간에 스카웃을 해 길드원들도 많이 빠져나갔고.

겉으로 보기에는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남은 주력 중 하나가 빠져 나왔음에도 위화감 없이 받아들이는 걸 보면.

전사 형이 게시판의 반응을 살피다가 내게 물었다.

“일단 떡밥은 뿌려 놨는데 이게 잘 될까?”

“네, 아마 잘 될 거예요.”

전사 형은 재중이 형만큼 최강의 매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 가서 바로 1군으로 들어갈 만큼의 실력과 장비는 갖추고 있었다.

이걸 패황이 그냥 두고 볼까?

거기다 전사 형이 혼자서 빠져나와 길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테고.

아마도 기존 주축들 중 몇몇을 데리고 나왔을 거라고 예상할 것이다.

그럼 이걸 안 물고는 못 버티지.

무서울 정도로 인재 욕심이 많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게시판에 썰을 풀고 난 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전사 형에게 반응이 왔다.

“연락 왔다.”

“꽤 빠르네요.”

아직 제대로 경위를 파악하지도 못했을 텐데…….

신중한 성격으로 보이는 패황의 성향과는 맞지 않게 꽤 빠른 접촉을 해왔다.

거기다 아랫사람이 아닌.

본인이 직접 연락을 넣었다.

이건 전사 형을 그만큼 대우해 준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떻게 할까?”

“일단 받죠. 뒤는 부탁할게요.”

“오케이. 이런 거야 자신 있지.”

전사 형을 택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스스로 나서서 얼굴이 될 만큼 언변도 있었으니까.

“영통으로 돌린다.”

확실히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을 수도 있었다.

서로 숨기는 게 많으니.

표정 관리를 해야 하거든.

- 방패전사 님. 진작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습니다.

- 아닙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보면서 이야기할 관계는 아닐 텐데요.

- 하하, 예전 일은 이제 묻어두시지요. 안 그래도 신화 길드에서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설명을 해 주었다.

“전에 말했듯 패황하고 직접 마주치지는 않았어도 휘하의 길드와는 꽤 많이 부딪혔거든.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앙금이 남아 있겠네요.”

“뭐, 굳이 따지자면 서로 할 말들이 많지. 우리도 엄청 죽여 댔으니까.”

애초에 적으로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의 대화가 성사된 것도 신기할 정도였다.

전사 형이 패황의 연락을 씹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대화를 하는 중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랄까.

이 바닥에서 영원한 적은 없다고 하더니 딱 그게 맞는 말이네.

- 아직 풀진 못한 것 같습니다만.

- 연락을 받아 주신 걸로 설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이 없으셨다면 아예 연락 자체를 무시하셨겠죠.

그 말에 전사 형이 수긍을 하듯 일단 대답을 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 반응을 지켜본 패황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전사 형의 대답을 기다렸다.

본인의 페이스라고 생각하는 거려나.

잠시 고민을 하던 전사 형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좋습니다. 지나간 일은 서로 깔끔하게 있었던 일을 털고 넘어가죠. 지금은 신화 길드 소속도 아니니.

- 만족스러운 대답이군요. 역시 이야기가 잘 통할 줄 알았습니다.

- 그런데 갑자기 왜 연락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적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굳이 연락할 이유는 없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전사 형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운을 띄우자 패황이 웃으면서 대답을 해주었다.

- 흠. 확실히 오해할 만하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서로의 관계를 좀 개선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 개선이라……. 계속 말해 보시죠.

일단 이야기를 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패황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다름 아니라 이번에 새로운 연합을 구축하는데 방패전사 님과 같은 실력자가 꽤 많이 필요합니다.

이건 대놓고 전사 형을 스카웃하겠다는 표현이었다.

- 음, 말씀은 고맙지만 이젠 누구 밑으로 들어가진 않겠다고 해서 나온 길드입니다. 지금 와서 다시 어딘가 소속되고 싶진 않군요.

- 아, 이야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군요. 우리 쪽의 길드로 들어오시라는 말은 아닙니다.

- 하면?

- 다크 애로우라고 했던가요? 길드는 그대로 유지하셔도 좋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방패전사 님 본인입니다. 그리고 같이 신화 길드에서 나오신 분들 정도면 좋겠군요.

- 흡수가 아니라 연합의 형태입니까?

