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6화 만들어진 그림 속에서 (2)
“너, 그거……?”
재중이 형이 물어보자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답했다.
“아껴 봐야 뭐해요.”
“하긴, 아낄 때가 아니지. 그냥 써 버려.”
고대 마수의 심장의 용도는 둘 다 전혀 몰랐지만.
적어도 여기서 뭔가의 변수를 만들어 내려면……!
그리고 그에 맞춰서 재중이 형 역시 최고의 패를 꺼내 들었다.
【 마족화! 】
거기다 그동안 숨겨 두었던 마검 중에 하나인 베사노스 역시도 재중이 형의 두 손에 쥐어졌고.
검선을 따라 붉은빛을 길게 뻗어내는 베사노스.
마족화로 인해 온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재중이 형.
누가 봐도 이곳 신성 제국과는 확연히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그런 재중이 형을 보자마자 올렌드 추기경이 경악한 표정을 하면서 외쳤다.
“마검……!! 넌 마족이냐!”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도 추기경이라고 눈은 붙어 있나 본데?”
“이익! 가르시아 제국의 귀족이라고 하더니……!”
“요즘 귀족도 힘들다고. 겸사겸사 마족으로도 일해야지.”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을 하자 올렌드 추기경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내가 봐도 좀 말이 안 되기는 한데…….
어차피 NPC들의 일이라.
올렌드 추기경이 놀란 것도 있지만 더 놀란 것은 오히려 연이었다.
“그 마검…… 쓸 수 있는 거였습니까?”
마족화를 한 것보다도 오히려 재중이 형이 들고 있는 마검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낭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이런. 여기서는 보여 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재중이 형도 어지간해서는 유저들에게 보여 주고 싶진 않아 했었다.
마검과 마족.
그 둘을 연결해 보면 답이 보이니까.
“마검에 마족이라……. 마검을 쓰는 열쇠가 그 마족화군요.”
그리고 이런 사실을 저 연이라는 유저가 놓칠 리는 없었다.
저렇게 정보에 미쳐 있는데 저걸 다 보고도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지.
반대로 연이라는 유저 측에서 분명히 마검을 얻었을 것이라 추정됐는데 이제까지 꺼내지 않은 이유도 지금 확인할 수 있었다.
<불멸> 쟤들은 아직 마검을 컨트롤 못 해.
<주호> 네, 확실히 그렇게 보이네요.
아마 마검에 휘둘렸거나 아예 인벤에 처박아 놓거나.
둘 중에 하나가 아닐까.
만약 연이라는 유저가 마검까지 휘둘렀다면 진짜 문제가 될 뻔했는데 최악의 상황은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재중이 형이 마족화로 온전히 마족으로 변하자 프로 팀의 분위기가 완전히 일변했다.
이전의 여유롭던 표정을 지우고 지금은 전부 긴장감 가득한 딱 그런 표정을 한 채 모두 무기를 꺼내 들고 앞으로 겨누었다.
언제라도 반응할 수 있도록.
일단 상황이 불리했지만 마족화로 신체를 변경시키며 재중이 형의 스펙이 한참 뛰어올랐어.
신체 스펙이 밀려서 그동안 하지 못한 움직임도 이젠 제법 보여 줄 수 있다는 뜻이었고.
재중이 형이 본래의 실력을 어느 정도 써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아니, 그건 나보다도 저기 있는 프로게이머들이 더 잘 알지도 모르지.
몇 년간 재중이 형의 천하에서 밟혀 왔으니까.
숫자만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만 빼면.
지금 재중이 형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재중이 형이 무겁게 말을 꺼냈다.
“이젠 더 시간을 끌 필요도 없는 것 같고 말이야. 제대로 한판 붙어 보자고.”
원래라면 챠밍과 우리 팀, 원정대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도와주러 오길 바랐지만 지금 상황은 완전히 반대였다.
오히려 우리가 도와주러 가야 하는 판도라서 이젠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게 무의미하다는 말이었다.
당연히 연의 표정도 확 굳어 버렸고.
“일부러 시간을 끌었군요.”
“아아, 내가 너희들이 어떻게 준비했나 좀 궁금하기는 했는데 굳이 그걸 다 듣고 있을 필요는 없었거든. 대충 예상은 했으니까.”
전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끌기 위해 연기를 했다라.
포위당하는 순간부터 재중이 형은 돌아가는 상황을 거의 다 파악했던 것 같았다.
연이라는 사람의 특성상 어떤 식으로 준비를 했는지까지도.
<불멸> 올렌드 추기경과 연이라는 녀석이 제일 까다로울 거다.
<주호> 네, 잘 알고 있어요.
<불멸> 이럴 때 한 방 밀고 나갈 수만 있으면 최곤데 말이지. 이동 속도만으로는 녀석들이 우리를 따라오지 못해.
재중이 형의 말은 간단했다.
