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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37화 (530/1,404)

#537화 오염된 페가수스 (1)

갑작스레 뜬 시스템 메시지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나 이외에는 이 메시지가 뜨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 팀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만약 전체 메시지였다면, 지금쯤 채팅창이 난리가 났을 테니까.

이 메시지가 뜨는 조건이 내가 한 행동과 연관이 있거나, 혹은 오염된 페가수스에 근접하기만 하면 뜨는 것일 수 있다.

그걸 보면 후자가 더 신빙성이 있다.

일종의 히든 퀘스트인가?

정상적인 퀘스트 진행 방식이 아닌, ‘어떠한 행동’으로 인하여 수행이 가능한 그런 방식 말이다.

이걸 어쩌면 좋지?

지금 당장 듀라한을 잡아야 하는데 변수가 생겨 버렸다.

듀라한도 잡고, 이 녀석도 처리하고.

이건 혼자서 할 수 없지.

바로 전사 형과 함께 잿빛의 듀라한을 견제하러 갔던 재중이 형을 불렀다.

“형! 여기 문제 생겼어요!”

“응? 왜?”

재중이 형이 잠시 전사 형에게 듀라한을 맡기고는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쓰러져 있는 오염된 페가수스 근처로 오더니, 순간 눈빛이 확 변했다.

입가에 미소도 지어졌고.

“이거 참. 이놈은 보너스 게임이라 이거지?”

“네, 아마도요.”

“둘을 떨어뜨려 놔야 발동을 한다라… 뭐, 하나 쉬운 게 없네.”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다소 우연히 겹친 것도 있다.

잿빛의 듀라한의 스킬을 캔슬하기 위해서 큰 스킬을 썼을 뿐.

둘을 떨어뜨려 놓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보지도 않았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페가수스… 이름만 들어보면 이 녀석 굉장히 좋을 것 같지 않아? 네 발이 하늘에 떠 있는 것도 그렇고.”

사실 처음 볼 때부터 달랐다.

공중에 떠 있는 말.

이 정도면 지상형이 아니라 공중형 탈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성벽을 넘는 것만 봐도 그랬고.

요새에서 나오는 배리어로 현재 공중 탈것은 쓰지 못하는 중이었다.

아마 암흑 지대에서 날아오는 몬스터를 억제하기 위해 적용된 것 같기는 한데.

그 예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가고일 역시 지금은 전혀 날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은 성벽을 날듯 넘어왔다.

시스템을 씹어 먹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쓰든.

다른 개체와 다르게 이 녀석은 특별할지도.

“네,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죠.”

내 대답에 재중이 형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럼 둘 다 해먹을 방법을 찾아야지.”

당장 잿빛의 듀라한을 상대하는 일이 급한 것은 맞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유혹을 하는데 안 넘어갈 수 없다.

조금 어려운 방식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녀석은 여기서 잡고 가는 게 맞다.

잿빛의 듀라한은 어느새 일어나 사방으로 포효를 내질렀고 전사 형이 바싹 붙어서 상대를 하고 있었다.

용격으로 인한 피해는 벌써 복구가 된 듯 움직임이 다시 빨라졌다.

그리고 오염된 페가수스 역시 서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재중이 형이 둘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적어도 이 녀석을 듀라한과 다시 붙게 만들면 안 돼.”

“네, 거기다 듀라한에게 이 녀석이 없는 편이 상대하기 좋겠죠.”

그러면서 멀리 있는 듀라한을 바라보았다.

시스템 메시지대로 멀리 떨어뜨려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현재 듀라한의 기동력이 대폭 저하되었다.

원래라면 전사 형의 견제를 벗어나 움직였을 텐데…….

오염된 페가수스가 없어지자 듀라한의 움직임 자체가 굉장히 느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듀라한이 약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느려진 것 같은 모습이 계속 보였다.

창격을 날릴 때도 오염된 페가수스가 전진하는 힘을 실어서 한 번에 강력한 공격을 날렸는데 지금은 오히려 전사 형이 버텨내기까지 했다.

위력이 약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탱킹에 여유가 생겼다는 말이고.

전사 형도 그걸 몸으로 확 느끼는지 전과 달리 완전히 잿빛의 듀라한에게 달라붙어 싸움을 걸고 있었다.

