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2화 숨겨진 힘 (3)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내게 격추당해 지상으로 떨어진 론도 후작 주변으로 다시 시체들이 몰려들었다.
오러가 있는 검에 적중돼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데 시체들이 개떼처럼 달라붙는 광경이란.
한 편의 좀비 영화를 보는 듯했다.
크어억!
카아악!
으어어!
『 저리 꺼져! 』
론도 후작은 바로 붉은색 대검을 횡으로 크게 휘둘러 시체들을 밀어냈지만 그것도 잠시.
또 다른 시체들이 몰려들자 론도 후작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흠, 이거 생각보다 쓸 만한데?
마치 쇠의 재질처럼 묵직한 느낌을 주는 10강 드워프 악령 롱 보우.
크기도 상당히 커서 어지간한 네임드 롱 보우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이걸로 그냥 후려쳐도 되려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탄탄한 느낌을 주었다.
써 보니 위력도 상당했고.
무게는 좀 있어도.
한 방의 위력은 괜찮아.
임시방편으로 가져다 썼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론도 후작에게 한 방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론도 후작 정도의 운동능력이라면 완전히 방심하지 않는 이상은 피해 버릴 테니.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
이전의 무기와 마찬가지로 비검을 쓸 수 있는 점을 착안해 일부러 활시위에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걸어 날렸다.
그때 일부러 전혀 맞지 않는 궤적으로 이 녀석을 날려 보냈다.
완전히 방심하도록.
당연히 론도 후작은 그냥 지나쳐서 날아갈 거라 생각했는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 순간의 선택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냥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만 비검으로 던져도 되겠지만.
그럴 경우에 날아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보니 궤적을 튼다고 해도 론도 후작이 바로 피해 버릴 터.
확실히 론도 후작을 추락시키는 데는 이 두 무기의 조합이 반드시 필요했다.
론도 후작을 떨어뜨린 후 상황을 보자 시체들이 상당히 많이 줄어 있었다.
그만큼 론도 후작 역시 온몸에 상처를 입어 출혈이 상당해 보였고.
아무리 약한 시체라고 해도.
저 정도 숫자라면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걸로 만족할 순 없지.
바로 하이딩 블레이드를 꺼내 은신을 걸었다.
그러자 론도 후작이 순간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몰려드는 시체들하고 싸우면서도 계속 내 쪽을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인데.
뭐 이건 당연한 건가.
주변에서 자신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니까.
그런 론도 후작을 뒤로한 채 바로 리치 로브와 스태프를 꺼내서 장착했다.
그러자 곧장 검게 비활성화되어 있던 시체 부활 스킬 아이콘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아직 숫자가 많이 남았다고는 하나.
론도 후작의 체력을 확실히 빼놓으려면 계속해서 시체를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 시체 부활! 】
【 시체 부활! 】
【 시체 부활! 】
그렇게 주변에서 죽은 시체들을 계속 살려내자 론도 후작이 짜증스러운 고함을 외쳤다.
『 주호 공작!! 정녕 네가 악마와 손을 잡은 게냐!! 』
큭.
악마와 손을 잡았다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 녀석이 내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든지 말든지 열심히 시체들을 세워 올렸다.
거기다 여기는 론도 후작을 포함한 귀족파들의 주력이 있던 장소라 발밑에 깔리도록 시체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 정도면 오히려 마력이 부족하겠는데?
그사이 론도 후작이 마구잡이로 대검을 휘두르면서 내게 다가오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시체들이 달려들어서 그를 밀어붙였다.
반대로 후작이 얼마나 강하게 휘두르는지 시체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정말 힘이 무지막지하네.
커다란 신체에서 오는 힘이 상상을 초월해 보였다.
거기다 저 마검으로 인해 변형까지 되어 있으니.
만약 시체들이 없었다면 정말 피곤했을지도.
지금도 시체들이 갈가리 찢기면서 론도 후작에게 조금이라도 타격을 입힌 뒤 장렬히 전사하는 중이었다.
흐음.
숫자가 많기는 한데…….
론도 후작을 확실히 눌러놓을 정도의 타격은 주지 못했다.
만약 시간이 널널하고 일반 몬스터를 사냥하는 형태였다면 이런 조합은 나쁘지 않았겠지만.
역시 위력이 부족해.
