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2화 버려진 나라 (7)
깽판을 치자는 내 말에 다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대로 당하기만 하면 억울하잖아요. 한 방 먹여 줘야죠.”
처음부터 짜여 있는 각본대로 놀아나는 일은 사양이다.
프로 팀들이 미리 넘어와서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알맹이를 다 내어 주고 손을 털어야 할 판이라.
내 선언에 재중이 형은 재밌다는 표정을 가득한 채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당한 건 돌려줘야겠지.”
재중이 형 역시 당하고는 못 사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전사 형 역시 전의 가득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최소 전면전인가……?”
그런 전사 형의 말에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예전에 프로 팀 중 하나인 전신의 팀과 지하 왕국에서 싸워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그때는 거의 치고 빠지는 수준이어서 제대로 싸움을 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서로 원하는 것이 확실한 상황.
밀리면 바로 끝.
이번엔 정말 거센 저항을 이겨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와 다른 점 하나.
“네, 이번에는 정말 쉽지 않을 거예요. 저쪽은 신성 제국의 병력과 합류해 세력을 키웠을 테니까요.”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굳이 보지 않더라도 이미 올렌드 추기경과 프로 팀들이 손을 잡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럼 당연히 올렌드 추기경이 이끄는 병력과 우리 역시 싸워야 할 테고.
전사 형 역시 골치가 아프다는 듯 말했다.
“적어도 이쪽도 비슷한 숫자는 맞춰야 할 텐데…….”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베히모스의 전진을 한참 저지하고 있는 성녀 쪽의 NPC들을 쳐다보더니 바로 한숨을 쉬었다.
“저쪽은 틀렸나.”
전사 형이 한숨을 쉰 이유는 뻔하다.
보다시피 성녀 쪽의 NPC들은 지금 전혀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저렇게라도 베히모스를 저지하지 않는다면 신성 제국이 싹 밀려 버릴 판이라.
만약 성녀 쪽이 올렌드 추기경의 행동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올렌드 추기경도 이 점을 노리고 지금 움직였을 테니.
나르샤 누나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전사 형을 보고 말했다.
“우리 쪽 사람들만으로 될까?”
우리와 함께 온 원정대 사람들.
최강 길드.
달 길드.
치맥 길드.
헤라 길드.
미르 길드.
퍼스트클래스 길드까지.
우리도 숫자로 치면 제법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그때는 전신의 초월 길드만 상대했는데 반해 지금은 저쪽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도 안 되니까.
전사 형도 그걸 잘 아는지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너무 정보가 없어. 시간만 좀 더 있었으면 세력 파악이 가능했을 텐데…….”
아쉬워하는 전사 형의 모습에 나르샤 누나도 어쩔 수 없다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성 제국을 넘어오자마자 베히모스하고 싸움을 한다고 따로 돌아다닐 시간도 없었다.
당연히 적들에 대한 정보를 찾을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고.
“하는 데까지는 해보죠. 매번 베스트로 싸울 수 있나요.”
내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가 없으면 그냥 때워 봐야지.”
전사 형은 바로 다른 길마들이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그리고 얼마 후 모든 길마들을 데리고 우리에게 돌아왔다.
“다들 상황은 전사 형에게 들어서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엔느가 바로 내게 물었다.
“네, 이미 들었어요. 그럼 우리에겐 큰 문제가 세 가지 산적해 있네요.”
세 가지나 되는 건가?
모두의 시선이 엔느에게 모아졌다.
“첫째로 그 남은 두 개의 봉인지가 어디인지 전혀 모른다는 거예요.”
세 개의 봉인지 중 하나는 이전에 베히모스가 깔고 앉은 바로 그 장소였을 확률이 높았다.
화련이 수용소 같다고 했던 그 장소.
지금 생각해 보면 봉인을 위한 장소라 그렇게까지 화려하진 않았던 모양이고.
그리고 그런 장소가 두 개가 더 있다는 뜻인데.
“아마 알고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죠?”
그러면서 엔느가 고개를 돌려 멀리서 싸우고 있는 성녀 쪽을 바라보았다.
