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화 지저 세계 (3)
어떻게 된 일이지?
갑자기 등장한 초월 길드에 순간 혼란이 왔다.
그리고는 곧장 재중이 형에게 이 사실을 전달해 주었다.
“형,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이어지는 설명에 재중이 형 역시도 표정을 굳혔고.
“잠시만, 사장님하고 이야기 좀.”
그 뒤 한참을 사장님과 뭔가를 주고받던 재중이 형이 곧 한숨을 쉬면서 연락을 마쳤다.
“이거 참, 녀석들을 너무 내버려 뒀나.”
방심했다는 말을 돌려서 말한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상황이 어때요?”
“아아, 저쪽은 손을 떼야겠어. 이미 늦었다.”
“늦었다니 그게 무슨?”
그런데 재중이 형에게서 나온 대답은 꽤 의외의 대답이었다.
“연이 전신을 이 판에 끌어들였어.”
연이 끌어들였다니?
그 말에 순간 고개를 돌려 전사 형을 바라보자 전사 형 역시도 한 방 먹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흠, 영혼 길드 애들도 얼마 전부터 안 보이더라니.”
그러고 보니 확실히 연의 영혼 길드도 눈에 띄지 않았었다.
정확히는 신경을 못 쓴 쪽에 가깝긴 한데…….
점검이 끝나고 신의 손을 얻기 위해 지하에 머무는 동안에 연 쪽에서 어떤 반응도 없어서 좀 의아하긴 했다.
우리가 이곳, 신성 제국 제넨샤를 통째로 차지했기에 어떻게든 다시 뺏기 위해 뭔가의 작업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저항조차 없었다.
그런데 아예 이곳을 떠났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봤다.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내게 말했다.
“신성 제국은 시스템으로 보호가 되니까. 어차피 2주를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공성전 기간 말인가요?”
“어, 그 전이야 뭐 어떻게든 뺏으려면 수작을 부려도 됐겠지만. 올렌드도 있었고.”
확실히 점검 후에는 신성 제국을 치려면 2주를 기다려야 한다.
아니면 신성 제국 자체를 망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이건 지금 상황에서는 무리였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은 가르시아 제국 쪽에서 넘어온 유저들로 북적거리는 상황이라서.
한참 활성화가 된 신성 제국을 무너뜨리기에는 연 입장에서도 굉장한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무너뜨릴 능력은 둘째 치더라도.
신성 제국 제넨샤 자체가 시스템으로 보호를 받는 상황이라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
다른 말로 하면 연의 영혼 길드가 중간에 붕 떠 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여기에 투자한 자금이 적지 않은데 그걸 그냥 날리게 생겼으니.
그럼 결국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은.
지금 상황에서 딱 하나밖에 없었다.
“차선책인가요?”
“그래. 연도 여유가 없었겠지. 이미 몇 개의 마족의 무기를 손에 넣었다고는 하나, 그게 바로 자금이 될 순 없으니까.”
물론 팔면 엄청난 돈이 되긴 할 것이다.
지금 눈에 불을 켜고 돈다발을 내밀 유저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하지만 다른 유저들을 한참 앞서 나갈 수 있는 아이템을 그렇게 쉽게 팔까?
이건 우리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아주 자금이 바닥이 나지 않는 이상에야 어지간해서는 고려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초월이죠?”
연의 영혼 길드도 약한 건 절대 아니었다.
어디 가서 꿀릴 세력도 아니고.
심지어 전력이 깎였다고 볼 수도 없어.
이미 마족의 무기를 몇 개나 가지고 있는데.
굳이 최대 경쟁자인 초월 길드까지 끌어들일 필요가…….
그 순간 잊고 있었던 녀석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그리고 그건 우리 팀도 다 마찬가지인지 동시에 말이 나왔다.
“명궁…….”
“페가수스 길드.”
그런 우리를 보면서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궁이 그쪽에서 작업 중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연 혼자서 페가수스를 치려면 부담이 적진 않았겠지.”
“이길 수는 있는데 어렵다?”
