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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96화 (586/1,404)

#596화 반쪽짜리 봉인 (5)

방금 탐식이라고 했나?

르아 카르테를 보고 정확하게 탐식이라고 부르는 여성을 지긋이 쳐다봤다.

탐식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때가 드워프들의 왕인 카르바할을 처음 만났을 때였나?

그때 분명히 가르시아 제국의 황제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탐식이라는 용어를 들었다.

그다음에는 그 가짜 황제와 대면한 자리에서 탐식이라는 말을 들었고.

르아 카르테를 탐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전부 중요도가 있는 NPC들이었다.

그 이후에는 누구에게도 탐식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대체 누구지?

그녀를 NPC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은 분명히 머리 위에 유저를 표시하는 아이디가 떠 있기 때문이었다.

NPC들과 유저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식은 확실히 다르니까.

설마 저 여성이 엔느처럼 다른 방식으로 르아 카르테에 대한 정보를 알아낸 건가?

아니라면 역시 다른 서버에서?

다른 서버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쯤 르아 카르테는 각 서버마다 한 자루씩은 풀렸을 테니까.

유저들이 대륙으로 넘어오면서 누군가는 르아 카르테를 얻고 시작했을 것이다.

탐식이라고 바로 말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적어도 르아 카르테를 가지고 드워프 왕을 만났다는 말이 된다.

용의 대지는 이미 우리 서버 덕분에 위치가 충분히 알려졌고, 지름길을 통해서 지나갈 수 있는 방법도 역시 알려졌으니.

하려고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겠지.

추가 봉인을 제대로 풀 수 있으냐 없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거기까지는 그 서버의 일이라 내가 자세히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서버의 일만 처리하는 것도 바쁜데 굳이 다른 서버까지 들여다볼 여유도 없고.

만약 이 여성이 다른 서버에서 하다가 넘어온 케이스라면 어느 정도 말이 되는데…….

그리고 르아 카르테가 반응한 것을 봐서는 아마 다른 유일 템이나 그에 준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야.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대화를 풀어 가야 하지?

재중이 형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긋이 여성을 쳐다보고 있자 여성의 보랏빛 눈빛이 위아래로 내 몸을 쭉 훑었다.

시선 속에 은근히 이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도도함 같은 것도 느껴졌고.

흐음, 화련처럼 돈이 많은 여자인가?

자신감?

당당함?

아냐…….

저건 그런 종류의 시선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다르다.

오히려 무게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시선에 순간 몸이 바르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방금 몸이 알아서 반응한 건가?

저 여자를?

마치 위기감이 느껴질 때 몸이 반응을 하듯, 온몸에 힘이 들어가자 나조차 깜짝 놀라버렸다.

그리고 몸이 서서히 무거워지는 느낌까지 동시에 들기 시작했다.

등줄기에 싸하게 느껴지는 무거운 압박.

아니, 실제로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안전지대인 이런 도시 안에서 이런 압박감이라니…….

거기다 저 여성의 보랏빛 눈빛이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몸이 베이는 것 같은 날카로움까지 동시에 전해졌다.

대체 뭐야?

유저가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그것도 시선 하나로?

처음 느껴보는 압박감에 르아 카르테를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안전지대에서 전투가 안 된다는 사실은 이미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운 채로.

이건.

그냥 본능이다.

가만히 있으면 눌릴 것 같은 그런.

긴장감 가득한 눈빛으로 여성을 바라보자 한순간 여성이 미소짓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누르던 기운들이 싹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쁘지 않네.”

방금 내가 느낀 그 압박감이 거짓이 아니었어.

정확하게 내 주변이 무거워지면서 나를 누르고 있다가 저 여성이 표정을 풀자 바로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설마 이건 스킬인가?

안전지대에서 스킬을 쓴다고?

유저가?

바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보는데 주변에 걸어다니는 유저와 대장간에서 무기를 구경하는 유저들은 지금 상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나와 저 여성이 대치하고 있는 이 순간을 아예 감지하지도 못한 것 같았다.

아니…….

심지어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아?

랭킹 1위다 보니 어디를 가도 한 번씩은 유저들의 시선을 받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 단 한 명의 유저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접속이 끊긴 것이 아니라면 거의 말이 되지 않는 일인데…….

으음.

생각나는 딱 하나 남은 가정.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운영자입니까?”

안전지대에서의 압력.

