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화 숨겨진 힘 (2)
저 이상하게 변해 버린 론도 후작은 거리가 이만큼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지해 냈다.
그렇다는 말은 감지 범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을 수도 있다는 뜻.
거기다 은신 상태였지만 정확하게 내가 서 있던 방향으로 말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은신 역시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론도 후작이 날 알아봤다는 사실에 있었다.
저 녀석이 알기로 난 절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거든.
『 역시 주호 공작인가? 』
칫.
확실하네.
내가 모습을 드러내든 드러내지 않았든.
론도 후작은 내 정체를 이미 파악했다.
그래도 여기서는 한번 튕겨 볼까?
“살아 있었군, 론도 후작?”
내 물음에 론도 후작의 표정이 가늘게 변했다.
『 네가 여긴 무슨 일이지? 바이탄 요새를 지키고 있어야 할 텐데. 』
흠.
존대도 사라진 걸 보면 이미 녀석은 작정을 한 것 같네.
아예 공작 취급도 하지 않는 말투였다.
저렇게 이상하게 변해서 성향이 변한 건가?
아니면 힘이 생겼기 때문에?
어느 쪽이 되었든 확실히 이전의 론도 후작과는 다른 존재라고 보는 편이 맞았다.
한 번만 더 떠볼까?
론도 후작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일단은 구조대로 왔다만?”
내 대답에 론도 후작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일갈했다.
『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구조를 하려고 했으면 진작에 나섰어야지. 』
이거 참.
너무 확실해서 할 말이 없을 정도군.
한참 전부터 지켜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불난리 속에서 서로 싸우는데 나도 피아식별은 해야지.”
내 말에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던 론도 후작이 주변을 잠시 둘러보고는 곧 붉게 변한 두 눈을 내게 집중하면서 말했다.
『 이건 네 작품인가? 』
하.
이거 NPC가 너무 똑똑한 것 아냐?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느 정도 흘러가는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대부분은 예측에 불과하겠지만.
지금의 저 론도 후작에게는 그 예측 하나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무슨 수로? 그것도 제국의 공작인 내가?”
단순히 여기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 날 범인으로 몰고 가기에는 너무 과장이 커져 버린다.
론도 후작도 설마 내가 드워프를 이용해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까지는 모르는 모양이었고.
『 네가 날 밀어붙여서 이렇게 된 것 아닌가. 』
그 말에 피식 웃어 버렸다.
“말은 바로 해야지. 영웅의 무기에 욕심이 나 제국의 병력을 한 번에 말아먹은 네가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황제가 알면 슬퍼할 거라고?”
누가 봐도 이건 론도 후작의 압도적인 실책.
혹시라도 내가 여기서 론도 후작을 잡지 못해 살아나가 입을 털게 됐을 경우에는 나도 곤란하니까.
이 사실은 확실히 해 두었다.
내 말에 잠시 흠칫하던 론도 후작이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광소를 터트렸다.
『 크크크크, 황제는 이제 필요 없다. 』
그러면서 론도 후작이 손에 들린 변형된 대검을 들어 올려 보였다.
황제가 필요없다라…….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저놈이 입 터는 걸 걱정할 필요는 없어졌네.
여기서 녀석을 잡든.
잡지 못하든.
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여차하면 녀석을 역적으로 몰아가도 되는 일이다.
“그렇게 나와 주면 나야 고맙지.”
바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꺼내 들었다.
내가 주력인 두 개의 검을 꺼내 들자 론도 후작의 표정도 확연하게 변했다.
긴장하는 표정은 아니고…….
즐거워하는 그런 표정인가?
『 한 번은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는데 잘 됐군. 』
그러면서 녀석도 대검에 오러 블레이드를 불러냈다.
붉은색 대검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빛 오러를.
역시.
이전과 다르네.
이전에는 분명히 붉은색 오러를 썼는데.
저렇게 오러색이 확연히 바뀌는 일은 내가 알기로 유저들밖에 없었다.
적어도 NPC는 저런 식으로 오러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너, 역시 그 검에 잡아먹힌 거냐?”
아무래도 저 검.
정상이 아니야.
내 말에 론도 후작이 전혀 아니라는 듯 웃기만 했다.
