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9화 불신의 연합 (11)
안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명궁을 엿 먹이려고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려나.
뭐 당장은 아라크네 로드 레이드를 한 번만 방해한 것에 불과하겠지만.
이게 바탕이 되어 나중엔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최소한.
저 녀석이 잘 되는 것은 보고 싶진 않단 말이지.
그건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요즘 저 녀석이 너무 날뛰어서 안 그래도 한 방 먹여 주려 했다고.”
“그래요?”
“어. 저 녀석, 물욕이 좀 있는 편이라 여기저기 안 건들고 다닌 곳이 없다니까. 돈이 될 만한 구석이 나오면 그냥 다 쑤시고 다녀. 상납도 다른 녀석들보다 훨씬 많이 받는 편이지.”
“으음, 그럼 적이 많아지지 않아요?”
“그걸 커버할 거대한 세력과 실력이 있으니까. 당하면서도 갚아 줄 생각을 못 하는 거지. 시도한 놈들도 뭐, 끝이 좋진 못했고.”
확실히 프로 팀들끼리 연합을 맺고 있다고 하면.
어지간한 유저들의 힘으로는 그걸 깨긴 힘들 것 같았다.
만약 쪽수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저 녀석들이 나서 버리면 금세 전력이 역전될 테니까.
그래서 예전에 미르 길드의 황룡이 저런 녀석들을 견제하기 위해 날 그렇게 포섭하려고 했던 거였다.
실질적으로 1:1로 붙어서 깨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력을 가진 유저가 아니면 안 된다.
뭐 한 명을 수십 명이 다굴 치는 경우에야 어떻게 승산이 있긴 하겠다만.
매번 그런 경우가 나온다고 보기도 힘들었고.
혹여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깨지면 그건 더 치명적이다.
당장 조금 전에 나에게 깨지고 간 패황 연합의 유저들도 나 혼자한테 그렇게 깨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그만큼 개인의 전력이 강하다는 건 위협적인 일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연합을 맺고 있으면 더하고.
당하면서도 갚아 줄 생각도 못 할 정도면…….
이미 이 바닥이 썩을 대로 썩어 있다고 봐야겠지.
솔직히.
저 녀석들이 여기서 설치고 다니는 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뭘 얼마나 벌고 다니든.
누굴 괴롭히고 다니든.
통제를 하고 이 세상을 다 잡아먹든.
그런데 문제는 그게 내가 속한 세상을 건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팀을 비롯해서.
내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이지.
그리고 난.
그걸 그냥 두고 볼 만큼.
실력이 없거나.
자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그 끝을 한 번 만들어줘 보죠.”
내 말에 재중이 형도 미소 지었다.
“아아,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말이야. 이제 좀 재밌어지겠네.”
그리고는 명궁 쪽이 레이드하고 있는 아라크네 로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아라크네 로드부터.”
“네, 이번엔 그 스킬이죠?”
“그렇지. 그리고 팬텀 익스플로전이나 트리플 템페스트 같은 스킬은 쓰면 안 돼.”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어요. 얼음 여왕하고 팬텀 나이트의 스킬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요.”
초월 쪽 연합에서 독점적으로 긁어모은 스킬들이다 보니 여기서 쓰면 바로 문제가 생길 터.
반대로 리빙아머 킹의 스킬은.
저 녀석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은 그걸 노리고 온 셈이고.
“그럼 갑니다.”
“아아, 조심하고. 여차하면 그냥 빠져. 허공 질주도 안 되니까.”
“네, 조심할게요.”
이거 주력 스킬을 죄다 봉인당한 기분인데.
기껏해야 쓸 수 있는 스킬은 유령보 정도였다.
이건 겉으로 보기엔 전혀 표시가 안 나는 스킬이라.
유령보를 제외하면 다 못 쓰겠군.
그만큼 이번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는 뜻이었다.
잠시 한숨을 쉬고는 곧장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주변을 살펴보자 지금은 전부 아라크네 로드를 상대한다고 시선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인간형이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마계의 네임드들 중에는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 많았다.
전에는 괴수 형태의 덩치가 커다란 녀석이 더 많았는데 말이지.
팬텀 나이트도 그렇고.
혹한의 얼음 여왕이나 리빙아머 킹 역시도 그랬다.
두 발로 선 전형적인 인간의 형태.
일반적인 유저들보다야 당연히 더 크긴 한데 괴수의 형태를 하고 있거나 그러진 않았다.
어쩌면 괴수 형태보다는 이쪽이 더 공략하기 까다로울 수도 있겠는데.
기동력은 둘째 치더라도.
