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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90화 (580/1,404)

#590화 왕의 시험 (5)

어둠 속에서 얼핏 반사되어 나오는 실루엣에서 비늘의 형상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드래곤의 그것과 굉장히 흡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다 전면으로 길쭉하게 뻗어 있는 뿔의 형상까지.

그래서 당연히 드래곤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확인해 보니 형체가 전혀 달랐다.

저건 드래곤이 아니다.

오히려 레비아탄과 비슷한 형태인가?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길게 뻗은 유선형의 몸체를 가진 긴 용의 형체.

“크어어어어!!”

지하 공동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하울링.

단순히 그 울림만으로 몸이 저릿저릿하게 질리는 느낌이 들었다.

체격 차이가 너무 크다.

한눈에 몸체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길이.

어떻게 이런 녀석이 이런 지하에 있는지 상상도 안 되었지만.

녀석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을 헤집어 놓으면서 마치 지진과도 같은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우리를 발견한 듯 녀석의 좌우로 난 네 개의 눈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뭔가 정상적인 네임드가 아니야.

전사 형이 녀석의 움직임을 보더니 바로 외쳤다.

“온다!”

쿠구구궁.

바닥이 통째로 패여 나가며 녀석이 전진하자 전사 형이 듀라한 쉴드를 들고 앞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재중이 형이 그런 전사 형의 갑옷을 잡고는 지체 없이 뒤로 잡아당겼다.

“막으면 죽어!”

“네?!”

“전부 피해!”

재중이 형이 피하라는 말을 하자마자 우리 팀은 좌우로 퍼지면서 쫙 갈라섰다.

전사 형도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고.

콰아아악!

그리고 그사이 육중한 몸을 밀고 나온 녀석이 공동 바닥을 온통 헤집어놓으면서 마치 지하철이 지나가는 것인 양 빠른 속도로 공동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그것도 한쪽 벽을 완전히 박살 내고는.

한참 동안 녀석의 몸이 옆으로 지나가자 바로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이건 정말 막았으면 죽었어.

체력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저런 거대한 신체에서 오는 돌격에 짓눌려 벽에 같이 파묻혀 버리면 물약도 전혀 소용없을 것이다.

저런 돌격 속도면 정말 빠져나오지도 못해.

녀석이 터널을 뚫듯이 벽을 뚫고 지나가자 전사 형의 표정이 해쓱하게 변해 버렸다.

“허……! 이 녀석 대체 얼마나 큰 거야?!”

전사 형은 녀석의 신체 전부를 보지 못해서 뛰쳐나갔겠지만.

나와 재중이 형은 끝없어 보이는 녀석의 길이를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녀석이 우리 옆을 지나가면서 확실히 봤다.

딱 레비아탄이 지상에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이쁜소녀가 놀라서 말했다.

“레비아탄 같아요.”

“아냐, 레비아탄은 아니야.”

일단 형체가 좀 다르다.

푸른빛의 비늘을 가지고 있던 녀석과는 달리 이 녀석은 검은빛의 비늘을 가지고 있었고, 완전 유선형이던 레비아탄과 달리 곳곳이 뭉퉁한 형태를 가졌다.

마치 거친 곳을 헤치고 지나가기 위해 진화된 것처럼.

그렇게 녀석이 뚫고 지나간 벽을 바라보자 어느 순간 다시 공동 전체에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다시 온다!”

재중이 형의 외침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녀석이 뚫고 지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돌아서 오는 거지?

아냐, 돌파 속도만 보면…….

충분히 가능하려나?

땅을 뚫고 가면서도 그런 속도라니.

대체 여기 네임드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그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내 옆으로 피신했던 엔느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 외쳤다.

“11시 방향이에요!!”

11시?

고개를 돌리자 11시 방향 쪽의 어둠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돌진해 오는 압력이 느껴졌다.

방금 우리가 들어왔던 6시 방향 쪽으로 튀어나가지 않았었나?

어떻게 다시 저쪽에서?

설마 이런 녀석이 두 마리?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데?

“일단 피해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녀석이 다시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콰아아아!!

