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7화 마계 경매장 (4)
타르 광산의 매입을 이야기하자 암흑 상인이 당황했는지 로브 안의 어둠이 크게 울렁거렸다.
“타르 광산 말입니까?”
“네, 효용 가치가 다해서 버려진 광산들로요.”
이쪽에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소유주가 뻔히 있는 광산을 가져오는 일은 무리였다.
매장량에 따라 값어치가 수 배에서 수십 배는 된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비쌀 테지.
당장 하르 광산만 해도 광산 하나의 값어치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하는 타르 광산은 더 할 말도 없었다.
매장량을 정확히 확인해 보지도 못하는데 괜히 산다고 돈을 풀었다가 잘못하면 완전 적자를 보고 파산할 수도 있었다.
그냥 돈 좀 만져 보려고 막 발을 들여다 놓기에는 생각 이상으로 리스크가 컸다.
하지만 암흑 상인 말대로 이미 매장량이 바닥나 버린 광산이라면 어떨까.
핵은 살아 있지만 매장량은 없는.
껍데기뿐인 광산들.
당연히 값어치가 거의 제로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내가 손대기에 그렇게 나쁜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지.
“비어 있는 광산을 사 봐야…….”
암흑 상인이 나를 보면서 현실을 알려 주려고 하다가 순간 내 손에 들린 타르를 바라보았다.
광산의 핵으로 변형시킨 타르 결정석.
역시 상인이다 보니 바로 눈치챈 거려나.
“흠, 설마……!”
“이왕 일을 시작했으면 크게 해 봐야죠.”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눈앞에서 타르 결정석이 만들어지는 걸 봤는데 그 다음은 이야기 하나 마나다.
이건 무조건 돈이 된다.
아니지.
돈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돈을 갈퀴로 긁어모을 수도.
그것도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지금 여기 광산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말씀이군요.”
“네, 보아하니 여기 한 곳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네요.”
하르가 타르로 바뀌는 시간을 보니 한 광산에서 변형시킬 수 있는 수량은 한계가 있어 보였다.
반면에 내 쪽에서는 거의 무한에 가깝게 하르를 공급할 수 있으니.
이미 제국에서는 하르 광산을 따로 구해 놨고.
유저들 사이에 퍼진 하르를 사 오면 그보다 많은 물량을 단번에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양의 타르를 구하려면.
되도록 많은 타르 광산을 구할 수밖에.
“그리고 무엇보다 보안이 생명이죠.”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금 우리가 들어온 이 광산은 암흑 상인의 소유였다.
아직 매장량이 남아 있는.
그래서 일꾼 마족들이 타르를 캐거나 실어 나른다고 계속 드나들고 있기도 하고.
여기까진 괜찮다.
암흑 상인이 입을 다물게 만들면 되니.
하지만 다른 마계 NPC들은 달랐다.
처음 한두 번이야 그냥 넘어가겠지만 나중에는 분명히 다른 녀석들이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이걸 파고들면 귀찮게 돼.
“보안이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전 아예 광산을 폐쇄시켜 둘 겁니다.”
이전의 다른 마족 NPC들이 아예 드나들지 못하도록.
타르를 대량으로 변경시키는 작업이 들키게 되면 하르를 가져오는 우리도 그렇게 좋은 시선을 받진 못할 테니까.
아니 그전에 타르 광산을 판 마족들도 문제였다.
다시 타르 광산을 되돌려 달라고 강짜를 놓을 수도 있는 노릇이라.
중간에 괜히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계속 이곳에 묶여 있어야 한다.
그들의 눈을 속이려면.
최대한 아는 이가 적어야 한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
혹시라도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지하의 경매장에 입장 못 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을 고려해 보면 역시 보안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타르 광산을 사려면 현재 타르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암흑 상인이 적격이었다.
이곳의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눈에 띄지 않게 가능하겠습니까?”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암흑 상인이 가능하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매입하도록 하죠. 갑자기 전부 사들였다가는 분명 눈에 띄게 될 겁니다. 아니면 여러 이름으로 분산시켜도 되겠죠.”
