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화 왕이 사라진 사이 (7)
《 유저 주호 님께서 마계에 입장했습니다. 》
로그인 과정이 끝나고 난 뒤 바로 빛과 함께 로스트 스카이 내로 들어왔다.
시스템 메시지에서 나오는 마계란 단어만 보면 아마도 이전에 쓰러졌던 그곳이려나.
5개월 전의 일이라 그런지 좀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 유저 주호 정상 접속 확인 완료. 》
그리고 RE-01에게서도 시스템 메시지가 나왔다.
게임 시스템과는 완전히 별개로.
“성공했어요!”
“확실히 그렇네.”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RE-01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데?
신체를 움직여보니 이전과 같이 팔다리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안심했다.
겨우 제자리인가.
그동안 접속을 못 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감각이 무뎌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예상보다는 훨씬, 아니 오히려 더 몸이 가벼운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몸의 저항이 줄어든 것인 양.
흐음.
스탯은 그대로인데?
꽤 가볍단 말이지.
내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신체 상황을 점검하자 옆에 RE-01이 쪼르르 날아와 내게 설명했다.
“슈퍼 컴퓨터 엘의 가동률이 상승하고 있어요. 5%로 아주 최적화된 상태에요.”
“아아,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아마 세 개의 슈퍼 컴퓨터 중에 하나라고 했던가.
엘이 문제가 없는 이상은 다른 둘은 잠들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유혜선 팀장에게 듣긴 했었다.
“그럼 넌 엘의 분신인가?”
“정확하게 지칭하면 저와는 다른 시스템이에요. 여기 말대로 하자면…… 관리자예요.”
“혹시 네가 잘못된다면?”
“다른 존재가 바로 깨어나 활동해요. 걱정 안 하셔도 된답니다.”
RE-01 이었나.
그렇다는 건 숫자로 뒤에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거겠군.
“숫자로 부르긴 좀 그런데…… 이름은 없어?”
“음, 없어요. 주호 님께서 만들어 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그래?”
안 그래도 부르기 그랬는데.
잠시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이름을 꺼냈다.
“노아. 내게는 네가 방주 같은 존재니까. 언제든 피신 가야 하거든.”
“좋은 이름이에요.”
《 RE-01의 네임을 노아로 변경합니다. 》
“혹시 몸이 가벼운 건 엘 덕분인가?”
“네, 주호 님의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을 엘 시스템이 나눠 처리하고 있어요.”
“흠, 적어도 싸우다 고통에 쓰러지는 일은 없겠군.”
이쪽의 고통이든.
저쪽의 고통이든.
지금은 어느 쪽이나 부담스러워.
주변을 둘러보니 어둡고 퀘퀘한 타르 광산이었다.
“장비.”
그러자 바로 르아 카르테와 흑빛의 우주를 닮은 일체형 검인 마신의 파편이 양손에 쥐어졌다.
“정상적으로 남아 있네.”
중간에 쓰러져서 혹시나 사라졌으면 어떠나 했는데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겨우 마음이 놓였다.
5개월 동안 확인을 못 했으니 당연한 건가.
정말 이 마신의 파편을 얻기 위해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는데.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다만 이 마신의 파편이 지금도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르아 카르테가 빛나면서 안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야! 너! 대체 뭐야!”
금속의 정령?
이 녀석.
아직도 남아 있었나?
솔직히 떠나도 벌써 떠났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랜만이네.”
“오랜만?”
“아, 좀 많이 지났지.”
금속의 정령이 내 표현이 마음에 안 드는지 부글부글 끓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데 처박아 놓고 사라지면 어쩌자는 거야!”
인벤토리 안에 들어가면 따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가?
그럼 너무 미안한데?
5개월이나 갇혀 있었다고 생각하면…….
무슨 감옥도 아니고.
“아, 미안. 일이 좀 있었다.”
“일이 좀 있어?! 무려 5개월이나 지났잖아!”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최하입니다. 》
《 호감도가 제로로 떨어지게 되면 금속의 정령이 떠날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
음.
그건 안 되지.
과연 이 녀석은 내가 아팠다고 하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인식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아마 로그아웃 자체를 인식 못 할 테니.
“아아, 미안. 많이 기다렸지?”
“흥, 또 가호를 내린 놈이 죽어 버린 줄 알았잖아.”
굉장히 토라진 얼굴로 고개를 획 돌리는 금속의 정령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본데.
아마 그 가호를 내린 녀석이 누군지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전대의 용사.
지금 생각해 보면 용사라는 게 정말 맞는 건지도 좀 의문이긴 한데.
