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9화 지저 세계 (5)
세상에서 눈먼 공격이 제일 무섭다고 하던가.
공격 범위를 보면 애초에 날 노리고 공격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저 녀석은 내가 이곳에 있는 사실 자체를 모를지도.
만약 내가 목표였다면 스킬의 공격 범위가 내 쪽에 집중되었을 텐데 지금 저 스킬의 중심은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워낙 이 폭뢰의 범위가 넓어서 다른 몬스터들과 떨어져 있는 내게까지도 영향이 오는 중이었다.
불행하게도 말이지.
콰르릉!!
콰쾅!!
연신 가이아 쉴드 위를 두들기는 낙뢰에 바로 인상을 썼다.
그냥 몇 줄기 새어 나오는 공격이 이 정도로 강하다고?
한 번 낙뢰가 가이아 쉴드에 닿을 때마다 체력이 쭉 깎여 내려가는 모습에 혀를 찼다.
낙뢰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너무 강해.
가이아 쉴드가 모든 공격의 대미지를 감소시켜 주고 속성 공격 역시 상당히 감소시켜 주는 것을 감안해 보면…….
그냥 맞았다가는 그 자리에서 뻗어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그나마 가이아 쉴드가 관통 불가라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지.
상태 이상까지 왔으면 여기서 바로 아웃될 뻔했다.
곧 계속된 낙뢰에 가이아 쉴드가 깨지면서 부서지자 곧장 다른 가이아 쉴드를 겹쳐서 들어 올렸다.
역시 복사판으로는 오래 못 버티는군.
내구도가 한순간에 깎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라도 버티는 게 어디야.
콰아앙!
콰앙!
그렇게 낙뢰 한 발이 떨어질 때마다 빠르게 가이아 쉴드를 교체해 주면서 거의 억지에 가까운 방어를 해냈다.
차라리 여기서 몸을 빼내는 게 더 나았나?
아니, 이쪽은 내 정체를 드러낼 확률이 있으니까.
아직까지 이곳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그렇게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한참을 내려치던 폭뢰가 지나가자 다시 몸을 언덕 사이로 감추었다.
설마 아까와 같은 스킬을 또 쓰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방심은 절대 하지 않았다.
워낙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시스템이라.
녀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폭뢰를 떨어뜨린 녀석이 스컬 드래곤 위에서 유유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몸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로브만 아니면 모습이 보일 듯도 한데…….
일단 지금 쓴 광역 스킬만 보면 아마도 마법사 계열로 판단되었다.
여차하면 아퀼라스를 불러내서 한 번 붙어야 하나?
정말 마법사 쪽이면 접근전으로 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저 스컬 드래곤이 문제였다.
새빨갛다 못해 시커멓게 보이는 레벨 차이.
아마 최소 100대는 차이가 나려나?
그럼 저게 250은 된다는 말인데.
여기선 레벨이 곧 깡패라…….
하물며 저 탈것은 드래곤 계열이었다.
얼마나 강할지는 안 봐도 뻔하지.
로브를 뒤집어쓴 저 녀석은…….
이름이 안 보여.
무슨 수를 쓴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위에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특수 아이템이라도 쓰고 있는 건가.
만약 저 녀석 역시 레벨이 높다면 한번 붙어 보겠다는 판단은 최악이 될 수 있었다.
흐음.
저쪽에서 나를 파악한 것 같진 않으니 일단은 넘어가 볼까.
그리고 아스티아가 저 녀석을 이길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아마 높은 확률로 가능할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혹시 다른 녀석들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겠지.
고개를 돌려 아까 우르르 몰려다니던 몬스터들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아닌 저쪽을 노리고 쏜 광역기였는데.
스킬의 중심이 확실히 저 부근이었으니.
그리고 폭뢰가 쏟아진 자리를 보고 나서는 좀 전의 판단이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거대 몬스터들이 싹 쓸려나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음…….
이건 좀 심한데?
방금의 그 거대 몬스터들도 위에 가면 하나하나가 네임드급에 속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블랙 싸이클롭스.
