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화 어둠에 찬 레릭 왕국 (1)
135억.
사상 초유의 가격에 레릭 왕국이 팔렸다.
이건 게임 전문 TV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게임 내에서의 어떤 물건 하나가 이만한 값어치를 가진다는 사실은 쉽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경매 당일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 이후가 더 문제였다.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로스트 스카이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야, 들었어? 135억이래.”
“와, 미쳤다아. 억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로또보다 더하네.”
“이건 가질 수 있는 로또 아냐?”
“개부럽네. 주호 완전 부자 된 거 아님?”
“에이, 그 전에도 부자였을걸? 걔 팔아먹은 아이템만 해도 수십억이 넘음.”
“거의 걸어 다니는 기업이네.”
“와씨, 내가 그 돈 있으면…….”
회사, 학교, 모임 할 것 없이 사람들만 모이면 이 이야기를 했다.
경매 이전에는 그저 조금 잘나가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관심도 자체가 달랐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이 넘치자 심지어 뉴스에 나오기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 가상현실 게임 로스트 스카이에서 경매가 135억이 나와…….
- 게임 역사상 단일 경매 최고의 액수…….
- 아이템의 값어치가 현물의 값어치 넘어서…….
- 기존과 다른 가상현실 게임 재평가가…….
연일 나오는 뉴스에 영향을 받았는지 로스트 스카이 사의 주가가 하루 만에 눈에 띌 정도로 확 올랐다.
기사가 연이어 나오니까 기존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해보고 싶다는 댓글이 많아졌고.
로스트 스카이 사에서도 신규 유저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아마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예전에 GM 훈이 와서 윗선에서는 이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던데, 누군가는 이 현상을 예측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 정도로 빠르게 이벤트를 꺼내 들 수가 없으니까.
혹은 준비하고 있던 이벤트를 빠르게 수정해서 내놓았을 수도 있겠고.
그리고 그만큼 DS사와 PV사 역시 폭발적으로 주문이 들어와 매출이 늘었다는 뉴스거리도 보였다.
게임에 접속한 전사 형이 그런 기사들을 보고는 감탄을 했다.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확실한 이슈가 됐어.”
“네, 그런 것 같아요.”
다른 게임들의 연이은 출시로 약간은 지지부진한 관심 속에 놓여 있던 로스트 스카이가 이번에 다른 게임사의 게임들을 한 번에 눌러 버렸다.
게임 속 물건의 값어치가 100억대가 넘어간다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까?
“안 그래도 회장님이 직접 연락을 하셨어요.”
“회장님이면…… DS?”
“네, 덕분에 매출이 확 늘었다고 좋아하시던데요.”
“흠, 확실히 네가 그 회사의 복덩이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기기는 DS의 VRS다.
PV의 것이 아니라.
듣기로 PV도 꽤 많이 팔린다고는 했는데 내 덕분인지 DS의 VRS를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예전과는 이름값이 달라진 셈.
“너도 더 유명해졌고 말이지.”
“하하…….”
전사 형이 놀리듯이 말하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는 부동의 랭킹 1위라 유명했다면 이제는 어딜 가도 100억이라는 이름표가 내 옆에 따라 다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경매가 되었다는 말이고.
물론 이게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큼 큰돈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유명 프로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도 몇 천억 대의 값어치를 가지는 시대니까.
다만 이게 그동안 단순히 게임이라고 치부하던 가상현실에서 나온 액수라는 점에 다들 주목했다.
그리고 우리뿐만 아니라 구매자인 초월 길드도 굉장히 유명해졌고.
한 번에 백억 대의 돈을 투자할 정도의 길드가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생각해 보면 초월 길드 말고도 수많은 길드들이 그 경매에 참여했었으니.
이제 어지간한 돈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1서버인 필리언 서버에 접속 대기열이 다시 생겨 버렸다.
그것도 꽤 많은 숫자의.
- 아놔, 접속 좀 하자고.
- 지금 대낮 아냐? 왜 지금 대기열이야?
- 다른 서버는 아직 복잡 수준인데…… 1서버만 왜 이래?
- 미쳤네. 다 1서버만 들어오나.
- 주호 사건이 크긴 컸나 봄.
- 다른 서버 좀 가라. 진짜.
“이건 좀 곤란하겠네요.”
“나르샤도 아직이야.”
“챠밍도요.”
확인해 보니 전사 형과 나 말고는 모두 접속을 못한 모양이었다.
