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화 왕이 사라진 사이 (3)
“제2회 로스트 스카이 개인 배틀 대회 우승자는……!”
가만히 켜둔 TV에서는 요즘 한참 핫이슈인 로스트 스카이 대회가 방송되고 있었다.
예전에 안 팀장 대리로 찾아온 GM 훈이 넌지시 알려 준 2차 대회 일정.
그게 지금 진행되는 중이다.
1차 대회 때와 같이 예선은 로스트 스카이 안에서.
그다음 본선은 역시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커다란 홀을 대관하여 참가자들을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더욱 미디어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바로 우승 상금.
우승 상금으로 무려 50억이라는 미친 금액을 걸어 놓고 진행했기에 전 서버가 들썩거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려나.
그리고 준우승도 15억이나 되는 상금을 책정해 놓았다.
이전 대회의 우승이 20억, 준우승이 8억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거의 두 배가 넘는 액수.
현재 서비스하는 어지간한 다른 게임 대회의 우승 상금을 훨씬 상회하는 엄청난 금액에, 로스트 스카이를 즐기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디어에서도 연신 이 대회를 집중해서 방송을 내보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상금보다 좋은 건 없겠지.
그리고 지금.
대접전을 벌이며 치열하게 경쟁한 두 사람의 성적이 갈리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단상 위에 올라왔다.
“2차 대회 우승자! 필리언 서버의 신화 길드. 불멸을 모십니다.”
사회자의 발표와 함께 커다란 홀 전체가 터져나갈 것 같은 함성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우와아! 역시 불멸!”
“네가 이길 줄 알았다!”
“오빠! 사랑해요!”
“불멸! 불멸! 불멸!”
온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며 단상 위에 오른 재중이 형이 환하게 웃으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자 더욱더 함성이 올라갔고.
그때 재중이 형이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자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며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이 대회의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난 가만히 그걸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
“조금 아슬아슬했네.”
당연히 재중이 형이 우승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상자를 열고 보니 완전 초박빙의 살얼음판이 이어졌다.
유저들 중 누구 하나 조금만 실수하면 떨어질 것만 같은 긴장감도 계속되었고.
올라오는 본선 경기 하나하나가 놓치기 힘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었다.
“자! 그럼 우승 소감 부탁드립니다! 불멸 씨.”
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네자 재중이 형이 미소지으며 마이크를 받고는 담담하게 우승 소감을 내놓았다.
“우선 우승할 수 있게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기 찾아와 주신 팬클럽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리고요.”
그 말과 함께 오빠라는 하이톤의 비명들이 연달아 사람들에게서 쏟아졌다.
아직 인기가 죽진 않았네.
“이번 대회는 경쟁이 심했던 만큼 흥미로운 경기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많이 고전한 경기도 있었고요. 특히 결승전은 제 생애 손에 꼽을 만큼 힘든 경기였습니다. 정말 좋은 상대를 결승전에서 만났고, 결승전을 치른 상대에게는 아쉽겠지만 제가 우승하게 되어 지금 매우 기쁘고 좋은 기분입니다.”
우승 멘트를 미리 준비해 온 거였나.
마치 외운 듯 줄줄 나오는 우승 소감에 혀를 찼다.
당연히 우승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준비도 하지 않았겠지.
“하하, 그렇군요. 이번 대회는 특히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엄청난 우승 상금만큼요. 무려 50억. 단일 개인 대회 사상 최초로 50억을 기록한 경기로 남을 겁니다. 우승 상금이 엄청난데 부담되시진 않았나요? 경기 중에 실수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음, 부담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런 부담을 이겨내야 진짜 우승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역시 우승자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승자의 소감을 듣고 난 뒤 옆의 준우승자인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아쉽게 준우승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소감을 물어보는 제가 좀 미우실 수도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이미 경기는 끝났으니까요. 아주 조그만 차이로 우승을 놓쳐 아쉽지만. 다음 경기에는 반드시 우승을 따낼 생각입니다.”
아주 조그만 차이라…….
준우승자가 그렇게 말해도 방청석 쪽에서는 아무도 반발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간혹 아깝다는 말 정도만 들려올 뿐.
만약 한쪽이 압도적으로 밀어붙였다면.
