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0화 베히모스 (3)
광범위하게 폭발적인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챠밍이 먼저 신성 제국의 성문의 내구도를 확 깎아 두었고 그에 이어 이쁜소녀의 진(眞) 토르에서 나오는 헤븐즈 스트라이크가 터지자 견고할 것 같았던 성문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아마 진(眞) 토르 자체가 타격에 엄청난 이점을 두고 있다 보니 성문을 파괴하는 데 최대의 위력을 낸 것 같았다.
《 신화 원정대가 신성 제국 제넨샤의 성문을 공격했습니다. 》
《 신화 원정대와 신성 제국 제넨샤가 적대 상태로 변경됩니다. 》
역시.
이건 어쩔 수 없는 건가.
급해서 신성 제국의 성문을 때리긴 했는데 적대 관계를 피해가긴 어려워 보였다.
보통은 공격하는 순간 적대 상태에 놓이게 되니까.
이걸 풀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신성 제국에 계속 죽거나 원정대와 길드를 해체하는 방법 정도만이 존재했다.
또 다른 방법은 신성 제국의 상위 귀족과 직접 교섭을 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아무런 연이 없다 보니 아마 이건 가장 힘든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성문이 박살 나자 신성 제국 제넨샤의 성벽을 따라 정찰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 이 광경에 깜짝 놀라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 어…… 어?! 』
『 성문이……!! 』
『 정말 박살 났어?! 』
저 반응을 보니 성문이 날아갈 것이라고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모양.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원정대 인원이 많다고는 하나 그래 봐야 고작 몇 백에 지나지도 않았다.
보통 공성을 하려면 몇 천 단위는 기본으로 깔고 간다고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이 숫자는 적어도 너무 적은 숫자였다.
느긋하게 성벽 위에서 우리를 막아선 여유에는 이런 이유가 포함되어 있었고.
챠밍과 이쁜소녀 단둘이서 성벽을 날려 버릴 것이라고는 아예 상상조차 하지 않았겠지.
성문이 박살 난 뒤, 이쁜소녀를 선두로 우리 원정대 사람들과 드워프들이 일제히 성문을 따라 제넨샤 제국 성 안으로 진입하였다.
이미 성문이 박살 난 마당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으니.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성문을 지키는 NPC 병사들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 들어오면 안 된……! 』
『 저 녀석들 빨리 막아! 』
성문이 박살난 뒤 급하게 성벽을 지키던 NPC들과 원래 성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까지 뛰어와 우리 원정대를 포위하면서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상위의 NPC가 있었는지 바로 원정대를 막아서며 앞으로 나왔다.
『 허가되지 않은 자들이여, 더 이상 들어오면 사살하겠다! 』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하얀색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
외침과 동시에 기사들의 검에서 하얀색의 오러를 내뿜으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언제든지 우리를 벨 수 있다는 위력 시위를 보이자 우리 원정대 사람들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적대 관계가 되어 있으니.
이 상태로 한 발만 삐걱대도 바로 전투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챠밍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들어왔다.
<챠밍> 오빠, 앞에 오러를 쓰는 기사들이 막아섰어요.
성문을 박살 내고 들어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역시 안에는 오러를 쓰는 기사들이 존재했다.
아마 이런 기사들이 안에는 더욱 많이 상주하고 있을 것이고 포위가 길어지면서 그런 그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도 곤란해진다.
재중이 형이 베히모스의 광역기들을 회피해가면서 바쁘게 페가수스를 조종하는 동안 고개를 돌려 성벽 쪽을 바라봤다.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았다.
<주호> 기사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
<챠밍> 세 명요. 병사들은 생각보다 많진 않아요.
<주호> 그래?
설마 아직 이쪽을 눈치채지 못한 건가?
확실히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으니까 아직은 모를 수도 있겠는데……?
<주호> 거기 머리가 누군지 알겠어?
<챠밍> 음, 제일 앞에 나선 사람이 기사들의 대장인 것 같아요.
<주호> 그럼, 지금 베히모스가 성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 봐.
<챠밍> 네, 바로 말해 볼게요.
챠밍의 설명을 들어보면 성벽에 모여 우리 원정대를 포위한 병력이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적었다.
