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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31화 (821/1,404)

#831화 왕이 사라진 사이 (8)

과정과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한동안 로스트 스카이란 세계에서 눈을 뗀 것은 사실이었다.

나 자신이 도망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당시 내가 버티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휴가라 생각하고 멀리하라는 재중이 형의 말을 듣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몇 개월 정도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물론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자 중간에 몇 번씩 유혹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괜한 기대는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정말 마음을 다잡고 유혜선 팀장이 건네줄 결과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접속을 하게 된 세계는 이전과는 많이 달리진 것 같았다.

일단 우리 쪽 사람들의 랭킹이 이상할 정도로 내려가 있다는 점.

이건 다른 유저들이 잘 따라와서 그랬다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는 한데…….

그 폭이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랭킹 100위권 안에 있던 유저들이 죄다 밖으로 밀려나는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것도 우리 팀은 10위권에서 놀고 있었는데.

VRS에서 나와 홈페이지의 개인 랭킹을 직접 확인했을 때는 솔직히 내 눈을 믿지 못했다.

랭킹이 너무 엉망이라.

솔직히 중간에 로스트 스카이를 접어 버리지 않는 한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있을까란 생각까지 했으니.

그것도 신화나 최강 길드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연합을 했던 유저들의 대부분이 랭킹이 하락하거나 혹은 다른 길드로 적을 옮긴 상태였다.

몇몇 유저들은 아이디를 기억하기에 이건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정도면 연합이 와해됐다고 믿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

뭔가 크게 잘못된 느낌인데.

확실히 내가 모르는 뭔가 있어.

그리고 그걸 알려 줄 가장 적임자는 지금 내 눈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드시면서 멀리 창문 밖을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형, 무슨 일 있죠?”

“아니라고 해도 이제 접속했으니 알겠네.”

“제가 접속한 걸 알아요?”

“어, 내가 그동안 그놈의 커다란 VRS를 얼마나 테스트해 줬는데 모를 리가 있나. 혜선이가 더 이상 안 나와도 된다고 하면 뭐 답은 뻔하지.”

내가 다시 접속했다는데 기뻐하는 듯하면서도 그다지 티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흐음.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랭킹 대체 왜 저따위에요?”

“내 랭킹 말하는 거야?”

“네, 솔직히 그 정도까지 떨어졌을 줄은 몰랐어요.”

재중이 형이 개인 랭킹 300대라.

솔직히 재중이 형보다 잘난 놈이 300명이나 있다고 믿진 않는다.

비슷한 장비를 채워 주면 재중이 형과 1:1로 붙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 생각을 하고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부 뒤져봐도 아마 몇 명 없을 거야.

혹은 아예 없을지도.

물론 레벨 자체는 재중이 형보다 높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단체로 몰이사냥을 해서 한 사람에게 몰아준다던가.

혹은 네임드를 밀어준다거나 하는.

그러면 레벨은 어떻게든 뻥튀기시킬 수도 있었다.

그렇게 큰 녀석이 제대로 싸울 수 있는가는 둘째 치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개인 랭킹이 높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300명이나 된다니.

프로게이머들을 다 제하더라도 너무 많은 숫자가 남아.

뭔가 잘못되지 않고서야.

재중이 형이 요즘 엔터 사업에 발을 담그고 한다지만.

전에 듣기로 실질적인 업무는 수정이 누나가 주로 한다고 들었다.

이 형이 뭐든 다 잘하는 건 아닌 모양이니.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뺏기진 않았을 텐데.

“아, 쪽팔려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네?”

“보자,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잠시 뜸을 들인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가 나가고 난 뒤에 말이야.”

“네.”

“그 뒤에 전쟁이 있었어.”

“으음, 결국 전쟁이 난 건가요?”

“어, 하필이면 우리가 다 나와 있는 타이밍에.”

모두가 다 나와 있는 타이밍이라면…….

“제가 입원해 있을 때겠네요.”

“큭,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 안 하려고 했다니까. 변명이 되잖아.”

