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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524화 (517/1,404)

#524화 경계 수호자 (6)

어둑어둑 땅거미가 짙게 드리운 요새 내부에 아주 흐릿한 윤곽만 보이는 녀석.

이미 암흑 지대에서 여러 번 만나서 잘 알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었다.

그에 내가 고르곤이라고 외치자 우리 팀과 옆에 대기 중이던 최강, 달, 그리고 치맥 길드원들의 시선이 바이탄 요새 내부로 돌아갔다.

하나 같이 놀란 표정으로.

그도 그럴 게 당연히 바이탄 요새 성벽 바깥에서부터 공격해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아니, 생각조차 못했다.

사전 회의 때도 녀석의 진격을 늦추는 작전을 준비했으니까.

지금처럼 우리 안방에 떡 하고 자리 잡는 상황을 가정한 적은 없다.

“하, 저렇게 큰 놈이 대체 무슨 수로 들어왔지?”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

정말 기가 막힌다는 듯, 전사 형이 되물었다.

진짜 궁금한데 지금은 그런 의문을 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콰앙!

쾅!

고르곤이 성벽 내부로 들어와 예의 그 보이지 않는 검은 구를 사방으로 쐈는지 주변에 있던 병사 NPC들과 대기 중이던 유저들이 한꺼번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혹은 겨우 스쳐서 살아남은 유저들이 비명을 질렀고.

스치는 그 순간까지도 유저들은 뭐에 당했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체력이 뭉텅뭉텅 빠지고 몸이 튕겨져 나간 뒤에야 뭔가 자신을 쳤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컥!”

“이거 뭐야?!”

“체력이 이렇게 빠진다고?!”

“대체 뭔 상황임?”

“힐러! 힐!”

“여기도 힐!”

검은 구 한 방에 사방으로 튕겨 나간 유저들이 자신들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쓰러지자 순식간에 바이탄 요새 안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 광역기를 날렸는데, 그 광역기의 불길 사이로 뭔가가 스윽,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것을 본 일부는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친 것은 덤이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체가 소리도 내지 않고 주변을 스윽, 하고 지나가는 느낌은 정말 극한의 공포를 안겨 주었으니까.

녀석은 그야말로 유저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상대였다.

“뭔가 있다!”

“마법사들 광역기 쏴!”

“가능한 최대로 밝혀봐!”

“주변을 밝혀!”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부 유저들은 프리패스로 온 것은 아닌지, 급하게 불을 밝히려 라이트, 화염 마법, 혹은 그에 준하는 광역기를 날려 최대한 주변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자 아주 잠깐 녀석의 실체가 드러났다.

“······저, 저게 대체 뭐야?!”

“겁나 크······.”

“네임드다!!”

“왜 여기 네임드가?!”

“전부 멍 때리지 말고 공격해!!”

“딜러들 공격 준비!”

“안 돼! 새끼들아! 탱 먼저! 달려들어!”

“힐러 보호해! 여차하면 당한다!”

성벽을 끼고 싸우기 위해 성벽 위로 올라갔던 이들을 제외하면 내부의 인원은 레이드를 벌이기에 그렇게 좋은 조합은 아니었다.

원거리가 가능한 유저들은 대부분 성벽 위로 올라가서 성벽 외부를 향해 공격 중이었고, 탱커들은 혹여 성벽 위로 몬스터가 올라오면 막아주기 위해 전면에 대기 중이었다.

바이탄 내부에 남아 있는 유저들은 자리를 잡지 못했거나, 교체를 위해 대기하던 인원과 난입한 몬스터를 잡기 위한 일부 별동대 성격의 유저들이었다.

거기다 소속조차 서로 달라서 제대로 된 오더조차 내리지 못했다.

미리 손발을 맞춰본 이들이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지금은 그저 고르곤이 있는 위치 하나만을 보고 개떼처럼 달려드는 방법이 전부였다.

얼핏 보이는 실루엣을 기준으로.

내부의 소식이 성벽 위에 전달되었는지 어느새 성벽 위의 유저들 시선과 몸이 요새 안쪽으로 집중되었다.