만약 베히모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적은 병력만으로 성벽을 지키고 있을 리는 없어.
그런 그들이 베히모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분명히 지금과는 다른 반응이 나올게 될 터.
나와 챠밍의 대화를 들은 재중이 형이 떨어지는 번개들을 피해 페가수스를 급격하게 회피시키면서 물었다.
“피하기 빡세네. 어떻게 빨리 될 것 같냐? 너무 오래는 못 버텨.”
“잘 모르겠어요. 운에 맡겨야죠.”
이게 잘 안 된다면…….
베히모스와 신성 제국 둘 다 적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지도 모른다.
그때 챠밍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챠밍> 오빠!
<주호> 어떻게 됐어?
<챠밍> 기사들이 검을 내렸어요!
어떻게 통한 건가?
“형, 기사들이 포위를 푼 것 같아요.”
“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사실 이쪽은 지금 한계라서 말이지. 더는 이놈의 몸이 버텨 주질 않아.”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재중이 형의 팔을 살펴보니 양쪽 팔 모두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거의 상하좌우를 뒤집는 급격한 회피기동을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분 동안 계속해 오고 있으니 신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버티면서 컨트롤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재중이 형이 유일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이쪽이 먼저 떨어져 나갔을 지도 모른다.
“이제 원정대와 드워프들도 모두 성으로 들어갔고, 우리만 빠져나가면 돼요.”
“오케이. 너도 그때까지만 버텨 줘라.”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페가수스의 머리를 제넨샤 제국 성 쪽으로 돌렸다.
사실 페가수스도 거의 한계 상황이라.
아무리 잘 피한다고 해도 피해를 아예 받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이대로 페가수스가 조금만 더 피해를 받으면 역소환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벌게요.”
원거리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은 이미 다 썼기에 다른 방법을 꺼내들었다.
여분의 레비아탄 롱보우를 꺼낸 뒤 르아 카르테를 계속 복사해냈다.
잠시 쓸 무기를 복사해 낼 마력은 충분해.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그 상태로 오러 블레이드까지 걸어 댔다.
【 오러 블레이드 - 광속성! 】
오러 소모 마력의 50%가 빠져나가지만 잠시 시전하는 데는 이걸로도 모자라지 않지.
그렇게 오러가 걸린 복사본 르아 카르테를 하나씩 레비아탄 롱보우에 걸어 베히모스의 크게 떠져 있는 눈을 향해 계속해서 쏘아 보냈다.
쒜에에엑!
쒜에에엑!
.
.
이 한 발, 한 발이 15강의 무기에 오러까지 걸려 있다 보니 공격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터.
그렇다고 베히모스을 이걸로 잡을 수 있다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3중 오러를 써야 피해를 제대로 줄 수 있는 녀석에게 이 정도 위력은 그냥 조금 아픈 수준밖에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녀석의 진격 정도는 늦출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쏘아진 르아 카르테가 녀석의 눈을 집요하게 노리면서 날아가자 베히모스가 잠시 머리를 비틀면서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카앙!
카앙!
일단 눈은 맞지 않겠다는 건가?
베히모스가 머리의 다른 부분을 맞더라도 눈은 확실히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속으로 공격이 날아오자 아예 큰 앞발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르아 카르테로부터 보호했다.
자연스럽게 달려오던 것도 멈춰 섰고.
“호오, 꽤 통하는데?”
“진격만 막은 것뿐이에요. 실제로 피해는 거의 못 줬어요.”
“그래도 우린 이 사이에 도망갈 수 있지.”
내가 견제를 하는 사이 재중이 형과 함께 베히모스에게서 상당히 거리가 벌어졌다.
“마력은?”
“일단 성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틸 수 있어요.”
계속해서 무기를 만들어 내고 오러를 새로 입히는 작업은 꽤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효율만 보면 아주 비효율적이겠지.
“크큭, 혼자 도망 다닐 때보다는 백배 나은데?”
그렇게 베히모스와 거리를 벌려 성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NPC들이 우리를 막지 않았다.
아니,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가 없지.
이미 성문이 박살 난 상황이라.
그나저나 저 성문은 어떻게 하지?