서서히 일어나는 오염된 페가수스를 본 재중이 형이 물었다.

“할 수 있겠어? 이제 시간 없다. 저놈 일어나면 바로 듀라한에게 날아갈 거야.”

재중이 형 말대로 오염된 페가수스가 잿빛의 듀라한과 합류하게 되면 다시 상황이 복잡해진다.

이전처럼 온전히 뒤를 내어줄 확률도 적고.

이건 정말 가정이지만.

녀석이 도망을 갈 확률도 분명히 존재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확실하게 오염된 페가수스를 멀리 떼어놓을 방법.

멀리 떼어놔야 한다라.

멀리…….

“형, 멀리 떨어뜨려야 한다는 게 어느 정도일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답을 했다.

“적어도 우리 눈에 안 보일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최소 이 바이탄 요새 밖 정도는 나가야 할 거야. 아니, 그보다 더 멀 수도 있고.”

재중이 형도 말해놓고 낭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멀리 이 오염된 페가수스를 끌고 갈 방법이 없었다.

일단, 오염된 페가수스도 우리에게는 적이었다.

몬스터란 소리고.

다른 말로 녀석도 공격이 가능하고 우리가 당장 타서 어떻게 이동시키기에는 불가능한 면이 더 컸다.

아니, 이 경우에는 아예 말을 안 듣는다고 봐야겠지.

오히려 탄 사람을 태우고 듀라한에게 가져다 바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줄로 묶어서 이동시키는 방법은요?”

내 제안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줄로 묶는다 해도 몬스터 천국인 요새 바깥으로 끌고 나가는 건 무리지.”

가장 걸리는 점.

요새 바깥에도 몬스터가 바글바글한데 그냥 빠져나가도 힘든 일을 오염된 페가수스라는 짐을 달고 빠져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아, 방법이 안 보이네요.”

“어쩔 수 없어. 방법을 안 것만으로 만족하자고. 다음에 요새 방어전이 아닐 때 또 기회가 있겠지.”

재중이 형도 생각을 해봤지만 뚜렷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오염된 페가수스가 일어나려고 하자 곧장 달려들어서 르아 카르테와 하이딩 블레이드로 녀석의 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러자 오염된 페가수스의 몸이 무너지면서 한 번 더 다운을 했다.

악마형이라 그런지 대미지 자체는 잘 들어갔다.

문제는 지금 이 녀석을 죽일 생각이 아니니까.

단순히 체력을 깎아서 테이밍 같은 형식이 아니라 무조건 멀리 떨어뜨려야 한다.

이대로 계속 페가수스를 주저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전사 형이 아무리 잘 막아준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사 형이 버거운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아직 멀었습니까?! 계속 붙들고 있기 힘듭니다!”

그 외침을 들은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게 말했다.

“이 이상은 무리다.”

“네, 어쩔 수 없죠.”

그렇게 포기를 하려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확 떠올랐다.

이건…….

되려나?

“형, 거리만 떨어지면 되는 문제죠?”

“어, 그래.”

“우리 시간의 서 몇 개 있었죠?”

“하나씩 익힐 정도는 있었지 왜?”

“그럼 형도 익혔죠?”

“뭐, 남으니까 익혔지.”

“그럼 이것 좀 빨리.”

그러면서 재중이 형에게 미치광이 리치를 건네주었다.

내 행동의 의미를 안 재중이 형이 더없이 크게 웃어 보였다.

“크큭, 이런 방법이 있었네.”

【 시간의 서! 】

그렇게 미치광이 리치를 받은 재중이 형이 바로 시간의 서로 전이문을 초기화시켜 버렸다.

그리고 난 뒤 바로 전이문까지 열어버렸고.

【 전이문 오픈! 】

“참나, 이걸 이렇게 사용하게 되다니.”

“형, 좀 도와줘요.”

전이문이 열리는 것을 보자마자 페가수스의 한쪽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왔다.

그러자 재중이 형도 옆에서 다른 다리를 붙잡아 같이 끌고 옮겼고.

“이 녀석 왜 이렇게 무거워?”

재중이 형이 불만을 표하면서도 연신 웃는 게 이 상황이 굉장히 재밌는 모양이다.