결국은 직접 손을 쓰는 수밖에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체를 불러일으키다가 순간 한 곳에서 걸음이 딱 멈추었다.
호오.
이건?
쓸 수 있겠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뭔가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손을 썼다.
【 시체 부활! 】
【 시체 부활! 】
【 시체 부활! 】
마력이 엄청나게 빠져나가?
그동안 불러냈던 시체들과는 한 구에 들어가는 마력 자체가 달랐다.
일반적인 병사의 시체가 아닌.
무려 제국 기사단의 시체들.
화려한 갑주가 좀 파손되기는 했으나 그럭저럭 괜찮은 위용을 보여 주었고, 특히 비어 있던 두 동공에서 붉은빛 안광이 확 드러났다.
거기다 일어나자마자 기사들이 들고 있던 무기들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검은색 오러가 피어올랐다.
큭.
이러면 마력이 전혀 아깝지 않아.
들어가는 마력에 비하면 이쪽은 완전 남는 장사였다.
저 오러가 얼마나 유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지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을 거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럼 바로 투입해야지.
“쳐!”
그러자 불러낸 기사단의 시체들이 일제히 론도 후작을 향해 빠르게 뛰어나갔다.
일반 시체들과는 속도 면에서도 압도적.
그리고 공격력과 방어력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론도 후작도 오러를 쓰는 기사단 시체가 잔뜩 달려들자 표정이 확 구겨졌다.
『 어째서 너희들이……! 』
자기 휘하에 있던 기사들인데 론도 후작이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지금은 적이라서 문제지만.
그동안은 론도 후작이 병사를 학살하는 수준이었다면 이 기사단이 투입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론도 후작은 혼자인데 이쪽은 숫자가 열이 넘는다.
비록 한 번에 둘러쌀 수 있는 숫자가 한계가 있다고는 하나 한 번에 적어도 네다섯은 동시에 상대를 해야 했다.
그것도 오러를 쓰면서 목숨을 전혀 아끼지 않는 녀석들에게.
기사단이 붙자 론도 후작이 순식간에 수세에 몰리더니 이전과 달리 급격하게 출혈이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생채기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론도 후작의 갑옷과 함께 피육이 잘려 나가는 수준이라.
한 놈을 죽여도 바로 뒤에 대기 중인 다른 녀석들이 달라붙으니 버거울 수밖에.
나 역시 마력이 회복되는 대로 새로운 기사단을 불러냈다.
【 시체 부활! 】
“녀석을 죽여.”
내 명령에 새로 일어난 기사단이 또다시 론도 후작에게로 달려갔다.
불러내는 시체에 따라 능력이 천차만별이라.
마력이 많이 들기는 해도.
위력 면에서는 이쪽이 월등하네.
당연히 론도 후작에게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 크악! 주호 공작! 가만두지 않겠다! 』
그동안의 외침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정말 위기를 느끼고 절규하는 딱 그런 외침.
진작 이걸로 갈 걸 그랬나?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불멸> 상황은?
<주호> 전투 중이에요. 그리고 론도 후작이 마족으로 변했어요.
<불멸> 마족? 그놈이 왜?
<주호> 론도 후작이 들고 있던 검이 마검이라고 하네요.
<불멸> 흐음, 마검이라……. 론도 후작이 기묘한 걸 들고 있었네. 전투 중에 방해했나?
<주호> 아뇨, 전 전혀 안 싸우고 있거든요. 론도 후작만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재중이 형이 바로 이해를 하고 물어봤다.
<불멸> 시체들하고?
<주호> 네, 주변에 바글바글해서 불러내는 재미가 있어요. 이번엔 기사단까지 불러냈는데 이 녀석들, 오러까지 쓰던데요?
<불멸> 크큭, 오러라니. 론도 후작이 최악의 장소에서 최악의 상대를 만났군.
재중이 형이 말한 대로 최악의 조합이지.
<불멸> 이제 곧 화염이 걷힐 거다. 그럼 유저들이 들어갈 테고. 그 안에 끝낼 수 있겠어?
<주호> 해봐야죠.
<불멸> 약간 시간 정도는 벌어 줄 수 있는데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버리고 나와.
재중이 형과의 연락을 끝내고 상황을 보자 론도 후작의 몸에 상처가 가득 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기사단의 숫자도 줄어 있었고.
기사단을 계속 불러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쪽도 기사단 시체 숫자에 한계가 있으니.