“흐음, 그럼 올 때까지 잠시 상황을 볼까?”
“할 수 없죠.”
어차피 움직이려면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
들어올 때까지는 상황을 좀 지켜보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게시판과 채팅창을 보는데 게시판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접속이 안 되니까.
그리고 채팅창은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났다.
바로 레릭 왕국.
레릭 왕국을 팔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레릭 왕국의 소유권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레릭 왕국에 어떠한 실력 행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리고 새로운 주인은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잠시 후 전사 형이 BJ의 영상 중에 하나를 보여 주었다.
다른 곳도 아닌 지하 무덤에 들어가려고 대기 중인 한 BJ의 방송.
유저들이 잔뜩 입구에서 대기하며 드워프들과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 드워프 지하 무덤에 입장하시려면 입장료를 지불하십시오. 아니면 입장할 수 없습니다. 』
“입장하려면 돈을 내라고? 장난해?”
“아놔, 드워프 이 새끼들 미쳤나?”
“한 번 입장에 이게 얼마야?”
“에이씨 더러워서. 주인 바뀌자마자 이게 뭐 하는 짓이냐.”
『 위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를 뿐입니다. 』
그러면서 오러를 쓰는 전투 드워프들이 앞을 막아서자 유저들이 주춤했다.
“흐, 정말 본격적인데?”
아예 전투형 드워프를 배치해서 무덤 입구를 틀어막아 버렸다.
솔직히 유저들이 하려고 들면 어떻게든 뚫고 지나갈 수야 있겠지만…….
만약 여기서 저 전투형 드워프와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그 뒤가 골치 아파진다.
그렇게 되면 그 유저는 레릭 왕국에서 어떠한 상행위를 할 수 없으니까.
아이템 제작은 물론이거니와 물약조차 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아니, 물약은 고사하고 레릭 왕국에서 NPC들에게 쫓겨 다닐 테니.
실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해도 어지간히 간 큰 유저가 아니라면 저 NPC들을 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저 유저들이 앞에서 욕을 하면서 혀를 찰 수밖에.
“아, 진짜. 옛날이 좋았는데.”
“주호는 이런 짓 하나도 안 했잖아.”
“신화 길드 자체가 통제를 안 해.”
“진짜 여기서 클래스가 차이 난다.”
“앞으로 이 꼴 계속 봐야 함?”
“어쩌겠어. 여기서 사냥할 거면 돈 내고 해야지.”
“초월 길드 이 새끼들 정말 악질이네.”
“아, 그렇다고 너무 비싼 것도 아니고…… 내려면 낼 수야 있는데 기분 찝찝하네.”
그런데 문제가 한 번 더 생겼다.
길드마다 책정된 입장료에 차이가 있었다.
“야, 왜 우린 세 배야?”
“미친 것 아냐? 다섯 배라니?”
『 해당 길드에서 가실 수 있는 층수에 따라 입장료가 변경됩니다. 』
한마디로 깊은 층수로 내려가고 싶으면 돈을 더 내라는 말이었다.
전사 형도 그걸 보고는 결국 웃어 버렸다.
“아마도 층마다 전투형 NPC가 지키고 있으려나?”
“네, 그런 모양이에요.”
딱 극한의 욕을 들어먹지 않을 정도의 입장료 책정.
누가 책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슬아슬할 정도로 가격을 조절했다.
오히려 상위 유저들에게는 얼마 안 되는 돈일 수도 있었고.
그런 유저들은 돈이 많다 보니까 그냥 더러워서 내고 들어간다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실랑이를 한다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아까워 보였으니까.
“통제를 마구잡이로 하는 건 아니네요.”
“자기들도 머리가 있으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 테니까. 전 서버의 유저들을 대상으로 싸움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대놓고 모든 유저를 던전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입장료의 차이를 둬서 좀 불편하게 만들었을 뿐.
그리고 이런 식으로 걷어 들이다 보면 우리에게 주었던 경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 회수할지도.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나왔다.
일련의 길드들이 접속해서 드워프 지하 무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전투형 드워프들이 그 유저들을 앞에서 막아섰다.
『 입장이 제한된 길드입니다.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
“뭐? 이 새끼들 지금 뭐라는 거야?”
“장난해?”
『 입장 제한 목록에 있는 길드입니다. 돌아가십시오. 』
강경한 NPC들의 태도에 평소와 같이 입장하려던 길드들이 바로 난색을 표했다.
전사 형이 그 길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혀를 찼다.