성벽 외부에서 정체 모를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것보다 내부에서 고르곤이 날뛰는 것이 더 위험했으니까.

거기다 같은 소속의 유저들이 죽어 나가는 소리에 동요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

“내려가야 하나?”

“우리가 내려가면 여기 성벽은 어떻게 하고?”

“NPC 있잖아.”

“자리 비우면 NPC는 못 막을 것 같은데······.”

“아, 대체 어쩌라는 거야.”

우왕좌왕.

순식간에 당황이 가득한 목소리가 성벽 위로 퍼져나갔다.

“젠장, 일단 저 녀석부터 막고 보자. 탱커들 뛰어내려!”

“지금 성벽 비우면 ···된다고!”

“이대로 당하라고?”

“······발! 시작부터 왜 이래!”

“성벽 있으니까 잠시 버틸 수 있잖아! 급한 불부터 끄자고!”

말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유저 한 명이 성벽 위에서 내부로 뛰어내려 달려가자 다른 유저들도 홀린 듯 같이 뛰어내렸고.

성벽 위, 진영이 엉망이 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전사 형이 재중이 형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우린 어떻게 합니까?”

“잠시 대기. 당장 내려간다고 해도 저 아수라장에서는 아무것도 못 해.”

재중이 형 말대로 고르곤과 유저들이 얽혀서 바이탄 요새 내부가 너무 난잡한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정리가 전혀 안 되는 상황.

이 상황에서 우리가 떨어져 내린다고 해도 그다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녀석은 보이지 않는 검은 구와 거대한 철퇴 꼬리를 휘둘러 유저들을 학살하고 있었으니까.

유저들은 뭐가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공격이 보여야 대처를 하지.

아니, 보인다고 해도 워낙 고르곤의 공속이 빨라서 피하기 힘들었다.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피해도 늦는데 지금은 그 공격을 제대로 보고 있지도 못하니.

이건 암흑 지대에서 혼자 싸우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민첩이 높아 일정 이상의 속도를 지니고 있거나 혹은 모자란 이속을 커버할 정도의 반응 속도가 아니면 무조건 당한다.

거대한 앞다리가 연속으로 휘둘러지면 앞쪽이 삭제되고.

꼬리를 휘두르면 사방이 쓸려나갔다.

“커억!”

“끄악!”

“너무 접근하지 마!”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어!”

“젠장, 얼핏 보이는 실루엣만 가지고 어떻게 잡아!”

그런 그때, 갑자기 땅에 큰 울림이 일어났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쿠르릉!

어쩔 수 없이 참지 못하고 전사 형이 성벽 위에서 뛰어내리려다가 멈칫했다.

“고르곤이 발이라도 구른 건가?”

전사 형의 말대로 요새 내부에 서 있던 유저들의 움직임이 단체로 휘청거리는 것이 보였다.

“으악!”

“지진이다!”

“아, 젠장! 가지가지 하네!”

“옆에 사람 잡아줘!”

“죽은 사람 없어?!”

“뭐야? 공격 아냐?”

어리둥절.

분명히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대기가 출렁거렸는데 이상하게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내 시선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내 고개가 올라가자 우리 팀 모두 따라서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까만 하늘만 보일 뿐.

“아니에요! 이건!”

고르곤이 즐겨하는 공격이 하나 있다.

바로 점핑 공격.

방금 발을 구른 소리는 공격이 아니라 단순하게 그냥 점프를 한 것에 불과했다.

그걸 유저들은 광역 공격이라고 착각했고.

진짜 공격은 이제부터인데······.

“떨어집니다!”

내게는 느껴진다.

고르곤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진동이.

정말 소름 끼치도록 잘 느껴져서 놀랄 정도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다가 다시 요새 내부를 내려다본 사장님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멍청이들!”

그리고 멍하게 지진인 줄 알고 버티고 서 있는 유저들을 바라보더니 급하게 외쳤다.

“전부 다 자리에서 피해!!”

