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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754화 (744/1,404)

#754화 신의 손 (3)

재중이 형의 의외의 제안에 놀란 은하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나 역시 저 제안은 완전히 생각 밖이라.

“네? 소속사를 옮기라고요?”

“응,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뇨, 전혀요.”

애초에 은하는 활동을 다시 하기 위해 재활을 하면서 준비 중이었다.

당연히 생각조차 못 해 본 일일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놀라겠지.

입을 꾹 다물고 잠시 고민을 하던 은하가 이내 다시 말을 꺼냈다.

“솔직히 생각을 안 해 봐서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이제 들었으니까. 어때? 생각 있어?”

“으음, 그렇게 이야기해도요…… 쉽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에요. 지금 소속사와의 계약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굳이 옮겨야 할 이유가 없는 걸요.”

누가 봐도 은하의 저 반응이 맞다.

복귀를 준비 중인 은하에게는 지금껏 소속해 있던 소속사에서 복귀를 하는 쪽이 수월할 테니까.

반면에 재중이 형이 한 제안은 다소 모험성이 있었다.

그리고 특히 재중이 형은 이쪽, 매니지먼트 쪽으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은하 입장에서는 재중이 형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그것만 믿고 무턱대고 옮기라고 하면 옮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친분만 믿고 옮겨서도 안 되고.

그런 은하의 대답에 재중이 형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 정보도 없는 내가 옮기라고 하면 말이 안 되겠지. 그런데 너도 잘 생각해 봐야 해. 지금 오디션으로 뽑은 애들로 모인 그룹. 활동 기간이 얼마 안 남았지?”

“네에…… 얼마 안 남았죠.”

재중이 형의 물음에 대답하는 은하의 목소리에 다소 힘이 빠져 보였다.

이번엔 내 쪽에서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았다.

“활동 기간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어, 아무래도 넌 워낙 이런 쪽으로 관심이 없으니까 잘 모르긴 하겠네.”

“좀 그렇긴 해요.”

사실 은하가 연예인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좀 더 관심이 있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세세한 내용까지 알 정도는 아니었다.

“보자, 일단 오디션으로 뽑힌 애들은 인지도가 전부야. 오디션 TV 프로그램으로 끌어모은 팬덤을 그대로 활동으로 이어 가는 거지. 이게 꽤 크거든.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걸그룹과 다르게 기본적으로 팬들을 붙이고 가는 거니까.”

“아, 인지도…….”

“그리고 원래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한 은하가 그룹에서 센터에 서야 하거든. 외모나 인기 모든 면에서.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지.”

그런 재중이 형의 말을 듣자마자 은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음?

방금 저 말이 문제가 되었던 건가?

순간 머릿속에서 재중이 형이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되돌려봤다.

원래라면 센터라…….

그런데 그 오디션 그룹이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은하는 쭉 아픈 상태였고.

그럼 당연하게도 은하는 활동을 못 했으니까…….

“다른 사람이 은하 대신 센터에 섰다는 말이죠?”

“그렇지. 그것도 활동 시작한 지 일 년 반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쭉.”

슬쩍 은하의 눈치를 보자 은하가 잠시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네, 맞아요. 지금 돌아가도 전 센터에 서지 못할 거예요.”

흐음.

센터에 선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나.

그러고 보니 가운데 있는 사람이 좀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몇 가지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얘들은 수가 많으니까. 가운데 서고 안 서고는 꽤 큰 차이지. 요즘에야 자리를 수시로 옮기니까 큰 의미를 안 둔다고는 해도. 시청자들 눈에 들어오는 비중을 생각해 보면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니까.”

“흐음, 그래도 은하 정도면 자리는 어떻게 되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같은 그룹 애들을 다 씹어 먹을 외모에 가창력까지 좋다.

좀 불리한 환경이긴 하지만 어디에 둬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일 년 반 전의 이야기야. 지금 걔들은 계속 합을 맞춰서 활동을 해 왔으니까 실력도 많이 늘었어. 진짜 프로로 무대에 한참을 섰단 말이지. 반면에 은하는 무대에 못 선지 벌써 일 년 반이나 넘었어.”

재중이 형의 말이 이어질수록 은하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물론 클래스 차이는 무시 못하니까 금방 따라붙기야 하겠지. 너도 알겠지만 이 바닥에서 재능은 정말 무시 못하잖아.”

재능이라…….

솔직히 그걸 제일 실감하는 건 바로 나였다.

RTP가 높아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능력들을 생각해 보면.

그 재능이라는 허들이 얼마나 높은지.

얼마만큼이나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은하도 오디션을 1등 할 정도의 재능이라.

능력에서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재중이 형이 아쉽다는 듯 말을 꺼냈다.

“지금 은하에게 제일 큰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인지도야.”

“인지도요?”

“어, 한참 주목받고 인기를 모아야 하는 타이밍에 빠졌으니까. 지금 은하에게는 지지하는 팬들이 거의 없다고 봐야지.”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하자 은하가 한숨을 푹 쉬면서 힘없이 늘어지며 말했다.

“후우, 정말 뼈 때리시네요.”

“아, 너무 나갔나?”

“아뇨, 어차피 사실이니까요. 아마 지금쯤 제 자리가 없을 거예요. 기억해 주는 분들도 있긴 하겠지만. 남은 활동 기간이 얼마 없으니까 아마…….”

“네가 활동 시작하자마자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찢어지겠지.”

“네, 그런 셈이죠.”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는 은하를 보면서 나 역시 생각이 깊어졌다.

하아.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잖아.

그런데도 은하는 걱정 끼치기 싫어서인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꿋꿋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 미안. 난 잘 몰랐어.”

“아니네요. 보통은 잘 모르니까. 그리고 그건 제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고요.”