“이 근처 지리도 제대로 모르는데 우리끼리 움직였다가는 봉인지를 찾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나가떨어질 거예요.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을 테고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위치를 정확하게 알죠. 그럼 곧장 봉인지를 향해 달렸을 테니, 이미 우린 몇 발짝은 늦은 셈이에요.”
엔느의 말대로 똑같이 길을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불리한데 이미 상당한 간격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결국 접촉해야겠군요.”
“네, 성녀의 도움이 없다면 무조건 지는 싸움이에요.”
애초에 게임이 안 된다라.
“두 번째는 우린 상대의 전력을 전혀 모르죠. 프로 팀들이야 제가 어느 정도는 정보를 알고 있으니까 대략적인 그림이 나온다고 해도, 그 올렌드 추기경이라는 작자의 세력은 전혀 몰라요. 적을 알고 싸워도 힘들 텐데……. 지금 막무가내로 싸우러 가면 역시 밀릴 확률이 높아요. 아니, 그냥 100퍼센트죠.”
“그렇게나 힘든가요?”
“이미 그들은 사전 준비를 다 마친 상태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이 뛰어들어야 해요. 이건 마치 적진에 폭탄을 지고 들어가는 셈이죠?”
엔느는 이 싸움에서 이길 확률을 굉장히 저조하게 책정했다.
전략적으로 봤을 때 엔느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세 번째는…… 주호 님이 우리에게 말을 안 하고 넘어간 부분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엔느가 나와 재중이 형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재중이 형과 눈이 맞았는데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게 궁금하지?”
엔느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대체 뭘까.
“저 역시 경로는 좀 다르긴 해도 가르시아 제국에서 제법 많은 정보를 얻었거든요. 암흑혈의 대가로요.”
전에 암흑혈이 필요하다고 하는 게 이런 이유였던가?
다른 보상을 빼놓고 암흑혈만 빠르게 가져갔던 것이 보다 빠르게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니.
엔느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경로로 뭔가의 퀘스트를 진행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서로 숨기고 있는 것들이 많은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이번에 필요한 정보만 공유하죠.”
엔느는 곧장 한 가지에 대해서 물어왔다.
“마검.”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한숨을 쉬었다.
마검을 안다는 건 꽤 많은 정보에 접근했다는 뜻인데…….
지금 그 정도를 알 만한 사람들은 우리 팀과 가르시아 제국의 황제인 마리아 가르시아 정도밖에 없었다.
마리아 가르시아가 엔느에게 말해 주진 않았을테니…….
아마도 다른 누군가에서 전해 받았을지도.
혹은 또 다른 뭔가의 방법이 있거나.
“베히모스의 봉인을 풀면 마검을 얻을 수 있었겠죠? 최소 저쪽에 마검이 한 자루 존재할 거예요.”
이 여자.
정보력이 상상을 초월하네.
직접 부딪혀 본 우리 정도는 되어야 알 텐데.
추리가 되었든 뭔가 되었든 제대로 길을 잡았다.
그러더니 슬쩍 내게 고개를 돌려서 귓속말을 보냈다.
<엔느> 그쪽이 마검을 하나 가지고 있을 거라는 것까지도요?
<주호> 이미 다 알고 온 것 같은데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없겠네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우리가 고대 드워프 왕이나 론도 후작과 손을 잡았었던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면 정말 피곤해지는데…….
바로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니 재중이 형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자, 뭐 마검에 대한 이야기는 알다시피 저쪽에 한 자루가 넘어가 있을 거다. 아직 우리도 확인을 못한 사실이라 말해 주긴 그랬지.”
“네, 그건 이해할게요. 그리고 올렌드 추기경이 가진 장비가 영웅의 장비죠?”
이번에는 재중이 형도 놀랐는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흠, 너 혹시 나만 따라 다니는 거냐? 너무 집착하는 여자는 매력 없…….”
“캬악! 아니라니까.”
또 시작이군.
매번 당하고도 볼 때마다 이러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 올렌드 추기경이 가진 무기가 영웅의 무기라고 듣긴 했다. 어떻게 알았지?”
“몇 가지 정보원이 있어요. 영웅의 무기에 대한.”
역시.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찾아내고 있었네.
그러면서 내게 확인사살을 하듯 물어왔다.
<엔느> 아마 방패겠죠? 무기가 아니라.
