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화 새로운 준비 (3)
팔렸다고?
거점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재중이 형을 보는데 재중이 형은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이건 너무 콩 볶듯이 확 진행된 것 아닌가?
보통 이 정도 급의 제안은 서로 의견을 나눴어야 정상인데 재중이 형은 이번에는 내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밀어붙였다.
갑자기 왜?
그리고 굳이 지금 이런 식으로 거점을 팔 이유가 있나?
물론 저 돈은 누구나 혹할 만한 엄청난 거금이기는 했다.
어지간한 유저는 평생을 한다고 해도 손대 보지도 못할 금액이기도 하고.
하지만 돈이라면 이미 꽤 많이 벌어들인 상태였다.
여기 넘어오기 전, 드워프 왕국을 폭발로 날려 버리면서.
그때 얻은 아이템 값만 해도 추정해 거의 500에 달했는데 워낙 양이 많아 지금도 사장님이 꾸준하게 아이템을 처분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는 하지만.
이대로 거점을 유지하면서 새로 넘어오는 유저들만 받아들여도 필요할 만큼의 충분한 금액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재중이 형 역시 자금은 남부럽지 않으니 천천히 밀당을 하면서 거점의 값어치를 올려도 된다.
얼마나 이 지역의 지분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거점의 값어치가 달라질 테니까.
그때가 되면 돈으로 사려고 해도 살 수 없을 정도의 값어치를 가지게 될 수도 있었다.
이건 우리가 하기에 따라 달렸지.
그런데 그걸 전부 한 번에 포기해?
재중이 형의 스타일이 전혀 아닌데?
남이 보기에는 어떤지 몰라도 싸워 보지도 않고 냅다 넘겨주는 건 이제까지 보아왔던 스타일과는 완전히 반대였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점을 넘겨주었을 경우.
이 지역의 주도권이 완전히 연에게 넘어간다.
거점이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것과 그냥 일반 유저로 들어가서 살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
이게 앞으로의 움직임에 페널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성급했다는 점.
이런 식으로 빠르게 결정할 만큼 급한 사안도 아닐 텐데?
대체 재중이 형은 무슨 생각이지?
의문이 가능한 눈빛으로 재중이 형에게 신호를 보내자 재중이 형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말로 하지 않고?
<불멸> 일단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자.
<주호> 음, 알았어요.
이건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다는 뜻.
그리고 상대방에게 여기서 의중을 보여 주고 싶진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굳이 긁어서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겠지.
재중이 형 나름대로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니까.
그런 우리 둘에게 연이 다시 말을 꺼냈다.
“거점의 대금을 지급하는 건 베히모스를 정리하고 난 뒤로 하죠. 괜히 거금을 들여 협상을 했는데 이쪽의 신성 제국이 날아가 버리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건 양해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연의 제안에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대답했다.
“오케이, 어차피 우리도 베히모스를 잡아야 하니까. 아, 그리고 이쪽의 교황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조슈아 성녀 말입니까?”
연이 딱히 조슈아에게 교황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두 명의 교황을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진 않았다.
“거점이 없어지면 조슈아가 개털이 되니까. 나름 고위직 NPC인데 말이지. 그리고 거점이 사라지는 이상 우리도 신성 제국에 한 발 정도는 담궈 놔야 하지 않겠어?”
“흐음, 그건 생각하지 못 했군요. 올렌드 교황과는 앙숙이라……. 허락을 할진 모르겠습니다만.”
“안 되면 되게끔 만들어. 이쪽도 많이 양보한 거야.”
“흠, 계약 조건이라면……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안 되면 돈 더 올라간다?”
“하하, 꼭 해야겠군요.”
이미 연의 머리속은 우리의 거점을 파괴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들어가는 돈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베히모스의 처리는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일단 우리도 준비가 필요해. 가르가와는 또 다르니까.”
“그럼, 이쪽도 정비를 위해 돌아가겠습니다.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워뒀군요. 혹시라도 베히모스가 돌아오면 곤란하니까요.”
“뭐 그건 알아서 하고. 조만간 다시 보도록 하지.”