역시.
잘 선택했다니까.
“그럼 부탁드립니다. 아, 매장량이 조금 남아 있는 곳도 나쁘지 않겠군요.”
“추가로 찾아보겠습니다.”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가만히 암흑 상인을 바라보자 암흑 상인이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제게도 이득이 되는 일입니다. 타르를 대량으로 쥐고만 있어도 이곳에서는 권력이나 마찬가지죠.”
“그런가요.”
“취급할 수 있는 물품이 많다는 건 그만큼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줍니다.”
일단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거래인가.
그렇게 암흑 상인이 임자 없는 광산들을 알아보러 움직이는 동안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괜찮겠죠?”
“음, 암흑 상인도 이득일 될 테니. 다른 생각은 못 하겠지. 그리고 어차피 하르가 없으면 녀석에게 아무 의미가 없어.”
재중이 형 말대로 제국에서 하르를 가져오지 않으면 암흑 상인도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휴,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네요.”
“네가 사서 일을 만들 거지.”
고개를 돌려 아스티아를 보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마왕들은 이런 일들을 귀찮아한다고 하더니 어째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얼마 뒤.
뭔가의 목록을 잔뜩 들고 암흑 상인이 다시 돌아왔다.
“생각보다 빠르시네요.”
“인맥을 좀 이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돈 표시를 해 보였다.
여기서도 돈은 잘 먹히나 보네.
곧장 암흑 상인이 넘겨준 리스트를 보고는 재중이 형과 의논해 적당한 광산들을 매입할 수 있었다.
사실 거의 공짜에 가까운 광산들이라…….
예상했던 대로 가격이 없거나 바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총 11곳이군요.”
“흠, 나머지는 의외로 매장량이 남아 있어서 돈을 따로 지불해야합니다.”
“아뇨, 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 나중에 상황을 봐서 더 늘리던가 하죠. 광산이 어디 도망가진 않을 테니까요.”
흡족한 마음으로 암흑 상인의 무역선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가면서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전사 형, 바빠요?
<방패전사> 응? 아, 잠시 휴식 중. 여기 생각보다 빡세네.
<주호> 마룡요?
<방패전사> 어, 우리도 한 마리씩 겨우 잡고 있어. 너랑 형님 빠지니까 영 속도가 안 나네. 그쪽은 어때?
<주호> 아, 여긴 뭐…… 그냥 노다지죠.
<방패전사> 노다지……?
<주호> 네, 솔직히 사냥 안하고 여기서 장사만 해도 될 것 같아요.
<방패전사>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주호> 하하, 오시면 알아요. 포탈 타고 바로 넘어오세요.
<방패전사> 응? 마계는 버티기 힘든데.
<주호> 그것도 다 준비해 놨어요.
<방패전사> 호오, 그렇단 말이지?
<주호> 오면 부탁할 것도 있어서요.
<방패전사> 알았다. 바로 넘어갈게.
<주호> 아, 올 때 사장님도 같이요.
미리 연락을 넣어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역선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에 도착하자 무역선에 실어 온 타르 석과 하급 마력 완화제를 끝없이 내려놓기 시작했다.
“전부 마왕성 창고로 넣어 주세요.”
어차피 마왕성의 집사다 보니 마왕성 창고를 내 것처럼 쓸 수 있었다.
엄청 큰 개인 창고가 생긴 셈이랄까.
길드 창고 수십 개를 넘어설 정도의 넉넉한 공간에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시스템에도 그 목록이 올라갔다.
당분간 지하에 들어갈 타르는 구했고.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마왕 벨라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커다란 눈을 껌뻑거리며 이 광경을 바라봤다.
“타르가…… 많잖아?”
“이 정도면 지하가 폭발하지는 않겠죠?”
“응응. 절대.”
입가의 미소를 보니 창고에 가득 찬 타르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이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하긴 그동안 재고에 계속 압박을 받았을 테니.