전이문 앞에 녀석을 완전히 끌고 간 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자! 던지자! 하나, 둘, 셋!”

재중이 형과 합을 맞춰 무거운 오염된 페가수스를 전이문 안으로 던지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같이 전이문으로 뛰어들었다.

“그럼 뒤 좀 부탁해요.”

“크큭, 다녀와.”

나와 오염된 페가수스가 전이문을 넘어간 뒤 재중이 형이 바로 전이문을 닫아버렸다.

어차피 전이문이야 또 열 수 있으니까.

그렇게 전이문이 닫히자 완전히 암흑 지대로 넘어오게 되었다.

자, 이제 어떻게 되려나.

가장 멀리 거리를 벌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

분명 이곳, 암흑지대는 바이탄 요새와 물리적으로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제발 되라.

그런 기대를 가지면서 눈은 오염된 페가수스로 향해 있었다.

그때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잿빛의 듀라한과의 거리가 충분히 멀어졌습니다. 》

《 암흑의 기운에 영향이 줄어듭니다. 》

《 암흑의 기운에 오염된 페가수스가 서서히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

《 암흑의 기운에 오염된 페가수스가 서서히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

:

그 시스템 메시지가 뜨자마자 바로 두 손을 불끈 쥐었다.

역시.

이게 통한다.

그리고 오염된 페가수스의 갈기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검은 옷에서 구정물이 빠지듯 갈기 끝에서부터 조금씩 검은 기운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검은 물이 빠져나간 그 부분은 새하얀 빛깔의 갈기로 서서히 변했고.

잿빛의 듀라한과 떨어져 난리를 칠 줄 알았던 오염된 페가수스는 의외로 얌전히 자리에 서서 이 변화를 받아들였다.

만약, 듀라한이 이걸 알면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겠지만.

녀석은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한다.

오염된 페가수스가 얼마나 정화가 되었는지는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갈기가 거의 절반이 넘게 하얀색으로 변해갔다.

거기다 놀라운 변화는 그 하얀 갈기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주변 암흑 지대를 밀어내고 있었다.

이거…….

굉장한데?

이때까지 무슨 수를 써도 암흑 지대를 중화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페가수스는 온전히 본연의 몸으로 암흑 지대 자체를 녹여버리는 중이었다.

생각 이상이잖아?

단순히 새 탈것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예상치를 더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이 녀석만 있으면.

더 이상 암흑 지대가 암흑 지대가 아니게 된다.

그리고 지금 활개를 치는 세 네임드들을 압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불멸> 상황이 어때?

<주호> 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불멸> 잘 되고 있나 보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끝내. 여기 지금 아슬아슬하다. 너무 오래는 못 기다려. 붙잡고 있는다고 빡세다.

<주호> 네, 좋은 선물 들고 갈 테니 기대해도 좋아요.

아마도 오염된 페가수스가 사라지자 잿빛의 듀라한이 바이탄 요새를 벗어나려고 한 것 같은데 저지하기 힘든 것 같았다.

넌 아직 떠나면 안 되지.

그리고 얼마 뒤.

《 오염된 페가수스가 암흑의 기운에 완전히 저항했습니다. 》

《 오염된 페가수스에서 암흑의 기운이 모두 사라집니다. 》

《 오염된 페가수스가 본래의 축복받은 페가수스로 변경됩니다. 》

시스템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온전히 하얀색으로 변한 녀석은 환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너무 눈부셔 눈을 가려야 할 정도로.

그리고 전에는 없던 두 개의 하얀 날개가 양옆으로 활짝 펼쳐져 있었다.

《 축복받은 페가수스가 주인을 찾습니다. 》

《 주변 유저 탐색 중……. 》

《 유저 주호 님이 검색되었습니다. 》

《 축복받은 페가수스를 소유하시겠습니까? 》

그 시스템 메시지에 주저 없이 Yes를 선택했다.

《 축복받은 페가수스가 주호 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

됐어.

소유가 되자 페가수스가 내게 다가와서 옆에 서더니 허리를 낮추었다.

“타라는 거냐?”

그렇게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자 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축복받은 페가수스의 능력으로 하루에 한 번 원하는 지역으로 워프가 가능합니다. 》

설마 워프까지 되다니…….

이거 생각보다 더 굉장한 놈이었잖아?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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