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화 드래곤의 유물 (4)
레이드 이후, 분배를 위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아이템 중 하나가 녀석의 입으로 사라졌다.
드래곤이 아이템을 먹는다고?
이건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나만큼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그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사이 아퀼라스 주니어가 또 다른 아이템을 불로 녹여서 입으로 집어넣었다.
벌써 아이템만 세 개째.
먹는 속도가 장난이 아닌데?
이대로 두었다간 아이템들을 전부 먹을 기세라 빠르게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이제 갓 부화한 녀석이기에 들어 올리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약간 묵직한 정도?
내가 녀석을 들어 올리자 바둥거리면서 굉장히 구슬프게 우는 울음이 들려왔다.
“키잉!”
마치, 눈앞에 있는 밥을 다 먹지 못해서 우는 것처럼.
그리고 작은 입으로 화염을 뿜어내는데 아직은 너무 작아서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쁜소녀와 챠밍, 막내별은 이미 그 귀여움에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꺄! 귀엽다아!”
“정말 작아요.”
“가지고 싶다.”
귀엽긴 했지만, 아이템을 먹는다는 점이 문제고.
하아…….
이걸 어떻게 하지?
이대로 내려놓았다가는 정말 테이블 위에 있는 아이템들을 다 먹어치울지도 모른다.
각각 엄청난 시세를 자랑하는 것들인데…….
그나마 중요한 아이템들은 따로 모아놔서 다행이지.
만약, 수천만 짜리 아이템을 먹어치웠으면…….
그렇게 당황과 웃음을 내보이던 것도 잠시, 빠져나갔던 정신이 돌아오는지 다들 조금은 진중한 표정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놀라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다 정신을 차린 스칼렛이 아퀼라스 주니어를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표현하기 힘들만큼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보던 눈빛과 완전히 다른.
콕 집어 이야기하자면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 느껴지는 그런 눈빛이었다.
스칼렛이 저럴 때는 정말 무서운데.
“세상에, 드래곤이 정말 부화했네요.”
그러면서 날 보고는 계속 강한 눈빛을 보냈다.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바로 대답부터 했다.
“……안 팝니다.”
“그러지 말고요오.”
스칼렛이 처음 보여주는 말투에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이미 눈이 돌아갔어!
“하아, 이거 소유권이 있어서 못 팔아요.”
“정말요? 사실? 레알? 실화? 아니면?!”
스칼렛의 엄청나게 실망한 표정을 보고는 안도했다.
정말 판다고 했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샀을 것 같네.
“한 번 만져보시죠.”
“네, 그럼 한 번!”
스칼렛이 아퀼라스 주니어에게 손을 뻗으니 가만있던 아퀼라스 주니어가 고개를 확 돌려서 스칼렛에게 불을 뿜어냈다.
아주 귀여운 수준으로.
이것만으로도 확인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아, 진짜 아까워요…….”
소유권을 넘기려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고 딱히 방법을 찾을 이유는 없다.
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한다?
상태창을 보면 일단 내 소유의 펫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성향이나 레벨, 스탯, 스킬 같은 모든 정보가 물음표로 되어 있었다.
재중이 형도 아퀼라스 주니어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이거 참, 정보를 하나도 볼 수 없네.”
“당장은 못 쓰겠죠?”
아퀼라스 주니어를 가리키며 물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크기도 작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작은 불을 내뿜는 것밖에 없었다.
유일하게 확인된 능력은 불로 아이템을 녹여 먹는 것뿐.
그렇다고 드래곤을 아이템 처리반으로 쓸 수 없지 않는가.
내 물음에 재중이 형도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못 쓰지. 다른 녀석들은 다 커서 나오더니 이건 왜 이러냐.”
“정말 그러네요.”
리틀 오우거.
소녀 라미아.
미치광이 리치.
정확히 말하자면 모두 얻자마자 고유의 능력을 쓸 수 있었는데 이 녀석은 완전히 달랐다.
“아무래도 키워서 써야 하는 모양이다.”
“성장형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도 봉인을 풀어서 키우는 것에 가까웠는데 이 녀석도 그런 식인 것 같네.”
