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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45화 (635/1,404)

#645화 뒷거래 (1)

우리가 황실 비공정으로 빠져나온 후, 레릭 왕국 상황은 개판이 되었다.

레릭 왕국 상황을 방송 중이던 BJ들이 보여 준 영상에는 화염이 걷히자마자 유저들이 개떼처럼 성벽을 넘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안에 들어가 뭐라도 건지면 이득.

그렇기 때문에 승냥이 떼처럼 드랍된 아이템을 노리고 성벽을 넘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아이템을 다수 드랍한 길드들이 성벽을 넘지 말라는 압력을 넣었지만, 그럼에도 전혀 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숫자는 더욱 불어났다.

사람들 욕심을 쉽게 잡을 순 없겠지.

어차피 레릭 왕국 안에는 적이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으니 이런 행동은 더욱 쉽게 감염되어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게 성벽을 넘은 유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 뭐야?! 왜 아이템이 하나도 없어?

- 어? 이러면 안 되는데?

- 누가 먼저 와서 쓸어간 것 아냐?

- 와나. 진짜. 누구냐?

- 너희가 먹어놓고 지금 모른 척하는 거지?

- 씨발, 우린 아니라고. 아직 아이템 구경도 못 해봤어!

- 미치겠네. 들리는 소문으론 10강이 수두룩할 건데……!

- 일단 달려들어! 어디든 있을 거다!

- 하나도 안 보이는데 무슨…….

- 정말 없다고?

- 아예 없다고!

심지어 레릭 왕국 안쪽까지 들어갔음에도 아이템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간혹가다 하나씩 떨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저건 시체들이 놓친 아이템이군.

시체들이 전부 다 주워 올 수는 없었을 테니.

- 야, 이거 다 증발한 것 아냐?

- 아니야. 아직 없어질 순 없는데.

- 설마 드워프들이 가져갔나?

- 아놔, 진짜? 드워프들이?

- 에이, 아니지. 우리가 성벽 사방으로 둘러치고 있었는데 먼 수로 가져가.

- 하긴, 나가다가 다 들켰을 텐데.

- 방송에도 하나도 안 잡혔어.

-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

- NPC들이 가져간 건가?

- 가져가긴 뭘 가져가. 여기서 다 뒤졌잖아.

- 맞다, 원정대 다 해체됐지.

- 도대체 아이템이 다 어디 간 거야!!!

아무리 찾아봐라.

하나라도 아이템이 나오나.

영상을 보니 다들 벙찐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고강 아이템을 떨어뜨린 유저들은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죽은 위치로 빨리 달려가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더 좋은 걸 주워도 될 거고.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들이 몇 초도 되지 않아 싹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딱 한 마디를 했다.

“크큭, 개판인데?”

우리가 워프를 써서 황실 비공정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난 곳은 사냥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한 산맥의 숲속이었다.

일단 사냥터가 아니기 때문에 근처를 날아다니는 탈것이나 비공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냥을 위해 자리를 잡고 있는 유저들도 아예 없었고.

황실 비공정을 바이탄 요새나 유저들이 있을 법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이번에 위험부담이 너무 커서 일부러 이렇게 외진 장소로 워프를 했다.

지금 황실 비공정의 갑판에 널려 있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아이템들을 누군가 보기라도 한다면?

단순히 스샷이 찍히는 것도 이번엔 절대 안 된다.

딱 한 장만 새어 나가도.

절대 의혹만 남기고 끝나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한순간에 서버가 뒤집어지지 않을까.

역대급으로 아이템을 빼먹은 사건으로.

이건 두고두고 유저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될 일이었다.

재중이 형이 황실 비공정의 갑판에 널려 있는 아이템들을 보고는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서버 하나는 통째로 털어 버린 기분이군.”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말 바닥에 10강부터 해서 고강 아이템들이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아이템들의 양.

강화도 강화지만 혼자서는 무거워서 들고 오지 않았을 갑옷 같은 방어구까지도 바닥에 마구 뒹굴었다.

처음 계획처럼 내 인벤만 꽉 채워서 나왔다면 이 정도 숫자는 어림도 없었다.

이번 일의 핵심.

내가 챠밍에게 받아서 쓴 스킬로 불러낸 시체들이 정말 큰일을 해주었다.

한 손으로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을 짧은 시간 내에 수백의 시체들이 달려들어서 해결해 주었으니.

