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9화 가짜 영웅 만들기 (7)
“마왕을?”
“네, 마왕요.”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짓고는 역시 마주 보며 웃어 보였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초월이 먼저 나서서 마왕을 치진 않겠지. 하지만 반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역시.
눈치챘구나.
재중이 형은 따로 설명이 없어도 대략적인 그림을 파악한 듯했다.
“네, 형 말대로 패황을 중심으로 유저들이 뭉치기 시작하면 절대 초월이 먼저 움직이지 않겠죠.”
“내부의 문제를 먼저 처리해야 하니까.”
그 내부의 문제는 바로 패황이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반발하고 있는 수많은 길드들일 테고.
최소한 그 세력들을 완전히 눌러놓지 않으면 마왕은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초월 측 연합들이 마왕과 붙는 상황에서 카운터를 치는 작전은 어차피 꺼내 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걸 반대로 해 버리면 어떨까?
“초월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왕을 먼저 움직이면 되죠.”
꼭 유저가 먼저 움직이라는 법은 없으니까.
토벌을 반대로 뒤집어 보면 침략이 된다.
그리고 그 침략을 시작하는 건 우리의 일이 될 것이다.
“마왕을 움직일 자신은 있고?”
“으음, 이건 직접 해 봐야 알 것 같아요.”
“방법은 있다는 뜻이구나.”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 주변에 날아다니는 금속의 정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얘랑 상관 있는 일이냐?”
“네, 뭐. 아마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아요.”
“흠, 네가 아무 승산이 없는 일에 손을 댈 리는 없으니까. 일단 정말 마왕이 먼저 나선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네.”
“혹시 마왕이 먼저 안 움직이면요?”
“뭐 그럼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지.”
마왕이 먼저 움직여 주면 최선.
혹은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패황에게만 모든 일을 맡겨 두는 게 좀 무리수 같긴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일단은…….”
재중이 형에게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해 주자 다 듣고 난 뒤의 재중이 형의 표정은 웃음기가 가득했다.
“재밌겠네.”
“된다면 말이죠.”
마왕이 뜻대로 움직여 주면 좋겠는데…….
이쪽은 생각이 정리가 되자 곧 다른 것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패황 쪽에서 온 연락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아, 메시지 온 거?”
“네,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글쎄다. 어차피 신화 길드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굳이 다시 나설 필요가 있을까?”
“최강 길드나 다른 길드들은요?”
“아마 그쪽으로도 연락이 갔겠지.”
“따로 연락을 해줘야 하지 않아요?”
“흠, 어차피 최강 길드도 반쯤 해체된 상황이라.”
“네?”
“아, 말을 안 했던가?”
그러고 보니 그동안 최강 길드에 대해서는 딱히 자세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전에 우리 쪽 연합이 힘들게 됐다는 정도만 들었었지.
그런데 반쯤 해체가 됐다고?
“왜 미리 말을 안했어요?”
“뭐 같은 이유지. 예전에 말했으면 네가 얼마나 신경을 썼겠냐.”
“으음, 그건 그렇죠.”
신화 길드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최강 길드도 사장님이 운영했기에 엄청 신경을 썼을지도.
“그냥 길드가 어려워지니까 알아서 나간 놈들도 있고. 몇몇은 스카웃되어 길드를 옮긴 애들도 있어.”
“그래서 몇 명이나 남았어요?”
“보자, 사장님 포함해서 대략 열 명 정도 남았으려나?”
“네?”
아니.
길드 인원이 꽉 차 있던 최강 길드원들이 그만큼 많이 빠져나갔다고?
열 명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는 표정이라 더 벙찐 기분이 들었다.
“왜? 이상해?”
“네, 뭐…… 그냥 기분이 묘하네요. 그럼 달 길드와 치맥 길드는요?”
“아, 걔들도 사정은 비슷해.”
“그래요?”
“어, 그때 이후로 연합에서 떨어져 나갔으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장님이 내보낸 쪽에 가깝겠네.”
“사장님이요?”
“우리와 같이 있으면 마왕들의 표적이 되니까. 지금은 길드를 해체했지.”
“……엉망이네요.”
오자마자 테르타로스를 키운다고 미처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상황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그동안 마왕이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걸리적거렸는 지도 잘 알겠고.