그리고 완전한 공간의 분리.

거기다 유저와 같은 아이디.

이걸 생각해 보면 딱 하나 밖에 답이 나오지 않는다.

확실한 것 같은데.

왜 이 시점에서 운영자가 내게 온 거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 여성에게서 완전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뭐라는 거야? 말 똑바로 안 해?”

……?

“방금 운영자라고 했…….”

“아, 진짜 공용어로 말하라고.”

……?

못 알아듣는다고?

혹시나 해서 다시 말해 봤다.

“운, 영, 자.”

그러자 갑자기 여성의 눈빛이 싸늘해지면서 다시 내게 압박이 걸려왔다.

주변 공기를 내리누르는 강력한 압박에 순간 무릎이 휘청거림을 느꼈다.

이 압박.

확실히 저 여자가 만들어 내고 있어.

“너, 그냥 죽여 버린다.”

그리고 날 노려보면서 하는 말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건.

장난이 아니야.

좀 전까지는 그냥 간을 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진짜다.

“아, 이쪽 말로 똑바로 하죠. 화 푸시죠.”

“다시 날 짜증 나게 만들지 마. 정말 죽여 버릴 뻔했잖아.”

이 녀석…….

운영자는커녕.

유저도 아니다.

운영자나 유저라면 운영자라는 말에 이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으니까.

이건 NPC들에게서나 나올 반응이었다.

특수한 단어를 인지하지 못하는.

그런데 유저의 아이디를 쓰고 있어?

대체 정체가 뭐야?

이게 가능이나 한 건가?

완전 처음 보는 현상에 머리를 팽팽하게 굴려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보가 너무 없어.

순간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여기 문제가 좀 생겼어요.

그런데 재중이 형에게 연락이 전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특수 결계로 인한 시스템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

뭐?

시스템을 막는다고?

정말 운영자가 아냐?

그때 그 여성이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게 말을 했다.

“어디로 말을 전하는 걸까? 여기 집중 좀 하지?”

“혹시…… 본인이 차단한 겁니까?”

“응, 뭔가 나가려고 하길래.”

하, 갈수록 가관이네.

그러고는 재밌다는 표정으로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나왔더니 재밌는 일들이 많네. 그럼 조금 더 살펴볼까?”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계속 울려 댔다.

《 상대방이 주호 님을 스캔합니다. 》

《 스캔에 저항합니다. 》

《 레벨 차이가 심해 저항에 실패했습니다. 》

《 상대방이 주호 님의 인벤토리를 간파합니다. 》

레벨 차이가 심하다고?

지금 현재 내 레벨은 거대 뱀을 잡아 150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유저 중에서는 당연히 레벨 순위가 1위였고.

그런데 내 레벨과 레벨 차이가 심하다니.

“헤에, 탐식에 드래곤 슬레이어. 그리고 알 수 없는 무기까지 가지고 있네? 처음 보는데?”

확실히 인벤토리 안에 있는 드래곤 슬레이어와 발루딘을 봤구나.

그런데 발루딘을 보고는 처음 보는 무기라는 말에서 확신을 얻었다.

발루딘은 운영자가 직접 이벤트로 뿌린 무기니까.

이로써 확실해졌다.

저건 유저가 절대 아니야.

우리 서버의 유저라면.

발루딘을 모를 리가 없었다.

무슨 방법으로 유저의 아이디를 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NPC다.

조금 형태가 다른 NPC라고 생각하면 지금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여성이 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했다.

“지하 무덤의 열쇠도 가지고 있네. 그럼 봉인을 흔든 녀석이 너였어?”

“그게 무슨?”

《 ‘아스티아’와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봉인은 흔들어?

거기다 호감도가 대폭 상승했다는 말에 순간 머릿속에 먼가가 계속 스쳐 갔다.

설마.

아니겠지.

아스티아라는 아이디를 가진 보랏빛 헤어를 길게 내린 여성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너, 마음에 들었다. 나중에 내가 한 번은 살려 줄게.”

설마 진짜 죽이려고 했던 건가?

아니, 방금 생각한 가정에 의하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말했다.

“영웅의 싹은 잘라 버리는 게 맞는데 넌 예외로 해 주는 거야. 설마 영웅의 씨앗이 나를 도와주다니. 오래 살고 볼일이네.”

역시.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하 무덤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면서 우연찮게 봉인을 흔들어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사이 저 녀석이 밖으로 빠져나왔고.

