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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619화 (609/1,404)

#619화 악당 용사? (6)

이쁜소녀의 할아버지인 DS 회장님의 돌발 발언에 모두 당황했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주호> 형, 이거 어떻게 할까요?

<불멸> 아, 잠시만. 나도 계산기 돌리는 중이다.

사실 이분이 여기 끼기에는 체급이 달라서.

굳이 비교를 하자면 작은 랩터들이 사는 무리에 티라노사우루스가 와서 활개를 치는 그런 느낌이려나.

일단 노는 물 자체가 다르다.

이쁜소녀의 할아버지가 재채기 한 번만 해도 이곳 판도를 싹 갈아엎을 수 있을 테니.

당연하게도 마음만 먹는다면 레릭 왕국 정도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주변에 포진해 있는 경쟁자들을 죄다 제치고.

아니, 솔직히 경쟁자라고 하기도 좀 그렇지.

<불멸> 흠, 일이 너무 꼬이는데?

<주호> 역시 그렇죠?

미리 준비해 둔 계획들이 있었는데 지금 이쁜소녀의 할아버지가 레릭 왕국을 사 버리게 되면 첫 단추부터 완전히 다 갈아엎어야 한다.

물론 반대로 순탄하게 지금 상황을 유지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쪽은 너무 걸리는 게 많아.

<불멸> 역시 안 되겠다.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

이건 받을 수 없는 제안이다.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이번 건은 받지 못하겠습니다. 미리 계획해 둔 일이 있어서요.”

내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하자 조금 아쉽다는 듯 말을 꺼내셨다.

“흠? 그런가?”

“네, 여기서는 말씀드리긴 좀 그렇습니다.”

“자네, 또 재밌는 일을 꾸미고 있나 보군.”

“필요한 일을 하는 것뿐이죠.”

“필요한 일이라……. 그럼 그렇게 하게.”

잠시 생각을 하던 회장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양가 놈이 여기에 투자를 한다고 하길래 조금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되었군.”

PV의 회장?

“그렇습니까?”

설마 직접 나선다는 것은 아니겠지?

저쪽 역시 체급이 다르긴 마찬가지니까.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금을 받아 활동하는 유저들은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대놓고 도와주지는 못하겠지. 나나 양가 놈이나. 여기에 접속하는 유저들의 대부분이 고객이니까.”

“그건 다행이군요.”

로스트 스카이에 접속하는 유저들은 거의 DS나 PV의 VRS를 쓰고 있었다.

물론 다른 제조사의 기기를 쓰기도 하지만 그쪽은 이제 커나가는 실정이라.

실질적으로 꽤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 기업사가 한쪽만 일방적으로 몰아주는 행동은 아마 그렇게 좋게 보이지는 않을 터.

만약 DS나 PV의 스폰을 받아 게임 내에서 왕 행세라도 하고 다니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거라네.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도 이렇게 1위를 해내고 있으니.”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뒤로 몰래 도와주기는 할 거다. 조심하는 게 좋아.”

대놓고 하지는 못해도 다른 방법으로 도울 수 있다는 건가.

이건 좀 마음에 걸리네.

“물론 나도 그냥 보고만 있진 않을 거고.”

알아서 퍼 주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도움을 주면서 우리를 휘두르는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이야기를 끝낸 뒤 다시 사장님에게 신호를 주었다.

<주호> 계속하셔도 됩니다.

<카이저> 흠, 알았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레릭 왕국의 운영권을 경매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오, 이제 시작한다.”

“계속 기다렸다고!”

그리고 그대로 경매가 진행되었다.

“물건이 물건인 만큼 단위를 좀 조정하겠습니다. 시작 금액 10억에서 천만 원 단위로만 금액을 올릴 수 있습니다.”

사장님의 시작이 10억이라는 말에는 다들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

비싸다고 투덜대는 이조차 없는 상황.

반대로 말하면 이 이상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고.

“10억 5천.”

누군가 5천을 올리는 것을 신호탄으로 경매가 시작되자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11억.”

“11억 5천.”

“12억.”

.

.

분명 사장님은 천만 원 단위라고 했는데 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5천 단위로 가격이 쭉쭉 올라갔다.

마치 천만 원씩 올리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듯.

그리고 그 가격조차도 답답했는지 1억 단위로 가격을 올리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15억.”