저렇게 아쉽다는 말은 나오지 않겠지.
그만큼 이 준우승자는 위협적이고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약간의 운과 컨트롤 차이.
그게 우승과 준우승의 차이를 갈라놓았을 뿐이다.
내가 준우승자였어도 아까울 만큼.
초박빙의 승부였다.
“네, 필리언 서버의 초월 길드, 전신 님의 소감이었습니다. 다들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짝짝짝!
준우승자에 대한 위로 정도이려나.
하지만 준우승이라 해도 무려 상금이 20억이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기에는 너무 넘쳐나는 돈이지.
처음에 재중이 형이 예상했듯.
이전 프로게이머 대회에서 경쟁해 왔던 전신이 결승에 올라왔고.
결국 치열하게 붙어 재중이 형이 승리했다.
정말 무시 못 할 사람이라니까.
거기다 이번에 전신이 가지고 나온 무기 역시도 마찬가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재중이 형이 가진 마족의 무기와 맞먹는 무기를 들고 나왔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승부가 싱겁게 끝났을 수도.
이번 경기는 전과 달리 로스트 스카이에서 개인이 가진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나올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누구는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말이 많긴 했지만.
우승 상금 50억이 공개되는 순간.
결국 게임 내 아이템 값이 폭발하는 사태가 일어났었지.
단순히 우승 상금만 높을 뿐 아니라 그 밑의 본선 진출자들도 다 수억씩 챙길 수 있는 구조라.
너도나도 고가의 아이템을 사들이면서 한때 아이템들이 씨가 마르기도 했다.
지금은 뭐 다 지난 일이지만.
예선 통과하기도 힘들다 보니 그 열기만큼은 대회 못지않았으려나.
그에 이어서 또 한 번의 시상식.
1차 대회에서 서버 사정상 개인전만 치렀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단체전도 진행했었다.
길드의 패권을 걸고 싸우는.
아니, 길드원 전체의 협동심과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단체전의 개최에 많은 유저들이 열광했다.
개인의 실력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막상 길드 전체의 싸움이 되면 완전히 이야기는 달라지니까.
순간적으로 계속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해 길드원을 통솔, 지휘하는 커맨드의 지휘력.
그리고 흘러가는 전체 판도를 읽을 수 있는 안목.
각 길드원들의 전달 사항 이행력.
길드원들 서로가 가진 장비나 스킬에 대한 이해력, 조합.
그런 길드원들의 스펙 수준.
적재적소에 필요한 유저들을 배치할 수 있는 전술.
상대하는 적들을 몰아넣고 팰 수 있는 함정을 짜는 능력.
이런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강해야지만 단체전은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단지 한 명이 강하다고 끝낼 수는 없는.
나대다가 못질 당하듯 단체로 함정에 둘러싸여서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길드 간의 전술과 스펙 차이에 따라 너무 극심한 격차를 보였기에 개인전보다는 좀 더 화끈하게 한쪽에서 찍어 누르는 맛이 있어 좋아하는 유저들도 꽤 많았고.
물론 박빙으로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길드들도 많아 꽤 많은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단체전이 첫 대회다 보니 서로 전력을 파악하지 못해 뒤통수 맞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이길 것 같았던 길드도 중소 길드에게 뒤치기 당해 궤멸당해 쪽팔려 했었지.
그만큼 변수가 많은 단체전.
그런 단체전을 기어코 이기고 올라와 단상에 선 것은 다름 아닌 초월 길드였다.
초월 길드는 도박사들이 처음부터 예측했던 우승 후보 중에 하나라 이변이 없었다고 봐야 하려나.
전술과 전략을 잘 짜오더라도.
기본적으로 죄다 프로게이머들의 조합이다 보니.
그런 다양한 변수들을 실력으로 찍어 누른 케이스였다.
그리고 준우승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2서버라 불리는 르반트의 한 길드가 차지했다.
혁명 길드.
단연 1서버의 길드 중에 준우승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상자를 열고 보니 전혀 달랐다.
팀플이 꽤 좋았지 아마.
절대 1:1의 싸움을 걸지를 않았다.
다른 유저들에게 다소 치사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항상 1:2.
혹은 1:3.
