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화 고대 드워프 왕 (6)
마치 나를 네임드 상대하듯 준비를 해 온 녀석들을 보고는 확신을 가졌다.
이 녀석들 정말 나 하나만을 에 두고 준비했구나.
아니라면 이렇게 미리 필요한 템들을 구해 을 리가 없지.
그리고 엔느의 방식도 잘 베낀 것 같았고.
이건 우리 쪽의 동향을 계속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런 초월 길드의 마법사 중 한 명을 제거하고는 다시 은신으로 모습을 감췄다.
【 은신! 】
이번엔 방심해서 당했지만 다음에는 어떨는지……
한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은 좋지 않아.
은신으로 모습을 숨기고 난 뒤 바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면서 감각을 퍼트려 녀석들의 움직임을 확인하는데, 미르 길드원들이 잘 해주는지 초월 길드 유저들에게 무작위로 달라붙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초월 길드원들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사각지대로 움직이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는데 각자 혼자 떨어져서 자리를 잡던 것과 달리 지금은 최소 둘 이상 같은 자리로 이동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진형을 바꿨다……?
설마 방금 마법사 한 명을 잡았다고 그사이 바로 진형을 바꾼 건가?
처음부터 약속이나 된 것처럼 빠르게 위치를 옮기는 모습에 바로 혀를 찼다.
칫.
혼자 있는 녀석이 하나도 없어.
오더를 누가 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화에 대처하는 속도가 최상급이었다.
<주호> 방금 한 명 잡기는 했는데…….
<엔느> 역시. 믿은 보람이 있네요.
<주호> 저쪽이 방심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방금 진형을 다 바꿔 버렸어요. 이제 최소 둘 이상이에요.
<엔느> 여기서 조금 더 시선을 끌어 볼게요.
차라리 엔느, 이쁜소녀와 합류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초월 길드 유저들 대부분이 내게 포커스를 두고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균형이 나오는 중이었다.
초월 길드 중 일부만 상대하는데도 저렇게 부담스러워하는데 만약 초월 길드 유저들이 한쪽으로 집중되면 미르 길드원들의 피해가 너무 커져.
저 정도로 시선을 끌어 주는 것에 만족해야겠지.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해 본다.
두 명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건물 위로 올라가서 빈틈을 노렸다.
정확히 마법사 한 명과 검사 한 명.
간다.
곧장 점프를 해 뛰어내리면서 르아 카르테로 마법사의 머리를 찍어 내렸다.
일단 이 녀석은 경직.
한 놈을 경직시켜 두면 그때부터는 일대일이지.
다음엔…….
곧장 연속동작으로 들어가려는데 한 박자 빠르게 옆에 있던 검사에게서 검이 뻗어져 들어왔다.
까앙!
하이딩 블레이드로 급하게 빗겨 쳐내면서 잠시 균형이 흔들리자 갑자기 내 주변으로 뇌전 화살들이 빈틈을 찾아 뱀처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곧장 르아 카르테와 하이딩 블레이드를 교차로 휘두르면서 날아오는 뇌전 화살들을 쳐내는 사이, 갑자기 검사가 마법사의 목덜미를 잡더니 풀 스윙으로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 마법사를 따라 본인도 내게서 멀리 도망을 갔고.
하……?
짐이 되는 아군을 멀리 던져 버려?
심지어 나와 붙지도 않고 검사 역시 도망을 치는 모습에 얼이 빠졌다.
그걸 쫓아가려고 자세를 낮춰 뛰어나가려는데 곧장 뇌전 화살과 멀티 샷, 더블 샷이 집중적으로 내게 날아왔다.
내가 쫓아가지 못하게 계속 견제가 들어오자 결국 걸음을 멈췄다.
이것들 봐라?
커버하는 속도가 엄청나잖아.
일반적인 유저들이 위기를 감지하고 대처하는 속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은신에 한 명이 당하는 순간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약속이나 한 듯 위치를 포착하고 바로 커버가 들어왔다.
검사는 마법사를 보호하고.
궁수는 견제해서 못 쫓아가게 막고.
이러면 한 명도 잡기 힘들겠는데…….
굳이 하르 가루가 없어도 버틴다는 거군.
휴.
재중이 형이 없는 게 갑자기 서럽게 느껴지네.
만약 형이 있었으면 둘이서 이 정도는 썰어 버릴 수 있었을지도.
한 명은 견제를 막고 다른 한 명이 녹여 버린다던가.
하려고 하면 방법은 많았다.