포위망을 한순간이라도 뚫어 버리면.
나와 재중이 형이 녀석들을 제쳐 놓고 빠져나가기엔 충분하다는 것.
당장 페가수스만 타도 녀석들은 우리를 쫓아오지 못할 테니까.
그러면서 내게 물어봤다.
<불멸> 한 방 크게 날릴 수 있겠어?
그 말에 남은 쿨타임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주호> 베히모스 때문에 큰 스킬들을 다 써 버렸어요.
르아 카르테 복사본 중 하나에 스킬을 모두 몰아놨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전부 쿨타임에 걸려 있었다.
베히모스 녀석을 억지로 끌고 다니려면 그런 스킬들을 아낄 여력이 없었으니까.
만약 그것만 아니었다면 아까 전에라도 모든 스킬을 쏟아내서 포위망을 뚫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멸> 일단 최대한 시간을 벌지. 그 심장이 뭔가 제대로 터져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여차하면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나는 살려 보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마족화를 하고 마검인 베사노스까지 들긴 했어도 여전히 전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신성 쪽으로 특화된 올렌드 추기경이라는 놈이 문제였다.
마검에 상성상 확실히 반대가 되니, 쉽게는 제압하지 못할 터.
거기다 대기하고 있는 프로 팀들이 학살이 가능한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것도 한몫했고.
하나, 하나를 죽일 때마다 이쪽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심장이 더 중요해졌다.
이 압도적인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그 정도의 뭔가가 나와 주지 않으면 곤란해.
“그럼 저도 써요.”
【 고대 마수의 심장! 】
고대 마수의 심장을 쓰자 곧장 심장에서 세 가지 기운이 뻗어져 나왔다.
이건…….
바람과 불, 그리고 뇌전까지 한꺼번에?
세 가지 속성이 동시에 내 몸을 한참 돌다가 내 심장으로 흡수가 되어졌다.
그리고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
《 고대 마수 - 베히모스의 심장이 장착되었습니다. 》
《 마수화를 진행합니다. 》
《 베히모스의 특성을 일부 가져올 수 있습니다. 》
《 베히모스의 스킬 중 일부를 쓸 수 있습니다. 》
“하……?”
이건 예전의 데스나이트처럼 일종의 변신을 해 줄 수 있는 심장 형태였다.
마수라는 게 좀 걸리기는 해도.
다행히 몸을 둘러보니 딱히 특별하게 신체가 변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재중이 형도 날 보고는 뜻밖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수처럼 꼬리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나했는데 말이지.”
“그건 좀 별로죠.”
마수로 코스프레하는 취미는 없다고.
“머리에 그거는 좀 달라 보인다만.”
재중이 형이 내 이마를 가리켜 위를 보자 뭔가 시야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건 뿔……인가?
뭐라도 변하긴 하는군.
마치 베히모스의 그것처럼 뻗어 있는 두 개의 뿔의 형상.
뭐 이 정도면 그냥저냥 봐줄 만하네.
그런 외형적인 것보다는 확실히 변한 것이 보였다.
처음 보는 새로운 스킬들이 인터페이스에 활성화가 되어 있었다.
으음.
역시 이것들은 베히모스의 스킬이려나.
그리고 그중 하나를 발견하고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참.
너무 좋은 타이밍에 완벽한 스킬을 주는 거 아냐?
그렇게 우리가 귓속말을 주고받는 사이 이미 올렌드 추기경과 연의 영혼 길드가 우리를 잔뜩 압박해 들어왔다.
재중이 형이 마족화로 변하고 나 역시 마수화로 변하니까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는 딱 그런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우리를 기다려주지만은 않았다.
올렌드 추기경이 한 손을 들자 주변에 대기하던 모든 궁수 NPC들이 화살을 우리에게 겨누었다.
거기다 마법사들도 보이는 녀석들도 마찬가지고.
영혼 길드 역시 완전히 포위를 한 상태로 언제든 치고 들어올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저 올렌드 추기경의 신호만 떨어지면.
그때부터는 진짜 난장판이 되겠지.
그 전에.
우리가 선수를 친다!
“형! 일단 이것부터!”
【 앱솔루트 토네이도! 】
내가 스킬을 빠르게 시전을 하자 나와 재중이 형 주변으로 강한 돌풍이 불어 나가면서 주변의 NPC들과 유저들을 일제히 바깥으로 밀어내었다.
재중이 형이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며 외쳤다.
“호오? 이걸 쓸 수 있어?”
“베히모스만큼 강하진 않아도 이 정도면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그 말대로 우리 주변의 모든 병력들이 강제로 밀려나가자 올렌드 추기영은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전부 공격해!”
선수를 놓쳤다고 생각한 올렌드 추기경이 공격 명령을 내리자 곧장 각종 빛깔의 화살들과 마법들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이전에도 봤듯이 모든 스킬을 막아 주는 완벽한 배리어의 역할을 지금도 충실히 보여 주었다.
