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49화 (839/1,404)

#849화 불신의 연합 (1)

혹한의 얼음 여왕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레이드 팀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진형이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정확하게는 발이 빠른 유저들을 먼저 사방으로 내보냈다는 말이 맞으려나?

겉에서 보는 것보다는 더 마음이 급했던 모양인데?

아마 상황이 좋았다면 어떻게든 구색을 맞춰서 내보냈겠지만 당장 눈앞에 얼음 여왕이 보이지 않으니까 따로 추격조를 짤 여유도 없어 보였다.

몬스터 특성상 전투 지역에서 너무 멀어지면 자체적으로 회복을 해 버리게 되니까.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지금껏 레이드를 하면서 들였던 자원들을 싹 날리는 셈이기도 하고.

피해도 피해지만.

만약 레벨을 더 올린 상태의 얼음 여왕을 상대하게 된다면?

그때는 다시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끝을 내야 하는 확실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이런 상황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일단은 재중이 형과 합류하고.

기척을 죽이고 몸을 빼 전투 지역에서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재중이 형이 옆으로 다가왔다.

“왔어요?”

“그래, 녀석들이 흩어지니 움직이긴 편하네.”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내게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물어볼 게 있는 건가?

“너 그런데 디텍트 하이딩 유저 스킬은 어떻게 피한 거냐?”

“아, 그거요? 으음. 그…… 스킬이 시전되면 이상한 파장이 시전자 중심으로 해서 원형으로 퍼지거든요.”

“그게 보여?”

“보이는 건 아니고요. 음, 감각에 걸린다고 해야 하나. 아마 음파나 뭐 비슷한 느낌이기는 한데……. 대략 디텍트 에어리어는 10초에 한 번 정도 주변을 원으로 훑고 지나가고, 디텍트 하이딩 유저는 한 번만 피하면 돼요.”

“으음, 그렇단 말이지. 다음번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서 살펴봐야겠는데?”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안 그래도 평지가 아니면 은신이 잘 안 잡힌다는 말이 게시판에서 돌기는 했었어.”

“네, 아마 높이가 좀 차이가 나서 안 잡히는 게 맞을 거예요. 전 숙여서 피했거든요.”

“높이가 어느 정도 돼?”

“대략 허리 정도요.”

“그 정도면 나도 해볼 수 있겠네.”

사실 원리만 알면.

파훼하기 어려운 스킬은 아니었다.

대부분 그 원리를 몰라서 문제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제가 먼저 디텍팅이 가능한 녀석들을 죽여 놓을게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은 한 치의 실수도 있으면 안 되니까.”

혹여 눈먼 기술에 당하기라도 하는 건 나 역시 사양이었다.

곧장 재중이 형이 아이디 변경서를 쓰고 난 뒤 은신을 해서 모습을 감추었다.

“노아02……?”

“커플 아이디인데 어때?”

“정말 할 말이 없네요.”

뭐 아이디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가자. 녀석들도 계속 하염없이 사라진 네임드를 찾고 있진 않을 테니.”

“네.”

재중이 형이 먼저 앞장서자 나 역시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재중이 형의 정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움직임을 보고는 속으로 감탄했다.

고레벨을 상회하는 스펙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잘 갈무리해서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스탯이 조금만 높아져도 제대로 컨트롤을 못해서 허둥대는 유저들이 대부분인데 반해 재중이 형은 완벽할 정도로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스킬 쓰고 있는 거예요?”

“아니. 그냥 달리는 건데?”

“솔직히 스킬 쓰고 있는 줄 알았어요.”

“으음, 민첩이 일정 수준 이상 달하면 거의 바닥을 밟지 않는 것처럼도 움직일 수 있어. 한쪽 발이 채 닿기도 전에 반동으로 다른 발을 내 뻗어 봐.”

그러더니 조금 더 속도를 올려서 정말 땅을 스치듯이 앞으로 뻗어 나갔다.

무슨 혼자서 무협 영화라도 찍나?

실제로 바닥의 수풀에조차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다.

말이 쉽지…….

이런 가속에서 저 수준의 정교함이라니.

아마 유령보 같은 스킬까지 쓰면 정말 옆에 지나가고 있어도 전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몇몇의 유저들이 주변을 수색하고 있는 게 보였다.

본대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일단 다섯인가.

재중이 형도 적을 발견하고는 속도를 늦춰서 더욱더 기척을 없애 버렸다.

