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화 신성 제국 (7)
《 최후의 광명, 신성 제국 제넨샤에 진입하셨습니다! 》
제넨샤?
역시 여기에 신성 제국이 있었네.
챠밍의 그런 믿음을 보답이라도 하듯 확실히 탈출구를 찾아낸 듯 했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존재하던 경계를 넘자 몸이 흐릿하게 변하면서 반대편의 풍경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경계 너머로 살짝 보인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몸이 확 굳어져 버렸다.
뭐야?
저건…….
확인하자마자 곧장 다시 발을 빼서 원래의 위치로 돌아왔다.
내가 경계 뒤를 확인하고는 그대로 돌아오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으음, 대체 뭐라고 말해 줘야 하지?
솔직히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서…….
재중이 형이 바로 옆으로 와서는 물었다.
“왜 돌아와?”
“아, 그게…… 아무래도 문제가 좀 생긴 것 같은데요?”
“응? 무슨 문제?”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형이 직접 한 번 보는 편이 더 빠를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내가 넘어갔다 와 파동이 일어나는 허공을 눈으로 가리켰다.
재중이 형 그걸 보고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로 발을 옮기더니 곧장 경계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몇 초도 되지 않아 바로 다시 돌아왔다.
얼굴에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가득하고서.
“하, 이건 생각하고는 많이 다른데?”
“그렇죠?”
나에 이어 재중이 형까지 같은 반응을 보이자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길마들이 다 궁금한 듯 우리를 바라봤다.
화련, 스칼렛, 이슬두잔, 리더, 황룡.
그리고 엔느와 폭군까지.
그런 그들을 보면서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음, 다들 넘어가 보시는 것도 괜찮겠네요.”
일단 나와 재중이 형이 안전하게 갔다 왔으니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기에 모두가 한 번씩 경계를 넘어서 반대편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다시 돌아왔다.
다들 똑같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그중 화련이 나를 보고는 바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거, 잡을 수 있는 거 맞지?”
어지간하면 별로 놀라는 일이 없는 화련도 놀라게 할 정도의 뭔가가 반대편에 있었다.
화련의 반응이 나름 재미가 있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으음, 어떨까요? 완전 새빨간 녀석이라…….”
솔직히 보자마자 뒤로 빠진 건, 상대가 될지 안 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였다.
그런 나를 보고는 화련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나를 바라봤다.
“너도 안 되는 게 있긴 하네?”
“하하, 저도 일단 사람인지라…….”
화련이 그간 나를 꽤 좋게 평가한 모양인데.
하지만 이번에는 케이스가 좀 달랐다.
나 역시 한숨을 쉬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어떻게든 잡겠는데 저건 좀 무리죠.”
드래곤은 한눈에 들어오기라도 하지.
방금 나와 길마들이 보고 온 녀석은 완전히 달랐다.
분명 거리가 멀었음에도 눈에 들어오는 덩치가 너무 커서 바로 몸이 굳어 버렸으니까.
“베히모스였지?”
“네, 아마 그런 이름이었죠.”
베히모스.
대충 봐도 드래곤 크기의 거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형태는 4족의 야수형.
유선형의 드래곤과는 달리 육중한 덩치에 터질 듯이 거대한 네 개의 다리가 굳건하게 몸을 받쳤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꼬리가 뒤로 길게 뻗어나 있었는데 꼬리 곳곳에서 가시 형태의 돌기가 뻗어 있어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쭉 아우르는 칼날 같은 형태의 쇄기들이 등 전체에 촘촘하게 세워져 있는 것도 특징 중에 하나였고.
거기다 건물 하나쯤은 식후 간식거리로 씹어 먹을 만큼 커다란 입에 쇠기둥마냥 단단해 보이는 이빨이 날카롭게 뻗어 나와 흉흉함을 더 했다.
총 8개의 거대한 검은 뿔에는 계속 번개와 푸른색의 화염이 뻗어 나와 다시 몸 전체에 뇌전과 화염이 타고 퍼져나갔다.
솔직히 드래곤도 웅장함으로 치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데 이 베히모스라는 녀석에게는 한 수 접어줘야 한다.