이 녀석은 그냥 애초에 네임드였고.
마계 미노타우르스도 저 싸이클롭스와 비슷한 레벨이었으니 특별히 차이가 있을 것 같진 않아.
그런 녀석들을 한두 마리도 아니고 싹 녹여 버린 건가.
그렇게 한 차례 폭격을 하고 난 뒤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던 마법사가 여기서 들릴 듯 말듯한 말을 내뱉었다.
날이 선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감히 내 구역에 또 침범해?”
그 말에 순간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은 아니었는 듯 내 쪽에 시선이 있진 않았다.
그런데 또 침범했다는 말 자체를 들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흐음.
보통 저들끼리는 같은 편이 아니었나?
생각하던 것과는 많이 다른데?
그렇게 상황이 종료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를 배회하던 스컬 드래곤과 함께 녀석이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 사라져 버렸다.
“흐음. 이거 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는데?
주변으로 감각을 퍼트려 확인할 결과 크게 문제가 될 듯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불러도 되겠지.
그때 갑자기 옆에 결계가 열리면서 아스티아가 불쑥 걸어 나오더니 나를 위아래로 흘깃 살펴보았다.
“하아, 살아 있네.”
“네?”
“바로 넘어오려고 했는데 결계가 막혀서 못 넘어오고 있었거든.”
응?
분명 저번에는 마왕의 결계도 찢고 넘어오지 않았었나?
혹시 여기가 마계라 한 번에 안 되는 건가?
그때 아스티아가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살펴보더니 바로 한숨을 쉬었다.
“너 운이 좋았어.”
“그게 무슨?”
“마계에서 마왕하고 마주치고도 살아 있잖아.”
그 순간 바로 이해를 했다.
방금 스컬 드래곤을 타고 나타난 녀석이 마왕이었다는 소리였다.
“대체 마왕이 몇 명이나 되는 겁니까?”
“꽤 많이? 시간이 오래 지나서 지금은 몇 놈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한참 싸울 때라 엉망이었거든.”
삼백 년은 봉인되어 있었다고 했던가.
확실히 그 정도 시간이면.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를지도.
“최상위 마왕 말고는 나머지는 다 기억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요.”
순간 예전에 지상에서 교황과 아스티아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분명히 아스티아를 제대로 알고 있었지.
그렇다는 말은.
아스티아가 그 기억해야 하는 순위 안에 들어가 있다는 뜻이 된다.
그것도 삼백 년이 지난 시점에서.
뭐 교황 역시도 결계에 계속 갇혀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전의 순위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 강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어.
“지금 이 녀석은 어느 정도로 강해요?”
그리고 주변의 흔적을 가리키자 아스티아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을 꺼냈다.
“흐음, 흔적을 보니 꽤 강한데? 그리고 지상하고 똑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 여기서는 마왕들이 제대로 힘을 다 쓸 수 있거든.”
“그때 그 교황하고는 다르다는 말이죠?”
“응. 절대 쉽게 보면 안 돼. 혹시나 마주치더라도 가급적이면 빠져나와. 아직 넌 이 정도 녀석을 감당 못 할 테니까.”
“지금 걱정해 주는 건가요?”
“뭐? 누가?”
그러면서 아스티아가 당황한 듯 내 옆구리를 퍽 쳤는데 살살 친 것치고는 엄청나게 타격이 들어왔다.
이거 그냥 친 것도 장난 아닌데?
“큭, 제가 먼저 죽겠는데요.”
“아아, 실수.”
모른 척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본 뒤 나를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너, 아무래도 문제가 좀 있겠어.”
“네?”
“여기서 돌아다니려면 그 몸이 문제가 된다고. 보이는 족족 마계의 존재들이 다 달라붙을걸?”
“……그건 좀 확실히 문제네요.”
아마 이건 내가 유저이기 때문이려나.
아스티아야 애초에 NPC인 것도 있지만 마왕급으로 분류가 되니 어쭙잖은 몬스터들이 달라붙을 리가 없었다.