흐음.

그때 당시 분명히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상황이 괜찮았는데.

그 시점에서 전쟁이라면…….

가능한 후보지는 두 곳.

“설마 아르곤인가요? 아니면 올펠?”

“어딜 것 같아?”

재중이 형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봤다.

아르곤은 일단 휴전을 걸어온 상태라 가능성이 적긴 하지만.

마왕이라는 녀석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갑자기 생각을 바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올펠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우리까지 적대한다?

이게 가능한가?

반대로 올펠이라면……?

이 녀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충분히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건드리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욱하는 성격은 꽤 마왕스러웠고.

그런데 녀석 역시 아르곤을 쳐야 하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둔다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건.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잠시만 검색해 봐도 바로 나올 것이다.

당시 유저들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재중이 형이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는데.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설마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망했어요?”

“어, 아주 쫄딱.”

“이런…….”

내가 거기 집사로 일하면서 투자한 게 얼만데.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가 날아갔다고?

그러고 보니 접속했을 때 소속이 바뀌어 있었던 것 같기도…….

그것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서 얼핏 지나갔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확실히 소속이 하나 사라져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왕성이 그렇게 쉽게 망해요? 다른 마왕이 쳐들어오더라도 유저들도 많고 방어 준비가 잘 되어 있었잖아요.”

“너, 그때 당시 유저들이 수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 그렇죠.”

솔직히 당시 유저들의 레벨은 너무 낮았다.

장비 역시 마찬가지.

보급품 같은 장비를 겨우 착용하고 싸우러 다니는 판국이라.

아마 제대로 된 저항도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마왕이 쳐들어왔다면.

대충 견적만 잡아 봐도 최소한 400~500 레벨대일 텐데.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결국 제대로 된 수성 병력은 마왕 벨라 혼자라고 봐야 했다.

우리 팀과 연합이 있긴 해도.

어렵지.

“그래도 벨라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시간은 벌 수 있지 않아요?”

기동력에서는 다른 마왕보다 우위에 있으니까.

멀리서부터 타격을 줘 최대한 숫자라도 줄여놓으면 이쪽은 쪽수라도 많다.

죽고 또 죽으면서 버티다보면 어떻게든 됐을 텐데.

물론 유저들이 그렇게까지 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마왕 벨라가 적절한 보상을 걸었…….

“아, 벨라는 가난하죠.”

“어, 뭐 그런 것도 있긴 한데. 아까 말한 것 있잖아. 누가 쳐들어왔을 것 같아?”

“음, 굳이 가능성을 따지자면 올펠요. 올펠이 좀 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틀렸어.”

내 예상이 틀린 건가.

“그럼 아르곤이겠네요.”

“아니, 그것도 틀렸고.”

“……혹시 제3의 마왕?”

“차라리 그랬으면 난전으로 몰고 가기라도 하지.”

“그럼?”

“둘 다.”

“네?”

“녀석들이 사이좋게 손잡고 나란히 쳐들어왔더라고.”

“그게 가능해요?”

“나도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는데 좀 알아보니까 답이 나오더라.”

마왕 아르곤은 당장 마왕 올펠에게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데 협력을 했다고?

그 말에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아르곤이 올펠 아래로 들어간 건가요?”

“어, 뭐 비슷하긴 해.”

“다른 게 있군요.”

“아, 진짜 우리도 전혀 예상 못 했는데 아르곤, 그놈 말이야 목숨은 되게 아끼더라고. 피닉스의 알을 올펠에게 그냥 가져다 바쳤단다.”

“하…… 정말 어이없네요.”

설마하니 아르곤이 그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병력에 여유가 남으니 겸사겸사 말 안 듣는 벨라를 치러 온 거야.”

“망했네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애초에 세력의 균형이 맞지도 않았다.

그 순간 떠오르는 생각.

“혹시…… 벨라가 죽었나요?”

“어떨 것 같아?”

“속 시원히 이야기 해주시죠?”

“큭, 그래. 일단은 살았어.”