“정말 급해서 시체로 마검을 주우려고 했던 건데. 정말 아이템이 주워질 줄은 저도 전혀 몰랐어요.”

마검이 떨어지는 순간.

론도 후작보다 빨리 주워야 한다는 생각에 무심코 내린 명령이 돌고 돌아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참, 넌 운도 좋다. 그 상황에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네, 확실히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그런 나와 아이템들을 한 번 쓱 들러보더니 재중이 형이 약간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특히 인벤 안에 있는 물건 때문에.

“마검의 명칭은 베사노스. 그런데 이거 봉인되어 있어.”

“네?”

“인벤 안에 있는 걸로는 옵션을 확인하지 못해.”

“꺼내 봐야 한다는 거죠?”

잠시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인벤에서 베사노스를 꺼내 손에 쥐자마자 베사노스가 눈을 번쩍 뜨더니 붉은 기운을 뻗어 냈다.

마치 재중이 형을 집어삼키려는 듯.

그러자 재중이 형은 주저하지 않고 인벤에 처넣어 버렸다.

“이거 못 쓰겠는데?”

“어려울까요?”

“꺼내자마자 이러는데 방법이 있나.”

기껏 힘들게 얻어냈는데 이런 식이라니.

“마검이란 것 자체가 유저가 쓸 수 없게 만들어 놨는지도 모르겠어.”

“그림의 떡이네요.”

“아아, 그렇지. 이놈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길들일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야.”

어쩌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 얻은 녀석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얻은 거니까 가지고 있어.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곧장 재중이 형에게서 베사노스를 받아 인벤으로 집어넣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으려나.

“정 안 되면 팔아 버릴까요?”

“크큭,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누가 사갈지는 모르겠지만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라.

재중이 형이 피식 웃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장 그 마검도 문젠데…… 다른 아이템들도 문제야. 일단 너무 많아. 우리가 소화하기에는.”

“사장님이 처리해도요?”

“어, 아무래도. 너무 많지. 이 양은. 분명히 처리하는 과정에서 하나둘씩 문제가 생길 거다.”

이건 생각지도 못한 문제네.

원래 계획에도 없는 물건들이 잔뜩 들어와 버렸는데 처리하는 게 문제라…….

생각해 보니 사장님 혼자로는 이 많은 물량을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갑자기 한 사람에게서 갑자기 이 정도 물량이 터져 나온다면?

아무리 사장님이 서버 내 상위 길드인 최강 길드의 길드장이라고는 하나.

이번 경우는 정말 이야기가 달라.

한번 잘못 발을 들여놨다가는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그런 나를 본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꺼냈다.

“스칼렛과 이슬두잔도 이번엔 안 돼.”

“네, 확실히 그렇죠.”

“같은 동맹이라고는 해도 이런 건 알려지면 꽤 곤란하거든.”

저번에 산불에 이어 이번 일 역시도 철저히 우리끼리만 움직인 것이었다.

이렇게 유저들을 상대로 해먹는 일을 스칼렛과 이슬두잔이 알아서 좋을 것은 전혀 없으니까.

“만약 나중에 둘이 다른 노선을 걷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언제까지 동맹일 순 없으니까요.”

당장 스칼렛과 이슬두잔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었다.

“그럼 길드 내에서 소비하는 건 어때요?”

“흐음, 나쁜 생각이 아니기는 한데……. 최강 길드까지면 몰라도 달 길드나 치맥 길드는 무리야. 아니지. 갑자기 최강 길드의 장비가 너무 확 바뀌게 되면 그쪽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한두 개의 장비가 바뀌는 정도라면 눈치를 못 채겠지만.”

“길드 안에서도 처리가 불가능하네요.”

“그래, 특히 10강 같은 경우에는 몇 자루 없기도 하고. 시스템으로도 나오니까 서버 내에 10강 숫자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거다.”

“어렵네요.”

“어렵지. 한쪽에서는 아이템을 싹 드랍해서 난리가 났는데 다른 한쪽에서 갑자기 아이템 잔치를 벌인다? 이건 대놓고 우리가 했다고 광고하는 셈이야.”

“결국 가지고 있어도 당분간은 못 쓰겠어요.”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방법이 있어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죄다 강화해서 터트려 버리면 돼.”

“그건 좀…….”

“크큭, 알아. 강화를 더 해봐야 이 중에 우리가 필요한 장비는 없으니까. 강화를 해서 계속 날려 먹는 건 손해지. 10강 같은 경우는 11강이 떠버리면 더 골치 아프고.”

