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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48화 (838/1,404)

#848화 증발하는 네임드들 (11)

얼음 여왕을 죽이자마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테르타로스가 네임드 몬스터 혹한의 얼음 여왕을 흡수하고자 합니다. 》

《 허락하시겠습니까? 》

풀 네임 혹한의 얼음 여왕.

레벨 350대의 네임드가 이렇게 테르타로스에 완전히 흡수가 되었다.

정확히 350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의 말을 들어보면 이미 이 얼음 여왕에게 꽤나 많은 유저들이 죽었다고 했으니 아마 레벨은 그보다는 높겠지.

뭐 테르타로스로 네임드를 죽이면 레벨 1 상태의 얼음 여왕을 흡수한다는 건 동일하니까 크게 상관없으려나.

그리고 일단 이 상태에서 내가 허락을 해야 얼음 여왕의 스펙이 완벽하게 흡수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

얼음 여왕이 죽으면서 기존의 얼음 여왕이 사방으로 펼치고 있던 트리플 템페스트가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보통은 먼저 이 트리플 템페스트를 파훼하고 난 뒤에야 이 얼음 여왕을 공격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으로 잡았으니 이제야 폭풍이 사라질 수밖에.

그리고 그런 시간들은 내 모습을 감추기에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 은신! 】

스르륵.

그렇게 내 모습이 완전히 투명해져 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트리플 템페스트가 가라앉으면서 주변에 몰아닥치던 한파가 어느새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칫.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트리플 템페스트가 사라지자 당연하게도 사방에서 날아오던 공격들이 내가 있던 공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수백이 넘는 폭격에 가까운 스킬들이.

단일 스킬이나 화살 정도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범위로 공격하는 광역기가 다수 섞여 있기에 이런 공격들을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해보기에는 좀 버거운 면이 있었다.

특히 난 은신 상태여서 더 그랬다.

괜히 맞받아쳤다가는 은신이 풀리게 될 테고 그러면 저들과 정면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나오게 된다.

이건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그래서 빠르게 몸을 뒤로 빼면서 다시 스킬을 시전했다.

허공 질주로 바로 빠져나가는 것도 좋겠지만.

이 스킬은 쿨이 걸려있기 때문에 무리고.

그리고 어차피 트리플 템페스트가 사라진 상태라 굳이 허공 질주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 백스탭! 】

【 대쉬! 】

일단 이 장소부터 좀 벗어나자.

두 연계 스킬에 가속이 붙어 몸이 주르륵 뒤로 빠지자 곧 내가 서 있던 장소로 미친 듯이 스킬들이 쏟아져 내려 이 일대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콰콰쾅!!

콰아아앙!!

쿠우웅!!

퍼어엉!!

화르륵!!

보통 네임드를 끝내 버리기 위해서는 이 정도 화력이 필요하기는 할 터였다.

화염, 뇌전, 폭발, 빙결, 폭풍 등.

종류를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을 수많은 스킬들이 한 곳에 터지는 광경이란…….

그리고 만약 저 자리에 내가 서 있었으면 지금쯤 방어고 뭐고 그 자리에서 녹지 않았을까.

트리플 템페스트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몸을 빼는 것은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다.

<불멸> 살아있냐?

<노아01> 네, 아직은 멀쩡해요.

<불멸> 얼음 여왕은? 이쪽에서는 폭발 때문에 확인이 안 되는데.

<노아01> 제가 누구에요.

<불멸> 크큭, 그래. 제대로 했구나.

<노아01> 네, 테르타로스로 확실히 흡수하고 나왔어요.

<불멸> 오케이.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그대로 빠져나와. 너 스킬들 다 쿨 걸렸을 거 아냐.

<노아01> 잠시만요. 아직 은신이 유지되고 있어서요.

<불멸> 음? 좀 더 해보려고?

<노아01> 빈틈이 보이면요. 그리고 이대로 돌려보내기에는 좀 아쉬운 면도 있잖아요.

<불멸> 음, 무리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와.