전투 능력의 형태가 유저들과 유사한 형태를 띈다는 게 문제였다.
무기라도 들고 있다면.
세세한 동작들까지 전부 따라할 수 있으니.
거기다 유저들보다 월등히 높은 스펙에 광역 스킬들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더 어려울 수밖에.
거기다 표적이 작아진다는 점은 더 문제였다.
거대한 괴수들이야 아주 멀리서 그냥 죽어 봐라 하고 광역기를 마구잡이로 난사해도 어떻게든 맞긴 한다.
대미지야 둘째 치더라도 스치는 것도 맞긴 맞는 거니까.
이건 쪽수로 밀어붙일 여건이 된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이런 작은 표적은.
그렇게 하기 힘들지.
덕분에 아라크네 로드 역시 쉽게 유저들에게 포위되거나 광역기를 맞고 체력이 깎이지는 않았다.
거기다 이곳은 어두움이 가득한 빽빽하고 광활한 숲의 한복판.
유저들보다는 아라크네 로드에게 훨씬 유리한 공간이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그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은신! 】
조금만 주의를 흐트려 준다면 꽤 해볼 만하겠는데?
비록 유령보밖에 스킬을 쓰진 못하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충분히 이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 유령보! 】
은신에 유령보까지 쓰자 발아래 닿는 기척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이러면 녀석들의 겉으로 다가가도 어지간해서는 파악하지 못하겠지.
이건 이미 전에도 확인했던 일이니까.
거기다.
이 녀석들…….
전혀 은신 탐지 스킬을 쓰고 있지 않아.
디텍트 하이딩 유저는커녕.
디텍트 에어리어마저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았다.
딱 이전과 판박이네.
패황 녀석들이나 그 전의 녀석들도 레이드 중간에 은신 감지를 하지 않는 걸 보면…….
그리고 그런 방심이.
너희들의 목을 조르겠지.
곧장 외곽에서 힐을 열심히 주고 있던 녀석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이 녀석 역시도 정말 힐에 집중한다고 온 정신이 다 팔린 상황.
고맙네.
그리고는 곧장 오러를 씌운 테르타로스를 녀석의 뒷목에 꽂아 넣었다.
푸욱!
“억?!”
급소 중에서도 뒷목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여길 정타로 찍히면 남은 체력이고 뭐고 그냥 순식간에 체력이 줄어들면서 죽어 버린다.
좋아.
일단 한 놈.
【 은신! 】
크리티컬이 터져서 바로 은신을 하고는 다시 다른 녀석들의 목을 갈라놓기 위해 움직였다.
방심을 해도 너무 한단 말이지.
그리고 차례대로 힐러들 위주로 목을 갈라놓자 점점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힐이 이상한데?”
제일 먼저 이변을 눈치챈 것은 역시나 메인 탱커.
명궁의 페가수스에 속하는 녀석인 걸 보면 이 녀석도 아마 프로 팀 중에 하나겠지.
그만큼 눈치도 빠른 편이었다.
전에는 아예 힐러 대여섯 명을 죽인 다음에야 겨우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빨리 반응했다.
명궁 역시 곧장 주변을 둘러보고는 곧장 오더를 내렸다.
“누군가 있다. 찾아내.”
<폰90> 꽤 빠르네요.
<폰91> 저 녀석들이 눈치 하나는 빠르지.
폰.
이번에는 병사를 뜻하는 단어로 바꿔서 쉽사리 우리를 유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긴.
어차피 다 가명이라 의미가 있겠느냐만은.
한동안 녀석들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어둠 속에 숨어들어 힐러들의 목을 계속 따고 다니자 어느 순간 내가 있을 법한 위치로 날카로운 화살들이 쏟아져 날아왔다.
간담이 서늘하게 할 정도의 정확도.
만약 명궁을 계속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면.
저 화살들에 맞아서 은신이 풀렸을지도.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내 위치를 파악한 거지?
그러자 곧장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폰91> 저 녀석 다음에 노릴 힐러와 이전의 네가 있던 위치의 최단 거리를 노린 거다. 그리고 네가 움직이는 속도까지 전부 계산하고.
<폰90> 하, 역시 쉽지 않네요.
당연히 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 제일 가까운 힐러를 노렸는데 녀석 역시도 그걸 읽고는 내가 달려가는 반경에 화살 세례를 놓았던 것이었다.
재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능력 하나만큼은 좋잖아?
물론 방식을 알았으니 이제부터는 다시 나도 맞춰서 반응을 해 주어야 했다.
저 방식은 내가 최단거리로 움직였을 때만 유효한 방법이었다.