11강이 되면 시스템이 서버 내 유저들에게 바로 알려준다.

그럼 사라졌어야 했던 10강이 우리 손에 있다는 게 알려지게 되는 셈이다.

이건 절대로 피해야 하는 상황.

“그냥 이대로 파는 게 제일 좋겠네요.”

“그래, 결국 이 녀석들의 값어치가 떨어지기 전에 팔아야 하는데, 어쩐다?”

둘 다 이 많은 아이템들을 가져다 놓고도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던 중, 우리 팀과 사장님이 내가 불러 준 좌표로 날아왔다.

그리고 다 같이 입이 쩍 벌어져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세상에…….”

“미쳤…….”

“이게 다 뭐야?”

“와……!”

눈앞에서 번쩍거리는 아이템이 수도 없이 놓여 있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것도 넓고 넓은 갑판 위를 가득 채운 아이템을.

사장님도 떨리는 손으로 아이템을 몇 개 들어 올렸다.

“나 지금 심장이 안 멈추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모두가 웃어 버렸다.

어느 정도여야지 잠깐 놀라고 말지.

이건 로스트 스카이 역사상 한자리에 모인 최다 아이템이니까.

“사장님 이건 처리 힘들겠죠?”

내 물음에 사장님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곧장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규모면 엄청난 돈이 오갈 건데…….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팔 방법은 거의 없다. 특히 구매하려는 자들이 상위 길드 유저들일 테니. 어지간해서는 눈치채고 말 거야.”

역시 사장님도 재중이 형과 같은 말을 하네.

“아주 오래 시간을 두고 판다면 괜찮겠지만. 그때쯤 되면 이 아이템들의 값어치도 떨어지니까.”

“너무 오래 묵혀 둘 순 없겠네요.”

“그렇지.”

결국 빨리 팔아야 하는데.

팔기에는 너무 많아 문제고.

어떻게 해야 제값을 받고 바로 팔아치울 수 있지?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한 건가?

계속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그때 사장님이 갑판 멀리 서 있는 론도 후작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흠, 살려온 거냐?”

“아, 말씀 안 드렸네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마검을 놓고 나니 정상으로 돌아와서 일단은 살리긴 했는데…….

우리 팀과는 별로 할 말이 없는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개를 해 주기도 그렇고.

론도 후작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꽤 문제가 되려나?

아니, 어차피 지금은 NPC에게 관심이 없을 테니 상관은 없겠지만.

흐음.

론도 후작이라…….

론도 후작…….

후작?

순간 머리에 뭔가가 팍 하고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겠어요.”

* * * * *

황실 비공정에 있던 아이템들은 우리 팀이 나눠 가져서 바이탄 요새에 있는 신화의 길드 창고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있는 최강 길드 창고는 물건을 넣어두면 바로 들키니까.

이건 철저하게 우리만 알고 진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참을 옮기다가 전사 형이 혀를 내둘렀다.

“이건 안 되겠다. 창고 자리 없어.”

길드 창고에도 한도가 있어서 얼마 옮기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득 차 버렸다.

난감하네.

그러자 나르샤 누나가 의견을 냈다.

“몇 명 탈퇴해서 새 길드를 만들어야겠는데?”

“네, 임시로 쓰게 잠시 부탁해요.”

확실히 길드 창고가 부족하면 몇 개 더 만들 수밖에.

그렇게 전사 형, 나르샤 누나, 이쁜소녀 등이 새로 길드를 만들자, 창고가 부족한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물건을 다 옮기고 난 뒤에 전사 형도 어이가 없는지 웃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다 옮기다니. 대체 얼마나 됐던 거냐?”

“저도 사실 정확한 수량을 모르겠어요.”

그냥 무작정 퍼다 나른 셈이라.

그리고 사장님은 지금 한참 아이템 목록을 작성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사장님이 목록을 작성하다가 내게 말했다.

“다 옮겼으니 이제 시작해야지?”

“네, 시작해 보죠.”

그리고는 바로 론도 후작을 불렀다.

“하나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 편하게 말씀하시죠. 이제 한배를 탔지 않습니까. 』

한배라…….

듣기엔 좋은 말이지.

그럼 효과가 있는 지금.

제대로 써먹어 볼까?

“아이템을 좀 경매해 줬으면 하는데? 네 주최로 해서.”

우리가 팔면 유저들에게 의심 받는다면.

대놓고 팔아도 괜찮은 녀석을 섭외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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