- 네, 그렇습니다. 독자적으로 활동하셔도 괜찮습니다. 연합에 들어와 주시기만 하면 자금과 함께 상위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까지 모두 지원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통제를 해서 묶어 놓은 효율 좋은 사냥터까지 모두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초기에 얼마의 지원금과 당장 사냥 가능한 사냥터 목록까지 알려 주었다.

꽤 파격적인 제안이랄까.

보통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자원을 알려주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 줄 테니 빨리 커서 자신들을 도우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주는 만큼 일을 하라는 거겠지.

물론 이게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사냥터 확보가 힘든 시기에 안정적인 사냥터는 곧 레벨 상승으로 이어질 테니까.

거기다 자금까지 지원하는 건 새로 시작하는 길드가 기반을 잡기에는 더욱 좋은 조건이었다.

후에 어느 수준까지 더 지원이 이루어질지는 잘 모르지만.

어설픈 지원은 결코 아닐 것이다.

전사 형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구석에서 놀리려고 지원하는 건 아닐 테니.

최소 즉시 전력감.

프로 팀들과의 치열한 싸움에 써먹기 위해서는 패황도 줄 수 있는 건 다 내놓겠지.

거기다 패황이 확실히 언급을 했다.

신화 길드에서 같이 나온 유저들까지 원한다고.

그건 전사 형이 단독으로 나오진 않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전사 형이 꽤 날카로운 질문을 내던졌다.

- 혹시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핵심을 찌르는 한 마디.

이미 이건 전사 형이 우리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패황이 페가수스와 한판 뜨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전사 형의 말에 잠시 표정을 굳혔던 패황이 이내 대답을 했다.

다소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 혹시 어디서 들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 따로 들은 곳은 없습니다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충분히 유추해볼 만합니다. 아니라면 너무 억측이었다고 하고 넘어가죠.

- ……일단은 연합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단순히 한 지역 정도만 먹고 끝낼 생각이 없다는 것도요.

잠시 말을 멈춘 패황이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한 마디 말을 더 붙였다.

- 기존의 지배 구조는 다소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바꿔 볼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군요. 강한 인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대놓고 초월과 페가수스와 붙을 거라고 하면 빠질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지만 저 대답만으로도 이미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 괜히 총알받이로 쓰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 이런 조건들이라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라서요.

- 하하, 아닙니다. 실력 있는 귀한 자원을 그런 식으로 쓰진 않죠. 충분히 우대해 드릴 생각입니다.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실력이 안 된다면 얼마든지 총알받이로 쓸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혹시라도 녹음이라도 되고 있으면 안 되기에 최대한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모습도 보였고.

재중이 형 말대로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다.

파격과 신중 사이를 꽤 오간다고 해야 하나.

묘하게 줄타기를 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선을 겨우 넘지 않은.

딱 그런 느낌.

- 일단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우리도 이런 제안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바로 답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전사 형은 생각할 여지를 두었다.

거기다 우리라는 한 마디.

의논해 보겠다는 뜻은 일단 거절은 아니니까.

어떤 의미로는 확고한 거절이 될 수도 있지만.

패황은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듯 했다.

- 너무 오래 시간을 드릴 순 없습니다만. 실력자들을 우리 연합에 모실 수 있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시간이기도 하겠죠. 좋은 답변 기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영상통화가 끝난 뒤.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을 보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번에 속을 내보이지는 않습니다.”

“꽤 신중한 녀석이니까. 만약 못 데리고 오더라도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은 하지 않겠다는 거겠지. 아직은 초월과 페가수스 쪽이 더 강하니까. 하지만 조금만 앞서간다고 생각하면 바로 태도를 바꿀 거다.”

“위험한 녀석과 거래를 하는군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동굴 밖에서 컨트롤하는 건 한계가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진행할까요?”

전사 형의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패황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바로 대답해 주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조금 애를 태운 뒤에 하면 되겠군요. 줄을 설 듯 말 듯.”

척하면 척.

전사 형도 이런 쪽으로는 이골이 난 사람이라.

“그럼 그동안에 뭘 해야 합니까?”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이 녀석을 좀 더 키워야 해.”

“아, 확실히 레벨 150으로는 한계가 있겠죠.”

전사 형도 내가 접속을 한 지 너무 오래됐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고 난 뒤에 이상한 점이 있는지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다소 놀란 듯한 표정도 섞여 있었고.

“레벨 150이 어떻게 네임드와 유저들을 썰고 다닌 겁니까?”

전사 형의 반응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을 더 키워야 한다고. 아예 씹어 먹고 다니려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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