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3화 버려진 나라 (8)
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내 말을 듣자마자 조슈아 성녀가 눈을 껌뻑거리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굳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숨기려고 해도 이미 표정에서 다 드러나는 걸 보면 어디 가서 거짓말을 할 상은 아닌 것 같네.
잠시 후, 조슈아 성녀가 고개를 돌려 난장판을 치고 있는 베히모스를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저 베히모스를 해결해 주실 수 있나요?”
《 돌발 퀘스트 : 신성 제국 제넨샤 방어전(특급). 》
- 신성 제국 제넨샤 수호.
- 베히모스 퇴치.
- 교황이나 성녀가 사망하면 실패.
- 신성 제국의 NPC들의 숫자가 50% 이상 생존.
- 신성 제국의 건물 30% 이상 보존.
- 퀘스트 보상.
『 원정대 포인트 1000000 P 』
『 한계 돌파 강화석. 』
『 +1강 확정 정제 강화석. 』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 10강 방어구 정제 강화석. 』
『 10강 일반 정제 강화석. 』
『 신성 제국 교황와의 친밀도 상승. 』
『 신성 제국 성녀와의 친밀도 상승. 』
- 퀘스트 보상은 기여도에 따라 산정되고 보상 개수가 변경됩니다.
이전에 처음 신성 제국에 발을 들였을 때는 왜 돌발 퀘스트가 안 뜨나 했는데 지금은 떴다.
무슨 차이지?
추기경과 성녀의 직책?
아니면 타이밍?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퀘스트가 뜬 것은 우리에게 나쁘지 않았다.
엔느를 보니 주변에 있는 우리 원정대원들 모두에게 퀘스트가 전달된 것 같았다.
다만 지금은 이 퀘스트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으니까 문제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 부탁을 해결해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런 내 거절에 성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혹시 보상이 부족한가요? 성녀로서 드릴 수 있는 보상은 최대한 드리겠어요.”
그러자 사라졌던 퀘스트가 다시 떠올랐다.
이전보다 더 보상이 올라간 상태로.
하지만 아무리 보상을 올려준다고 해도 원정대 사람들이야 좋아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노리는 물품들에 비하면 별 의미가 없는 보상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고개를 젓자 성녀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만약 우리가 지금 저 베히모스를 막아 주지 않는다면 신성 제국이 통째로 날아갈 것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니까.
《 돌발 퀘스트의 거절로 성녀 조슈아와의 친밀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돌발 퀘스트의 거절로 성녀 조슈아와의 친밀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
.
.
이거 참.
불편한 기색을 바로 알려 주는데?
내가 돌발 퀘스트를 받지 않자 조슈아 성녀는 친밀도 하락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연히 우리를 보는 눈빛도 실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변해 있었고.
기댈 곳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데 너무 매몰차게 거절을 하니 성녀 역시 저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 이 정도 튕겼으면 됐나?
“흠, 제가 먼저 말하지 않았나요? 서로 도움이 좀 필요한 상황이라고.”
“네……?!”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표정.
너무 표정이 다 드러나니까 놀리는 재미가 있는데?
이래서 어떻게 성녀가 된 건지 모르겠네.
아무리 봐도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딱 좋은 그런 타입이었다.
“베히모스는 일단 제 쪽에서 정리를 해 드리죠.”
“정말인가요?!”
내 허락에 조슈아 성녀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저 봐.
표정이 너무 나오잖아.
허락을 하자마자 돌발 퀘스트가 다시 걸렸다.
“대신, 이쪽도 조건이 좀 있습니다만.”
“네?”
여기서는 말을 잘 해야 한다.
최대한 알아먹을 수 있도록.
“지금 주시는 보상 정도로는 저 베히모스를 막기가 힘듭니다.”
그러자 다시 조수아 성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보상은 모두 드리는 건데요. 신성 제국의 창고에 있는 보상 중에는 제 권한 이상이 없어요.”
안다.
어차피 NPC가 유저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은 저 정도가 한계라는 걸.
아님 특별한 뭔가의 아이템을 줄 수도 있겠지만.
