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화 신의 손 (8)
일반적인 방법으로 올렌드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녀석의 허를 찌를 수 있는.
평범하게 쓰지 않는 스킬들의 조합을 꺼내들어야 했다.
그리고 녀석이 뭔가를 하기 전에 한 번에 찍어 누를 수도 있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다수의 로케들은 꽤 유용한 성능을 발휘했다.
하나만으로는 부분 석화가 되더라도.
그 숫자가 많아지면.
결국 석화 확률이 계속 추가되어 완전 석화가 될 테니까.
하지만 이런 공격들도 녀석의 저 하얀 라지 쉴드로 정면을 막아 버리면 무용지물이었다.
아마 어지간한 공격은 대부분 막아버리는 모양이니까.
아니면 효과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어 버린다던가.
레비아탄 롱보우로 로케를 계속 날려 보내 확인한 결과.
올렌드가 가진 라지 쉴드에 닿기만 하면 로케의 효과가 거의 대부분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격 쪽으로는 몰라도.
방어 능력은 지금껏 본 어떤 쉴드보다도 좋아.
전에 베히모스를 상대로 올렌드가 혼자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런 능력이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베히모스의 공격 자체가 속성 공격이 대부분인데 그런 공격을 쉴드 자체가 알아서 막아 주니 가능했겠지.
당연히 이런 라지 쉴드를 들고 있는 올렌드를 정면에서 공략하는 건 꽤 지난한 일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쉴드를 아무리 두들겨 봐야.
어차피 의미가 없어.
이건 내 쪽의 힘만 빠지는 일이다.
올렌드가 뭘 숨겨놨을지 모르는데 이쪽의 패를 다 내놓는 것은 미련한 짓이기도 하고.
해서 녀석이 생각하지 못할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보통 전사 계열은 블링크를 쓰지 못하니까.
반면 내 쪽은 르아 카르테에 조합시켜둔 스킬들을 이용하면 마법 계열처럼 손쉽게 블링크를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블링크로 올렌드의 뒤를 잡고 곧장 오러를 잔뜩 씌운 로케들을 녀석의 등에 꽂아 넣으니 예상했던 대로 한 번에 올렌드가 무너져 내렸다.
“크아악!”
확실히 이 녀석.
자체적인 방어는 강하지 않아.
라지 쉴드로 막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 그걸 잘 알려 주었다.
로케의 석화 기능 역시도 제대로 먹혀들었고.
물론 로케가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서 로케에다가 오러를 육중첩해 밀어 넣었다.
방어를 확실히 깰 수 있도록.
그렇게 올렌드의 몸 대부분이 석화가 진행되어 굳어가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혹시나 이것도 먹히지 않으면 어쩌나 했네.
만약 이 녀석의 신체 방어 역시도 강했다면…….
개고생했겠지, 아마도.
그리고 만약 그렇게 방어가 좋다면 테인 공작만큼이나 강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너! 이 녀석! 감히!”
몸이 점점 석화가 되어가자 올렌드가 악을 쓰면서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미 대부분의 몸이 굳어버려서 그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이 내게는 기회였다.
“내가 나름 교황인데 말이야.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
생각해 보니 여기 NPC들은 하나 같이 예의가 없단 말이야.
뭐 저놈도 한때 교황이었다고 우기면 할 말은 없고.
로케들을 모두 녀석의 등에 찍어 넣고는 곧장 복사본 마누스를 꺼내들었다.
【 리셋 스킬! 】
리셋 스킬로 시간의 서의 쿨타임을 되돌린 후.
다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들었다.
【 용병왕의 분노! 】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화속성! 】
【 시간의 서! 】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뇌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풍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독속성! 】
이러면 다시 원래대로 스킬을 쓸 수 있었다.
리셋 스킬로 체력과 마력이 깎이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오러 블레이드를 중첩해놓고 완전 프리 상태로 고정딜을 넣으면 체력과 마력이 미친 듯이 다시 차오르게 된다.
“넌 여기서 죽어!”
콰지직!
파직!
콰아앙!
화르륵!
파아앙!
쿠아앙!