<주호> 다 알면서 계속 물어보십니까.
경로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영웅의 장비들에 대한 정보를 꿰차고 있을지도.
이 정도면 우리가 모르는 장비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주호> 나중에 좀 이야기가 필요하겠네요.
<엔느> 거래할 것이 있다면요.
그냥은 안 된다는 거군.
이 와중에 숨길 내용은 다 숨긴 상황이라.
정보를 풀지 않는 간 양쪽 다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문제죠. 베히모스를 막아 낼 정도의 실력자가 영웅의 무기까지 들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준하는 마검도 한 자루 들고 있을 테고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올렌드 추기경은 그나마 싸우는 장면을 봤다고 해도 마검은 그 성능을 전혀 모르죠?”
“지금은요.”
“네, 그럼 잘못하다가 우리가 전멸할 수도 있어요.”
엔느는 이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단순히 쳐들어가서 깽판을 놓자는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 가며.
“적어도. 이쪽에서도 그에 맞는 스펙을 가진 유저가 있어야 상대가 되겠죠?”
“저보고 올렌드 추기경을 상대하라는 말로 들립니다만.”
“네, 정확해요. 주호 님은 올렌드 추기경을 1:1로 막아 주셔야 해요. 올렌드 추기경이 다른 곳에 전혀 신경을 쓸 수 없도록요.”
“꽤 힘든 도전이 되겠군요.”
아마도 테인 공작과 정면으로 붙는 것과 동일한 난이도가 나오지 않을까.
어쩌면 그보다도 더 힘들 수도 있고.
적어도 테인 공작은 영웅의 장비는 없었으니까.
나와 엔느를 한 차례 바라본 재중이 형이 엔느에게 말했다.
“그럼 저쪽의 마검은 역시 내가…….”
이미 재중이 형은 마검을 들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스펙만으로 치면 동급일 터.
그런데 엔느는 전혀 다른 제안을 했다.
“마검은 이쁜소녀 님이 막아 주셔야겠어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이쁜소녀에게로 돌아갔다.
당연히 이쁜소녀가 당황하더니 되물었고.
“에?! 저요?”
“스펙만으로는 동급이에요.”
아마도 마검은 최대한 강한 유저가 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최소 저쪽의 프로 팀 에이스와 1:1로 붙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쁜소녀에게는 버거울지도.
곧장 이쁜소녀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와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한번 해봐. 내가 뒤를 봐줄 테니.”
“으음, 하지만…….”
“엔느가 좀 막 나가기는 해도 불가능한 일을 밀어붙이진 않아. 내가 봐도 해볼 만해.”
재중이 형이 그렇게 말해주자 그제야 이쁜소녀가 놀란 토끼 눈빛에서 원래의 눈으로 돌아왔다.
“오빠가 된다면 되겠죠?”
“어, 나랑 대련할 때 생각하면서…….”
그 말에 이쁜소녀의 얼굴이 바로 해쓱하게 변해 버렸다.
재중이 형이 좀 사정 안 봐주긴 하지.
“으음, 나 그렇게 괴롭히진 않았는데……?”
전혀 아닌데 말이야.
사람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능력은 타고난 사람이라…….
그리고 그런 재중이 형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면.
믿어야 한다.
“으으, 알았어요. 해볼게요!”
뭐, 이쪽은 이 정도로 됐으려나.
여차하면 재중이 형이나 챠밍이 마족화를 해서 밀어붙이면 되는 일이었다.
“더 문제가 있나요?”
“아뇨, 최소한의 조건은 맞췄어요. 이제 진짜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야죠.”
잠시 사람들을 대기시켜놓고 엔느와 우리만 따로 성녀에게로 접근을 했다.
후방에 있어서 그런지 베히모스를 피해 접근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가 완전히 다가가자 성녀가 나를 보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주호 공작 님?!”
음?
말의 형태가 NPC의 그것과 다른데?
뭔가 패치된 건가?
유저처럼 자연스럽게 표시가 되는 것을 보고는 그냥 추측만 했다.
따로 표시가 안 되면 이젠 NPC인지도 모르겠네.
그런 성녀를 향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성녀 님, 우리 서로 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죠?”
줄건 주고.
받을 건 받자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