재중이 형의 말에 다시 아퀼라스 주니어를 바라봤다.
성장이라…….
다른 펫과 달리 펫 정보창이 죄다 물음표라 어떻게 성장시킬지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그걸 보더니 재중이 형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네가 경험치를 쌓으면 나눠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자체적으로 따로 경험치를 받아 클 수도 있을 거야. 이건 다른 회사의 펫 레벨링 방법에 가깝고.”
“그래요?”
“보통은 그래. 그런데 이 녀석은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러다 녀석이 내뿜고 있는 불꽃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정말 아이템을 먹여서 키우는 방법이려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재중이 형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템을 더 먹여봐야겠어.”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쉽지 않은 방법이네요.”
말이 쉽지.
이 녀석을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아이템이 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차라리 경험치를 나눠 먹는 경우라면 그냥 데리고 다니면서 키우면 될 텐데.
“일단 먹여보자고. 마침 눈앞에 아이템도 많고.”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테이블에 놓인 아이템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너 이번에 얻은 템도 상당하잖아?”
“뭐 그렇긴 하죠.”
드래곤에게 죽은 해원 연합 사람들이 떨어뜨린 아이템만 해도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다.
얻은 아이템 지분의 상당수를 내가 가지고 있는 중이고.
거기다 내가 죽인 유저들도 만만찮지.
그리고 우리 연합 사람들의 아이템을 지켜주면서 보상으로 받을 아이템도 제법 된다.
그간 로스트 스카이를 해오면서 지금처럼 수중에 아이템이 많은 경우도 드물었다.
“한번 해보죠.”
“그래, 조금 먹여보고 안 큰다 싶으면 그때 그만둬도 되니까.”
일단 비싼 아이템과 고강은 제외.
7강, 8강 같은 아이템들은 현재 유저들의 주력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아이템은 팔면 돈이 되니 드래곤에게 먹이기에는 너무 아깝고.
“잘못하다가 이 녀석한테 다 털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크큭, 혹시 알아? 잘 키우면 성체가 될지.”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일단 인벤에 있는 방어구 아이템 중 몇 개를 꺼내서 아퀼라스 주니어에게 밀어주었다.
“끼우?”
나와 그 아이템을 번갈아 본 아퀼라스 주니어가 곧장 아이템을 불에 녹이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확실히 아이템을 먹는 것은 맞네.
성장을 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아퀼라스 주니어와 주호 님의 우호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아퀼라스 주니어의 허기가 소폭 사라집니다. 》
《 아퀼라스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역시.
성장을 하네.
시스템이 확인해주는 것을 봐서는 먹이를 먹이는 것이 확실했다.
우호도도 상승하는 모양이고.
허기는 처음 보는데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모습을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신기한 듯 지켜보는 중이었다.
아이템을 분류하던 사장님을 비롯해 스칼렛, 이슬두잔까지 모두.
이건 마치 반려동물에게 밥을 주는 장면 같기도 하고.
순식간에 아이템을 다 먹은 아퀼라스 주니어가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바라봤다.
마치 더 내놓으라는 듯.
한 개 정도로는 눈에 띄는 변화를 볼 수 없는 건가?
“흐음, 계속 먹여볼게요.”
몇 개의 아이템을 더 꺼내서 곧장 드래곤에게 먹여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꼭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아퀼라스 주니어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걸 본 챠밍과 이쁜소녀가 놀란 듯 말했다.
“정말 커졌어요.”
“와, 신기하다.”
이런 성장형 펫은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다들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 챠밍이 품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내 들었다.
“한 번 줘 봐도 돼요?”
“주면 나야 고맙지.”
안 그래도 아이템이 왕창 들어갈 것 같은데 고마운 일이다.
먹기만 한다면 말이지.
그러더니 챠밍이 강아지에게 밥을 주듯 아이템을 아퀼라스 주니어 앞에서 흔들었다.
설마 저런다고 넘어가려나?
소유권이 내게 있는 걸 봐서는 아마 다른 사람이 주는 것은 안 먹…….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아퀼라스 주니어가 후다닥 달려가 챠밍의 손에 들린 아이템을 입에 덥석 물었다.