반대로 규칙적으로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촤악!!
“크악!!”
좀 돌아가기는 했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나타나 또 다른 힐러의 목을 날려 버리자 녀석들도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자 녀석들의 패턴이 변화했다.
힐러들을 보호하는 진형으로.
이건 이전에 이미 봤다니까.
보조 탱커들과 근접 딜러들을 힐러 주변에 포진시키는 방법.
하지만 이렇게 해버리면 정작 아라크네 로드를 제대로 레이드할 수가 없게 된다.
“폰90? 뭐 하는 새끼야?”
“야! 디텍트 하이딩 유저 돌려!”
“걸리기만 해봐! 아주 갈아 마셔 준다!”
당연하게도 은신을 풀기 위한 디텍트 하이딩 유저를 썼지만 이번에도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촤악!!
푸욱!!
“케엑!”
오히려 보란 듯이 디텍트 하이딩 유저를 쓰는 녀석의 목을 날려 죽음의 빛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이게 말이 돼?”
“젠장, 디텍팅이 안 되잖아!”
“뭐 하는 새끼야?”
이 짓도 하다 보니 점점 느는 것 같네.
아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디텍트 하이딩 유저의 파장을 거의 스치듯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 들어가 접근하니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녀석들의 목을 날릴 수 있었다.
푸욱!
촤악!
퍼억!
내가 테르타로스를 뻗는 그곳이 곧 죽음이요.
녀석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연합원들이 죽어 사라지자 명궁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애초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본 기억도 없을 테니.
아마 한참 머리를 굴린다고 정신없겠지.
그리고 그사이에 계속해서 마법사와 힐러의 목은 날아가는 중이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가는 레이드도 제대로 되지 않을 터.
참다못한 명궁 녀석이 이를 까드득 갈더니 이내 손을 들어올렸다.
“저 새끼 당장 잡아서 내 앞에 무릎 꿇려!!”
그러자 레이드에 집중하고 있던 유저들이 손을 떼려는지 진형을 풀기 시작했다.
호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그러면 난 반대로 하면 그만이다.
<폰90> 형, 잠시 쉴게요. 녀석이 잔뜩 달아올랐네요.
<폰91> 크큭, 그래.
명궁 녀석이 달아올라 상당수의 유저들을 빼서 날 찾아다녔지만 이미 난 외곽으로 빠져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당연히 헛수고만 한 셈이었고.
내가 나타나지 않자 그런 상황은 계속 지속되었다.
그사이 레이드 하던 인원이 줄어들어서인지 연합원들은 아라크네 로드의 밥이 되어 점점 죽어 나갔다.
그러자 급박하게 메인 탱커가 외쳤다.
“형님! 여기서 더 죽으면 녀석이 레벨업할 겁니다!”
그 말에 더욱 이를 갈던 명궁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찾아도 내가 계속 나타나지 않으니 판단을 다시 할 수밖에.
“최대한 애들을 한곳에 모아. 방어는 최소한으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레이드부터 끝낸다!”
“그럼 피해가……!”
“시끄러! 이번에 놓치면 아라크네 로드를 다시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명궁 말대로 평상시의 네임드는 잡을 만하겠지.
하지만 그 녀석이 유저들을 계속 잡아먹고 레벨업하면?
그러면 진짜 손대기 힘든 녀석으로 변해버릴 수도 있었다.
재중이 형이 잡던 발록처럼.
거의 재앙에 가까워지지.
그래서 리젠을 하자마자 바득바득 잡으려고 드는 것이었다.
그나마 약할 때.
손댈 수 있을 때.
<폰90> 결국 잡으려고 하네요. 솔직히 반반이었는데.
<폰91> 아라크네 로드가 저놈 수익 중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걸? 손에 놓긴 힘들겠지.
결국 나의 방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레이드를 다시 시작했다.
물론 날 견제하기 위해 어느 정도 방어를 구축해 놓기는 했지만.
녀석의 시선 역시 계속 후방을 살핀다고 레이드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실컷 경계해라.
하지만 난 너희를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거든.
그렇게 한참이 지나 아라크네 로드의 생명이 다해갈 때쯤.
“조금만 더 하면……!”
“우오!! 가자!!”
“끝을 내자고!”
그런 녀석들의 외침을 듣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
수고했다.
<폰90> 이제 수거하러 갈게요.
<폰91> 크큭, 명궁 녀석. 일그러진 표정이 벌써 기대되는데?
테르타로스를 들어올렸다.
마지막을 장식할 리빙아머 킹의 스킬을 장전하고는.
이 스킬을 보면 명궁 녀석.
과연 무슨 생각을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