가만히 지나다닌다고 어그로가 끌릴 리가 없겠지.
하지만 난 다르다.
그냥 선몹만 있으면 근처만 지나가도 개떼처럼 나를 돌아보지 않을까.
심지어 레벨 역시 내 쪽이 낮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아니, 이건 거의 무조건 낮다고 봐야겠지.
시스템상 적들이 보면 뜯어먹기 아주 좋은 먹이로 보일지도 모른다.
아스티아가 옆에 있다고는 하나.
방금 아스티아가 말한 것을 고려해 보면 무조건 어글이 끌릴 것이다.
“방법이 없나요?”
아까와 같이 블랙 싸이클롭스나 마계 미노타우르스 같은 녀석들이 계속 따라다닌다고 치면 좀처럼 쉽게 돌아다니지 못할 터.
“으음, 너 그거 가지고 있잖아.”
“무슨?”
“『 마왕의 영혼 파편 』 말이야.”
그 말에 인벤에서 『 마왕의 영혼 파편 』을 꺼내들었다.
“이게 도움이 되나요?”
“응. 도움이 되지.”
혹시 이게 마왕과 같은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려나?
아니라면 어떤 방어막 같은?
“그걸로 할 수 있는 게 많아. 이를 테면, 변신 같은 거.”
그러면서 아스티아가 손을 뻗어 쓰러져 있는 블랙 싸이클롭스나 마계 미노타우르스를 가리켰다.
유저에게 죽은 게 아니라서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의 시체들.
“변신요?”
“응, 숨길 수 없으면 숨어서 들어가면 돼. 나야 어차피 상관없지만, 넌 곤란하잖아. 그걸로 하위의 몬스터들로 모습을 바꿀 수 있게 되거든.”
이걸로 어떤 마왕의 기운을 뿜어낸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시체 부활 같은 종류는 일단 아니고.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꽤 괜찮은데?
내게는 레벨이 높을지는 모르겠지만 정체 모를 마왕이 다 죽여 주고 간 덕분에 온전히 시체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번 해볼게요.”
그리고 곧장 다가가서 두 종류의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으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눈이 하나인 블랙 싸이클롭스보다는…….
이쪽이 아무래도 보기가 좋겠지.
그렇게 마계 미노타우르스 앞에 가서 섰다.
정말 되면…….
마계 미노타우르스 앞에서 손을 내밀려 『 마왕의 영혼 파편 』을 가져다 대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나왔다.
《 『 마왕의 영혼 파편 』이 마계 미노타우르스를 인식합니다. 》
《 하위 몬스터인 마계 미노타우르스로 변신하시겠습니까? 》
바로 YES를 누르자 온몸의 신체가 빛을 발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야가 불쑥 올라가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신체로 몸이 변형이 되었다.
하…….
이게 정말 가능하네.
“어때? 되지?”
아스티아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가능하군요.”
목소리 역시 완전 걸걸한 상태의 미노타우르스의 목소리로 들렸다.
거기다 무기도 그렇고.
상태창 역시 마계 미노타우르스의 그것과 똑같이 되어 있었다.
흠.
힘이나 방어력 같은 것도 적용이 되는 거려나?
스킬은?
궁금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 순간 아스티아가 내게 신호를 했다.
“실험해 보면 되겠네.”
그리고 아스티아가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뭔가의 신호가 잡혀 왔다.
이건…….
또 다른 마계 미노타우르스들이려나?
아까와 거의 같은 흔들림의 충격이 대지를 타고 오자 순간 긴장을 했으나 아스티아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가 봐.”
개떼처럼 몰려오는 마계 미노타우르스들을 향해 가 보라고 하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였다.
이거 괜찮은 건가?
그런데 정말 거짓말 같게 그 미노타우르스 떼들 옆으로 가도 전혀 녀석들이 날 돌아보지 않았다.
“우어?!”
“쿠어어!!”
바로 옆에 있지만.
유저인 걸 아예 모르는 듯.
그렇게 급소 부분을 대놓고 보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이거 오늘 제대로 레벨을 올리겠네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