그리고 곧장 챠밍의 앞에 얌전히 앉아 아이템을 녹여 먹기 시작했다.
《 아퀼라스 주니어와 챠밍 님의 우호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 아퀼라스 주니어의 허기가 소폭 사라집니다. 》
《 아퀼라스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잘 먹네요?”
그러면서 챠밍이 긴장감 가득한 눈빛으로 드래곤의 등을 살짝 만졌다.
“으음, 얌전히 있어야 해?”
“아, 위험……!?”
좀 전에 스칼렛이 만졌을 때 분명히 불꽃을 뿜어냈다.
그래서 아퀼라스 주니어가 불을 뿜어내지 못하고 막으려고 하다가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뭐지?
불꽃이 안 나와?
심지어 챠밍이 손으로 드래곤의 등을 쓰다듬었는데도 불구하고 드래곤의 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걸 본 챠밍이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나를 봤다.
“오빠, 얘 되게 순해요.”
“아, 그러네.”
설마 먹이를 줬다고?
시스템 메시지에 챠밍과 우호도가 소폭 증가했다고 뜨기는 했다.
그게 이런 식으로 바로 적용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배를 잡고 웃었다.
“크큭, 저거 완전 강아지 아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정말 꼬리만 있으면 살랑살랑 흔들…….
아, 이미 흔들고 있구나.
챠밍이 계속 아이템을 주자 정말 꼬리를 흔들면서 기쁘게 먹이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재중이 형이 계속 웃는 와중에 이쁜소녀도 옆에 앉아서 아이템을 주자 이번엔 그리로 달려가 아이템을 먹었다.
역시 꼬리를 흔들며.
이놈 내 펫이 맞긴 한 건가?
밥 준다고 다 따라가면…….
“이건 절대 알리지 말죠.”
“크큭, 전투 중에 적이 아이템을 주면 덥석 받을 것 같아서?”
재중이 형의 웃음에 아퀼라스 주니어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제발 그러지 않길 바라야지.
그렇게 시작된 아이템 먹이기는 한참 동안 계속 이어졌다.
아퀼라스 주니어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아이템을 먹어댔고.
그러면서 처음과 다르게 점점 덩치가 커졌다.
이젠 처음의 귀여웠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정도.
이젠 덩치가 꽤 커져서 회의실에 두기가 어려웠다.
“생각보다 빨리 크네요.”
결국 공작저에서 나와 연무장에 녀석을 풀어두었다.
그리고 아이템은 계속 던져주고 있었고.
《 아퀼라스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아퀼라스 주니어의 성장이 소폭 상승합니다. 》
:
그러다가 어느 순간.
《 아퀼라스 주니어의 허기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그런 메시지가 뜨고는 아퀼라스 주니어가 아이템을 먹어도 더 이상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한 번에 끝까지 키울 수는 없는가 봐요.”
성장 속도를 봐서 내심 성체 드래곤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는 재중이 형이 물었다.
“아이템 꽤 들어갔지?”
“음, 그렇죠.”
“이거 잘못하다 이쪽이 먼저 파산하겠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라 이런 속도로 먹어대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해원이나 화련 같은 갑부라면 대놓고 아이템을 사서 먹였겠지만.
“어디서 아이템 뚝 떨어질 만한 곳이 없을까요?”
“일단, 우리 쪽 애들 거 먹여보고. 안 되면 사냥이라도 해서 계속 먹여야지. 여차하면 연합 사람들 거라도 빌려와?”
“아뇨, 그렇게까지는.”
“정 급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드래곤을 빨리 키우면 쓸데가 많아질 거야.”
“하다 안 되면 다시 털어야죠.”
그렇게 아퀼라스 주니어를 넣으려는 순간.
공작저에서 스칼렛이 뛰어나와 우리에게 외쳤다.
“주호 씨, 싸울 준비 하셔야겠어요.”
“무슨 일이라도…?”
“음, 멍청한 해원 쪽 연합에서 쳐들어오고 있다고 해요. 지금 이곳으로.”
그 말에 우리 팀 모두 표정을 굳혔다.
반대로 난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정말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형, 아무래도 아이템 구할 곳이 생긴 것 같네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