그러다가 곧 현실로 돌아온 마왕 벨라가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우리가 이걸 살 돈이 있었어?”
“당연히 없죠.”
“그럼?! 어떻게 구한 거야?”
“음, 사실 제가 사업을 좀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타르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 마왕 벨라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
《 마왕 벨라와의 호감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
.
.
시스템 메시지가 아주 신들린 듯이 올라가면서 눈을 아프게 만들었다.
퀘스트도 아닌데 이 정도의 호감도라…….
아니지.
이것도 일종의 퀘스트라고 볼 수 있다.
분명 메인 퀘스트에 고대의 무구에 고갈된 마력을 보충하라는 문구가 있었다.
타르를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그와 관련된 일이니까.
어쨌든 나쁘지 않네.
그리고 이 정도의 호감도 상승이면.
마리아 가르시아의 경우를 생각해 봤을 때.
당장 마왕 벨라 앞에서 칼춤을 추더라도 한 번 정도는 봐주지 않을까.
그렇게 마왕 벨라의 이쁨(?)을 잔뜩 받고는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 왔어요!”
지하에서 포탈을 타고 올라온 챠밍과 우리 팀, 사장님까지 모두 모이자 각자에게 하급 마력 완화제를 주었다.
“오빠, 이게 뭐예요?”
“응, 좋은 거. 일단 먹어 봐.”
그리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와…… 생각도 못 했어요. 이런 효과는.”
“좋지?”
내 말에 챠밍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마력 소모가 특히 많은 챠밍의 경우 마계의 환경이 최악이라 할 수 있으니 지금의 마력 완화제는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고.
일단 내부 테스트는 합격인가.
“음, 이걸로 장사를 할 거야.”
“네?”
어리둥절해하는 모두를 앉혀놓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부 설명했다.
지금 이곳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다른 마왕성과 전쟁 중이라는 것과.
마왕 벨라 외에는 정말 아무 병력이 없다는 점.
그리고 심지어 돈도 없다는 점까지 알려주자 다들 핼쑥한 표정을 지었다.
이쁜소녀가 그런 모두를 대신해 한마디 했다.
“와! 난이도 최악이네요!”
그래.
이거 사실 몇 단계를 뛰어넘은 퀘스트란다…….
바로 성공하면 더 이상한.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건 아니지.”
곧장 사장님을 보면서 말을 꺼냈다.
“사장님, 최강 길드원들 좀 빌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음, 다들 마룡 잡는다고 정신없긴 하지만 보상만 적당하면 괜찮을 거다.”
“네, 그럼 하르 운반을 좀 도와주세요.”
사실 이곳 마계의 NPC를 쓰려고 해도 하르 석을 만지질 못하니까.
손이 타들어 가는 물건을 대량으로 옮기라고 하면 욕만 먹지.
반면에 유저들은 다르다.
하르는 물론 타르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잡을 수 있어.
그리고 보안까지 확실하고.
“그러니까, 최강 길드원들을 무역선에…… 하르를 타르 광산으로 운반…….”
한참을 사장님에게 설명을 하자 사장님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확실히 우리 손이 필요하구나. 알았다.”
타르 광산 쪽은 일단 해결됐고.
이젠 그보다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했다.
“전사 형, 이건 형이 꼭 해 주셔야 하는 일이에요.”
“응? 어떤?”
“마계에 대한 정보를 커뮤니티에 흘려주세요. 마계로 넘어올 수 있는 방법도요.”
“여기를? 아니, 왜?”
사실 저런 전사 형의 반응은 당연했다.
굳이 마계라는 새로운 사냥터를 다른 유저들에게 알려 줄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
애초에 정보가 없으니 누가 찾아올 수도 없고.
격차를 확실히 벌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계를 개방한다?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쳐다보는 전사 형을 마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이번에 아주 홀라당 벗겨 먹을 생각이거든요. 전 유저들을 상대로.”
이용당하고 있는 자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철저히.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