바닥을 몸으로 헤집고 지나가는 녀석을 피해 몸을 날린 뒤 다시 녀석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이번엔 대각선으로 움직여 6시가 아닌 3시 방향을 돌파해 사라져 버렸다.

저건 모습이 완전히 똑같은데?

두 마리가 아니라 애초에 한 마리였다.

6시로 나갔던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달려오더니 물었다.

“뭔가 느껴졌어?”

“아뇨, 전혀요. 형은요?”

“나도 그래.”

터널처럼 뚫고 나간 뒤로 녀석은 아예 감각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방향을 예측할 수도 없었고.

뭔가 이상해.

저 녀석.

일반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스킬이라던지.

그때 다시 챠밍의 외침이 들려왔다.

“또 와요!”

이건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건가?

이번엔 3시 방향에서 튀어나오더니 9시 방향으로 땅을 헤집고 사라져버렸다.

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녀석의 속도가 정말 빠르기는 한데 일단 나오기 전에 고유의 진동 같은 것은 느껴졌다.

그리고 서로 눈으로 확인해 주면 달려 나오는 방향은 가늠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재중이 형도 그걸 눈치챘는지 녀석이 지나간 바닥에 시선을 주었다.

시뻘겋게 변한 패인 자국.

그런 자국 전체가 계속 끓어오르더니 점점 주변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처럼.

녀석이 지나갈 때마다 공동 바닥에 스키드 마크 같은 자국을 냈는데, 처음 녀석이 한두 번 움직일 때는 그나마 표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좌우상하 녀석이 돌아다니면서 계속 자국을 내자 어느새 공동 바닥의 대부분이 용암에 끓어오르는 것처럼 불타올랐다.

발 디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재중이 형이 바로 혀를 찼다.

“하, 이런 식이었나?!”

녀석이 돌아다니면서 우리가 서 있을 장소를 점점 없애 버리자 압박감이 계속 커졌다.

심지어 녀석을 피할 자리조차 계속 사라져 갔고.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미 우리는 꽤 많은 땅을 뺏긴 셈이었다.

《 용암의 저주 1단계가 활성화됩니다. 》

《 화염 대미지가 30% 누적됩니다. 》

《 저주로 체력 회복 속도가 10% 저하됩니다. 》

《 저주 단계가 올라갈수록 화염 대미지와 체력 회복 속도 저하가 추가 누적됩니다. 》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대기 시작했다.

이건 디버프?

단순히 용암 자국만 피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근처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용암의 저주가 걸렸다.

거기다 이 저주는 한 번에 사라지지도 않았다.

《 용암의 저주에 계속 노출되었습니다. 》

《 용암의 저주가 누적됩니다. 》

《 용암의 저주 2단계가 활성화됩니다. 》

《 화염 대미지가 70% 누적됩니다. 》

《 저주로 체력 회복 속도가 25% 저하됩니다. 》

그리고 저주의 단계가 올라가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너무 빠르잖아.

심지어 퍼센트도 단순히 두 배가 올라가는 것도 아닌 추가 수치가 더 붙어서 올라갔다.

칫, 이 상태로 단계가 더 올라가면.

절대 버틸 수 없어.

이쁜소녀도 놀랐는지 외쳤다.

“벌써 2단계에요. 어떻게 해요?!”

“잠시만. 생각 중이야.”

일단 저 녀석의 전진을 무조건 막아 내야 한다.

아니면 이대로 물약을 다 소모해 죽을 테니까.

챠밍과 막내별이 가지고 있는 디버프 해제 스킬로 계속 풀어 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오빠, 안 돼요.”

“저도 하나도 안 먹혀요.”

다른 디버프 해제 스킬로는 답이 없다는 말.

엔느 역시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렇게 죽으려고 들어온 게 아닌데.”

그러면서 계속 눈을 돌리는 것이 뭔가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형, 셋이서 한번 막아 보죠.”

전사 형과 재중이 형에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앞에서 몸으로 막아 볼게.”

“아니, 그건 바로 튕겨 나갈 거야. 몸으로 막는 건 무리다.”

그렇게 잠시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결국 임시방편으로 해결책을 만들었다.