“16억.”

.

.

그 광경은 지켜보고 있던 전사 형을 흐뭇하게 만들었고.

“흐, 사람들 돈 많네 많아. 우리나라에 부자들 진짜 많다니까?”

“네, 확실히.”

우리 서버뿐만 아니라 다른 서버에서까지 유저들이 몰리다 보니 경쟁이 보다 생각 이상으로 치열해진 느낌이 들었다.

“19억.”

“20억.”

그리고 기어코 시작가의 두 배인 20억까지 넘어가 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올라가는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을 봐서는 다들 준비해 온 자금이 적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막상 경쟁을 붙여 놓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이야.

얼마 뒤 시작가의 세 배가 넘는 30억이 넘어갔음에도 역시 활활 타오르는 경쟁에 혀를 내둘렀다.

“이거 정말 놀랍네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옆에서 지켜보던 전사 형이 신난 듯 웃었다.

“저 사람들한테는 비싼 아파트 한 채 사는 기분일걸?”

“으음. 그렇게 들으니까 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좀 더 기다려 봐라. 아직 진짜 고객들은 손도 안 들었어.”

그 말에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가 예상했던 큰손들은 정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시작도 안 했다라…….

대체 어디까지 갈 생각이지?

물론 한계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단시간에 레릭 왕국으로 뽑아 먹을 수 있는 한계치.

“50억.”

그리고 50억을 돌파하는 순간.

이전까지 가격을 올려 대던 수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주춤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 정도가 한계이려나?

그런데 전사 형은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건 그냥 돈을 많이 못 모은 녀석들이고.”

대체 전사 형은 얼마를 예상하는 거지?

“형은 얼마를 생각하고 있어요?”

그 말에 전사 형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려 보였다.

응?

하나?

십억은 이미 지나갔고…….

그럼?

“백.”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전사 형이 백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백억요?”

“어, 백. 솔직히 그 정도 투자할 가치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인프라 좋아, 던전 통제도 가능하지. 지하 무덤만 봐도 저거 뽑고도 남는다.”

현재 유일무이한 고렙 던전.

그걸 통째로 차지한다는 건 그 정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눠 먹어야 하니까 개인한테 떨어지는 건 그것보단 적겠지만.”

“돈을 끌어모아서 저렇게 지를 수 있다는 거죠?”

“어, 아이템 한 개라면 저런 식으로는 못하지.”

앞으로 나눠 먹을 게 있으니 한다는 말이었다.

“그냥 거점 만들어서 통째로 파는 게 나을 수도 있겠어요.”

“흠, 뭐. 나쁘진 않는데…… 그걸 유지할 수 있는냐 없느냐의 문제 아니겠어? 레릭 왕국은 드워프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저 가격에는 안정성도 한몫한다는 말이네요.”

내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다른 서버에서도 저렇게 몰려왔지.”

약속된 황금의 땅이라 이건가.

그리고 정말 전사 형의 말처럼 흘러갔다.

50이 60을 넘어 70이 되고.

그래도 숫자가 계속해서 올라가자 몇몇 유저들은 손을 떼기 시작했다.

“칫, 돈이 모자라.”

“아, 젠장.”

“대체 얼마까지 가겠다는 거냐?”

70이 넘어감에도 손을 드는 유저들이 많자 다들 놀라면서도 당황한 눈치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격을 올라갔다.

유저들이 떨어져 나간 만큼 절차가 점점 간단해졌으니.

마치 시장 같던 분위기에서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내지 못하는 진중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지켜보고만 있던 큰 손들이 나섰다.

“80.”

“83.”

“85.”

지금까지는 그냥 장난이었다는 듯 2, 3억씩 올라가는 돈에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이쯤에서부터 각 서버의 핵심 멤버들이 나서는 모습도 보였고.

우리 서버도 영혼, 초월, 페가수스, 유니콘, 천사 등 강한 길드들이 손을 드는 시점이 되었다.

드디어 나서는 건가.

해원 역시도 이 경매에 벼르고 나왔는지 연이어 손을 들었다.

“90.”

역시 고양이가 생선 가게를 그냥 지나갈 리는 없지.

그렇게 급격하게 돈이 올라가더니 결국 전사 형이 말했던 100억이 넘어가 버렸다.

“100.”