이건 뭐 중요한 일은 아니고.
“아무튼 반갑다. 난 되게 보고 싶었거든.”
“흥!”
정말 보고 싶긴 했지.
이건 사실이다.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하아.
다시 호감도 올려놓으려면 개고생 해야겠는데.
그나마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려나.
이 녀석이 떠나면 가호가 사라지면서 르아 카르테의 옵션 수가 세 개나 줄어들게 된다.
그건 최악이나 마찬가지지.
일단 금속의 정령은 나중에 천천히 호감도를 올리기로 하고.
그때 옵션조차 확인하지 못 했던 마신의 파편을 들어올렸다.
내가 이게 얼마나 궁금했는데.
접속이 안 돼서 확인을 못하니까.
정말 자다가 꿈에도 나올 정도였다.
『 +0 테르타로스 (전설) / 출혈 1 타격 1
- ?
- ?
- ?
- ?
- ?
- ?
- ?
- ? 』
응?
이건 뭐야.
옵션을 보고서는 잠시 동안 굳어 있었다.
아니, 이건 대체 뭐하는 무기지?
설명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옵션들은 죄다 가려져 있었다.
게다가 출혈과 타격은 무려 1이었다.
“무슨 초보자의 검이냐…….”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온 말에 금속의 정령과 노아가 내 옆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금속의 정령은 노아가 안 보이는지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너 혹시 얘 안 보여?”
“누구?”
그러면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리키자 금속의 정령이 화들짝 놀라면서 내 볼에 달라붙었다.
“히익!”
“너…… 겁이 많구나.”
“아니거든!”
“하아, 아니다. 됐다. 안 보이면.”
그러고는 바로 노아에게 말했다.
“노아, 너 모습 보이게 할 수 있어?”
- 가능해요. 하지만 시스템 오류를 일으킬 수도 있어요.
“뭐, 그러면 됐고.”
엄연히 노아는 바깥의 시스템이고.
금속의 정령은 이곳의 시스템이었다.
마주치면 오류가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괜히 긁어부스럼 만드는 일은 안 해야겠지.
“그나저나 이건 어쩐다…….”
마신의 파편.
뒤에 전설이라는 표기가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상위의 무기는 맞긴 한데.
테르타로스라는 이름은 처음 보는 것이고.
혹시 마신의 이름이라도 되려나?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 답을 찾을 수가 없잖아.
그때 금속의 정령이 테르타로스를 보면서 감탄을 꺼냈다.
“와, 테르타로스다.”
“응? 이걸 알아?”
뭐지?
이 마신의 파편에 대해 금속의 정령은 알고 있는 건가?
“응, 고대의 마신 중에 하나야. 이게 나올 줄은 몰랐네.”
“……혹시 다른 게 나올 수도 있었던 거냐?”
“흥, 안 가르쳐 줘.”
호감도가 확실히 낮긴 낮은가 보네.
이전 같으면 그냥 대답해 줬을 텐데.
이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
인벤이라는 감옥에 널 오래 가둬 둔 것도 있으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리고 이미 저 대답에서 대략적으로 힌트는 얻었다.
분명히 다른 마신의 무기도 있다고.
아예 없었다면.
그냥 없다고 하고 말았을 텐데.
안 가르쳐 준다고 했으니까.
최소한 한 자루 이상.
그건 아마도 다른 마왕성일 확률이 아주 높겠지.
전혀 다른 장소일 수도 있고.
하아.
일단 뇌물을 좀 먹여야 하려나.
【 웨폰 카피! 】
텅그렁!
재수 좋게 한 번에 복사가 되어 바닥에 툭 떨어진 테르타로스에 금속의 정령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걸 주워서 금속의 정령에게 주었다.
분명 껍질뿐이긴 할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허기진 녀석에게는 충분한 양식이 될 터.
“선물.”
“에?”
“먹으라고.”
“정말?”
“그냥 없앨까?”
“아니!”
그러더니 덥썩 테르타로스를 잡더니 게눈 감추듯이 흡수해 버렸다.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너란 정령…….
먹성 한번 완벽하구나.
호감도가 아주 술술 올라가는 모습에 흐뭇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 녀석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아무리 봐도 대미지 1짜리 검은 안 된다.
분명히 어딘가 방법이 있을 터.
그리고 그걸 제일 잘 아는 녀석은 여기 있었다.
“으음! 테르타로스가 맛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래.
네 맘 다 안다.
그러니까 아는 걸 다 불어 보렴.
【 웨폰 카피! 】
텅그렁!
그렇게 테르타로스를 앞에 들고 흔들자 녀석이 완전히 넘어왔다.