<노아02> 보여?

<노아01> 네, 방금 발견했어요.

이전에 내가 죽였던 녀석들은 디텍팅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거나 후방에 있던 힐러들이었다.

둘 다 방어가 종잇장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나 혼자 죽이는 게 가능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은 또 달랐다.

최소 경갑.

그리고 한 녀석은 중갑을 입고 있었는데 이런 녀석은 한 번에 죽이는 게 꽤 난해했다.

나중에라면 또 몰라도 지금은 테르타로스 하나만 들고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적들에 비해 스탯이 너무 낮으니 당연히 대미지도 그만큼 안 들어갈 테고.

하지만 재중이 형이 있으면 이야기 달라진다.

내게 부족한 한 방은 재중이 형이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었다.

<노아01> 얼음 여왕의 스킬을 흡수할까요?

<노아02> 으음, 아니야. 그건 나중에. 이 녀석들에게 얼음 여왕의 스킬을 보여 주는 건 아직은 안 돼.

스킬을 보여 주지 말라고?

그 말을 들으니 바로 생각나는 게 있었다.

<노아01> 제가 잡아서 아이템을 습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노아02> 뭐, 그런 점도 있고. 일단 시스템상 불가능하기는 한데…… 눈앞에서 얼음 여왕의 스킬을 써버리면 이야기가 꽤 복잡해져.

<노아01> 네, 알았어요.

어차피 얼음 여왕의 스펙은 테르타로스에 흡수된 상태였다.

나중에 변경만 하면 되는 일이라.

지금은 팬텀 나이트의 스킬만으로 충분하겠지.

그리고 좀 더 주변을 살폈는데 다른 유저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노아01> 주변에는 아무도 느껴지지 않아요.

<노아02> 오케이. 그럼 하나씩 깐다. 따라와.

재중이 형이 먼저 녀석들 중 제일 외곽에 떨어져 있는 경갑을 입은 궁수의 뒤로 돌아 들어갔다.

발이 빨라서 먼저 보낸 녀석들 대부분이 궁수들이다 보니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채색의 창대를 가진 창을 하나 꺼내 들고는 녀석의 후방에서 목을 관통하듯이 그대로 찔러 넣었다.

일단 경갑은 목까지 완벽하게 보호해 주진 않으니까.

흐음.

저 무기는 뭐지?

처음 보는 아이템이라 눈이 갔는데 아마 예상하기에 정체를 숨길 용도로 쓰는 무기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지금 꺼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커억!!”

완벽한 크리티컬.

당한 녀석이 한 방에 목을 부여잡지도 못하고 그대로 경직되어 굳어 버렸다.

<노아02> 지금!

<노아01> 네! 갑니다.

그대로 달려들어 있는 힘껏 테르타로스의 검신을 녀석의 목에 다시 박아 넣자 이번에는 그대로 죽음의 빛으로 변해 완전히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 은신! 】

【 은신! 】

나처럼 재중이 형도 하이딩 망토를 들고 있으니까.

크리티컬을 터트리기만 하면 바로 은신의 재사용이 가능했다.

그렇게 둘 다 모습을 감춰 버리자 그 자리에는 드랍된 아이템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노아02> 이건 줍고.

재중이 형이 잡아채자 허공 속으로 쓱 사라지는 아이템.

누가 보면 그냥 증발한 줄 알겠네.

<노아02> 바로 다음 가자고.

그리고 달려가더니 또 다른 녀석의 목을 찔렀고 이번 역시도 동시에 검을 박아 넣어 죽음의 빛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녀석들도 완전히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쐐액!!

방금 우리가 두 번째 녀석을 죽였던 자리로 십여 발의 화살이 넓게 퍼져서 날아와 우리 주변에 꽂혀 들었다.

다행히 확실하게 위치를 잡은 건 아닌지 조금 위치가 빗나가서 우리에게 닿지는 않았지만 간담이 서늘하게 만들 정도의 경계였다.

<노아02> 호오, 눈치채고 있었나 본데?

<노아01> 은신을요?

<노아02> 아니, 그랬다면 정타로 들어왔을 거다. 우리 위치를 확정하지 못했으니까 저렇게 광역기로 날리지.

눈치는 챘는데 은신을 파악할 정도는 아니다 이거네.

<노아01>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이걸 멈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은신을 눈으로 보듯이 공격할 수 있다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저들은 우리에게 잘 차려진 밥일 뿐이었다.