그 순간 사람들의 감탄이 쏟아졌고.

“세상에 100이 넘었어.”

“하, 대단하네.”

“저걸 회수할 수 있다는 거야?”

“되니까 지르겠지.”

“어휴, 난 간 떨려서 돈 있어도 못 하겠다.”

“돈 있으면 난 간다.”

그런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저건…….

드디어 나서는 건가?

화련의 언니라는 그 여자가 어느 순간 전신 옆에 나타나 손을 들어 보였다.

“110.”

그리고 한 번에 10억이 올라가자 사람들이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고요함.

이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화련의 언니가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원이 그 모습을 보고는 손을 들려다가 곧 입술을 잘근 씹었다.

준비해 온 자금보다 넘치는 모양인데?

해원이 나서서 불을 붙여 주면 고맙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이상은 안 되는 것 같았다.

한 번에 준비할 수 있는 자금에는 한계가 있을 테니.

다른 길드 유저나 타 서버에서 온 유저들도 질린 듯 손을 내리는 모습이었다.

더 이상 돈을 올리는 유저가 없자 사장님이 결정을 하기 위해 말을 하려는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화련이 손을 들었다.

“120.”

의기양양한 표정 가득하게.

그 모습을 본 챠밍이 걱정되는 듯 말했다.

“너무 심하게 붙인 것 아니에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설마 한 번에 저렇게 올려 버릴 줄은.

불을 붙이라고는 했는데 이 상황에서 10억을 올려 버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화련의 언니가 5억을 더 올려 버렸다.

“125.”

휴.

살았다.

지금 화련이 사 버리면 정말 계획이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

그런데 그때.

화련이 다시 5억을 더 올렸다.

“130.”

!!!

이번에는 재중이 형과 전사 형도 깜짝 놀랐는지 급하게 화련을 쳐다봤다.

<불멸> 아, 진짜 불만 붙이랬지. 누가 정말 이기랬나.

<전사> 이대로 끝나면 망합니다.

그 순간 잠시 멈칫한 화련의 언니가 화련을 지긋이 노려봤다.

저건 마치 ‘어쭈? 네가?’ 딱 이런 느낌이려나?

그리고는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 화련의 언니에게도 저 금액은 무리가 있나 본데…….

만약 여기서 손을 놓아 버리면 정말 계획이 망해 버린다.

제발.

들어라.

들어.

이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도 마찬가지라 화련의 언니의 손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지금 경매에 참여한 모든 유저들도 집중하기는 똑같았고.

화련도 막상 질러 놓고 자기 언니가 반응을 하지 않자 조금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화련> 아, 너무 질렀나?

<주호> 조금만 기다려 보죠.

<화련> 이씨, 안 되면 그냥 내가 사고.

쿨하게 대답하는 화련에 할 말을 잃었다.

화련도 이걸 진짜 살 돈이 있다고……?

대체 이 자매들 뭐 하는 사람들이지?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화련의 언니가 마지막이라도 되는 듯 다시 손을 올렸다.

“135.”

휴.

이제 됐어!

우리 팀도 모두 안심하는 표정으로 안도의 숨을 쉬었다.

당연히 화련에게 연락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손을 슬쩍 올리려는 화련을 봤으니까.

<주호> 화련!! 그만!!

<화련> 이씨, 나도 알아.

아닌 것 같은데?

안 말렸으면 정말 올렸을지도…….

화련이 손을 올리려다가 내리니 화련의 언니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 것처럼.

둘 다 스케일이 완전 저세상 스케일이군.

조금 더 기다리던 사장님이 변화가 없자 결국 마무리를 지었다.

“135억 낙찰!”

* * * * *

희대의 가격으로 경매가 끝나고.

우리를 찾아온 화련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칫, 더 올릴 수 있었는데.”

아니, 더 올렸으면 우리가 망했어.

“그래서 이제 시작하는 거야?”

화련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단맛을 보게 해 주고요.”

“너, 진짜. 악당 같아.”

“하하…….”

악당이든 뭐든.

우리에게 나쁘진 않잖아?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즐거워하는 화련과 웃음을 한 번 주고받은 뒤 악수를 하고는 그대로 헤어졌다.

며칠 뒤.

기다리고 있던 고대 드워프 왕을 찾아가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레릭 왕국, 엎어 버리시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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