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화 신의 손 (7)
재중이 형과 함께 들어오면서 확인한 결과 지금의 이 공간은 분명히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는 장소였다.
그렇기에 모두를 두고 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혼자 이 미지의 장소에 들어와 있었고.
그런데 지금, 내 시선 저편에는 다른 누군가가 분명히 존재했다.
시스템상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거 아니었나??
만약 뭔가가 있다면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지금의 그 예상은 내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로 인해 완전히 깨져 버렸다.
“누구냐?!”
그것도 꽤 격양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빠르게 몸을 움직여 주변의 사각지대로 몸을 은폐했다.
다행히 주변에 적당한 구조물들이 있어 몸을 숨기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벽에 등을 진 채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들고는 다시 한 번 감각을 멀리 퍼트렸다.
바로 뛰어들려다가 일단은 멈췄다.
상대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난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아.
그런데 내가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봤더라?
미로와 같은 통로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기에 다소 울림과 함께 왜곡되는 듯한 파장이 섞여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어디선가 들어봤던 목소리 파장이라는 것.
혹시 유저인가?
아냐.
만약 유저였다면 누군지 물어보기도 전에 칼부터 날아왔을 것이다.
유저가 여기에 들어왔다면 목적은 단 하나.
그 정체 모를 신의 손일 테니까.
보통 경우라면 이 공간에 다른 유저가 들어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공격하고도 남는다.
비슷한 능력이라면 선빵을 날리는 게 아무래도 승기를 잡기 쉬울 테니.
하지만 바로 공격이 날아오지 않을 것을 봐서는 적어도 유저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애초에 유저가 여기에 있을 수가 없지.
그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면 이미 재중이 형을 포함해 우리 팀 모두 이 공간에 같이 들어와 있을 테니까.
물론 다른 방법으로 들어오는 뭔가의 꼼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런 경우의 수는 일단 다 배제했다.
업데이트가 되고 이 짧은 시간동안 그걸 찾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는 말은.
저기 있는 녀석이 NPC라는 말이 되는데…….
유저가 아닌 NPC라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나밖에 못 들어온 이 장소에 들어와 있는 것도.
아무래도 유저와는 다르게 뭔가의 장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빠르게 내가 아는 신성 제국으로 넘어와 만난 NPC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적어도 어설프게 낮은 녀석들은 아니야.
최소 추기경급 이상.
조슈아 성녀는 당연히 제외.
비전투원이 여기 들어와서 뭔가를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드워프 왕인 카르바할이 여기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연관성이 전혀 없어.
그러자 결국 한 NPC로 범위가 줄어들었다.
어지간한 유저들보다 훨씬 전투력이 높고.
직위가 최소 추기경은 넘어가면서.
단독으로 이런 곳에 올 수 있는.
역시…….
올렌드밖에 없으려나.
거기다 가장 큰 단서는 따로 있었다.
최근 베히모스에 신성 제국이 날아가면서 교황의 직위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올렌드가 교황에서 내려왔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있었나?
기억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런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곧장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아무래도 여기 올렌드가 있는 것 같아요.
<불멸> 뭐? 어떻게? 아니지…… 그건 의미가 없고. 상황은?
<주호> 일단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한데. 더 들어가면 한판 붙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불멸> 올렌드라……. 그놈도 자격이 되었던 건가. 귀찮게 됐는데.
<주호> 어떻게 할까요?
잠시 대답이 없던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이길 수 있겠어?
<주호> 그건 해봐야죠. 이전이라면 자신 있기는 한데…….
<불멸> 녀석이 신의 손인가 그걸 손에 넣었을 경우를 말하는 거냐?
<주호> 네, 만약 그렇다면 꽤 골치 아파질 것 같아요.
<불멸> 그럼 무조건 녀석을 죽여야 하겠지.
여기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다.
신의 손.
그걸 얻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만약 올렌드가 그걸 가지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일 수 밖에.
<불멸> 안 그래도 빚도 있는데 잘 됐네.
<주호> 네, 녀석에게는 빚이 있죠.
우리를 몇 번이나 물 먹인 전력이 있는 놈이니까.
거기다 연과의 커넥션이 있는 녀석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 보면 혼자 다니는 지금.
녀석을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판단이 서자 곧장 아이템들을 점검했다.
