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화 가짜 영웅 만들기 (6)
이 시점에 패황이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했다고?
혹시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어보았다.
“제가 알고 있는 그 패황이 맞아요?”
그리고 그런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알고 있는 그 패황. 그런 아이디를 쓰는 놈이 그놈 말고 또 있겠냐.”
“형이랑 아는 사이였어요?”
내 이번 물음에는 재중이 형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말도 섞어 본 적 없는데?”
“그럼 왜…….”
그러다가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으음.
설마 아니겠지?
조금은 불편한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패황이 눈치챘을까요?”
“이 난리를 친 게 우리라는 거?”
“네, 전에 형이 말했잖아요. 시간과 몇 가지 증거가 있다면 눈치챌 수도 있을 거라고.”
패황이 얼마 전까지는 우리에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아서 생각을 못 했겠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우리에게 근접한 몇 가지의 추리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뭐, 그렇긴 해. 이 녀석도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이렇게 금방은 알아내기 힘들지. 이쪽도 숨긴다고 최대한 숨겼잖아.”
재중이 형이 맞다.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허투루 작업을 하진 않았다.
나중에는 아예 위장 아이템을 써서 무기조차 숨겨 버렸으니까.
그런 작업들을 모두 뚫어보고 벌써 우리 정체를 알아챘다고 하면 이 패황이라는 녀석의 정보력이 장난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거 잘못하다가 총알받이로 내새우려는 전략이 엉망이 되는 것 아닐까?
그런 걱정을 하는데 재중이 형은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것도 패황에게 온 메시지를 읽어 보면서.
마지막까지 다 읽어 본 뒤에도 꽤 흥미로운지 여전히 재중이 형의 입가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호오, 이놈 봐라?”
“뭐라고 써져 있어요?”
“네가 한 번 봐라.”
그러면서 다시 메시지의 본문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패황이 보낸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메시지였다.
“음, 이거 함정은 아니겠죠?”
“모르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시점에 형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낼 이유가 있을까요?”
“흐음, 글쎄. 이유라고 치면 차고 넘치기는 하는데 말이야.”
“그래요?”
“뭐 네가 알다시피 지금 패황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뭐지?”
그동안 초월이나 페가수스보다 패황의 전력이 밀리기 때문에 일부러 패황의 세력을 올려주기 위해 힘들게 뒷작업을 했었다.
바로 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지만 재중이 형이 단지 그걸 물어보기 위해 내게 저런 질문을 했을까?
둘 다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저 입가의 미소를 보면 좀 더 다른 내용일지도.
으음.
세력은 일단 각 중립 길드들에서 난리가 난 것만 봐도 앞으로의 행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혹여라도 일이 잘못되더라도 최소한 초월이나 페가수스에는 붙지 않을 테니.
그럼 그 세력은 전부 패황에게 가서 붙을 확률이 높았다.
패황이 이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니까.
마치 쇼핑 카트에 물건을 쓸어담듯 중립 길드나 초월, 페가수스와 적대적인 길드들을 모두 포섭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어렵지 않게 성사될 확률이 높았고.
이전에는 중간에서 눈치를 본다고 패황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
당장은 자기들끼리 뭉치지 못하니 뭔가 구심점이 될만한 세력을 찾을 것이다.
패황은 그걸 충족시켜 줄 연합과 충분한 자금.
그 모든 것들을 두 손에 쥐고 있었다.
결국 어떻게든 패황에게 흡수되듯 합쳐지게 될 터.
당연히 세력이 부족한 건 아닐 테고.
그런데 왜 재중이 형.
아니 정확하게는 신화 길드를 대상으로 저런 메시지를 보낸 걸까.
그리고 그런 점들을 고려하자 한 가지 사실로 이어졌다.
“흐음, 적의 심장을 확실히 찍어 줄 날카로운 창을 찾는 건가요?”
“빙고.”
역시 이게 맞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미 물밑으로 세력 불리기에 들어갔을 지금.
생각 이상으로 바쁠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잊혀진 신화 길드까지 연락하다니.
어떻게 보면 수완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다.
아마도 초월이나 페가수스를 누를 한순간을 위해 지금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문제는…….
“우린 잠적했지 않아요?”
“어,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신화 길드는 현재 잠정 휴업 상태였다.
일단 초월과 페가수스나 다른 프로팀의 연합 같은 경우는 우리와 적대이기는 해도 막아 내는 것 자체는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우리와 적대하는 마왕 올펠 때문이었다.
마계에서 한 번 걸린 적대 상태를 푸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고.
거기다 마왕 아르곤 역시도 아직 적대 상태가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재중이 형이 있다고 해도 연합 유저들을 전부 보호해가며 두 마왕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당시의 상황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이런 마왕들의 추격이 아니었다면 굳이 잠적하지는 않았을 터.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아예 길드를 해체하고 새로 만드는 방법인데…….
이건 정 방법이 없으면 쓰려고 일단 두고 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점은…….
“일단 우리와 적 아니에요?”
“뭐 그렇지.”
패황 연합 역시 초월과 페가수스 쪽 연합에 붙어서 우리 연합을 압박하는 녀석들 중에 하나였으니까.
굳이 분류를 하자면 패황 길드가 신화 길드와 직접적으로 붙지는 않았지만.
휘하 연합원들의 숫자 우위를 이용해 사냥터에서 꽤 귀찮게 하긴 했다고 들었다.
그것 때문에 우리 연합에도 피해가 꽤 많았다고 하고.
“그런데도 연락을 한 건가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거겠지. 일단 초월과 페가수스 모두 우리와 적은 맞아. 그리고 원래라면 패황 역시 마찬가지지만 패황은 지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지.”
