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38화 (531/1,404)

#538화 오염된 페가수스 (2)

일단, 워프는 하루에 한 번인가?

하루에 한 번 밖에 못 쓴다고 하지만 이건 다른 스킬들과 비교했을 때 이해할만한 수준이었다.

원하는 지역으로 갈 수 있다는 장점.

그 장점 하나만으로 다른 단점을 모두 씹어 먹고도 남는다.

바로 축복받은 페가수스의 스킬을 사용하려다 손을 멈칫했다.

워프 스킬을 사용할 순 있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이 없다.

바로 좌표.

페가수스에 총 다섯 개 좌표가 등록 가능한데 그 좌표 목록이 모두 비어 있었다.

“한 번이라도 가본 곳에 갈 수 있다는 거냐?”

페가수스에게 묻듯 말하자 내 말을 알아듣는지 녀석의 날개가 활짝 펴졌다.

이건 그렇다, 는 표현이겠고.

적어도 좌표를 등록한 다음에 갈 수 있으니 당장 워프는 쓸 수 없는 셈이었다.

비어 있는 좌표들이라…….

이건 방법이 없진 않지.

<주호> 형, 지금 바이탄 요새 좌표 좀 불러줄 수 있어요?

<불멸> 여기 좌표는 왜?

<주호> 제가 깜짝쇼를 준비했거든요.

<불멸> 뭔지 몰라도 잘 됐나 보네. 여기 좌표가…….

재중이 형에게 바로 좌표를 받아 비어 있는 좌표 중 하나에 저장시켰다.

그리고 바로 페가수스의 스킬을 시전했다.

【 워프! 】

워프 역시 이동 스킬이다 보니 블링크와 비슷한 느낌이 들면서 시야가 한순간에 반전되었다.

그렇게 어두운 시야에 익숙해져 있던 눈에 갑자기 환한 전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빠?”

“어라? 하얀 말이다!”

다 같이 모여 있었는지 챠밍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내가 이런 식으로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거니까.

거기다 내가 탄 새하얀 말을 보고는 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다녀왔어.”

그리고 전사 형과 함께 듀라한과 전투 중이던 재중이 형은 내가 타고 있는 페가수스를 돌아보더니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이건 뭐 완전 달라졌는데?”

“저도 좀 놀랐어요.”

옆에 있던 챠밍과 이쁜소녀는 새하얀 페가수스의 자태에 빠졌는지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새하얗네요. 그렇게 까맣던 말이…….”

“너무 예쁘다아!”

확실히 기존에 있던 그 어떤 탈것과 비교해 봐도 이쪽이 압도적으로 예쁜 쪽에 속했다.

심지어 사방으로 빛을 뿜어내기까지 하니 더 화려하게 보였고.

챠밍이 순간 정신을 차리고는 내게 물었다.

“오빠, 혹시 이동 스킬 있어요?”

“역시나 바로 알아보네.”

내 대답에 챠밍이 감탄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이문도 없는데 여기까지 한 번에 올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잖아요. 뭐, 장거리 이동 스킬 혹은 이전에 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 정도뿐이겠죠.”

“어, 정확해.”

확실히 챠밍은 마법사라 그런지 내가 어떻게 이동해왔는지 바로 추측했다.

“그동안 단거리 이동 스킬은 있어도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스킬은 전혀 없었는데…….”

챠밍이 부럽다는 표정을 전혀 감추지 않으면서 축복받은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한 번 보여줄게.”

“꼭이에요.”

“그래, 현재 상황은 어때?”

그러면서 요새 내부를 훑어봤는데 내가 가기 전과 달리 지금은 성벽 위가 꽤 분주해 보였다.

아니, 대부분의 유저와 NPC가 처절할 정도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성벽 아래에서 바라볼 때도 성벽 위에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했으니까.

개중에는 요새 안에서 활개 치는 녀석들까지 있었다.

내 물음에 챠밍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더 있으면 무너질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오래는 못 버틸 거예요.”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네.”

내가 암흑 지대로 넘어가 있는 사이에 꽤 상황이 불리하게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리를 비웠다고 하지만 이 정도까지 밀린다고?

그때 챠밍이 요새 북쪽이 아닌 동쪽 성벽을 바라보았다.

“동쪽에 도착했어요. 또 다른 네임드가.”

“벌써?”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지?

오려면 한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할 텐데…….