아쉽게도 아퀼라스 주니어 같은 경우 이런 곳에서는 소환이 되지 않았다.
후…….
소환만 되면 녀석을 바로 죽일 수도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모든 아이템들을 한 번씩 살펴본 후 슬쩍 올렌드 쪽을 바라보았다.
일단 감각에 더 걸리는 건 없어.
녀석은 혼자.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선제 공격을…….
하지만 올렌드는 그렇게 쉽게 틈을 내어주진 않았다.
“이번에도 네 녀석이냐?”
내가 올렌드를 떠올리는 동안.
녀석 역시 내 쪽을 파악한 것 같았다.
일단 녀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말을 건넸다.
“이제 내가 교황인데 말을 좀 높여야 하지 않겠나?”
“……흐음!”
전과 다르게 지금의 나는 시스템이 인정한 신성 제국의 교황이었다.
당연히 저 올렌드에게도 이 시스템이 적용될 것이다.
여기 들어온 걸 보면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딱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녀석의 주의를 흩트려 놓을 수 있다면야.
그런데 과연 녀석이 이걸 인정할까?
인정하면 인정하는 대로 좋다.
내 명령에 따라야 하니.
반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볼 것도 없다.
아예 반역으로 몰아서 죽여 버리면 되는 일이다.
자…….
넌 어떤 쪽을 택할 거지?
올렌드 구 교황?
한참을 고민하던 올렌드에게서 결국 답이 흘러나왔다.
“……난 너 같은 이방인을 교황으로 인정할 수 없다. 교황은 나와 같은 정통성이 있는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 당장 교황에서 물러나라.”
이거 참.
너무 확실하게 나오니 할 말이 없네.
결국 올렌드는 우리와는 다른 길을 가기로 되어 있던 모양이었다.
앞으로 쓸모가 없다면.
아깝지만 죽여야겠지.
“웃기고 있네. 너 같으면 물러나겠냐?”
철그럭.
내 대답에 올렌드가 움직임을 가져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옷 소리가 제법 무거운데?
완전히 중무장을 하고 온 건가?
제국의 장비가 가볍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로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 적어도 속도에서는 이쪽이 우위.
가장 눈에 거슬리는 건.
바로 올렌드 녀석이 들고 있는 저 은은한 빛을 내는 라지 쉴드였다.
표면이 매끄럽게 흠집 하나 보이지 않는 상급의 방패.
좀 전까지 이곳 지하 공간에 빛이 나던 건 바로 저 녀석의 방패가 반사되면서 나오는 빛이었다.
분명히 저게 영웅의 무기들에 들어간다고 했지?
정확히는 무기는 아니지만.
녀석을 죽여서 저걸 얻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그건 녀석을 잡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지.
흠.
일단 전력을 좀 알아야겠어.
레비아탄 보우를 꺼내서 시위에 복사된 로케를 하나 올려놓고는 강하게 잡아당겼다.
끼기긱!
활대가 끝까지 휘어지면서 차징이 된 상태로 최대한 버티면서 기다렸다.
어디 방어가 얼마나 좋은지 보자고.
순간 사각지대에서 몸을 빼내면서 녀석을 향해 활시위를 조준했다.
그러자 올렌드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일단 한 방!
쐐애애액!!
고요한 공간에서 활시위를 놓자 바로 파공음을 지르며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고 올렌드에게 날아갔다.
바로 한 방 더.
로케를 다시 한 번 올리고는 그대로 연이어 녀석에게 날리자 날카로운 검날을 앞세우고 이전과 조금 다른 궤적을 타면서 날아갔다.
두 발의 로케가 날아가자 올렌드가 바로 몸을 낮추면서 하얀 라지 쉴드를 앞으로 들어올렸다.
까가강!
카가각!
순간 녀석의 라지 쉴드 위로 석화가 진행되었지만 효과는 딱 거기까지.
거의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녀석이 두 개의 로케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역시 단단한 방패를 가진 녀석을 상대로 활 계열은 확실한 대미지를 주긴 힘들어.
아예 방어를 뚫을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현재 아쉽게도 궁수 쪽의 스킬은 상대저으로 다소 빈약한 쪽에 속했다.
업데이트가 되면서 스킬이 다수 추가된다고 했는데.
지금 없는 게 문제.
그럼 있는 걸로 최대한 해결을 봐야겠지.
