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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97화 (687/1,404)

#697화 만들어진 그림 속에서 (3)

한 번 무너진 포위망을 뚫고 이속이 월등히 빠른 페가수스가 바람을 가르며 쭉 뻗어나가자 곧 올렌드 추기경과 연, 그리고 다른 영혼 길드 유저들과 거리가 확 벌어지기 시작했다.

페가수스가 베히모스의 이속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상급에 속하는 이동 속도를 자랑했다.

당연히 다른 유저들이 가진 이동 수단으로는 절대 페가수스의 주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애초에 전투 중에 탈것으로 소환할 수 있는 건 이 특수한 페가수스 하나뿐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유저들은 우리가 멀어지는 것을 그저 손가락만 빨면서 구경할 수밖에.

그렇게 뒤로 멀어지는 적들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한시름 놓았다는 듯 깊게 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따돌렸네.”

“이 녀석은 확실히 빠르니까요.”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네, 이번에 확실히 느꼈어요.”

연이라는 유저가 우리의 빈틈을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 들 수 있는지 이미 몸으로 확실히 느꼈다.

페가수스에 대한 뭔가 대책이 있을 수도…….

“쟤들도 좀 하지?”

“솔직히 놀랐어요. 이 정도까지 함정을 파고 기다릴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거든요.”

“아아, 나도 뭐 요즘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봐. 저런 함정에나 걸리고 말이야.”

그리고는 전의가 활활 타오르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재중이 형이 평소 아무렇지 않은 듯 느긋하게 하는 것 같아도 당하고는 못하는 성격일 텐데…….

“갚아 줘야죠.”

“아아, 당하고는 못 살지.”

역시 신경 쓰고 있었네.

연이라는 유저가 속에 아주 불을 부어 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우리 쪽 애들부터 살려 놓고. 쟤들 따라오려면 한참 있어야 할 테니.”

그사이에 내 이마에 있던 변형된 뿔이 희미해지면서 점점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 제한 시간이 지나 고대 마수의 심장으로 인한 마수화가 풀립니다. 》

《 베히모스의 특성이 전혀 해제됩니다. 》

《 베히모스의 스킬들이 모두 언락됩니다. 》

《 마수화 패널티로 체력이 1로 하락합니다. 》

《 마수화 패널티로 마력이 1로 하락합니다. 》

《 마수화 패널티로 근력이 1로 하락합니다. 》

그러면서 갑자기 몸이 크게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 전체로 퍼지는 무력감까지.

시스템으로 몸을 짓누르는 딱 그런 느낌이 들면서 몸이 급격하게 휘청거렸다.

젠장.

갑옷조차 너무 무거워!

내가 페가수스 위에서 갑자기 휘청거리자 재중이 형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아, 체력하고 마력, 근력이 1로 변했어요. 당장 몸이 너무 무거운데요?”

“하, 페널티가 너무 심하네. 전투 중에 풀리면 그냥 골로 가잖아.”

“뭐, 그렇죠. 완전 양날의 검이에요.”

베히모스의 특성으로 야수화를 해서 폭발적인 위력을 가지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말 중간에 풀리기라도 했다면 한 방에 죽어버렸을 지도.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력화.

재중이 형이 한손으로 내 몸을 잡아서 버텨주고서야 겨우 몸을 지탱했다.

이전에 데스나이트로 변하는 건 페널티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당장 마족화 역시 그렇고.

마족으로 변하면 신성 쪽과 대치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속성의 문제니 일단 빼더라도.

지금의 페널티는 정말 심한 편에 속했다.

“이거 참, 난감한데?”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당장 싸워야하는데 이런 상태라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할 것이다.

재중이 형만큼이나 나도 당황스러웠고.

하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한들.

그때도 똑같이 쓸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죠. 마수화가 아니었으면 거기서 못 빠져나왔을 거예요.”

“아아, 뭐 그건 동감.”

베히모스의 스킬들이 있었기에 방어를 하고 챠징할 시간을 벌어서 일격에 포위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연 역시도 그런 위력을 전혀 상정하지 못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었고.

“물약은?”

“그냥 스탯 자체가 줄어든 거라서 소용없어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순간 스탯이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이 보였다.

1에서 2로.