“네, 그때는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낸 연은 자신의 길드인 영혼 길드와 연합들을 모두 데리고 신성 제국 제넨샤로 일제히 귀환했다.
주변에 있던 모든 연의 세력들이 사라지자 사장님을 비롯한 길드장들 모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는지 궁금했던 모양.
그런 길드장들을 모아두고 재중이 형을 말을 꺼냈다.
“거점, 팔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거점을 포기하는 조건이죠.”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점을 얻은 지 얼마나 됐다고 포기한다는 건지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으니까.
“아, 베히모스를 잡아야 넘어가니 그렇게 놀라지는 마시고요.”
그 순간 화련이 가늘게 눈을 뜬 채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장난해? 지금 거점을 넘겨서 뭘 어쩌자는 거지? 그깟 돈 몇 푼에?”
“250이다만?”
“뭐?!”
그 말에는 화련도 꽤 놀란 눈치였다.
250이 어디 적은 돈도 아니고.
화련이 돈이 많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돈을 아주 휴지 보듯이 하진 않을 테니.
250이라는 그 말에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일단 그렇게들 알고 있으시죠. 협상이 끝나면 다들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릴 테니까.”
재중이 형이 보상을 이야기 하자 어느 정도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엔느가 물었다.
“그럼 이제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그래야겠지?”
그런데 엔느는 표정이 꽤 안 좋아보였다.
“혹시라도 연이 다른 마음을 품으면 우린 바로 낙동강 오리알 되는 건 아시죠?”
“아아, 저쪽도 우리에게 얻어 낼 게 있으니까. 바로 장난질은 못할 거다. 그건 장담하지.”
“음, 그럼 됐어요. 어차피 거점이나 신성 제국이나 부활만 제대로 되면 되니까요.”
재중이 형이 장담하고 넘어가자 엔느도 마음을 푼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지만.
엔느의 미묘한 표정에서 불안함이 계속 느껴지니까.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한 것 같은 표정이라...
“일단 우리도 복귀하죠. 정비할 것도 많고.”
재중이 형 말대로 우리 역시 아이템도 필요한 만큼 분배하고 제작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길드장들도 꺼림칙한 표정에서 겨우 표정을 풀고는 다들 길드원들을 데리고 귀환을 했다.
그렇게 거점으로 귀환해서 정비를 위해 길드 건물로 돌아가려는데 뒤에 화련이 계속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화련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연이 250을 넘겨주기로 했다고?”
“전 일단 그렇게 들었어요.”
“그럼 할 말이 많아지겠네.”
그러고는 곧장 우리 길드 건물에 화련이 따라들어왔다.
“따로 자리가 필요해.”
화련의 요구에 나, 그리고 재중이 형과 함께 길드장 사무실로 이동했다.
자리에 털썩 앉은 재중이 형이 화련에게 물었다.
“이렇게 따로 볼 만큼 중요한 사안인가?”
“네가 협상했어?”
“음, 그렇다고 해 두지.”
실상 재중이 형이 협상을 진행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자 화련 역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말했다.
“그럼, 그만두는 게 좋아.”
화련의 확신에 찬 말투에 재중이 형이 미묘한 웃음을 보이면서 다시 되물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려 250이라고?”
“하, 불멸이 프로 게이머 중에 최고라더니 이젠 감이 다 죽었네.”
꽤 민감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을 화련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중이 형이 미소를 잃지 않고 화련을 대했다.
“흐음? 돈이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 애초에 그 협상, 성사되지도 않을 거니까.”
“무슨 말이지?”
화련의 단언에는 나 역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이 파토날 거란 말인가요?”
“응, 백 프로. 절대 안 되는 거래야.”
“혹시…… 연이 배신이라도?”
“배신은 무슨. 그 녀석이 애초에 우리 편도 아니었잖아?”
“하긴,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하네요. 어쨌든 저쪽에서 문제를 일으킬 거라는 말로 들리네요.”
“애초에 그러고 말 것도 없어.”
그리고 이어지는 화련의 말에는 꽤 놀라고 말았다.