“그 마신은……! 먹어……!”
“응? 뭘 먹는다고?”
“몬스터들을 먹는다고!!”
호오라.
그렇단 말이지.
단지 한 마디 말을 들었을 뿐인데.
이미 어떤 식으로 이 녀석을 키워야 하는지 감이 왔다.
“그러니까 성장형이라 이거지.”
생각해 보니 예전에 금속의 정령이 이 녀석이 성장하는 무기라고 한 적이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때는 단순히 마력을 먹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뭐 무기를 형상화시키는데 마력이 든다고 하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었지.
그리고 이젠 좀 써먹어야 할 때가 왔다.
“몬스터라…….”
몬스터를 막타 쳐서 죽여야 하는지.
아니면 내가 몬스터를 죽일 때 참여만 하면 되는 건지.
혹은 죽은 몬스터를 흡수해야 하는 건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이거야 직접 해보면 아는 일이고.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하겠는데…….”
단순히 한두 마리 흡수한다고 될 일은 아닌 듯했다.
최소한 이놈이 전설 무기인 이상.
네임드 정도는 먹여 줘야…….
역시 혼자서는 힘들고.
재중이 형이…….
그런데 내가 접속했을 때 귓속말이나 길드말이 와야 할 텐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채팅창을 보니 마치 정지라도 된 듯 전혀 글도 올라가지 않았고.
최소한 전쳇말 정도는 보일 텐데?
의아함을 느끼면서 채팅창을 보다가 집히는 게 있어 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이거 안 되도록 하는 게 가능했어?”
“네, 유혜선 님이 미리 설정해 두셨어요. 로스트 스카이의 본사와의 협조를 통해서요.”
“왜?”
“당분간 접속한 걸 다른 유저들이 몰랐으면 한다고 시스템을 막아 두라고 했어요.”
“그래?”
이건 사소한 거긴 하지만.
너무 시스템을 건드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분명 접속은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접속한 것으로 나오지 않으니까.
아직도 사람들은 내가 없어졌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쪽 본사와 미리 말이 되어 있다면야 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당장 내가 접속하면 연락 올 곳이…….
너무 많네.
우리 팀이야 사정을 아니까.
사장님도 그렇고.
하지만 다른 길드 길마들은 이야기가 또 달랐다.
일단…….
알아볼 것도 있으니까.
그들과는 연락을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일단 접속을 끊자. 돌아가는 판을 좀 봐야겠어.”
확실히 접속되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오늘 목적은 달성했다.
그리고 첫날부터 무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거기다 지금 접속하고 있는 장소가 집이 아니라는 점도 조금 걸렸다.
그렇게 금속의 정령을 돌려보내고 접속을 끊자 다시 환한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어땠어요?”
“아, 팀장님. 접속은 잘 되네요.”
“예쓰!”
유혜선 팀장의 눈밑에 다크서클이 일순간 사라져 보일 정도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뭘요. 제 능력이 인정받았잖아요.”
확실히 대단하긴 해.
유혜선 팀장은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다시 해볼 수 있겠어요.”
* * * * *
유혜선 팀장에게 감사 인사를 남기고는 곧장 재중이 형 집으로 찾아갔다.
무려 문 두 짝인 차를 끌고.
이건 살짝 긁히기만 해도 울 것 같은데…….
로스트 스카이를 쉬는 동안 운전면허를 따 둬서 그런지 이젠 꽤 능숙하게 운전이 가능했다.
덕분에 회사 지하에서 먼지만 쌓이며 썩고 있던 녀석을 끌고 나올 수 있었고.
연습도 했겠다.
이젠 은하를 태우러 가도 되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중이 형 집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은 재중이 형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 브라더! 왔냐?”
“하, 브라더라니요…….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죠.”
그렇게 조용한 커피숍에 남정네들 둘이 앉아서 머쓱하게 커피를 마시자 주변에서 여자들이 흘깃흘깃 우리를 쳐다봤다.
‘어머, 이 시간에 남자 둘이…….’
‘무슨 사일까?’
‘나 남자 둘이 커피샵 오는 거 처음 본 듯?’
“형, 제가 오자고 한 조용한 곳이 이곳은 아닐 텐데요.”
“뭐 어떠냐. 오랜만에 사람 구경하고 좋지. 안 그래?”
“하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안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형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다음엔 무조건 내가 장소 선정을 해야겠어.
“그래서 묻고 싶은 말이 뭔데?”
조금은 진지한 눈빛으로 날 보자 그동안 궁금했던 일을 꺼내들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