베히모스를 막으려면 필요하기는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완전히 성 안으로 들어가서 착지하자 먼저 들어와서 기다리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우리에게 달려왔다.
“정말 걱정했잖아요.”
“잡혀서 못 오는 줄 알았어요.”
이건 원정대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리가 그만큼 아슬아슬해 보였던 것 같았다.
“이 형이 컨트롤이 워낙 좋아서 말이지.”
그러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떨리는 팔을 뒤로 숨긴 채.
재중이 형이 곧장 물었다.
“자자, 들어왔으니 됐잖아. 저쪽은 어떻게 됐어?”
“베히모스를 막아 내고 우리 처우를 결정한대요.”
“흐음, 그런 식인가?”
챠밍의 대답에 재중이 형은 그다지 동요를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이미 연락을 받은 건지 기사와 마법사들을 포함해 신성 제국의 병력이 다수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역시 생각보다 고급 병력이 많아.
이 정도라면 가르시아 제국과 비교해도 충분했다.
다만 저들이 다 아직까지는 적대 상태라는 것이 문제였다.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괜찮을까요?”
“모르지. 자기들끼리 막아 낼 수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겠어?”
“그럼 우리가 더 곤란한 것 아닌가요?”
이대로 신성 제국에서 베히모스를 막아 내고 나면 어떻게든 우리의 공격에 문제를 삼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베히모스에게 다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흐음, 어쩔 수 없네요.”
그때 저쪽 기사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NPC가 우리 앞에 섰다.
그리고 한껏 서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며 낮게 말을 깔았다.
『 사정은 들었지만, 신성 제국의 성문을 파괴한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베히모스를 몰아낸 뒤, 그대들의 일을 처리하겠다. 그때까지 얌전히 포박을 받아라. 』
그렇게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우리를 묶기 위해 다가왔다.
<불멸> 할 수 없나, 일단 잡혀 주자. 기회를 봐서 빠져나가도 괜찮고.
여기서 반항을 해도 되지만 재중이 형은 일단 협조하기로 한 모양새였다.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을 생각도 아니었고.
사장님과 길마들 모두 우리를 바라보자 일단은 협조하라는 말을 전달했다.
<화련> 일처리가 너무 어설픈데?
<주호> 이번엔 좀 봐주시죠? 좀 급해서요.
<화련> 그래, 너도 어쩔 수 없겠지. 빠져나갈 순 있는 거지?
<주호> 네, 여차하면요.
화련이 불만이 있는 듯 가볍게 투덜댄 것을 빼고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들 포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두 성벽으로 나가는 신성 제국의 병력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들이 막을 수 있을까요?”
이미 베히모스와 한 차례 격전을 치르고 왔기에 저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드래곤이 동시에 다섯이 달려든다고 해도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지 않을까.
급의 차이.
그건 무시할 수가 없는 격차였다.
그런 내 걱정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버렸다.
“못 막으면 튀면 되고, 막으면 성문이라도 고쳐 줘야지. 우리에게는 우수한 드워프들이 있다고?”
“하긴, 그렇죠.”
드워프 왕까지 있는 마당에 성문 하나 고치는 건 일도 아니겠지.
튀는 것은 가장 나중에 생각해 봐도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베히모스가 도착해 광역 공격을 하기 시작하자 성벽 전체가 부르르 떨렸고, 우리가 딛고 있는 대지 역시 동시에 충격을 받았다.
쿠우우웅!
우르르릉!
“꺄악!”
“큭, 무슨 위력이……!”
“아무거나 잡아!”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성 전체가 떨리는 느낌에 다들 긴장한 눈빛을 감추지 못 했다.
네임드 하나가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드래곤 이후로 처음 보는 일이었고.
그렇게 계속해서 흔들리는 성벽을 보면서 나 역시 불안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거 잘못하다가 정말 뚫리는 것 아냐?
한참을 성벽을 두고 베히모스와 격전을 벌이던 병력들에게서 갑자기 이전의 그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우리에게 뛰어왔다.
그것도 꽤 급해진 표정을 지으면서.
그런 그가 우리에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 아무래도 그대들에게 손을 빌려야 하겠군요. 같이 싸워 주시겠습니까? 』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