“그렇게 안 했으면 피해가 너무 커졌을 거다. 너도 전에 이야기했잖아. 길드를 해체하는 방법을.”
“네, 그게 제일 빠르니까요.”
정확하게는 나와의 연결고리를 끊는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왕 벨라의 최측근으로 활동했으니.
물론 지금이야 그 직위가 날아가긴 했지만.
당시에는 문제가 됐을 테니.
“그럼 그쪽도 인원이 떨어져 나갔나요?”
“아마도?”
“당장 지원은 어렵겠네요. 황룡과 엔느는요?”
“거긴 알아서 빠져나갔지. 무너져 가는 배에 같이 타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보아하니 리더와 폭군 역시도 빠져나갔겠군요.”
“뭐 그런 셈이지.”
그동안 자세히 이야기 안 해준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면야…….
거의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판이라.
“사실 패황 쪽에 들어가서 몰래 지원하는 일을 부탁하려고 했거든요. 바깥에서는 모든 일을 컨트롤하기가 힘드니까요.”
세력이 멀쩡했다면 말이지.
하지만 그걸 부탁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였다.
길게 봤을 때 패황 연합의 사정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앞으로의 전쟁을 유리하기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그저 외부에서 일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으니.
만약 패황이 우리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라도 하면 중간에 곤란한 경우가 생길 지도 몰라.
“그런 일이라면야.”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에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누군가에게 연락을 넣었다.
누구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 이게 누구냐?”
눈을 껌뻑껌뻑하는 표정으로 사장님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너…… 이제 접속되는 거냐?”
사장님의 그 말에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이야기를 안 했구나.
그럼 전에 정보를 받아오던 사람이 사장님은 아니라는 말인데.
“아하하, 그렇게 됐어요.”
내 접속 상태를 살펴보던 사장님이 여전히 이상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으음, 이상하구나. 지금도 네가 접속 안 된 걸로 뜨는데……?”
“아, 그건 약간의 편법이랄까. 자세히는 저도 잘 몰라요.”
만약 접속 여부가 떴다면 다 알았을 테지만.
그래서 지금도 내가 여기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른다.
여기 있는 재중이 형과 사장님을 빼면.
“허, 신기한데?”
“네, 덕분에 이렇게 숨어 다니죠.”
아직은 내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니까.
그러더니 사장님이 뭔가 생각이 나는지 내게 물었다.
“혹시 요즘 일어나는 일들…… 네가 한 거냐?”
사장님의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사장님은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이셨고.
“이거 참. 누가 이렇게 판을 뒤흔드나 생각했는데. 그게 너였다니. 대체 어떻게…….”
“아, 방법을 설명하자면 너무 길어서요.”
“흠, 그건 알았다. 그래. 이 판에서 내가 뭘 해주면 되겠냐?”
역시 척하면 척인가.
사장님도 내가 부탁할 게 있어서 부른 걸 바로 눈치채셨다.
“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패황 쪽 연합에 들어가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패황 말이냐?”
“네, 가능할까요?”
“어려울 건 없지. 안 그래도 패황에게서 연락이 와서 말이야.”
재중이 형 말대로 사장님에게도 연락이 갔었구나.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 다른 식으로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흠흠, 내가 아니라 수호와 최종병기에게 연락이 왔었다.”
“그 형들 아직 길드에 남아 있어요?”
의외네.
당연히 다른 길드로 스카웃 당해 옮겨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말에 사장님이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재중이하고 같이 다녔지.”
“아, 그렇군요.”
재중이 형이 발록을 어떻게 잡았나 했더니…….
수호 형과 최종병기 형이 옆에 같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둘 다 프로게이머니까 실력에서는 손색이 없었을 터.
그렇게 우리 팀과 힘을 합치면 꽤 좋은 전력이 나온다.
그리고 지금 길드에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수아 누나, 발키리 아주머니, 사탕 커플, 현역 여대생, 슬이아빠, 체리, 천둥까지.
한때 우리와 같이 했던 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말 많이 나갔네요.”
“허허, 나가는 것까지는 못 막겠더구나.”
사람 좋은 사장님이 쓴소리를 하면서 보냈을 것 같진 않고.
아무래도 나와 안면이 없던 사람들은 거의 다 나갔다고 보면 되려나.
반대로 말하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진짜 우리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가장 어려울 때 남은 사람들이니까.