“네, 우리도 오빠가 못 돌아왔으면 그냥 요새를 포기하고 빠져나가려고 했어요.”

그도 그럴 게 북쪽은 지금은 죽고 없는 고르곤이 이끌던 몬스터들과 듀라한이 새로 데리고 온 몬스터들이 합쳐져서 대군을 이루고 있었다.

솔직히 기존 유저들로 북쪽을 방어하는 것도 벅찬데 거기에 동쪽까지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와 버리니 문제가 될 수밖에.

각각 세 곳의 요새에서 막아야 하는 몬스터들이 전부 다 바이탄 요새로 몰려서 지금 상황이 완전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야! 지켜! 성벽에서 밀리지 말란 말이야!”

“누가 밀리고 싶어 밀려? 그쪽 또 올라온다 떨어뜨려!”

“탱커들 좀 방패로 쳐내라고!”

“힐!! 이쪽 힐 좀 줘!”

북쪽 성벽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

다만 문제는 동쪽이었다.

“조금만 더 막아줘!!”

“벅차 죽겠는데, 어떻게 더 막으라는 거냐고!”

“어? NPC 동쪽으로 움직인다.”

“아, 지금 여기서 병력을 빼면 어쩌자는 거야!”

“어차피 한쪽 뚫리면 게임 끝이잖아!”

“와, 진짜 돌아버리겠네. 상황이 왜 이러냐.”

북쪽에 머물던 유저들도 NPC를 따라 어쩔 수 없이 동쪽으로 일부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력이 모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그나마 요새 중앙에서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을 비롯한 우리 팀이 잿빛의 듀라한을 막아주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바이탄 요새가 무너져도 벌써 수십 번은 무너졌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봐도 병력이 너무 모자라.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또 터져 버렸다.

알고 있었지만 생각하기가 싫었던 문제가.

“으악! 이거 뭐야?!”

“빨리 힐!”

“아, ……발! 이거 그거잖아. 체력 갉아먹는 저주!”

“서로 붙지 마! 떨어져!”

“다들 떨어지라고!”

“아, 젠장! 여기서 떨어지면 무슨 수로 지켜!”

동쪽의 쿠론 요새를 단번에 무너뜨렸던 바로 그 네임드가 동쪽 성벽에 그 저주를 걸어대고 있었다.

서로 붙어 있을수록 주변에 감염이 중첩되는 저주를.

한참 잿빛의 듀라한과 싸우고 있던 재중이 형이 듀라한에게서 떨어지더니 동쪽 성벽을 바라보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거 참. 정말 너무하네.”

어지간해서 저런 표현을 하지 않는 재중이 형도 상황이 심각해지자 표정이 상당히 굳어버렸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일찍 도착한 네임드 때문에 기껏 버텨왔던 상황이 엉망이 되어버렸으니.

원래라면 이쪽 듀라한을 먼저 잡고 난 뒤.

그 후속으로 도착하는 동쪽 몬스터들을 상대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동시에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해왔던 방어전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

재중이 형이 잠시 뭔가 고민하더니 곧장 내게 달려왔다.

혹시 무슨 생각이 있는 건가?

그런데 재중이 형에게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야, 안 되겠다. 이제 정말 빠져야겠어.”

그 말에 한참 전사 형에게 힐을 넣고 있던 챠밍과 막내별이 동시에 고개가 돌아갔다.

전사 형을 도와주던 이쁜소녀와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고.

재중이 형이 보기에 그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는 소리.

“특히, 너. 여기서 죽으면 진짜 뒤도 없어. 그나마 빠질 수 있을 때 빠져야 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도망도 못 가.”

“역시 그런가요…….”

바이탄 요새의 성벽을 넘어 몬스터들이 다 넘어오게 되면 정말 도망갈 곳이 없어지게 된다.

심지어 부활 포인트가 몬스터나 네임드에게 점령이라도 당하면 그때부터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고.

“동쪽 성벽은 절대 못 버텨. 저 괴상한 저주 때문에.”

가장 걸리는 것은 역시 감염 저주.

내가 피해야 하는 1순위 마법이었다.

전사 형도 억지로 악을 쓰면서 버티다가 이제 들은 듯 우리를 향해 외쳤다.

“갈 거면 빨리 튑시다! 더 혼잡해지면 이 녀석 상대도 못 합니다.”

전사 형도 결국 손을 들었나.

그때 동쪽 성벽 위에서 뭔가가 터졌다.

쿠아앙!!