신성 제국이 돌아가는 꼴로 봐서는 그다지 큰 보상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곳에서 더 나은 보상이 있을 리가…….
만약 그 정도의 강한 뭔가가 있었다면 이미 베히모스를 막고도 남았겠지.
“이런 건 어떻습니까?”
내가 제안을 하려고 하자 조슈아 성녀의 표정이 바로 긴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결제를 봉인했던 물품들.”
뜻밖의 말이 나오자 조슈아 성녀가 깜짝 놀란 듯 외쳤다.
“네에……? 그건 왜?”
왜긴 왜야.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니까 그러지.
“베히모스를 잡으면 그것들을 보상으로 받고 싶습니다만.”
여기서부터는 턴이 넘어갔다.
조슈아 성녀의 판단으로.
“그건 좀…….”
“안 되는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내 제안에 우물쭈물하면서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조슈아 성녀가 내게 되물었다.
“어째서 봉인된 물건을 원하시는 거죠? 그게 없으면 결계로 신성 제국을 지킬 수가 없어요.”
그래, 안다.
결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물건이 총 세 개라는 걸.
그중 하나는 이미 유출이 되었고.
나머지 두 개는 이제 유출이 될 것이라는 것도.
당황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조슈아 성녀에게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는 말을 꺼냈다.
여기서부터는 말을 잘해야 해.
반감을 사지 않도록.
“결계로 신성 제국을 지킨다라……. 이미 결계가 부서진 것을 알고 있으시죠?”
그런 내 말에 조슈아 성녀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
“네…… 이미 결계가 무너졌어요. 하지만! 올렌드 추기경을 죽이고 봉인을 되찾아 다시 결계를 만들어 내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 역시 확신을 가지는 얼굴이었다.
<주호> 역시, 결계를 다시 만들려고 했던 거네요.
<불멸> 그래, 딱 저 성녀가 할 법한 생각이지. 애초에 교황이란 녀석과 성녀는 이곳을 나갈 생각이 없어.
그저 신성 제국을 지키기만 할 뿐.
이러면 오히려 올렌드 추기경 쪽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가 조슈아 성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성녀님, 결계를 다시 만들었다고 해요. 그럼 그다음은요?”
“네?”
“결계를 만드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아마도 신성 제국의 국민들을 지키려고 하는 일이겠죠?”
“네, 그래요! 전 성녀로서 제국민의 안전을 지킬 의무가……!”
아니다.
저건 지켜주는 게.
그냥 방치하는 것일 뿐.
살아남기 위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구경조차 못하게 만드는 건…….
“아뇨, 결계가 있었다고 해도 얼마 뒤에는 같은 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미, 신성 제국 바깥에는 결계를 부술 만한 마족들이 많이 존재해요.”
“네에?”
내 말에 조슈아 성녀의 두 눈이 커지면서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백 년 동안 결계가 유지됐다고 했죠?”
“네, 그동안은 안전…….”
“하지만 그 이백 년이라는 시간에 마족들이 가만히 있었을 것 같나요?”
당장 내가 아는 마족 중에 가짜 황제만 되어도 이런 결계쯤은 바로 찢고 들어와서 신성 제국을 부숴 버렸을 것이다.
꼭 멀리 가지 않고 용마족인 아스티아만 해도 마찬가지.
베히모스 하나 어쩌지 못하는 신성 제국이 그들을 막아 낼 수가 있을 리 없지.
“이런 결계쯤 찢어 버리고 들어올 수 있는 마족이 넘쳐납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강하지는…….”
현실을 부정하는 성녀에게 현실을 알려 주려고 다시 말을 꺼냈다.
“제가 베히모스를 한 번 퇴치한 것은 아시죠?”
“네, 그래서 제가 부탁을 드리려고…….”
“저와 동료들이 겨우 잡은 베히모스를 혼자서 그냥 때려죽일 수 있는 마족들이 저 결계 밖에 있다면요?”
“거짓말……!”
“이백 년 동안에 그들은 더 강해졌어요. 저도 그들과 지금은 싸워서 이기지 못합니다.”