“나쁘지 않네요.”
아니 오히려 좋은 쪽이지.
지금 하려는 일은 어차피 많은 숫자가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느냐가 문제지.
그리고 사장님에게 지금까지 있던 일들 중 핵심이 될만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해 주었다.
“현재 패황 쪽 연합이 일을 꾸미고 있어요.”
“흠, 단순히 자신의 연합으로 들어오라는 게 아닌 모양이구나.”
“네, 최강 길드의 핵심들 말고도 재중이 형에게도 연락이 왔으니가요.”
내 말을 들을 사장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흠, 혹시 패황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거냐?”
“네, 추리가 빠르시네요.”
“이 바닥에서 얼마나 굴렀는데 이 정도야 기본이지. 수호와 최종병기, 재중이. 전부 다 어느 연합에 들어가더라도 에이스 노릇을 할 정도로 실력이 있지 않나. 이런 애들을 포섭하기 위해 동시에 연락을 했다면... 결국 그만한 적이 있다는 말이겠지.”
확실히 사장님도 보통이 아니었다.
몇몇 사정을 듣자마자 바로 전쟁을 떠올리는 걸 보면.
“네, 정확하게 보셨어요. 패황이 조만간 판을 뒤집을 겁니다.”
“설마 초월과 페가수스 연합에 싸움을 거는 거냐?”
“잘 보셨어요.”
“흐음, 그러기에는 세력이 엄청나게 부족할 건데. 싸우기도 전에 깨질 거다. 프로게이머들을 상대할 만한 인력도 부족할뿐더러…… 전체 규모도 턱없이 부족해.”
사장님도 전력 파악은 확실히 하고 계셨네.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요즘 일어나는 일들 알고 있죠?”
“음, 고렙 사냥터의 학살 사건 말이냐. 아니, 잠깐. 그걸 네가 했다고 하면…….”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던 사장님이 이내 결론을 내어놓았다.
“패황에게 세력을 몰아주기 위해 일부러 죽이고 다닌 거냐?”
“하하, 너무 빨리 눈치채셔서 더 할 말이 없네요.”
“확실히 그러면 부족한 세력의 격차는 많이 줄어들 거다. 아니, 오히려 양에서는 패황이 더 앞설 수도 있겠지. 중립 세력들을 모두 흡수할 수 있다고 치면.”
보는 눈이 너무 정확해서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역시 양보다는 질이야. 프로 팀들이 무서운 건 그 점이지.”
“네, 그래서 프로 팀들의 압도적인 공세를 막아 줄 에이스 팀이 필요해요. 패황 쪽에는 그 부분이 너무 부족하니까.”
“패황이 기존의 실력자들을 모으려는 것도 그런 이유군. 어쩐지 너무 티 나게 모은다 했다. 정말 이겨보려는 거면 모든 게 설명이 되지.”
“질 생각이 전혀 없죠. 그 사람은.”
적어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밀고 나가는 중일 거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바로 옆에 우리가 들어가 있어야 일이 수월해진다.
“흠, 도박은 아닌 것 같다만. 그래도 위험 부담은 있어.”
그런 사장님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어차피 초월 연합은 한 번은 깨놔야 합니다. 잘 아시잖아요.”
“그래, 녀석들이 너무 크긴 했지. 이젠 우리가 직접 손대기 힘들 정도로.”
사장님이 누구보다 잘 아신다.
이전과는 우리와 그들의 입장이 너무 다르다는 걸.
이젠 우리가 언더독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사장님이 길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꺼내놓으셨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애들이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이 되는구나. 지금까지 잘 버텨 주었는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무슨 생각이냐?”
“당분간 신화 길드와 최강 길드의 이름을 쓸 생각이 없으니까요.”
내 말에 재중이 형 역시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길드를 만들 거냐?”
재중이 형도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구나.
“네, 이대로라면 결국 이전과 같은 상황이 올 뿐이니까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건가.”
“그리고 절 숨길 수 있는 새 길드가 필요해요.”
“오케이. 알았다. 이름은 생각해 놨고?”
그 물음에 곧장 생각해 두었던 이름을 꺼내었다.
“다크 애로우.”
그리고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재중이 형과 사장님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적의 심장을 뚫을 검은 화살입니다. 정말 완벽한 최정예로만 구성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