단순히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휘두를 뿐이었지만 오러 블레이드의 각 효과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한 발, 한 발 모두가 강렬한 폭발력을 보여 주었다.
“크아아악!”
그리고 그런 위력에 올렌드의 몸이 사정없이 날아가 벽에 부딪히더니 곧장 튕겨 나왔다.
쯧.
덩치가 크고 무거운 다른 월드 네임드과는 달리 올렌드는 인간형이니까.
폭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이리저리 튕겨 나가 한 자리에서 스탠딩으로 공격하기는 좀 어려운 면이 있었다.
할 수 없나.
벽에 처박혔다가 튕겨 나오는 녀석에게 다시 달려가 그대로 다시 르아 카르테로 녀석의 몸을 올려쳤다.
콰드득!
끼기긱!
콰앙!
올렌드의 갑옷이 르아 카르테에 그대로 구겨지더니 포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녀석의 몸이 벽에 박혔다.
“커억!!”
이걸로 끝이 아니라고.
그리고는 녀석이 튕겨 나올 때마다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휘둘러 아예 바닥에 떨어지지도 못하게끔 녀석을 계속 쳐올렸다.
쾅쾅!
콰아앙!
콰지직!
“크억! 그, 그만!!”
“싫은데?”
그다음부터는 정말 사정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녀석이 바닥에 떨어지면 내가 내기에도 지는 것처럼 독한 마음가짐으로 끝없이 녀석을 올려치자 한쪽 벽에 수십, 수백 개의 폭발 흔적을 남기며 녀석과 함께 계속 터져나갔다.
한 곳만 계속 공격하면 이전처럼 아예 녀석을 반으로 갈라놓을 수도 있겠지만…….
뭐, 이것도 나쁘지 않네.
벽과 올렌드의 몸에 폭발이 점점 중첩되면서 더 없이 강렬한 폭발력을 이끌어 내었다.
당연히 올렌드의 갑옷도 거의 박살이 난 상태고.
내게 프리로 딜을 할 수 있게 해주면.
이 정도 위력은 충분히 낼 수 있어!
그걸 몰랐던 올렌드는 지금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딱 한 번 방심한 대가로.
녀석을 보니 이전에 걸린 석화와 광역 스턴은 이미 풀려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들어오는 오러 블레이드의 강력한 연속 공격으로 인해 녀석의 몸이 다시 경직이 되어버렸다.
급소 부분에 공격을 너무 많이 허용한 것도 그 원인이었고.
이젠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는 상태.
그리고 이렇게 계속 얻어맞다가는 죽을 수 있다는 걸 느꼈는지 올렌드에게서 새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젠장! 이렇게 죽을 수는……! 곧 새로운 세상이 온……!”
응? 무슨 소리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딱히 녀석을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이 녀석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내게는 장애물이었다.
그동안 방해도 엄청나게 많이 받기도 했고.
이놈만 아니었으면 벌써 여기를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갔을 텐데.
그 생각을 하니 괜히 빡치네.
“그냥 죽어!”
다시 한 번 녀석을 몰아붙이자 이젠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체력이 계속 깎여 나갔다.
이렇게 완전히 끝내면 좋겠지만 이 녀석도 상위의 NPC이다 보니 곧 녀석에게서 강한 반발력이 일어났다.
이건 일종의 방어막 같은 건가?
녀석을 감싼 하얀 방어벽이 순간 내 공격을 모두 밀어내면서 녀석과 나 사이의 간격을 확 벌려 놓았다.
큭.
그렇다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몸을 뒤로 쭉 뺐다가 녀석의 방어벽 한가운데를 항해 곧장 돌진했다.
【 대쉬! 】
그리고 르아 카르테를 일직선으로 뻗으며 방어벽을 뚫어내듯 찍어 넣었다.
끼기기긱!
확실히 방어력이 높은지 르아 카르테가 녀석의 하얀 방어벽을 완전히 깨지 못하고 겨우 검 끝만 파고드는 정도에 그쳤다.
오러를 이렇게 중첩한 르아 카르테로도 방어벽에 균열을 살짝 내는 정도에 그치다니.