혼자서 길드 한 개분을 다 상대하려니 조금 벅찬 느낌.
저렇게 행동이 잘 짜여진 녀석들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최소한 견제가 들어오는 것만 어떻게 해도 따라붙어서 잡겠는데.
거기다 붙어서 싸우려고 하지를 않으니 내게 위협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타격을 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
그사이 미르 길드원들이 계속 죽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황룡과 엔느, 이쁘소녀가 커버를 해도 길드원들의 수준이 맞지 않아.
이래서 재중이 형이 조심하라고 했던 건가.
형은 저 녀석들 수준을 알고 있었을 테니.
계속해서 녀석들을 휘젓고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내게서 거리를 벌릴 뿐.
붙으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바로 한숨을 쉬면서 엔느에게 연락을 했다.
<주호> 엔느 님, 이 인간들 원래 이렇게 안 싸워요?
<엔느> 아뇨, 얼마나 호전적인데요…….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그런데 이 인간들은 대체 왜 이러지.
<엔느> 주호 님 영상을 봤으니까 누구보다 잘 알 거예요. 지금 붙으면 게임도 안 된다는 걸.
<주호> 좀 답답하군요.
<엔느> 계속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나마 주호 님이 계셔서 이 정도지. 아니면 벌써 밀렸을 거예요.
내가 뛰어다니면서 여기저기 휘저어 준 덕분에 미르 길드의 부담이 확 줄어들었다.
하지만 해답이 없는 상황.
이대로 시간만 끄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확실하지도 않고.
뭔가 결정타가 있어야 해.
그런데 그때 의외의 변화가 생겼다.
지하의 최하층에서부터 유저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응?
이건…….
처음의 예상이 잘못되었던 건가?
제단에서 나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변화를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초월 길드 유저들도 전부 제 자리에서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아래에 있던 유저들에게서 뭔가를 들었겠지.
<주호> 아무래도 상황이 바뀐 것 같아요.
<엔느> 네?
<주호> 곧 옵니다. 대비하세요.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지금 제단이 열리면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거지?
제단에 들어갔던 유저들의 숫자는 적지 않았다.
그것도 우리에게 적대적인 유저들로.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네임드로 예상되는 녀석.
미리 와서 살펴봤던 녀석들과는 다르게 정보가 하나도 없어.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단에서 해방된 유저들이 우르르 제단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 …발! 살았다!”
“하, 뒤지는 줄 알았네.”
“속았어! 애초에 팔팔하잖아! 주호 이 새끼!”
“야! 거기 안 서?”
“좋은 말로 할 때 서라!”
“니들 같으면 서겠냐!”
“썅! 네임드나 잡아. 새끼들아! 네임드한테는 찍소리도 못 하면서!”
웅성웅성.
최하층에서부터 우리를 배신하고 갔던 유저들이 빠져나오면서 최하층이 금세 북적였다.
그런 유저들을 뒤쫓는 해원 쪽 유저들까지 튀어나오자 혼란은 더해졌고.
그리고.
“크어어어어!!”
다시 울리는 하울링.
이 이상한 상황에서 초월 길드와 잠시 휴전 아닌 휴전을 하고는 서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쁜소녀와 엔느를 포함해 미르 길드원들도 전투를 멈췄고.
내가 다가가자 엔느가 물었다.
“설마 네임드가 바깥으로 나오는 건가요?”
“네,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지금도 엉망인데 상황이 복잡해지겠네요.”
네임드가 바깥으로 설치고 다닌다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초월과 천상 쪽만 공격해 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생각하긴 어려웠고.
최하층에서 도망 나오듯 상층으로 올라온 배신자들이 나를 보고는 바로 삿대질을 했다.
숫자는 대략 반 이상 줄었나?
“야! 주호! 너 때문에...!”
“이 새끼 우릴 속였어!”
그런 녀석들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것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난 딱히 속인 적 없는데? 우리끼리 말하는데 지들이 들어 놓고 설레발 치지 않았나? 난 너희보고 내려가라고 한 적 한 번도 없다.”
“웃기지 마!”
짜증을 내면서도 반박을 하지 못하는 건 그게 사실이니까.
그들을 따라 천상 길드와 몇몇 길드가 동시에 상층에 도달했고, 그사이에 섞여 있던 리사가 날 보더니 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연기를 그렇게 했는데 정작 자기가 물을 먹었으니…….
거기다 해원 역시 리사의 옆에서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
네임드를 공략하러 들어갔던 전신을 포함한 몇몇 유저들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공략은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었고.