앱솔루트 토네이도가 나와 재중이 형을 지키면서 아무런 대미지도 우리에게 입히지 못 했다.
“일단 좋긴 한데 말이지…… 생각보다 너무 숫자가 많아.”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내게 급히 물었다.
“너, 혹시 베히모스 스킬 중에 그 화염 장판 스킬도 있냐?”
베히모스 사방을 화염의 장판을 만드는 스킬이 있었다.
“네? 아! 있긴 해요. 그런데 지금 딱히 쓸모가…….”
“아냐, 지금 바로 써!”
으음, 무슨 생각이지?
베히모스 같은 경우야 근접한 유저들에게 대미지를 주기 위해 깔아 버린다고는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 상대방은 그냥 외곽에서 불이 꺼질 때까지 원거리 공격만 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일단 재중이 형이 요구한 스킬부터 썼다.
【 블레이즈 필드! 】
베히모스 주변으로 계속 꾸준히 화염 대미지를 주는데 이게 그냥 단순히 화염만 입히는 게 아니라 중첩이 되면 암흑 필드보다 훨씬 많은 대미지를 주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탱커라도 샤르르 녹아 버릴 정도로.
그런 스킬을 우리 바닥에 깔자는 거니 내가 의아해할 수밖에.
하지만 그런 내 우려는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주변으로 시뻘겋게 피어오르는 블레이즈가 재중이 형의 베사노스의 검신에 그대로 흡수되어 가기 시작했다.
“하, 설마?”
이걸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는 거였나?
분명히 모든 화염 흡수라는 옵션이 있기는 했지만…….
그리고 당연하게 베사노스에 암흑의 오러 블레이드에 이어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까지 동시에 피어올라 검붉은 빛을 내어갔다.
저러면 마력을 하나도 안 들이고도 두 개의 오러를 동시에 쓸 수 있어.
거기다 화염 상태에서 공격력이 300% 상승.
저렇게 기본 공격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리면.
단순히 휘두르는 것조차도 압도적인 위력을 가지게 된다.
이걸 노리고 베히모스의 스킬을 써달라고 한 거였네.
하지만 재중이 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오러를 형성하는 정도가 아니라 계속 해서 주변의 블레이드 필드를 빨아들여 갔다.
“뭘 멀뚱히 보고 있어? 너도 차징 시작해!”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노리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형.
여기서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어.
내가 베히모스의 스킬을 온전히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전략을 수정해 버렸다.
그리고 나 역시 바로 한 가지 스킬을 차징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앱솔루트 토네이도가 걷혀 갈 때쯤.
재중이 형이 베사노스를 크게 들어 올리더니 올렌드 추기경이 서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내려쳤다.
【 블레이즈 슬래셔! 】
그리고는 베사노스의 최강 스킬인 블레이즈 슬래셔가 산을 불살랐던 그 압도적인 화력으로 올렌드 추기경을 그대로 덮쳐갔다.
“크아악!”
앱솔루트 토네이도가 우리 쪽을 완전히 가려 주었기에 올렌드 추기경은 미쳐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블레이즈 슬래셔에 갈려 나가면서 온몸이 화염이 휩싸이더니 튕겨나가 버렸다.
저 방패가 영웅의 장비라 좋은 건 알겠는데 저런 식으로 대비가 안 된 상태라면 추기경도 어찌하긴 힘들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휩쓸려 올렌드 추기경이 형편없이 다운되자 재중이 형이 내게 크게 외쳤다.
“지금! 빠져나가려면 지금밖에 없어!”
재중이 형이 다른 곳으로 쏠 수 있음에도 올렌드 추기경을 먼저 무력화시킨 것도 이걸 노린 거였다.
우리가 빠져나가는데 가장 장애물이 될 녀석이니까.
나 역시 한 가지 스킬의 차징을 잔뜩 끌어올려 르아 카르테를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르아 카르테에 거대한 마법진들이 형성되며 세 가지 속성이 동시에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정면으로 강력한 속성 브레스가 쏟아져 나갔다.
“다 죽어!”
【 엘레멘탈 브레스! 】
압도적인 위력.
베히모스가 보여 주었던 그것에 비하면 좀 약하긴 해도 우리를 포위하던 유저와 NPC들을 쓸어버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엘레멘탈 브레스가 정면의 모든 것들을 일자로 쭉 녹여버리면서 순간 포위망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 페가수스를 꺼낸 재중이 형의 뒤에 올라탄 뒤 엘레멘탈 브레스가 만들어 낸 길을 그대로 주파해 포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뒤에서는 연의 분통 터진 외침이 멀리 들려왔고.
“젠장! 무슨 놈의 스킬이!”
분하게 외치는 연을 보면서 다짐했다.
연이라고 했던가?
오늘은 이대로 가지만 넌 내가 꼭 죽여 준다.
목 씻고 딱 기다려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