“연, 그 녀석. 그만한 돈이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돈이 없다라……. 뻥카였다는 건가요?”
“응,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데 분명히 스폰서가 있다고 하던데.”
“아, 거기?”
“아는 곳인가요?”
“잘 알지. 그리고 연의 영혼 길드를 지원하는 회사는 지금 자금 압박을 받는 중이라 쉽게 허가를 내어주진 않을 거야. 250? 어림도 없지. 조금 시간이 지나면 풀리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못 해.”
꽤 충격적인 말인데?
“어떻게 그런 걸?”
“그냥. 이리저리 알게 되는 게 있어.”
뭔가 부자들끼리는 정보가 오가는 게 다르다는 거려나?
아무튼 화련이 이걸 알고 있다는 건 꽤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재중이 형은 그 말에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었다.
이 형은 왜 이렇게 여유가 있지?
혹시…….
“형, 이미 알고 있었어요?”
“아아, 뭐 대충은.”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왜……?”
“아까 그 협상을 받아들였냐는 거겠지?”
“네, 뭐 그렇죠.”
화련 역시 내 물음과 같은 생각인지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한 번 들어보기나 하자고. 알면서 왜 말도 안 되는 협상을 진행했는지.”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나와 화련에게 말을 꺼내놓았다.
“주호한테는 따로 말해 주려고 했는데 화련 네가 안다니까. 입조심할 수 있지?”
“아씨, 날 뭘로 보고.”
“……썩 좋게는 안 본다만.”
“죽을래?”
끙.
둘이 만났다 하면 싸우는 느낌이네.
“화련도 걸린 게 많으니까 괜찮겠죠. 일단 계속해 봐요.”
재중이 형이 화련을 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알았다는 표정을 짓자, 화련도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왜 연이 내게 그런 협상을 제안했는지부터 알아야겠지? 주호 네가 보기엔 어때?”
“뭐가요?”
“내가 제안을 했어? 아니 연이 먼저 말을 꺼냈어?”
“음, 연이 먼저 꺼냈었죠.”
생각해 보면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내서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그렇지, 나도 처음에는 이게 우리가 방해가 되니까 돈으로 어떻게든 해보려는 줄 알았거든.”
그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옆에 비슷한 규모의 거점이 있으면 싫으나 좋으나 반드시 이익을 나눠 먹는 형태를 가지게 된다.
거기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지 못할 정도의 연합이라면?
건들기도 애매해지고.
혹여나 잘못해서 자신들이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냥 다 날려버릴 수도 있으니까.
“아마 처음에는 그런 계획이 아니었을 수도 있어. 특히 세 개의 마족의 무기를 다 얻고 난 뒤는 더 그랬을 테고.”
“그 마족의 무기를 앞세워서 우리를 쳤을 거라는 건가요?”
“거의 십중 아홉?”
“그냥 확실하다는 거네요.”
“아아, 뭐 그렇지. 그런데 나와 주호가 가르가를 둘이서 씹어 먹는 걸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진 못 했을 거야. 나라도 그걸 보고 덤빌 생각은 못 할 테니.”
“그럼 대체 뭐죠? 싸움을 걸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점을 살 돈도 없는데.”
그냥 절반씩 나눠 먹는 걸로는 부족했다는 건가?
아니지.
이 경우는 오히려 우리에게 유저들을 싹 뺏길 확률도 분명 존재한다.
결국에는 우리를 치기는 해야 하는데…….
뭔가가 부족?
흐음.
그때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차피 우리가 돈을 줘서 거점을 살 테니까 덤벼오지 말라. 이거네요.”
“그래. 녀석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지. 필요하다면 협상을 질질 끌어도 될 테고.”
앞에서는 돈으로 유혹을 해놓고 뒤에서는 뭔가 준비를 한다라.
“시간만 끌면, 우리를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거죠?”
“그렇지. 우린 이제 그걸 알아내야 해.”
이런 우리의 대화에 화련이 끼어들었다.
“그럼, 그걸 제일 잘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제일 잘 안다라…….
그 말에 떠오르는 딱 한 사람이 있었다.
“조슈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