대전사 칼룬이 없어졌다는 말한 그 고대 마물.

그게 바로 저 녀석이었다.

NPC도 아닌.

진짜 네임드.

최소 가짜 황제와 맞먹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등장 시기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쪽이 더 강한 건가?

그러고 보니 가짜 황제도 NPC처럼 타이틀을 달고 있었으니 이 녀석도 불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강한데 유저로 정체를 숨기는 능력이라니.

버젓이 유저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능력에 혀를 찼다.

이건 모르고 있으면 그냥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안전지대라 생각되는 한복판에서 이 정도 급의 네임드가 설치면 그냥 그곳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지도.

바로 내가 아는 NPC들과 비교를 시작했다.

대전사 칼룬이 이 녀석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대전사 칼룬으로는 절대 불가능이다.

고대 드워프 왕도 마찬가지.

둘 다 지하의 거대 뱀도 처리하지 못해서 우리에게 의뢰를 한 건데 이 녀석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테니까.

유저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당장 이 녀석이 결계를 치고 돌아다니는데 전혀 눈치도 못 채는 마당에 싸움이 될 리가.

만약 지금 이 녀석이 여길 쓸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아마 순식간에 레릭 왕국이 날아가 버릴 것이다.

기껏 드워프들의 왕국이 만들어졌는데 날아가 버리면 너무 아깝지.

당분간은 여기서 뽑아낼 것들이 많았다.

여기서는 운을 띄워 봐야 하나?

“여기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생각해 보면 아스티아라는 여성이 레릭 왕국 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을 봉인한 봉인지 바로 위에 생긴 왕국을 그냥 둔다?

나 같으면 뒤집어도 벌써 수십 번은 뒤집었을 텐데.

능력?

아마 차고도 넘칠 것이다.

거기다 가짜 황제처럼 제한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마음만 먹으면 엎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터.

아스티아라는 녀석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이쪽도 대처를 바꿔야 해.

“흐응? 어쩔까나아~?”

내 물음에 마치 장난을 치듯 내게 물어왔다.

아직까지 날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둔다는 건 아까 확인했듯 호감도가 많이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이상할 정도로 내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혹시 날 죽이지 않는 게 아니라 죽이지 못하는 걸까?

아니, 이건 비약이 너무 심해.

그래도 호감은 확실히 있어 보이니.

“혹시 여길 파괴할 생각이면 조금 미뤄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부탁이야?”

“일단 그렇다고 해 두죠.”

내 대답에 아스티아가 보랏빛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좀 구경하다 질리면 부숴 버리려고 했는데에…….”

역시.

한 성격 하는 녀석이다.

여차하면.

싸워야 할지도.

내가 과연 지금 상태로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의 조합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그때 아스티아가 하얀 손을 들어 가느다란 검지를 내게 겨누었다.

그리고 뭔가가 번쩍이는가 싶은 순간.

발루딘을 꺼내 들어 르아 카르테의 날과 함께 전면으로 빠르게 교차하면서 몸을 최대한 낮게 낮추었다.

【 오러 블레이드! 】

키이잉!!

카갸갹!!

내 반응속도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 자세로 르아 카르테와 발루딘을 교차했지만 단 한 방에 방어가 무너지면서 두 개의 블레이드와 함께 몸이 크게 밀려 나갔다.

큭.

한 방에 밀려?

다행히 정체 모를 보랏빛 공격은 사선으로 밀려 나가 멀리 튕겨 나갔고.

그리고 그 튕겨 나간 공격이 가까이 있던 석조 건물들에 닫자마자 그대로 깔끔하게 뚫고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설마 건물들을 그냥 녹이고 지나간 건가?

공격이 지나간 자국이 완전히 절단된 것처럼 매끄러웠다.

저건 관통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관통해 버렸다.

막지 못했으면…….

죽었어.

“헤에, 역시 영웅의 씨앗이네.”

마치 놀이라도 한 것처럼 환하게 웃는 아스티아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 녀석을 이기려면.

정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때 아스티아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 마음에 들었어.”

“여길 부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당분간?”

하.

어찌 됐든 마음을 돌리는 데는 성공한 모양이네.

그리고 아스티아가 나를 보고 미소 짓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대신 오늘부터 날 재밌게 해 줘야 해.”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 용마족 아스티아를 재밌게 해 달라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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