“그래, 지금은 마족의 무기를 들고 있으니까 정면에서 싸우면 아마 연의 영혼 길드가 확실히 이길 거야. 하지만 그 뒤가 문제지.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놈이 아니니까.”
“명궁도 계속 방해를 하겠죠.”
단순히 명궁의 페가수스 길드와 치고받는 것만 고려하면 해볼 만은 하다.
하지만 애초에 목적은 광풍의 바르칼.
그냥 레이드 하는 것만 해도 빡센데, 여기에 명궁 같은 혹을 달고 싸워야 한다면?
“아무리 마족의 무기가 있다고 해도 명궁의 견제를 받아 가면서는 무리다.”
“그래서…….”
“전신의 초월 길드를 끌어들인 거겠지.”
그런데 이것도 이상한데?
고작 명궁을 커버해 줄 방패막이로 전신이 나선다고?
예전에 전신과 이벤트 1, 2위를 엎치락뒤치락할 때도 느낀 거지만, 전신은 2등은 아예 관심도 없는 유저였다.
특히 전신은 화련의 언니의 자금력을 등에 업고 있었다.
돈이라면 부족할 게 없는.
그 많은 돈을 들여 가면서 무조건 1등을 하려던 유저가 굳이 남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애초에 말이 안 돼.
오히려 전신이 돈을 들여 연을 이용한다면 또 모를까.
순서가 완전 뒤집힌 모양새에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전신이 굳이 연을 도와줄 필요가 있나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바로 웃음을 보였다.
“전혀 없지.”
“그럼?”
“실제론 전신이 연을 끌어들였다고 보는 게 맞을 거다.”
재중이 형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머릿속에 퍼즐이 다시 다 제대로 맞춰졌다.
“전신이 연에게 자금을 밀어준다는 건가요?”
“어, 정확하게는 몰라도 연이 이번에 신성 제국에 들인 돈이 적지 않으니까. 그걸 메우려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했을 거야.”
“대신 광풍의 바르칼은 전신 쪽에서 먹는 조건이겠네요.”
연은 구멍 난 자금을 메우기 위해.
그리고 전신은 늦은 진출을 커버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은 셈이었다.
“어차피 연은 그대로 있어 봐야 명궁의 페가수스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을 거니까. 그렇다고 광풍의 바르칼을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만 어영부영 지나다 보면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뭘까?”
재중이 형의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답을 내놓았다.
연이 가장 신경 쓰일 만한 존재.
그건 딱 하나밖에 없지.
“……우리겠군요.”
“그런 그림이지. 연 입장에서도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이었던 거야. 그리고 전신이 부담스럽긴 해도 거긴 확실히 돈이 되니까. 차라리 그쪽을 택했겠지.”
어차피 못 먹는 감.
찔러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따게 만든다는 건가.
전신 입장에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명궁이 터를 잡고 있던 판에 끼어들려면 연의 도움은 필수였을 테고.
연과 명궁은 안 그래도 한 차례 치고받으면서 서로 감정이 안 좋은 상태이니 끼어들기에도 명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혹시 못 잡는다면……?”
“전신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은 아니지. 안 된다고 판단했으면 처음부터 나서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재중이 형은 곧장 사장님에게 연락을 넣었다.
<불멸> 상황은요?
<카이저> 음, 아쉽지만 이미 상황 종료다. 빠르게 애들 붙여 놨는데 늦은 모양이다.
<불멸> 역시 그렇습니까. 수고했어요.
“봤지?”
“으음, 아쉽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광풍의 바르칼 쪽을 먼저 치는 건데…….”
아쉬움이 가득 남는 내 말투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연에게 신성 제국을 통째로 내주었겠지. 마족의 무기들 전부하고 봉인된 네임드 아이템뿐만 아니라 신의 손도 날아갔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아쉬움이 덜 하네요.”
그때 듣고 있던 이쁜소녀가 물었다.
“혹시 그럼 영웅의 무기도 넘어간 거예요?”
분명히 영웅의 무기에 관련된 네임드였으니 넘어갔다고 보는 게 맞으려나.