“형, 스탯이 회복되는데요?”

“음, 영구적이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시에 풀리는 건 아닌가 보네.”

“네, 천천히 회복되는 그런 시스템 같아요.”

그런 나를 보면서 재중이 형이 말했다.

“시간이 필요하다라…….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재중이 형의 물음에 시계를 잠시 지켜보고 있자 다시 스탯이 2에서 3으로 올라갔다.

이 정도면…….

대략 20분 정도이려나?

“20분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아요.”

지도를 열어서 동쪽의 히드라가 나오는 봉인지를 확인한 재중이 형이 걸리는 시간과 내 회복시간을 가늠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도착해도 10분 정도는 아무것도 못한다 이거군.”

“싸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스탯이 반 토막 난 상태로? 아서라, 그건 짐이야. 네 스탯이 높긴 해도, 절반이면 애들 하나 상대하기도 힘들어.”

체력이나 마력은 어떻게 채워 넣는다고는 해도 근력은 너무 차이가 나면 싸움이 되지 않았다.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터.

그리고 민첩 역시 낮아진 근력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느려질 게 분명했다.

“그 상태로 싸우면 목 쳐달라고 들이미는 거지.”

“어쩔 수 없네요. 잠시 구경하라는 말이죠?”

“그래.”

그렇게 페가수스로 달려가길 얼마 후.

대규모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로 도착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베히모스만큼이나 큰 마수 한 마리.

“저게 히드라인가요?”

녹색의 몸체를 가진 거대한 4륜 보행 마수였는데 머리가 무려 6개나 달린 녀석이었다.

각각 하나씩 뿔을 달고 있는.

베히모스가 단독으로 6개의 뿔을 달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점은 머리 하나하나가 긴 목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방으로 목들이 움직이면서 히드라의 모든 방위를 커버하고 있었다.

거기다 각각 길게 뻗은 이빨들을 지닌 머리들이라 까딱 잘못했다가는 저 이빨들에 씹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체력이 다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접근이 어렵겠네요.”

“그러게.”

베히모스와는 또 다른 접근의 어려움.

세 가지 속성 마법을 잔뜩 쓰면서 유저의 접근을 불허하는 베히모스와는 달리 히드라는 그냥 물리적으로 엄청난 리치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머리들이 개별적으로 따로 움직이니까 탱커가 시선을 끈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단순히 이것만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한 장면을 보자마자 재중이 형의 눈빛이 바로 굳어졌다.

“연속 브레스?!”

지금껏 나온 네임드들을 한 번 브레스를 쏘면 어느 정도 텀을 두고 쿨타임을 기다렸다가 브레스를 쐈다.

하지만 저 히드라는 전혀 달랐다.

무려 여섯 개의 머리가 사방으로 쉴 새 없이 브레스를 쏴대기 시작하자 주변이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어 버렸다.

콰아아앙!

콰아앙!

좌우전후 할 것 없이 브레스로 그 일대가 싹 날아간 상황.

머리 하나에서 나오는 한 발의 브레스는 베히모스의 그것보다는 많이 약해 보이기는 하나, 저런 식의 연속 구성이라면 전체 누적 대미지가 이쪽이 월등할지도 모른다.

재중이 형도 그 점을 지적했다.

“저놈이 베히모스보다 더 위협적이야.”

베히모스가 부족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광역기를 미친 듯이 쏴대는 베히모스도 미친 건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탱킹이 가능하다는 점만을 두고 보면 난이도가 이쪽이 몇 배는 높아질 것이다.

그런 히드라에 쫓기는 우리 쪽 원정대 유저들.

이미 성녀의 진형에 포함된 NPC들은 많이 죽었는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너무 많이 죽었네요.”

“아주 제대로 당한 모양이야.”

“함정…… 이었겠죠?”

우리와 달리 이쪽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원정대 유저들이 히드라를 피해 빠져나가려는데 그때마다 나타나서 그들을 방해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원정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교묘히 퇴로를 차단하면서 블록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히드라에게 죽으라는 듯 등을 떠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렇게 원정대 입장에서는 앞뒤가 막히는 최악의 상황을 맞는 중이었다.

그런 내 눈에 챠밍과 이쁜소녀를 포함한 우리 팀이 눈에 들어왔다.