“그래도 힘든 일 있으면 내게 말해도 돼. 난 항상 네 편이니까.”

“오빠……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은하와 훈훈하게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찼다.

“아주 오늘 날 잡았네. 난 이만 가 봐도 되는 거냐?”

순간 은하의 볼이 빨갛게 변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아,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래, 그래. 부러워서 살겠냐.”

끙.

이 형 앞에서는 뭘 못한다니까.

“아무튼. 쟤 지금 이대로 그룹에 돌아가 봐야 별다른 이슈 없이 묻혀 버릴 거야. 뭐 오디션 1등 했던 얘가 부상에서 돌아왔으니 잠깐 주목이야 받겠지만. 그것도 계약 기간이 지나서 활동을 접어 버리면 끝이지.”

“인지도를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네요.”

“어, 이미 다른 애들이 쟤가 받을 인지도를 다 먹어치웠어. 은하 정도 외모면 취향 안 따지고 대부분 이쁘다고 생각할 거니까 다시 상당히 끌어당기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힘들겠지. 어설프게 인기 쌓아서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어정쩡한 위치에서 사라진다는 말이죠?”

“그래, 쟤들 그룹 전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활동했던 애들 많을 건데. 걔들 중에 확실히 기억나는 애들 있어?”

“……잘 모르겠네요.”

“계약 기간 끝나고 각자 자기 소속사로 돌아가서 활동하니까 그래. 오디션 그룹 한곳에 모여 있던 인지도가 각 소속사로 갈기갈기 찢어지거든. 그럼 이도 저도 아닌 케이스만 나오는 거지. 걔들 중에 누군가는 확 뜰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어렵다 이거네요.”

재중이 형의 말을 듣던 은하 역시도 표정이 무거워졌다.

은하는 이걸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다시 활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니까.

잠시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은하가 나와 재중이 형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꼭 인기를 얻고 싶어서 그룹에 돌아가는 건 아니에요. 지금 전 노래하고 싶으니까요. 그리고 최선을 다하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잘되겠죠.”

은하는 단순히 인기만을 얻고자 하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못 했던 노래가 하고 싶을 뿐.

그런 은하에게 재중이 형이 다시 제안을 건넸다.

“그래도 듣는 사람이 많은 편이 더 좋지?”

“으음, 노래가 좋으면 아무래도 많이 듣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긴 해. 하지만 그래도 묻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곡이 홍보가 안 돼서 말이지.”

홍보라…….

아까 이야기했던 인지도와 관련이 있는 거려나?

“형, 혹시 소속사를 옮기라고 한 게 그것 때문인가요?”

“어, 눈치 빠릿하네. 그래. 지금 은하의 소속사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하거든.”

그 말에 나와 은하의 시선이 재중이 형의 입에 집중되었다.

재중이 형이 곧장 은하에게 물었다.

“너, 네가 의외로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건 알아?”

“네?”

“으음, 평소에는 우리 이상으로 머리 팽팽 돌아가는 애가 여기서는 왜 이렇게 막힐까?”

그러자 이번엔 내가 나섰다.

“힌트 좀 주고 하죠?”

“아, 그럼 힌트 줄까? 그런데 이거 주면 그냥 답이 나오는데 말이야.”

“그래도 한 번 줘 봐요.”

“오케이. 그럼…….”

재중이 형이 나와 은하의 궁금한 눈빛에 재밌다는 듯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챠밍.”

“네……? 아!!!”

“어……! 설마!”

힌트로 챠밍을 말하자마자 은하와 내게서 바로 탄성이 나왔다.

이런.

해답을 가까운 곳에 놔두고는 이때까지 완전히 돌고 돌았네.

저 단어 하나만으로 이미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로스트 스카이의 인지도가 얼마나 될 것 같아?”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죠. 아주 나이 드신 분들도 아는 판에.”

“어, 애들부터 해서 어른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지. 거기다 단순히 우리나라에만 국한 된 인지도가 아니야. 해외 시장에서도 로스트 스카이는 굉장히 유명하지. 특히, 우리들.”

“네?”

“우리가 유명하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야. 우리 레이드 영상 하나만 떠도 몇 백만은 순식간에 찍는다니까?”

그랬던가?

은하도 실감이 안 나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은하를 보면서 재중이 형이 말했다.

정확히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쟤가 지금 세계에서 제일 유명할 거다.”

“아!”

“뭐 저놈은 너무 괴물이니까 일단 빼놓고.”

그 말에 은하가 감탄하는 사이 재중이 형이 또 다른 말을 했다.

“그리고 챠밍하고 이쁜소녀도 인기가 폭발적이야. 이쁜 애, 귀여운 애 둘이 누구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괴수들하고 싸우는 장면은 항상 주목 받는다니까.”

이런.

그렇다는 말은.

“챠밍의 인지도가 상상 이상이라는 말이죠?”

“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대마법사 챠밍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

그 한마디에 은하가 넋이 나간 듯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기만 했다.

너무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막말로 챠밍 복장 입고 길거리 한 번 나가면, 그냥 게임 끝이야. 아마 네가 애국가를 불러도 1등 하지 싶은데?”

“으음, 설마요.”

“아, 너무 나갔나? 아무튼 네 인지도가 압도적이라고. 지금 오디션 걸그룹 애들 인기를 다 합친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그리고는 진지한 눈빛으로 은하를 보면서 말했다.

“넌 너 나름대로 최고의 인지도를 만들어 낸 거야.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러니까 이제 그걸 쓸 때가 왔다.”

이건…….

챠밍이 은하가 되는 마법이려나.

그리고 그동안 우리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지금의 은하에게 보상이 되어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재중이 형이 나와 은하를 한 번씩 돌아보고는 한껏 즐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세계에서 제일 유명해질 아이돌을 우리 손으로 한번 키워 보자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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