“뭐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자 이쁜소녀가 들고 있는 토르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으웅, 아깝다아. 이런 무기가 많으면 좋을 텐데.”
“솔직히 나도 아쉽지.”
순간 마왕에게 스치듯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영웅의 무구가 천족에게서 나온 것이라 했던가?
분명히 그렇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어쩌면 아까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한데…….”
“네?”
이쁜소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 이상의 뭔가를 본 것 같아서 말이지.”
영웅의 무구 자체가 천족에서 나온 물건들이라면.
반대로 마족들에게서 나온 무구들 역시 존재했다.
로케, 마누스, 가낙스 같은.
그리고 분명히 마왕이 마족 따위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말이지…….
오히려 지금 가야 하는 마계 쪽이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물론 그곳에서 버틸 수 있다는 가정하에.
이건 모험이자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어쩌면 유일 템 이상의 뭔가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응?”
“네?”
“무슨?”
내가 내어놓은 한 마디에 다들 궁금함 가득한 눈빛으로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유일 아이템들이 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상위의 템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은 쉽게 넘기기가 힘들었다.
우리 팀을 모두 한 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리고 이건 내 나름대로의 선언이었다.
“마왕. 아무래도 잡아봐야겠어요.”
* * * * *
얼마 뒤 아스티아가 정비를 하고 있던 나를 찾아왔다.
“정말 갈 거야?”
그런 아스티아에게 웃으면서 답을 주었다.
“가야죠.”
아스티아가 가자는 곳은 다름 아닌 마계.
원래라면 마계를 동네 마트처럼 그냥 갈 순 없겠지만 지금의 내겐 신의 손이 있었다.
거의 치트키와 같은.
이걸 봤기에 아스티아 역시 내게 제안을 했던 것이고.
“넘어가면 내게 바싹 붙어 있어.”
“네네, 그러죠.”
사실 아스티아라는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중간 사냥터를 싹 건너뛰고 한 번에 고렙 존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장비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좋다고는 하나.
그쪽으로 넘어가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래서인지 아스티아 역시도 내게 경고를 해주었다.
“스쳐도 죽을 수 있거든.”
“으음, 그건 좀 무섭네요.”
“농담이야. 너 그렇게까지 약하진 않잖아?”
저게 농담 같지 않아서 문제지.
“걱정 마. 목숨만 붙어 있으면 내가 살려 줄게.”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잠시 장비들을 살펴본 후 신의 손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나와 아스티아를 지켜보던 재중이 형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저 좀 늦어져도 괜찮겠죠?”
“아아, 여긴 걱정 말고 다녀와.”
아쉽게도 이 신의 손이라는 건 딱 나밖에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스티아는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니 아스티아는 이전에 하던 대로 바로 결계를 넘어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내 옆으로.
뭐 이게 안 된다면 그냥 돌아오는 수밖에.
아스티아도 없는데 마계에서 혼자 돌아다닐 만큼 간이 배 밖에 나오진 않았다.
챠밍을 바라보자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조심해요. 위험하면 바로 돌아오고요.”
“응. 몸 사려서 잘 다녀올게. 그럼 갑니다.”
바로 품에서 가이아 쉴드를 꺼내서 정면에 놓았다.
넘어갔을 때 상황이 어떨지 아무도 모르니 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후우.
그렇게 한 번 심호흡을 한 다음.
【 갓 핸드! 】
신의 손을 발동시키자마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이동할 지역을 마계와 천계 중 선택해 주세요. 》
“마계.”
《 마계가 선택되었습니다. 》
《 이동 좌표는 랜덤으로 결정됩니다. 》
내가 걱정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좌표.
정확히 한 장소라면 대책이라도 있겠지만.
이번은 그냥 운에 맡길 수밖에.
제발 한적한 곳에 가길.
그렇게 속으로 빌면서 신의 손이 발동되자 환한 빛과 함께 완전히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시야가 복구된 순간.
바로 가이아 쉴드로 정면을 막으며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았다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이거.
시작부터 완전 잘못 온 것 같은데?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