이쁜소녀가 돌격대장처럼 밀고 나가는 동안 챠밍이 광역기로 견제를 계속 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프로 팀 녀석들의 움직임이 좋았다.

이쁜소녀에겐 네다섯이 붙어서 한꺼번에 상대를 해 뒤로 밀어내고, 챠밍에게는 집중적으로 원거리 공격이 쏟아져 제대로 마법을 날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주 집요할 정도로.

전사 형과 탱커들이 막아 주고는 있는데 견제가 들어오는 것을 커버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이 보였다.

“저것들이!”

바로 검을 들고 나서려고 하자 재중이 형이 내 팔을 잡았다.

“기다려.”

“저걸 그냥 두고 봐요?”

“10분만 참아. 기회는 곧 온다.”

칫.

또 다른 방향에서는 화련의 헤라 길드가 진형을 부수기 위해 달려들었는데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소년이 있었다.

저건……?

다른 녀석들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움직임으로 동시에 프로 셋을 한꺼번에 상대 중이었다.

그럼에도 밀리지 않고 팽팽히 싸우는 그런 모습.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예전에 내 공격을 몇 번 막아 냈던 그 녀석이었다.

“형, 저 녀석…….”

“아, 화련이 비밀병기라 하더니 저 녀석이었나. 장비까지 갖추고 나니까 확실히 잘 싸우잖아? 흠, 화련 주기에는 아까운데?”

재중이 형이 아깝다고 할 정도라.

그건 최대의 칭찬이지.

하지만 프로 팀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까 그런 움직임에도 밀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거기다 압도적인 숫자의 NPC들까지 프로 팀을 계속 서포트해 주니 어려울 수밖에.

두 진형이 밀고 밀리는 와중에 히드라가 난리를 치니 또 상황이 엉망이 되어 갔다.

결국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먼저 베사노스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아, 진짜. 먼저 간다.”

저 형도 참.

속마음을 정말 못 숨긴다니까.

우리 편이 당하는 걸 그냥 구경만 할 사람이 아닌지라.

상황이 어려워지자 재중이 형이 마족화를 건 상태로 베사노스에 두 개의 오러를 일으켜 곧장 프로 팀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참전으로 순식간에 두 명의 프로의 목을 날려버렸다.

역시.

확실하네.

하지만 곧 프로 팀들 쪽에서 화들짝 놀란 듯 재중이 형에게 무려 10명이나 되는 프로 녀석들을 붙여 버렸다.

거기다 프로 녀석들이 어디에서 났는지 모르는 오러까지 뿜어내 가면서 재중이 형이 계속 포위했다.

오러도 쓴다고?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대부분의 프로 팀 녀석들이 오러를 쓰는 모습을 보고는 누군가가 바로 떠올랐다.

올렌드 추기경…….

이 새끼가 진짜.

한번 해보자는 거지.

보통 오러를 얻으려면 그에 해당하는 네임드를 잡거나.

혹은 NPC에게 얻는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그중 후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벌써 저렇게 많은 오러를 얻을 네임드를 사냥했다?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그럼 답은 하나다.

올렌드 추기경이 무한으로 제공해 줬을 경우.

이럴 줄 알았으면 성녀에게 좀 더 뜯어내는 건데…….

10분이라.

초조하게 시계를 보면서 발을 굴렸다.

단순히 시간이 우리 편은 아니니까.

곧 올렌드 추기경을 포함한 추가 병력이 도착할 것이다.

그 전에 저 포위를 뚫어 버려야 해.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8분이 지날 때쯤.

결국 기다리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못 참아.

바로 페가수스를 타고 올라가 품에서 수도 없이 많은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오러가 건 르아 카르테들을 프로 팀들의 머리 위로 있는 대로 집어던졌다.

슈아아악!

쐐애애액!

“뭐야?!”

“피해!”

콰아앙!

콰앙!

끝없이 떨어지는 르아 카르테의 집중 폭격에 엄청난 폭격에 프로 팀들이 물러나자 순식간에 포위가 뚫리면서 우리 원정대가 자유롭게 풀려나기 시작했다.

꼭 직접 싸우라는 법이 있나!

“안 되면 되게 해야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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