고르곤이나 듀라한은 저 녀석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겠지.
체급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드래곤을 옆에 세워 두면 아이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에 잠시 상상을 해보던 화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정도쯤 되어 보이더라. 그리고 지금 그 녀석이 우리가 가야 할 신성 제국을 깔고 앉아 있는 건 알지?”
“그 와중에 볼 건 다 보셨네요.”
“건물을 통째로 씹어 먹고 있는데 모르면 되겠어?”
맞다.
베히모스의 거대한 입에 박살 난 건물 잔해가 부서져 그 흔적만 보였다.
그리고 베히모스가 네 다리로 서 있는 바로 아래는 예전에 뭔가의 성이었을 건물이 불타올라 흔적도 없이 뭉개져 있었고.
주변 역시 전부 부서지거나 타올라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흡사 예전의 레릭 왕국 같은…….
아니, 그쪽은 미리 준비한 폭발로 일제히 터트려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면.
지금의 이 광경은 오직 저 한 녀석이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재중이 형이 내게 오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흐음, 아무래도 우리가 좀 늦은 모양이다.”
“네, 그런 것 같네요.”
“원래부터 이렇게 되어야 하는 시나리오인지, 아니면 뭔가가 어긋났던지 둘 중 하나인데...”
“중간에 뭔가가 개입을 했다는 말인가요?”
“글쎄.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그냥 누군가 신성 제국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이런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때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이미 완전히 폐허가 된 신성 제국이라…….
이건 좀 너무 막 나가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뭔가가 쏙 빠져 버린.
흡사 영화를 보다가 중간을 보지 못하고 뒤로 확 넘어가 버렸을 때의 그 찜찜함이랄까.
그리고 그 중간 과정에서 뭔가 변수가 될 만한 일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형, 혹시 우리가 아니라 다른 누가 먼저 발견을 했었다면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의 눈썹이 살짝 치켜졌다.
“흐음, 우리보다 먼저 손님이 왔었다?”
“네, 갑자기 이렇게 이야기가 막 흘러갈 리는 없잖아요. 신성 제국에서 우리 보고 엿 먹으라고 저렇게 준비해 놓은 것도 아닐 텐데…….”
나라를 다 태워 가며 다른 사람들을 엿 먹이는 건 우리니까 하는 거지.
아직까지 그렇게 간 큰 녀석들을 보지 못했다.
하물며 NPC들이라고 가능할까?
아니, 이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그럼 남는 경우의 수는 하나다.
내 말을 듣고는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할 만은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저 베히모스 같은 괴물을 컨트롤할 단계는 아니지.”
“너무 나갔나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렇다고 네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야.”
“그럼?”
“오히려 이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말이 되거든. 베히모스를 컨트롤해서 이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라, 뭔가를 위해서 베히모스를 억지로 끌어들였다 정도겠네.”
뭔가를 위해서?
노리는 것이 있었다?
프로 팀들이 빨리 도착해서 노릴 만한 게 뭐가 있지?
그것도 이렇게 급하게 일을 진행해야 할 정도의 무언가…….
그 순간 머리에 바로 뭔가가 떠올랐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반드시 얻어 내야 하는 거라면.
딱 하나밖에 없었다.
“혹시, 마검인가요?”
“빙고.”
“역시, 먼저 도착했었네요.”
여기로 오면서 계속 생각했던 것은 레릭 왕국과 이곳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건 다른 길마들도 모두 예상을 했을 터.
한참을 먼저 출발한 프로 팀들이 이곳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지.
“녀석들이라면 정보를 흘리기보다는 그냥 자기들끼리만 진행했을 거야. 너도 잘 알듯이 먼저 선점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네, 저 같아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거예요.”
철저한 비공개.
관심을 끌기 위해 남들보다 빠른 정보를 내보내기 위해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프로 팀들은 달랐다.
오직 성과와 선점.
그것만을 위해 지금껏 신성 제국을 돌아다니면서 뭔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정확한 과정은 모르겠지만, 어떤 식으로는 알아챘을 거야. 마검이 여기 신성 제국에 봉인되어 있다는 걸 말이지.”