“하, 적대 길드들은 아예 막겠다는 건가?”
아마도 초월 길드와 사이가 좋지 않다던가 경쟁 관계에 놓인 길드들을 입구에서 틀어막은 모양인데 그중에는 내가 아는 길드들도 상당히 보였다.
“저런 식으로 막으면 아예 못 크겠죠?”
“어, 사냥을 못 하는데 무슨 수로. 상위 랭킹에서는 하루만 사냥 못 해도 뒤로 확 밀릴 거다.”
초월 길드에서는 사냥터를 통째로 쥐고 있다는 장점을 십분 활용했다.
이렇게 되면 적대 길드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초월 길드가 싫다고 레릭 왕국 전체에 싸움을 걸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니까.
결국 지하 무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사냥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진 다른 사냥터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
그렇다고 예전의 아래 등급 던전으로 내려가기에는 손해가 너무 심했다.
사냥을 제대로 하려면 결국 귀족들의 탐사대에 끼어서 움직이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도 저렇게 할 걸 그랬나?”
전사 형이 우스갯소리로 말하자 그저 웃음만 보였다.
욕이야 좀 먹겠지만.
확실히 효과적이기는 했다.
빠른 시간 내에 돈을 모을 방법.
그리고 경쟁자를 찍어 누를 수 있는 방법으로도.
얼마 뒤 우리 팀과 최강 길드, 연합 쪽 사람들이 전부 대기열을 뚫고 접속을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카이저> 허, 이놈들 봐라? 입장을 막는데?
<스칼렛> 우리도 막혔어요.
<이슬두잔> 저희 길드도.
심지어 리더의 퍼스트클래스와 황룡의 미르 길드.
화련의 헤라 길드까지 입장을 모조리 막아 버렸다.
머리끝까지 열이 뻗은 화련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
<화련> 전신 저 새끼가 진짜 미쳤나?
<리더> 아마 우리 탐사대 쪽을 통째로 막은 모양입니다.
<황룡> 밖에서 보기엔 동맹이라 이거죠. 탐사대 목록을 볼 수 있으니.
<폭군> 지금 가서 전신 죽여 버리고 옵니까?
재중이 형이 탐사대 전용 채팅창을 보고는 알 듯 말 듯한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아아, 괜찮지. 그림이 생각보다 좋아 보여서.”
그 말에 우리 팀 모두 머리에 물음표를 잔뜩 띄웠다.
그림이 괜찮다고?
우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재중이 형이 설명을 했다.
“자, 이제 곧 우린 이 레릭 왕국을 엎어 버릴 거야. 맞지?”
“네, 그렇죠.”
약속된 파탄.
레릭 왕국을 팔아먹고 난 뒤 엎어 버릴 계획이었다.
“자, 그렇게 되면 누가 가장 먼저 의심을 살까?”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했더니 답이 바로 나왔다.
챠밍이 먼저 대답을 했다.
“우리일 거예요.”
“정답. 누가 봐도 우리가 수상해. 팔아먹은 지 얼마 안 된 왕국이 돌아선다. 이건 의심 사기에 딱 좋기도 하고.”
“그럼 어떻게 하면 돼요?”
다시 한 번 시선이 재중이 형에게 집중되자 말을 이어갔다.
“자, 지금 그림이 딱 좋아졌어. 마침 초월 쪽에서도 고맙게 통제를 해 주고. 우린 이걸 반대로 이용한다.”
반대로 이용한다고?
재중이 형의 그 말에 머릿속에 스쳐 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지금 레릭 왕국을 치자는 거죠?”
“역시 우리 주호, 머리가 좋아.”
의심을 사지 않도록.
드워프들과 적대적인 포지션을 만든다.
“전신한테는 고마워해야 할 판이야. 억지로 이런 그림을 만들었으면 그림이 안 좋아지니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는 것까지 다 종합해서 전략을 짠다 이건가.
역시.
사실 며칠간 기다리려던 이유도 레릭 왕국을 넘겨주자마자 레릭 왕국이 돌아서면 우리가 의심을 받을 수 있어서였는데, 전신 덕분에 그 기간도 확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꽤 처절하게 싸울 필요가 있어. 드워프들과 우린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앞으로는 모든 유저가 드워프들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지금 적대를 한다고 해도 큰 상관이 없었다.
“그럼 드워프들을 한번 털어 보러 가 볼까요?”
이왕 하는 것.
확실하게.
해야겠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