“은신이다!!”

“젠장! 디텍팅 가능한 녀석이 없는데.”

“안 그래도 너무 서두른다 했어…….”

“일단 본대에 알려.”

그리고는 중갑을 입은 녀석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 둘은 곧장 좌우로 벌려서 도망가라.”

“넌?”

“난 중갑이야! 당분간은 버틸 수 있다. 그리고 어차피 내 발은 너희만큼 빠르지는 않아. 혹시라도 얼음 여왕을 발견하면 잠시 잡고 있기 위해 따라온 거지. 이 발로 도망가는 건 무리다.”

“알았다. 죽지 말고 버텨 봐.”

“금방 온다.”

그러더니 경갑을 입은 궁수 둘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갔다.

중갑을 입은 녀석을 그대로 두고.

<노아02> 호오, 이것들 봐라?

<노아01> 어떻게 할까요?

<노아02> 어차피 들킨 거. 다 잡자.

그러더니 이번엔 등에서 처음 보는 활을 꺼내 들었다.

상당히 큰데?

대체 이 형 무기를 몇 개나 가지고 다니는 거야?

재중이 형은 도망간 녀석들 중 하나에 활을 조준하더니 그대로 손을 놓았다.

쐐애애액!!

푸욱!

그리고 이어진 헤드샷.

당연히 몸이 경직되어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니 달리는 속도 때문인지 바닥을 심하게 굴러 버렸다.

저렇게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유저의 머리를 한 번에 꽂아 버리더니.

이어 바로 한 발을 더 장전하고는 반대쪽에 달려가던 녀석의 머리 역시 헤드샷으로 맞추고는 날 보고 씨익 웃어 보였다.

“가서 마무리.”

“네네. 사냥개라 이거죠.”

재중이 형이 밥상을 차려놓자 곧장 달려가 르아 카르테로 녀석들의 목을 찍어 죽음의 빛으로 만들었다.

이건 쉬워도 너무 쉽네.

그렇게 남은 중갑의 유저는 두 눈을 부르르 떨었다.

도망가라고 자기만 남았는데 정작 도망가던 녀석들이 죄다 죽어 버렸으니.

“대체 어디 새끼들이야?! 우리 연합을 건들고 무사할 것 같아?”

그러면서 대검을 꺼내 앞으로 경계했다.

도망가기는 글렀고.

버텨보기라도 하자는 건가?

시간을 끌려는 생각 같기도 하고.

<노아02> 어째 저 녀석들은 멘트가 맨날 똑같냐?

<노아01> 엑스트라들이 원래 좀 그래요.

<노아02> 크큭, 그럼 얼른 보내 주자고. 메인 코스 요리가 나오게 말이야.

<노아01> 누굴 노리는데요?

<노아02> 아까 봤잖아.

<노아01> 혹시 그 메인 탱커요?

<노아02> 어, 그놈이 좀 부자거든. 적당히 털어도 우수수 떨어질 거다.

그런데 그때 아까 들었던 적 연합의 메인 탱커와 그 보좌의 대화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하나 더.

일부러 말을 흘릴 수도 있지 않냐는 추측들.

그런 사실들이 묶이고 묶여서 뭔가의 생각들로 떠올랐다.

흐음.

이거…….

잘하면 그림이 좀 나오려나?

그것도 아주.

혼돈으로 몰아넣을.

<노아01> 형, 잠시 생각 좀 할게요.

<노아02> 그럼, 저 녀석은 내가 죽이지.

재중이 형이 이럴 때는 날 그냥 두는 게 좋다는 걸 잘 알아서 먼저 달려 나가 중갑의 유저와 혼자 싸움을 걸더니 거의 가지고 놀듯이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역시.

그리고 그걸 보는 사이 머릿속으로 생각들이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세세한 건 의논을 나눠 봐야겠고.

이제 더 은신을 할 필요가 없어 재중이 형이 창을 집어넣고는 내게 걸어왔다.

“어때? 뭔가 생각났어?”

“네, 형. 아까 말했던 것들 있잖아요.”

그리고는 정리된 생각을 이야기해 주자 재중이 형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호오, 그러니까. 역으로 말을 흘리자는 거냐?”

“네, 우린 지금부터 초월 쪽 사람이 되는 겁니다.”

틈이 있다면.

아주 찢어 주면 된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도록 말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