『 아니다. 내가 검과 하나가 된 것이다. 보면 모르겠느냐. 』
확실히 검에 먹혔군.
뭐 상관없으려나.
정확한 건 녀석을 죽여 보면 알 테지.
그런데 그때 의외의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돌발 퀘스트 : 마족의 검에 먹힌 론도 후작 퇴치. 》
- 마족의 검을 제거하거나 론도 후작 제거.
- 퇴치 기여도에 따라 보상 변경.
- 퀘스트 보상
『 원정대 포인트 200000 P. 』
『 마족의 심장. 』
『 10강 무기 정제 강화석. 』
『 10강 방어구 정제 강화석. 』
『 10강 일반 강화석. 』
『 +1 확정 강화석 』
아마도 론도 후작이 마족이 되어서 제국에 분탕질을 치는 어느 시점의 퀘스트가 지금 열린 모양인데?
일단 원정대 포인트가 무려 20만이었다.
고대 드워프 왕이 30만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었다.
그만큼 이 녀석이 강하다는 반증이었고.
거기다 퀘스트가 확인시켜 주듯 지금 녀석의 상태가 마족이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보상에 마족의 심장이 있는 것도 그렇고.
어차피 잡을 녀석에 이런 보상이라.
나쁘지 않아.
아니, 이 경우에는 원래 잡았어야 하는 녀석에 추가 보상이라 그런지 더욱 의욕을 불타오르게 했다.
『 흐흐, 그럼 네 녀석을 이 검으로 죽여 주지. 』
저 녀석이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아까 이야기해 주는 것을 깜짝했네.
“아, 내가 말을 안 했던가? 난 너랑 1:1로 붙을 생각이 전혀 없거든.”
『 뭐? 』
“전부 공격.”
명령을 내리자 아주 멀리서부터 대기를 하고 있던 시체와 언데드들이 점점 우리를 포위하듯 이동을 시작했다.
내가 은신으로 가만히 서서 놀고 있던 게 아니란다.
일일이 녀석들을 이동시켜 여기를 포위할 수 있도록 진형을 짜두었다.
저 대검의 능력이 얼마나 오래 가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해보자.
온통 시체 밭이었던 곳에서 불러낸 만큼 숫자도 어마어마했다.
마력이 부족해서 다 불러내지 못할 정도로 아직 시체가 많이 남아있기도 하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시체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어서 론도 후작에게 달려들었다.
“크와아악!”
“크커억!”
“캬아악!”
이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체들.
그런 시체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자 론도 후작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 이건 대체 뭐냐?! 』
뭐긴.
널 황천길로 끌고 갈 녀석들이지.
당연하겠지만 처음에 달려든 녀석들은 그대로 검은빛 오러에 썰려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대검이 리치가 길다 보니 궤적에 걸리는 족족 시체들이 쓰러져 나갔고.
역시 상대가 되진 않네.
일반 병사 NPC들로는 재미를 보지 못하겠어.
그렇다고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활을 든 수많은 시체들이 활시위를 당겼다가 론도 후작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쏘아 댔다.
피잉!
피잉!
샤악!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가는 빽빽한 활의 세례에 론도 후작이 인상을 확 구겼다.
보통은 근접해 전투를 하고 있으면 아군이 맞을까 봐 제대로 활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아군이고 뭐고.
어차피 다 죽은 놈들이라 아무 거리낌 없이 능력이 되는 족족 화살을 날려 버렸으니까.
『 젠장! 이게 무슨! 』
아무리 론도 후작이 강해졌다고 하나.
평소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에 론도 후작과 주변의 시체들이 단체로 화살에 박혀 들어갔다.
퍼퍼퍽!
퍼억!
퍼억!
론도 후작이 화살을 맞지 않으려고 주변 시체들을 쳐냈으나 곧 다른 시체들이 밀려들면서 론도 후작이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 비켜! 이 새끼들아! 』
말을 들어 먹을 것 같으면 시체가 아니지.
압도적인 물량 공세.
그렇게 시체로 퇴로를 막고 화살을 쏟아붓자, 론도 후작의 갑옷에 부딪힌 화살이 계속해 도로 튕겨 나왔다.
물론 기사단의 갑옷 자체가 좋아서 한 번에 뚫리지는 않겠지만.