“딱 한 번만 멈춰 세워 보자. 그 뒤는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재중이 형이 그 말을 하자마자 눈치챘다.

저런 덩치를 멈출 방법은 아마 이것밖엔 없겠지.

“폭발력 있는 스킬을 쏟아붓자는 말이죠?”

“그래, 어설프게 따로 쏴 봐야 마력만 날릴 뿐이야. 같은 타이밍에 딱 한 번. 모든 폭발력을 한자리에 모은다.”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을 차징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죽을 테니까.

“타이밍은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바로 전사 형을 바라보았다.

“전사, 다 파악했지?”

“옙! 아까부터 파악해 두었습니다.”

무슨 말이지?

전사 형이 나를 보더니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녀석이 돌아다니는 방향과 순서. 이게 또 정리해 보면 일정하다고.”

“설마?”

“그래, 몇 시 방향으로 나가고 들어가는지. 패턴은 이미 다 외웠다.”

진짜 전사 형.

이런 쪽으로는 최고였다.

딱히 메모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정신없는 와중에 혼자 순서까지 다 파악해서 외워 버리다니.

최고의 재능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처음 녀석이 등장한 순간부터 순서와 패턴을 파악했다는 말이 되니까.

이게 네임드의 공격을 그렇게 잘 막는 이유겠지.

전사 형이 한쪽 방향을 보고는 말했다.

“차징 시간까지 생각하면 11시, 7시, 3시를 지나 5시 때 치면 됩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11시에서 나오는 녀석을 보고는 다들 전사 형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건 세 번 지나가고 난 뒤에.

5시 방향을 향해 쏘면 정확하게 맞출 수 있다는 말이었다.

미리 기다리다 쏘면 타이밍도 완벽할 테고.

11시에 나왔던 녀석이 사라진 다음.

얼마 뒤 7시에서 다시 튀어나왔다.

그다음은 3시에서 한 번 더 튀어나오자 다들 긴장감이 맴돌았다.

“다들 준비!”

전사 형의 외침과 함께 차징했던 스킬을 5시 방향을 향해 조준했다.

아마 이번에 멈춰 세우지 못하면.

더 이상 서 있을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말이기도 하고.

대미지를 누적하기 위해 꺼내 들었던 발루딘을 집어넣고 바로 진(眞)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내 들었다.

분명히 녀석은 악마형에 가까웠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용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이 녀석의 옵션이 최대로 발휘되는 네임드라는 뜻도 된다.

제발.

제대로 먹혀야 할 텐데.

그렇게 풀 차징을 하며 기다리다가 5시 방향에서 녀석이 머리를 들이밀자마자 다들 목청 높여 외쳤다.

“옵니다!”

“쏴!”

“전부 쏴요!”

“공격!”

【 데스 버스트! 】

【 데몬 익스플러전! 】

【 기가 라이트닝! 】

【 수룡탄! 】

【 진(眞) 비월참! 】

각자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을 녀석의 머리를 향해 쏟아부었다.

콰콰쾅!!

쿠아앙!!

쾅쾅!!

풀 차징된 강력한 광역 스킬이 모두 터지면서 눈도 뜨기 힘들 정도의 폭발력을 만들어 내었다.

“크에에에엑!!!”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로운 비명 소리.

제발.

멈춰라.

그리고 이 스킬들의 폭발력은 꿋꿋하게 파고들던 녀석을 결국 제자리에 멈추게 만들 수 있었다.

녀석의 머리 부분이 축 늘어져 잠시 멈춰 있는 상황.

거기다 주변의 스키드 마크들이 점점 엷어지면서 디버프들의 단계가 하나씩 내려갔다.

됐어!

통한다!

그리고 이번엔 르아 카르테를 집어넣고 발루딘을 꺼내 들었다.

진(眞) 드래곤 슬레이어와 발루딘.

처음 시도해 보는 조합이라 생소하지만.

아마.

저 녀석에게는 최악의 조합이 될 수도.

“다들! 달려요!”

다시 일어나기 전에!

두 유일 템의 옵션을 살려서.

녀석을 최대한 박살 낸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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