아마도 신성 제국으로 오면 NPC들에게 무엇이라도 정보를 얻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얻은 정보들과 종합해 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녀석들은 작위까지 가지고 있으니까, 정보를 얻기가 더 쉬웠겠지. 최초로 신성 제국에 도착한 것까지 도움이 됐을 테고.”
“신성 제국 NPC들이 잘 대해 줬겠네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교류가 없던 가르시아 제국의 귀족들이 왔으니 아마 꽤 좋아하지 않았을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기는 한데. 이쪽은 가능성이 좀 희박하고.”
최초로 도착한 이득에 가르시아 제국의 전령인 것처럼 꾸며서 신성 제국 내부로 침투.
그럼 신성 제국의 귀족들과 친해지기 너무 좋은 환경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정보를 얻어 내서는 원하는 정보가 나오자…….
“펑. 이군요.”
“아아, 아마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 모양이라.”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하고는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못 말린다는 듯 재밌어하는 딱 그런 표정을 짓고 있네.
“형,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음, 뭐 좀 너무 견제가 안 들어오니까 심심했거든. 애들이 넘어와서는 안 어울리게 너무 순하게 놀아서 그냥 내가 좀 건드려 볼까 하는 찰나에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네.”
그런 재밌어하는 표정으로 보면 내가 할 말이 없어지는데 말이야.
“그럼 결국 마검은 넘어갔다는 말이죠?”
“10중 9할 정도는? 아니, 이 경우에는 확실히 넘어갔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흥미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만약 넌 부수지 못하는 금고가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이걸 직접 건드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부술 수도 없어. 주변에 지켜보는 눈도 많은데 금고가 단단하기까지 해.”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재중이 형에게 나도 답변을 해 주었다.
“이건.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질문 아닌가요? 저 폐허가 된 잔해들을 보면요.”
“큭, 너무 뻔한 걸 물었나? 아마 녀석들이 마검을 어디에 봉인해 두었는지 발견하기는 했는데, 그걸 손댈 수는 없었을 거야. 신성 제국 녀석들이 바보가 아니라면 그걸 그냥 방치해 뒀을 리는 없거든. 철저하게 지키고 있던지 혹은 다른 방어 장치를 해뒀을 거란 말이지. 심지어 시간까지 없어. 우리가 오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냥 때려 부셨다는 거죠. 자신의 손이 아닌, 저 베히모스의 힘을 빌려서.”
“딱 누가 생각할 법한 방법 아니냐?”
“뭐 인정. 저 같아도 같은 방법을 썼을 거예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상대 프로 팀에도 머리를 제법 굴리는 인간이 있는 것 같았다.
재중이 형의 그간의 말들과 전에 봤던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딱 떠오르는 후보가 둘 정도.
그 둘 중 하나가 마검을 들고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아니면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전에 본 미녀분인가요? 형의 제자라던?”
“아, 월하향? 걔도 충분히 가능하지. 연도 가능성이 있고. 그 녀석이 딱 이런 스타일이라…….”
역시 생각하는 게 똑같네.
“하논, 그놈도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놈이라.”
하논?
“뭐, 아무튼 녀석들이 마검을 가지고 갔다면 이제부터는 뺏어 오긴 굉장히 힘들 거야. 쉽게 죽어 줄 녀석들도 아니고.”
“네, 그렇겠죠.”
그냥 재중이 형 같은 유저가 유일 템을 든다고 생각하면 딱 비슷한 느낌일 테지.
좀처럼 쉽게 제압할 순 없을 터.
시작부터 일이 꼬이네.
그런 나를 보고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었다.
“이미 넘어가 버린 마검은 어쩔 수 없고, 우린 다른 패를 가지고 한번 협상을 해볼까나?”
“협상요?”
“마검만 있는 게 아니잖아. 네 녀석이라면 이해했을 텐데?”
재중이 형의 협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정말 이 형도 심술궂다니까.
“재밌겠네요. 어디 한 번 협상을 해 보죠. 똑같은 카드를 손에 들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