<노아01> 네, 스킬 쿨 돌아오면 다시 들어갈게요.

한동안 수많은 폭격이 이어지고 난 다음 폭발이 사그라질 때쯤 되어 예의 그 메인 탱커가 크게 외쳤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응?

사격 중지?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인 것 같은 느낌은 내 착각이려나.

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야! 앞에 안 보이잖아! 적당히 좀 쏴라!”

“깬 거야?”

“이 정도면 깨지 않나? 전에는 부셨잖아.”

“방심하지 마! 레벨 많이 올라서 이 정도로도 안 통할 거야!”

“아냐! 트리플 템페스트 사라졌어! 대미지 전부 들어간 듯.”

“뭐야? 벌써 깬 거야?”

“이상하네…… 레벨이 더 올랐을 건데.”

어리둥절한 몇몇 유저들의 모습에서 확실히 그대로 두었으면 한동안 계속 싸웠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제대로 된 트리플 템페스트를 깨려면 이 정도 화력이 필요하다는 거네.

그동안 폭발이 완전히 가라앉자 원래 혹한의 얼음 여왕이 서 있던 자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얼음 여왕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이 말하는 건 단 하나뿐이다.

얼음 여왕의 죽음.

“어? 정말 잡았나?”

“없어. 얼음 여왕.”

“휘유! 드디어 잡았다아!”

“우와! 잡았어!”

“하아, 또 대판 싸워야 하나 했네.”

“진짜 레벨만 드럽게 올라서는. 애먹인다니까.”

메인 탱커인 녀석도 제일 선두에 서서는 크게 고함을 질렀다.

전에 윽박지르던 소리와는 달리 지금은 밝고 우렁찬 소리였다.

축하를 하기 위한.

“하하하하, 연합원들 모두 고생했다!”

광활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녀석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그래.

많이 웃어 둬라.

조금 있으면 그 웃음.

싹 사라지게 될 테니.

그 메인 탱커 바로 옆에 보좌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저가 붙더니 역시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후후, 드디어 녀석을 잡았습니다.”

“아아, 고생했다. 너도.”

“아닙니다. 중간에 오더를 확실히 해주시지 않았으면 무너졌을 겁니다. 역시 당신에게 이 연합을 맡기길 잘했습니다.”

“뭘. 자네가 잘 도와줘서지.”

“별 말씀을요. 이번에 이 녀석을 잡았으니 다음에는 좀 수월하게 잡겠죠?”

“그래. 안 그래도 레벨이 너무 올라서 너무 오랫동안 못 잡았지 않은가.”

“그렇죠. 욕심 많은 것들이 달려들어서 레벨만 올리는 바람에. 이 녀석을 못 잡아서 그동안 손해를 본 것을 생각해 보면 혈압이 올라 쓰러질 뻔했습니다.”

“쯧, 아직은 그러면 안 되지. 아직 네가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최소한 그 건방진 초월 녀석들을 무너뜨릴 때까지는 멀쩡히 날 도와줘야 해.”

순간 보좌를 하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유저가 곤란하다는 듯 메인 탱커의 말을 중간에서 막았다.

“흠흠, 다른 사람들이 듣습니다.”

“음, 그런가?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긴 하지. 이 얼음 여왕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날개를 펼…….”

“하, 안 그래도 네임드 상납을 안 한다고 전에도 한 번 뒤집고 가서는……. 이건 연합이 아니라 완전 양아치 집단…….”

응?

조금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저들은 한 연합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들은 말에 따르면 흡사 적들에게나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만약 내가 은신을 한 상태로 옆에 있지 않았다면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을 지금 들어버렸다.

의아한 느낌에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노아01> 형, 혹시 지금 레이드를 한 연합하고 다른 연합들하고 사이가 안 좋아요?

<불멸> 응? 걔들이야 워낙 날뛰어서 다 안 좋기는 한데. 그걸 물어보려고 한 건 아니겠지? 뭔가 들었냐?

역시 재중이 형.