그런데 그 순간 론도 후작에게서 이상한 점이 보였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론도 후작의 상처에서 피가 잔뜩 흘러나왔는데 지금은 상처만 보일 뿐.
새로 공격당한 곳을 제외하고는 흘러내린 피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리고 한참을 론도 후작을 관찰하자 곧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마검의 눈이 피를 계속 흡수해?
거기다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마검에서 확연한 변화가 보였다.
마검 자체가 더욱 붉어지면서 오러 역시 한층 짙어졌고.
그것으로만 끝나면 괜찮겠지만 마검은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마검의 검신이 진동하더니 주변의 대기가 마치 검신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흐음, 불길한데?
그렇게 주변의 화염을 계속 빨아들이는 모습에 이전의 상황이 생각났다.
저건 설마.
그때의 그 기술?
일자로 산불을 밀어 버렸던 그 강력한 기술을 지금 쓸 생각인가?
칫.
못 쓰는 게 아니라 안 쓰고 있었던 건가.
지금까지 쓰지 않기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너무 녀석을 쉽게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화염은 계속해서 녀석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기사단들이 공격을 해도 이건 마찬가지였다.
기사단이 론도 후작에게 아무리 타격을 가해도 스킬이 캔슬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스킬의 주체가 론도 후작이 아니라 마검이라면.
저대로 론도 후작을 공격한다고 해도 답이 없어.
직접적으로 마검에 타격을 줘야 하는데…….
만약 이대로 그 기술이 시전되면 녀석이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진다.
산불을 통째로 날려 버린 규모를 볼 때 레릭 성벽까지는 충분히 뚫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달려서 도망가 버리면 정말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는 셈이라.
거기다 여기가 아니라면 저 녀석을 이렇게 몰아붙이기도 힘들고.
순간 머릿속을 팽팽하게 돌렸다.
당장 내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뭐가 있지?
론도 후작이 아닌.
저 마검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있는 카드.
발루딘으로 딜을 쌓기에는 너무 늦고.
르아 카르테에 있는 헤븐즈 스트라이크는 확률이 너무 낮았다.
역시 용격밖에 없나?
이 거리에서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스킬.
하지만 용격을 론도 후작이 피해 버리면 정말 답이 없어진다.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용격으로는 안 돼.
이럴 때는 챠밍이 있으면 진짜 좋을 텐데.
아쉬운 기분을 느끼면서 남은 카드를 전부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러다가 하나의 스킬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시체 부활과 함께 재중이 형이 던져 주었던 스킬에 활성화된 불이 들어와 있었다.
이거면!
론도 후작을 붙들고 있던 기사단에게 계속 공격하도록 명령해놓고는 주변에 대기하던 시체들에게 일제히 명령을 내렸다.
론도 후작이 아닌.
마검을 향해 달려들라고.
그러자 시체들이 무작정 마검을 향해 달려들더니 아예 마검의 검신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푸욱!
푸욱!
마치 꼬챙이처럼 시체들이 마검에 꿰뚫리는 순간.
간다!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콰앙!
콰앙!
콰앙!
시체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마검을 크게 흔들어 댔다.
그리고 죽음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시체들이 다시 마검에 몸을 날렸다.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 시체 폭발! 】
콰앙!
콰앙!
콰앙!
론도 후작에게 큰 대미지를 줄 필요는 없어!
마검만.
저 마검에만 타격을 주면 돼!
그런 일념으로 계속 마검에 시체들을 밀어붙였다.
폭발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약하다고 해도.
저렇게 검신에 직접 타격을 줄 수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끝없이 터지는 시체 폭발에 마검의 검신이 수도 없이 흔들리면서 점차 그 빛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시체들을 다 쏟아부어서라도.
여기서 끝을 낸다!
그렇게 절반에 가까운 시체들을 퍼부었는데 오히려 마검보다 론도 후작 쪽에서 먼저 반응이 나왔다.
마검을 들고 있던 론도 후작의 팔이 격한 폭발들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마검을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텅그렁!!
주인을 잃고 바닥에 아무렇게 나뒹구는 마검.
어?
마검을 떨어뜨렸어?!
설마 마검을 떨어뜨릴 줄은 몰라서 잠시 멈칫했다가 급하게 기사단에게 외쳤다.
“당장 주워!”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