사장님이 크게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너무 많은 유저가 사장님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주변이 너무 소란스럽고 각자가 외치는 와중이라 사장님의 목소리가 묻혀 버렸다.

그리고 사장님의 외침을 듣지 못한 결과는 처참하게 돌아왔다.

고르곤의 거대한 덩치가 땅에 떨어져 내리면서 마치 메테오로 찍어 누른 듯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쿠아앙!

동시에 그 충격으로 유저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가면서 죽음의 빛으로 사라졌다.

“아악!”

“······발! 뭐야!”

“안 돼!”

심지어 이 한 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떨어져 내린 반동으로 튕기듯 다시 뛰어오른 고르곤이 다시 한 번 좌측으로 뛰어내려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콰앙!

그리고 한 번 더.

콰앙!

연속 3단 점프.

순식간에 세 개의 크레이터가 생겨나면서 그 반경 안에 있던 유저들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녹아 사라졌다.

성벽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완전 당했네. 저대로는 아무것도 못 해.”

전사 형은 입을 쩍 벌리고 그 광경을 멍하니 보더니 곧 내게 시선을 돌리고는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너 대체 저놈을 무슨 수로 상대한 거냐? 그것도 혼자서.”

저건 누가 봐도 미친 네임드다.

상대하는 것 자체가 모험일 정도로.

“저도 좀 미쳤었나 봐요.”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 역시 전사 형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놀라는 표정 가득하게.

그나마 유저들이 계속 공격을 해서 터지는 이펙트에 실루엣이라도 보이는 건 플러스이려나.

암흑 지대에서 싸울 때보다는 이쪽이 부담이 적은 편이었다.

“저대로 둘 건가요?”

“안 되겠지.”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속수무책.

고르곤이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당해주기만 해서는 이쪽은 답이 없었다.

요새 내부가 무너지자 그걸 메우기 위해 병력이 내려갔고 자연스럽게 성벽 방어가 약해졌다.

그리고 지금.

성벽 바깥으로 대군의 몬스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언데드?

아니, 악마형인가?

얼핏 보이는 몬스터들이 전부 몸에 검은 기운을 흘리면서 성벽을 부딪쳐 왔다.

처음에 부딪친 것은 거대한 야수.

블랙 맘모스.

거의 4M에 육박하는 커다란 덩치로 돌격하듯 성벽을 부딪치자 성벽이 크게 흔들렸다.

그런 블랙 맘모스가 하나도 아니고 무리를 지어서 성벽을 두들기자 사람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성벽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아서.

“우왁!”

“흔들린다!”

“젠장! 공격해!”

“마법 쏴!”

“아··· 새끼들 왜 내려가서······!”

거기다 그와 비슷한 덩치의 암흑 골렘이 팔을 휘둘러서 성벽을 두들기기까지.

일단, 거대 몬스터는 저 두 종류.

고르곤까지 하면 세 종류이려나.

그 뒤로 각종 암흑형 몬스터가 줄을 짓고 성벽을 향해 전진했다.

하늘 위로 검은 마법과 각종 인챈트가 걸린 화살을 쏘아대는 것은 덤이었고.

그 공격에 탱커를 비롯한 다수의 유저가 빠진 성벽이 그대로 노출되어 공격을 피한다고 혼란이 가중되어갔다.

모든 인원이 내려간 것은 아니라서 아직까진 버티고 있지만 이 상황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고.

전사 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성벽 밖과 요새 내부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거 난이도가 너무 미쳤습니다.”

바이탄 요새 안과 밖이 전부 위기였다.

이벤트치고는 너무 하잖아?

다른 요새도 이 정도 난이도인가?

아니면 억울할 것 같은데.

그렇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더 이상 지켜보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빠른 시간 내에 어떤 식으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성벽 안팎을 쳐다보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결정을 내렸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인가?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형, 컨디션은 어때요?”

“나? 뭐 지금은 최상.”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날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서 한탕 뛰자고?”

“네, 저하고 딱 둘이서만. 고르곤 묶으러 가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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