베히모스를 잡은 나조차 솔직히 단독으로 가짜 황제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스티아는 더 그렇고.
이미 몇 번이나 대련을 해 보았기에 얼마나 강한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
그런 그들이 오는 순간.
여기는 끝이다.
“하지만…… 결계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베히모스를 계속 번갈아 바라보는 조슈아 성녀에게 현실을 알려 줄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가르시아 제국 황제, 그녀가 증명해 줄 겁니다. 그들은 지금도 맞서 싸우고 있거든요.”
한 제국의 확실하고 증명된 직위.
그런 황제의 말까지 무시할 수는 없을 터.
이 세계에서 황제의 답변이 가지는 힘만큼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당연히 조슈아 성녀가 흔들릴 수밖에.
“정말…… 인가요?”
“네, 원하시면 언제든 확인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라면 제가 제 직위를 포기하도록 하죠.”
가르시아 제국의 공작 작위.
내 말이 거짓일 경우 그걸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자 성녀의 두 눈이 더없이 흔들렸다.
“사실…… 인가 보네요.”
이 정도나 되었는데 못 믿는다고 하면 나도 답이 없었는데 다행히 조슈아 성녀는 납득한 것 같은 얼굴로 바뀌었다.
결계 속에 계속 숨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성녀도 이걸 깨달을 필요가 있었고.
만약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우리와 부딪히며 반대를 해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나를 본 재중이 형이 감탄의 말을 전해 왔다.
<불멸> 휘유, 그걸 설득시켰어?
<주호> 어떻게 하다 보니 되네요.
<불멸> 좋아, 그럼 다음으로 가자.
성녀를 회유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
올렌드 추기경을 죽이는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장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지금 남은 두 개의 봉인을 부수기 위해 올렌드 추기경이 움직인 사실은 아시죠?”
“네, 막고 싶었지만…….”
베히모스에 발목을 잡혔지.
“그런데 두 개의 봉인을 풀면, 베히모스 같은 다른 고대의 괴물들이 나오나요?”
이건 확인이 필요해.
만약 다른 봉인도 마찬가지라면.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정말 신성 제국을 포기해야 할 수도…….
내 물음에 조슈아 성녀가 한숨을 쉬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 봉인마다 가르가, 히드라가 봉인되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우리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베히모스만큼 다 강합니까?”
“네……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들었어요.”
바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았다.
<주호> 형, 이거 어렵게 됐어요.
<불멸> 월드 네임드가 세 마리라……. 미치겠네.
한 마리도 벅찬데 세 마리라는 말에 머리가 울렸다.
대체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봉인 시킨 거야?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에 바로 물었다.
“그렇다면 마검도?”
“네, 총 세 자루예요. 각 봉인에 하나씩 매개체로 썼거든요.”
정말 세 자루인 건가.
왜 영웅의 검이 아닌 마검이 쓰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스펙 면에서는 다를 게 없으니.
얻을 수만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그리고 조슈아 성녀에게 물었다.
“일단 위치를 알려 주세요.”
그러자 성녀가 NPC를 하나 부르더니 곧 지도를 꺼내서 우리에게 좌표를 찍어 주었다.
생각보다 멀진 않네.
다만 봉인지 두 곳은 여기서 각각 정반대의 장소였다.
하나는 서쪽, 하나는 동쪽.
“한 곳을 가면 다른 한 곳은 못 가겠네요. 역시 전력을 반으로 나눠야 할까요?”
시간상 두 곳을 동시에 가는 것은 불가능.
그리고 그 말은 우리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말에 재중이 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녀석들 역시 두 곳을 동시에 가려면 반으로 나눠졌을 테니. 아니면 한 곳은 포기하고 한쪽만 가도 돼.”
재중이 형의 현실적인 제안.
한쪽을 포기한다라…….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괜히 둘 다 어설프게 건드려서 벌집을 만드는 것보다 한쪽만 공략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재중이 형을 보며 말했다.
“형, 좀 더 난장판을 만들 필요가 있겠어요.”
“흠, 어떻게 할 생각인데?”
흥미로운 표정으로 묻는 재중이 형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제가 제일 잘하는 거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