저들을 바라본 엔느가 말했다.
“공략이 실패했나 보네요.”
“방해꾼들을 잔뜩 밀어 넣었으니까요. 제대로 되면 그게 더 이상하죠.”
그러면서 최하층을 내려다보았다.
네임드는 아직인가?
유저들을 따라 나올 것 같았던 네임드가 아직 바깥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오지 않으면 곤란한데…….
이렇게 유저들만 바깥으로 나오면 최악이다.
변수.
저 네임드가 변수가 되어 줘야 하니까.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네임드로 추정되는 커다란 녀석이 제단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한 번 비볐다.
어?
뭐지?
쟤가 왜 저기서 나와?
온몸에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
이미 몇 번이나 봐 눈에 익숙한 딱 그것이었다.
거대한 도끼에도 서려 있는 오러가 이미 수십의 유저들을 쓸어내면서 더욱 붉게 물들어 있었고.
거기다 착용한 장비가 완전히 변해 외형이 좀 더 전투적으로 보이기는 한데…….
확실하다.
“칼룬?!”
이쁜소녀도 드워프 대전사 칼룬을 보더니 눈을 슥슥 비벼 보았다.
“제가 잘못 본 것 아니죠?”
“아, 그거 내가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이없기는 나도 마찬가지.
“왜 칼룬이 저기서 나와요?”
이쁜소녀가 손가락으로 칼룬을 가리키면서 물어봐도 해 줄 말이 없었다.
설마 칼룬이 고대 드워프 왕은 아닐 테고.
저 녀석.
그렇게 찾을 때는 없더니 대체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아니, 그보다.
고개를 돌려 해원 쪽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를 배신하고 내려갔던 유저들까지.
그런데 하나같이 칼룬을 보고는 겁을 집어먹은 모양새였다.
전신을 비롯한 초월 길드 유저들은 무덤덤하게 바라보고는 있지만 긴장한 표정은 유지하고 있었고.
설마 저걸 다 고대 드워프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야, 해원. 너 고대 드워프 왕 깨웠다고 하지 않았나?”
“아, 짜증 나게. 말 시키지 마. 안 그래도 못 잡아서 미치겠는데.”
저 대답으로 대충 답이 나왔다.
애초에 저 녀석.
고대 드워프 왕을 깨운 게 아니었어.
그냥 지금까지 헛다리를 집고 있던 거였다.
칼룬을 고대 드워프 왕이라고 생각하면서.
하긴, 오러를 막 날려 대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 있던 몬스터와는 급수가 다르니까.
마침 여기가 드워프들의 무덤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도 저놈을 고대 드워프 왕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불멸> 여기 다 마무리되어 간다. 상황은 어때?
<주호> 난장판이죠. 여러 가지 의미에서요.
그리고 칼룬에 대해서 말해 줬더니 재중이 형 역시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불멸> 그놈이 왜 거기서 나와?
<주호> 저도 모르죠.
<불멸> 그럼, 지금 칼룬 하나를 못 잡아서 저러고 있었단 말이야? 아, 아니지. 네가 가진 발루딘이 아니면 칼룬이 쓰러졌을 리가 없으니까. 거기다 녀석의 스펙을 생각하면…….
<주호> 장비도 완전히 달라요. 어디서 뭘 주워 입은 것 같기도 하고.
<불멸> 흐음, 조금만 기다려. 곧 넘어간다.
드디어 재중이 형이 넘어온다니까 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저 칼룬부터.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겠어.
제단을 나온 칼룬이 곧 계단을 타고 올라오자 다들 네임드를 상대할 진형으로 부산스럽게 변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층에 도달한 대전사 칼룬이 유저들을 상대로 적대적인 포즈를 취하자 유저들의 긴장감이 한층 더 커졌다.
그때.
유저들을 노려보던 칼룬이 나를 발견했는지 성큼성큼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그런 칼룬의 급작스런 전진에 다들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오, 온다!!”
“둘러싸!”
“탱커 앞에!”
“이번에야말로!”
약간의 긴장감.
모습이 좀 변하긴 했는데.
과연 그대로일까?
아님, 정말 다른 건가?
그런 기우는 칼룬이 내 앞에 도착해서 한마디를 하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 주호 님,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아십니까. 』
칼룬이 내게 말을 걸어 님이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을 본 유저들의 표정이 경악에 가깝게 변해갔다.
특히 해원은 지금 상황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크큭, 이거 재밌는데?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다시 한 번 유저들의 턱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 고대 드워프 왕께서 주호 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오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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