내가 물어본 것 하나만으로 내 의중을 확실히 알아챘다.

<노아01> 네, 방금 저쪽 연합의 장인 메인 탱커 있잖아요. 그 녀석이 묘한 말을 해서요. 그것도 다른 녀석들이 들리지 않게 바로 옆에 녀석하고만 따로 이야기 한 게 있어요.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호오, 그렇게 말했다고? 이거 정보 가져오는 녀석들 전부 다 엎어 버려야겠네. 이렇게 중요한 걸 눈치채지 못하다니.

<노아01> 네, 자세히 모르기는 해도 프로 팀 쪽의 연합을 한 번 뒤엎을 생각이 있어보여요.

<불멸> 아마 그렇게 쉽진 않을 걸? 그런데도 그런 태도라……. 믿는 구석이 있는 거려나.

<노아01>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중간에 둘다 귓속말로 전환한 것 같아서요. 다 못 들었어요.

<불멸> 흠, 만약 네가 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흘린 말이라면…….

<노아01> 제가 뭐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흘리겠어요. 그리고 중간에 놀란 듯이 말을 막는 걸 봐서는 딱히 그렇게 보이지도 않았어요.

<불멸> 뭐, 그쪽은 확인해 보면 되겠지. 사실이면 이거 꽤 일이 재밌게 돌아가겠어.

정말 재중이 형 말대로 급조해서 개판인 연합인지.

아니면 그냥 알력 싸움인지 모르겠지만.

혹은 그것도 아니면 날 의식해서 일부러 말을 흘렸거나.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얼음 여왕이 드랍한 아이템을 확인하러간 유저의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그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드랍템이 없습니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야이, 새끼야. 네가 먹고 짼 거 아냐?”

그러자 덜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미쳤어요? 제가 어떻게……!”

다들 시뻘겋게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는데 그 와중에 아이템을 먹고 째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걸 알기에 다른 사람들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웅성거릴 뿐.

메인 탱커가 옆에 보좌에게 물었다.

“이게 가능해?”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얼음 여왕이 도망간 게 아니라면요.”

“하... 정말 미치게 하는군. 얼음 여왕이 한 번이라도 도망간 거 본 적이 있냐고.”

“없죠.”

“혹시 레벨이 올라가면 반응이 달라지는 거냐?”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아까 은신을 했던 다른 유저가 잡았을 확률은?”

“……만약 잡았다고 해도 드랍템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을 겁니다. 당연히 기여도가 높은 우리가 그걸 획득할 수 있을 테고요.”

“후, 할 수 없나. 다들 주변부터 수색해! 사라진 얼음 여왕을 잡는데 모든 인력을 동원한다! 너무 멀리 떨어지면 녀석이 회복해 버리니까 그 전에 무조건 찾아낸다!”

애초에 어떻게 봐도 저들이 아는 선에서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중간에 날 의심하는 말도 나오기는 했지만.

불가능하지.

내가 잡았다고 한들.

드랍템은 저들의 몫일 테니.

그러니까 지금 날 의심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버리면 회복해버리는 특성상 당장 얼음 여왕을 찾아야 하기에 모든 인원을 사방으로 퍼트리는 실수를 범해버렸다.

큭.

알아서 떨어져 주다니.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나.

안 그래도 너무 덩치가 커서 이들을 어떻게 하나 했는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분산되어 버렸다.

<노아01> 형, 아무래도 오늘 하늘이 좀 돕는가 봐요.

<불멸> 따라가서 칠 거냐?

역시.

척하면 척.

<노아01> 네, 이런 기회가 잘 안 오지 싶어요.

<불멸> 크큭,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노아01> 형도 하게요?

<불멸> 그래, 네 말대로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잘 없으니까. 오늘 용돈 벌이 제대로 해보자고.

나와 재중이 형이 동시에 은신을 하고 움직이면?

과연 살아남을 놈이 있기는 할까?

<노아01> 그럼 제대로 한 번 뒤집어 놔보죠. 아주 악몽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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