“네, 조만간 갈라지겠죠.”
확실히 이대로 기다리기만 하면 두 연합은 완전히 갈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 연합과 모두 적이었던 우리는 꽤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는 거고.
그리고 아마 이런 상황에 놓인 길드들도 꽤 많이 존재할 거라 생각했다.
저 녀석들이 싸우고 다닌 길드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설마 그 모든 길드들을 포섭할 생각일까요?”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포맷으로 생각해 보면…….
꼭 중립 길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패황이 포섭할 수 있는 길드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나게 될 것이다.
“뭐 전부 다 포섭은 안 되겠지만…… 콕 집어서 초월 쪽에서 설거나 자신들에게 설 거냐를 줄을 세워 보면. 아무래도 패황 쪽에 무게가 더 실리겠지. 지금 기득권은 초월이니까.”
“그래요? 오히려 초월 쪽에 더 많이 서지 않아요? 그쪽이 세력이 더 강하잖아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먹을 사람이 다 정해져 있는 피자를 먹겠다고 끼어들어 봐야 뭐가 남을까?”
“아…… 그렇네요.”
“그런 거지.”
확실히 통제를 통해 지배구조를 확실히 해놓은 상황에서 기존의 길드들이 치고 들어갈 구석은 지금처럼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초월 쪽이 기득권을 잡고 있으면.
언제가 되더라도 상황은 똑같다.
하지만 반대로 패황이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언더독이라 할 수 있는 패황을 도와 서버의 전체 판을 뒤집게 되면 확실히 이야기가 달라져.”
“나눠 먹을 파이가 있다는 거네요.”
“어, 녀석들에게는 패황이 이 전쟁을 이겨야 해먹을 게 많아진다. 최소한 지금처럼 통제 속에 묶여서 레이드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은 벗어나겠지. 사냥터도 그렇고.”
재중이 형 말대로 패황이 내걸 패는 확연히 정해져 있었다.
반 통제 연합.
꼼짝하지 않는 중립 길드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보다 좋은 슬로건은 없으니까.
거기다 자신들과 적대 상태였던 길드들의 목줄을 채우기에도 이 슬로건은 굉장히 쓸모가 있어진다.
그리고 단순히 여기서 끝낼 생각도 없었다.
“곧 패황이 수면 위로 이빨을 드러내면 그 아래로 수많은 유저들이 모이게 될 거야.”
“그동안의 구조에 불만이 있던 유저들 말이죠.”
“그래. 하고는 싶어도 개인이나 소수여서 목소리를 못 내던 녀석들까지 열성적으로 돕겠지.”
“규모가 엄청 커지겠어요.”
그러면 당연히 우리도 좋아지게 된다.
녀석들의 시선을 완전히 돌릴 수 있게 되니까.
거기다 가장 좋은 점은.
녀석들이 준비하고 있던 일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마왕과의 일전은 완전히 망하겠네요.”
“어, 녀석들이 지금 서버를 잡고 있을 정도로 세력이 크다고는 해도 반 통제 연합과 싸우면서 동시에 마왕과 싸우기는 무리야. 세력 균형이 하나만 어긋나도 박살 나게 될 거다.”
“그건 좀 아쉽네요. 초월 쪽 연합들이 지금 마왕과 붙고 있었다면 더없이 좋은 카운터가 됐을 텐데요.”
만약 일이 조금 빠르게 진척이 되어 정말 마왕 토벌이 시작됐다면…….
그 사이를 파고들면 더욱 수월하게 녀석들을 갈라놓을 수 있었을 텐데.
내 아쉬운 말투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냐?”
“네, 뭐…… 마왕이라고 별수 있겠어요? 지들 치는 세력을 같이 때려 주겠다는데.”
그러자 잠시 고민을 하던 재중이 형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흐음, 그건 나쁘진 않는데?”
“써먹을 수 있을까요?”
“아주 불가능한 미션은 아니지만 타이밍이 문제긴 해. 일단 초월 연합이 마왕 토벌을 시작해야 하거든. 그런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쉽게 못 할 듯 보이는데? 아마 초월도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를 쉽게 보진 않을 거다.”
재중이 형의 말을 들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두 개의 패라…….
하나는 이대로 그냥 두기만 해도 터질 거고.
다른 하나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확률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훨씬 높죠?”
“아무래도. 마왕은 너도 상대해 봐서 알 테지. 그리고 그 마왕들이 지금은 더 강해졌다고 생각해 봐.”
솔직히 패황의 새 반통제연합은 급조하는 연합이라 그런지 구조상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여차해서 잘못 들이받으면 오히려 초월 쪽의 거대 연합에 깨질 수도 있는 노릇이고.
그러면 지금 최고로 써먹을 수 있는 패가 하나 무너지는 것이다.
당장 패황이 무너지면 그만한 몸빵을 다시 찾기란 쉬운 일도 아니었고.
패를 좀 더 완성 시켜서 확실하게 만들어야 해…….
최소한 정면에서 붙었을 때 밀리는 경우는 생기지 않게.
“형, 아무래도 양념을 좀 더 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호오. 뭔가 생각났냐?”
“네, 이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곧장 르아 카르테에 거주하는 금속의 정령을 불러냈다.
그러고는 몇 가지를 물어보았는데 귀찮다는 듯하면서도 대답을 꼬박꼬박 해주어 결국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완성되자 곧 재중이 형을 보면서 웃어 보였다.
“형, 오랜만에 마왕 구경 한 번 하러 갈가요?”
이 전쟁에 참전할 새로운 패를 구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