계속해서 준비해 둔 로케를 녀석의 전방으로 쏟아부었다.
그러자 서서히 올렌드에게서도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막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로케가 계속 부딪히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바로 석화 확률.
안 걸리거나 혹은 약하긴 해도 계속 중첩이 되면서 석화 확률이 올라가자 개중 하나씩 제대로 석화를 걸어 놓았다.
단순히 방패뿐만 아니라 녀석의 팔, 혹은 다리까지도 움직임이 느려지자 올렌드가 바로 인상을 썼다.
그리고 계속 복사본 로케를 날리는 내 쪽을 놀란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마족의 무기를 대체 몇 개나 가지고 있는 거냐!”
“나도 몰라. 그러니까 몸으로 직접 확인해 봐.”
여유 있는 듯 말했지만 내 쪽도 그렇게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혹시나 녀석이 신의 손을 가지고 있을까 싶어서 근접전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거리를 띄우고 로케를 쏘고 있으니까.
확실히 녀석에게 없다는 판단이 들면 근접전을 할 텐데…….
서버가 열린 시간 동안 우리와 달리 여기 일찍 들어왔다고 가정해 보면 올렌드에게 아예 없다고 하긴 무리였다.
신의 손을 구해서 나가는 길이였다면.
잘못하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한참을 로케를 날리다가 녀석에게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자 로케를 그만 날려 보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진 녀석의 신체에는 어디 하나 석화가 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주 말끔하게 돌아온 모습을 보고는 바로 혀를 찼다.
설마…….
상태 이상을 싹 날려 버린 건가?
저 방패의 능력이 그 정도라고?
예상하기로 저 능력은 석화 상태를 포함한 모든 상태 이상을 날리는 그런 종류일 것이다.
올렌드가 석화 해제 스킬만 따로 준비했을 리는 없을 테니.
저걸 반드시 전사 형에게 가져다줘야 하는 이유가 생겼네.
그리고 신의 손은…….
없다고 봐야 하려나?
만약 있었다면 내 공격을 뚫고 뭔가의 반격을 해왔을 텐데 지금은 그런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인벤을 살펴보니 복사해놓은 로케가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흐음.
승부를 봐야 하려나.
결국은 근접전.
하지만 저 방패 위로 제대로 된 대미지를 주려면 쉽진 않을 터.
“교황이라는 녀석이 이상한 상술만 배워왔군.”
스킬 복사가 상술이 되는 순간인가.
뭐 상관 없지.
이걸로 너를 잡기만 하면 돼.
바로 레비아탄 롱보우를 넣고는 남아 있는 로케를 일제히 꺼내 들었다.
내게서 변화가 있자 올렌드 역시도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껴 쓸려고 했는데 말이야. 여기서 써야겠어. 넌 녹화도 못 하니까.”
그리고 동시에 스킬을 끌어올렸다.
【 고대 마수의 심장 (베히모스)! 】
【 헤이스트! 】
【 트리플 캐스팅! 】
【 오러 블레이드 - 암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화속성! 】
【 시간의 서! 】
【 오러 블레이드 - 뇌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풍속성! 】
【 오러 블레이드 - 독속성! 】
순간 가슴이 빠듯하게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옆에 있는 로케들에까지 오러 블레이드가 걸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마력이 고갈되어 갔으니까.
거는 건 얼마든지 걸 수 있다.
감당이 안 되어 문제지.
그리고 한 가지 무기를 더 꺼내는 순간.
『 +15 르아 카르테 / 마법 증폭 47 (27+20)
- 신성력+60
- 지력+40
- 마력+40
- 마력 회복+30
- 격뇌- 광역 스턴
- 블링크
- 은신
- 광화 』
【 블링크! 】
블링크를 내장한 르아 카르테로 녀석의 뒤에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 블링크를 사용할 거라 생각도 못한 올렌드는 여전히 사라진 내쪽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고.
그런 올렌드의 등이 확실히 드러나자 바로 로케들을 올렌드의 등 뒤에 찍어넣었다.
콰직!
콰지직!
콰아악!
크아아악!!
여기서 한 번 더.
【 격뇌 - 광역 스턴! 】
혹시나 몰라 스턴까지 먹이자 석화와 스턴을 동시에 맞은 올렌드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큭.
지금까지 아껴두길 잘했네.
그럼 잘 가라고!
올렌드 전 교황!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