모두의 시선이 다 돌아갈 정도로 강력한 위력.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성벽 한쪽 면이 완전히 터져서 박살이 나 있었다.

아마 네임드가 강력한 마법을 쏜 모양인데…….

그리고 그 폭발로 몇몇 유저가 우리가 있는 곳 근처까지 튕겨져 날아오더니 바닥을 쓸며 쭉 밀려와 형편없이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내 팔을 잡아당기고선 그 유저들에게서 나를 급하게 떼어놓았다.

“감염된다. 일단 튀어. 뒤는 나중에.”

그런데 그때.

전혀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축복받은 페가수스에서 환한 빛줄기가 새어 나오더니 중첩 저주에 물들어 있는 유저에게 빠르게 쏘아져 날아갔다.

응?

저건… 대체?

그리고 그 환한 빛줄기가 닿은 유저의 신체에서 중첩 저주가 물에 씻기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챠밍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오빠, 방금!!”

“나도 봤어.”

아무리 봐도 저건 저주를 없애는 모습이었다.

놀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쓰러졌던 유저들이 깜짝 놀라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감염이 싹 사라졌어!”

“나도! 더 이상 감염 안 되는데?”

“설마 해제 마법이 있나?”

그러면서 모두의 시선이 축복받은 페가수스로 향했다.

그걸 본 순간 확신했다.

확실해.

축복받은 페가수스가 저 감염 저주를 씹어 먹는다!

이쁜소녀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놀라워했다.

“와, 대박이에요.”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

“이거라면! 축복받은 페가수스의 능력이 저 감염 마법을 막아낼 수 있으면!”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바로 축복받은 페가수스 위에 올라탔다.

“형, 듀라한 그대로 상대해주세요. 이제 방법이 생겼네요.”

“아아, 그래. 정말 의외의 녀석이 히든카드였군.”

“그럼 갑니다.”

바로 페가수스를 띄우자 두 날개를 펄럭이면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역시, 이 녀석은 전혀 간섭받지 않아.

그리고 빠르게 동쪽 성벽 위에 오르자 저주 감염에 걸려 몬스터들과 아주 힘겹게 싸우던 유저들이 일제히 나를 올려다보았다.

“주호?!”

“어? 지금 못 날아다니는 거 아니었어?”

“저 말은 처음 보는데?”

“아니, 아무리 주호라고 해도 이번엔 틀렸어.”

“아, 이 감염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그래.

대부분은 이런 반응일 수밖에 없지.

그리고 시큰둥한 반응은 축복받은 페가수스가 성벽 위로 내려앉는 순간 확연하게 바뀌었다.

페가수스에서 환한 빛이 뻗어 나가더니 근처에 있는 유저들의 감염 저주를 싹 해제시켜 버렸으니까.

“어?! 감염이!!”

“싹 사라졌어!”

“대박! 대체 누구야?”

“저 탈것!!”

“설마 주호가 풀어준 건가?”

마치, 그런 반응을 즐기듯 긴 성벽을 따라 쭉 날아다니자 페가수스가 지나가는 자리가 환한 빛에 감싸이면서 성벽에 있는 모든 유저와 NPC의 감염 저주를 싹 녹여 버렸다.

그러자 동쪽 성벽을 지키던 유저들에게서 환호가 쏟아졌다.

“이제 됐어!”

“저주만 없으면!”

“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 조금만 늦었으면 완전히 무너졌을지도.

일단 급한 불은 껐나?

그리고 성벽 위를 날아다니면서 내 시선은 온통 바깥의 몬스터 무리를 주시했다.

바로 저 동쪽 성벽 바깥에 있는 네임드를 찾기 위해.

순간 묘하게 움직이는 녀석을 하나 발견했다.

설마 저 녀석이었나?

그대로 페가수스를 몰아 성벽 바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그렇게 몬스터 떼를 지나 한 곳에 도착하는 순간.

페가수스를 하강 시켜 페가수스의 갈기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몸을 옆으로 눕히고는 르아 카르테로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녀석의 목을 크게 베어내자 격한 비명이 이어졌다.

“케에엑!!”

네 녀석이 그 네임드렸나?

흑장로 타리안.

일격을 당한 흑장로가 깜짝 놀라 다시 몬스터들 사이로 도망을 다니는 것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래.

어디 얼마나 도망 다닐 수 있나 한 번 해보자고.

내게 저주 해제가 있는 이상.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무조건.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