“하, 그나마 다행이네요.”

마왕 벨라는 나와 굉장히 우호적인 마왕이었다.

다시 그런 줄을 잡기란 쉽지 않을 터.

당연히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

“그럼 지금은 어딧죠? 도망갔나요? 혹시 잡힌 건 아니겠죠?”

“다행히 도망은 갔어.”

“그나마 다행이네요.”

“하지만 스컬 드래곤은 흙으로 돌아갔어.”

“정말 아깝네요.”

솔직히 엄청 가지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래도 벨라가 살아서 도망친 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마왕 벨라라는 퍼즐은 반드시 필요해요.”

“오, 벌써 큰 그림 짜는 거냐?”

“당한 만큼 돌려줘야죠. 형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곧장 미소 지었다.

이 형도 당하고는 못 사니까.

“아, 그런데 혹시 베르테니아 마왕성 지하에 있던 마신의 파편은요?”

“그 가짜?”

“네, 그 가짜요.”

“올펠이 지하실에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 놨다던데?”

“설마 가짜인 걸 모르는 걸까요?”

“너 같으면 굳이 마법진을 건드리겠냐?”

“상황 봐서요?”

“큭, 아무튼 녀석은 아직까지는 모르는 듯해.”

“그렇군요. 어쨌든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완전히 넘어갔네요.”

마계에서 유저들의 유일한 집결지인데.

그런 곳이 망했으니 그 파장이 적지 않았을 터.

새로운 주인인 마왕 올펠이 유저들을 그냥 두었을까?

음.

이건 모르겠네.

“혹시 유저들이 전부 쫓겨난 건가요?”

경매장에서 본 마왕 올펠의 성격이라면.

유저들을 전부 죽이고도 남을 녀석이었다.

그리고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올펠에게 넘어간 이상.

유저들이 죽으면 더 이상 베르테니아 마왕성에서 부활할 수 없게 된다.

이 경우는…….

재수가 좋다면 가장 가까운 임시 부활소에서 부활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신성 제국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의 고개가 저어졌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야.”

유저들을 살려줬다고?

설마 그럴 리가.

내가 처음 마왕 벨라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솔직히 옆에 아스티아가 없었다면 그것도 부족했을 것이다.

다른 말로.

일반 유저들은 어지간해서는 마왕의 관대함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올펠 같은 불같은 성격을 가진 녀석이라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네요.”

“아아, 일부러 살려 준 건 아니지. 정확하게는 유저들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버리고 내뺀 거야.”

“흐음. 차라리 그게 말이 되긴 하네요.”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 목숨을 걸만큼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애착을 가진 녀석들이 있을까?

솔직히 이건 무리야.

하지만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버리면 더 이상 부활을 할 수 없게 될 텐데…….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설마…… 거점을 마계에 펼친 건가요?”

“어, 유저들 입장에서는 나름 해볼 만한 시도였지. 실제로 통하기도 했고.”

“귀족 작위를 가진 녀석이 있었나 보네요.”

“아아, 그렇지. 네가 아는 놈들도 있고.”

“프로 게이머 길드…….”

“그래, 놈들이 죄다 연합했다. 그리고 자금을 갖춘 대형 길드 녀석들 역시도 마찬가지야. 자신들만의 거점을 만들었어.”

버틸 수 있는 구실점만 있다면.

굳이 누군가가 퀘스트를 주지 않더라도.

유저들은 정말 단단하게 모여들 것이다.

마지막 남은 보루라는 생각으로.

실제로 그렇게 거점을 유지하기도 했고.

그런데 놈들이라는 단어는 내게 꽤 미묘하게 들려왔다.

만약 지금도 아군이라면.

놈들이라는 표현은 보통은 쓰지 않아.

“왠지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나 보네요.”

“어, 너도 알다시피 녀석들이 우리와 친하지는 않지.”

“하…… 뒤는 안 들어봐도 뻔하네요.”

“그래, 주인 없는 집은 개들이 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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