아마 단순한 방어력만 치면 그동안 봤던 그 어떤 스킬보다도 강할 것이다.
올렌드가 마지막까지 이 방어벽을 안 쓴 이유가 있었네.
정말 최후에 쓰려고 남겨놓은 스킬.
“큭, 이것까지 쓰게 만들 줄은 몰랐는데.”
올렌드가 날 보면서 비릿하게 웃어 보이자 나 역시 녀석을 보고 미소 지었다.
“거기 안에 있다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 안에서면 금방 회복할 수 있으니 조금만 버티면 돼.”
흐음.
녀석이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었군.
아무래도 이 방어막이 체력 회복을 빠르게 해 주는 기능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럼 그동안 깎아 놓았던 녀석의 체력을 모두 채울 수도 있을 터.
반대로.
이 녀석이 이걸 지금 썼다는 건.
체력이 거의 바닥이라는 뜻이 아닐까.
정말 죽을 위기가 되어서야 발동하는 스킬이라고 생각해 보면.
다른 말로 지금 이 방어막만 뚫을 수 있으면 녀석을 잡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흐음.
어떻게 이걸 뚫을 방법이 없나?
오러를 이렇게나 둘러싸고 공격해도 겨우 검 끝만 들어가는 정도인데 완전히 찢어내는 건 어려울 것 같…….
순간.
녀석의 방어막을 찢고 들어간 검 끝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거 검 끝이 확실히 파고 들어간 것 맞지?
그럼…….
순간 웃음이 나오자 올렌드가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면서 라지 쉴드를 한 번 쓸어냈다.
“어차피 이건 아무도 못 뚫는다.”
“아아, 그래. 아마 뚫고 들어가는 건 어렵겠지.”
보아하니 저 라지 쉴드의 능력이었던 건가?
이러면 더 탐이 나잖아.
신의 손도 그렇지만 이젠 저 영웅의 무기급인 라지 쉴드에 더 관심이 생겨 버렸다.
“그거, 내가 좀 가져가야겠어.”
“무슨…….”
곧장 르아 카르테를 강하게 밀어넣자 이전보다 조금 더 검 끝이 방어막을 파고들었다.
아마 이 정도가 한계인 것 같은데.
“아무리 수를 써도 이건 절대 안 돼.”
“뭐. 그래. 잘 알아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이 방어막이 강한 거지, 네 녀석이 강한 건 아니잖아?”
내 말에 순간 녀석의 눈빛에 당황한 눈빛이 스쳐 갔다.
“이거 검끝만 들어가도 말이지……이런 것도 할 수 있다고.”
그 말과 함께 곧장 내 검에 검은 기운이 잔뜩 맺히기 시작하자 올렌드의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아, 안 돼!”
“돼.”
녀석을 연타하면서 르아 카르테로 마력을 온전히 다 채워 놓은 상태라 다른 스킬을 쓰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렇게 넘쳐나는 풍부한 마력을 기반으로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한방을 시전했다.
이거라면.
【 데스 버스트! 】
바로 검은 기운들이 르아 카르테의 검끝을 타고 방어막 안으로 일직선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애초에 시전만 되면.
검 끝으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건 뻔한 이야기지.
데스 버스트는 스치기만 해도 강한데…….
그게 방어막 안에서 뭉치고 또 뭉치면 어떻게 될까.
콰아아아앙!!
“크아아악!!”
예상했던 대로 원래라면 쭉 뻗어나가야 하는 데스 버스트가 하얀 방어막 안에서만 연쇄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완전무결해야 하는 방어막에 이미 균열이 난 것만으로도 그건 완벽한 방어막이 아니다.
그걸 맹신한 올렌드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고.
한참을 방어막 안에서 데스 버스트가 터져나갔고 얼마 뒤 하얀 방어막이 흐려지면서 방어막 역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한 짧은 시스템 메시지가 귓가에 울려왔다.
철그렁!
동시에 녀석이 들고 있던 하얀 빛깔의 라지 쉴드 역시 주인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 올렌드 교황이 사망했습니다! 》
하.
드디어 녀석을 잡았나.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