어떨 때는 그 이상의 숫자로 한 명씩 찍어 누르며 점차 적의 숨통을 죄는.
그렇다고 개인의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붙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전장에서도.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다수가 되어야 싸움을 붙였다.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커맨드의 전체 판을 읽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지.
프리로 놓아줘도 되는 자리에서는 사람을 빼고.
센 놈은 다구리 놓고.
말은 쉽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야.
결국 이 준우승은 저 혁명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1서버 필리언의 프로게이머 길드들이 아주 개쪽을 팔게 되었다고 할까.
자기들이 자랑하는 전술 능력에서 밀린 셈이니까.
만약 초월 길드가 우승하지 못했으면.
전부 접시에 코 박고 죽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일반인에게 발린 거라.
실제로 프로 팀들 중 두 팀이나 저 혁명 길드를 만나 깨지기도 했었다.
초반에 만나서 프로게이머들이 좀 방심한 것도 있었지.
객관적인 개인 컨트롤 능력은 프로게이머들이 앞서니까.
다만 상대가 1:1로는 절대 안 붙어 주니 문제였다.
하긴.
처음부터 저런 팀을 상대하려고 준비하고 나온 것 같았어.
저 녀석이 우리 서버가 아닌 게 다행일 정도.
난 솔직히.
혁명 길드의 저 길드 마스터를 더 높이 사는 편이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싸워 보고 싶기는 하네.
아마 다음 번 단체전에서나 붙어보지 않을까.
양쪽 길드원들이 모두 단상 위에 올라오자 사회자가 말을 이었다.
“이번 단체전의 상금도 만만치 않죠. 무려 100억. 준우승은 40억입니다.”
물론 저 상금을 40명인 길드원들 개인으로 나눠버리면 한 사람당 돌아가는 액수는 적었다.
하지만 개인전과 중복 참가가 되기에 꽤 많은 유저들이 단체전을 즐겼었다.
아니지.
서버 내 내로라하는 길드는 다 참가했다고 봐야 하니까.
어쩌면 이쪽이 더 치열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우승 액수가 100억이기에 홍보 역시 확실했고.
덕분에 로스트 스카이를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모두 알 정도가 되어 버렸다.
오죽하면 로스트 스카이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까.
들리는 말로는 다른 오픈한 게임들도 상당한 금액으로 대회를 준비할 거란 이야기가 있었다.
그만큼 경쟁에서 앞서나갔다는 거겠지.
“단체전은 초월 길드에서 우승을 했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사회자의 말에 전신이 재중이 형에게 들으라는 듯 바라보면서 말했다.
“비록 개인전은 준우승이지만 길드를 다루는 능력은 제 쪽이 위라는 걸 확실히 증명했군요. 그리고 다음 대회에서는 반드시 개인전도 우승하도록 하겠습니다.”
저건 대놓고 도발하는 건가.
하지만 아쉽게도 재중이 형이 그 말에 발끈할 정도는 아니라서 말이지.
그냥 어깨만 으쓱하면서 웃는 걸로 대답을 돌려주자 전신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곧장 풀어졌다.
방송이라 쓴소리는 못 한다는 거군.
하지만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신화와 최강 길드는 16강 본선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길드 전체의 역량만 보면.
아쉽다는 평이 대다수였다.
그 와중에 당연히 흘러나오는 말들이 있었고.
누군가의 부재.
그때 사회자가 귀에 꽂힌 이어폰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뭔가를 전달받았는지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가 바로 표정을 풀었다.
딴에는 곧장 표정을 원래대로 바꿨다지만 확실히 보이긴 했어.
무슨 말을 전달 받은 거지?
사회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어렵게 말을 꺼내놓았다.
“지금 방송 게시판에 이전 대회의 우승자가 참가했었으면 어땠을까 궁금해하시는 시청자분들이 많습니다만…….”
사회자의 그 말이 나오자마자 바로 방청석의 관객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전 우승자면…….”
“주호……!”
“주호잖아.”
“신화 길드!”
“예전 랭킹 1위……!”
웅성웅성.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르는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하…….
저 이야기가 왜 안 나오나 했다.
내가 서버에서 홀연히 사라진 뒤.
벌써 4개월하고도 2주가 지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