누적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
그리고 개중에는 론도 후작의 갑옷 틈을 통해 파고드는 화살도 있고, 론도 후작의 몸에 그대로 꽂히는 경우도 생겨났다.
푸욱!
『 크악! 이 버러지들이! 』
계속해 대검을 휘둘러서 화살을 쳐내고 시체들을 끌어내렸지만 혼자서 이 많은 시체들을 처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시체가 너무 죽네.
방법을 좀 바꿔 볼까?
이번에는 아예 방패를 든 시체를 앞으로 밀어 넣었다.
오러로 방패를 썰 수 있기는 한데…….
그걸 무한으로 반복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걸 실험해 보는 좋은 기회의 장이었다.
처음에는 시체고 방패고 할 것 없이 오러에 다 썰려 나갔다.
하지만 오러에 한 방에 썰려 나가던 시체들 사이로 방패가 겹쳐 섞이자 대검의 진로를 한 번씩 막아 내기 시작했다.
카가각!
카갹!
론도 후작이 풀 스윙 상태일 때는 확실히 방패가 썰렸다.
하지만 방패가 몇 겹으로 겹치자 뒤에 있는 방패가 하나씩 썰리지 않고 버텨 내는 모습을 보였고.
당연하게도 론도 후작의 대검이 반쯤 잘려 나간 방패에 걸려서 둔탁하게 멈춰 버렸다.
그 상태에서 힘으로 어떻게 다시 잘라 내긴 했지만, 론도 후작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자 시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론도 후작의 갑옷을 뜯어내려 했다.
솔직히 이건 나도 무서운데?
아직까지는 시체들이 충분히 있어서 론도 후작을 막아 내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 주호 공작! 너 이 새끼가! 』
이젠 뭐 공작이고 뭐고 없구만.
하긴 황제도 필요 없다는 놈인데.
“내가 말했잖아. 너랑 1:1로 붙을 생각 없다고.”
『 가만두지 않겠다! 』
그러더니 쓰러진 시체의 한 녀석의 등을 밟고는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오르려 했다.
그럼 안 되지.
아직 더 그 안에서 놀아 줘야 하거든.
바로 아까 주어든 아이템 중에 한 가지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 +10 드워프 악령 롱 보우 』
임시방편이기는 한데.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위력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거기다 미리 주워 놨던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활시위에 걸고는 강하게 잡아당겼다.
이것도 오랜만에 쓰네.
【 오러 블레이드! 】
오러를 걸자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에 환한 빛이 걸렸다.
그리고 그대로 시체들을 밟고 공중으로 뛰어오른 론도 후작을 향해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를 날렸다.
파아아앙!
쐐에엑!
확실히 활의 위력 자체가 강하다 보니 검도 파공음을 내면서 쭉 론도 후작을 향해 쏘아졌다.
자신에게로 검이 날아오자 론도 후작이 공중에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광소를 했다.
『 활은 제대로 못 쓰는가 보군! 대체 어디로 쏘는 거냐! 』
론도 후작이 뛰어오른 코스와는 조금은 어긋난 방향으로 검이 날아오자 나를 비웃었다.
당연히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하지만 그 방심은 론도 후작에게 뼈아픈 실책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날아가던 궤적을 확 꺾으면서 론도 후작에게 직격으로 날아갔다.
『 뭐?! 』
깜짝 놀란 론도 후작이 뒤늦게 반응하려 했지만 이미 많이 늦었다.
공중에서 자세를 바꾸려고 했다면 진작에 바꿨어야지.
비행 스킬이 없는 론도 후작에게는 이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
처음부터 대검을 휘둘러 막을 작정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반응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빠르게 휘어져 들어간 오러가 걸린 암흑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그대로 론도 후작의 허리를 가르면서 박혀 들어갔다.
퍼억!
푸욱!
『 크억! 』
저 대검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진 모르겠다만.
론도 후작의 방어력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았고, 그런 노림수는 확실히 먹혀들어 갔다.
오러가 실린 무기가 허리에 박힌 론도 후작은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린 채 자세를 잡지 못하더니 그대로 다시 시체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당연히 시체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론도 후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런 론도 후작을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어딜 뛰어오르려고. 그대로 처박혀 있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