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화 무한의 마력 (3)
레비아탄 정도의 네임드를 장기전으로 길게 끌고 가는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좋은 선택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레비아탄을 잡기 위해서는 드래곤 슬레이어의 최대 장점인 이 옵션이 반드시 발동되어야 했다.
확률적인 체력 감소 옵션.
그럼 어떻게든 레비아탄을 잠시라도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무력화는 크리티컬을 포함한 극딜 타이밍이었으니까.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레비아탄이 브레스를 시전하는 순간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최상.
상상 이상의 폭발로 레비아탄이 바다 위에 대자로 뻗어 있는 지금이 내게 주어진 최대의 기회였다.
그렇게 레비아탄의 입 위로 올라서서 최선을 다해 드래곤 슬레이어를 내려쳤다.
크리티컬이 터졌을 경우, 확률적으로 체력을 감소시키는 옵션이라 얼마나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로스트 스카이는 몬스터의 체력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결국 몬스터에게서 발생하는 반응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내 발아래서 레비아탄의 몸 전체가 한 번씩 들썩거리는 것을 보고는 확신했다.
확실히 체력이 감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대략 4번인가?
무력화가 되어 있는 와중에 몸이 들썩거린 게 벌써 네 번째였다.
그럼 2%씩 감소해서 총 8%.
레비아탄 레이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드래곤 슬레이어 하나만으로 8%를 깎았으니 지금까지의 성과는 굉장히 좋은 편에 속했다.
<불멸> 그만 올라와라. 녀석 깨어난다.
<주호> 알았어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를 타고 하강해서 내려왔다.
“올라타.”
바로 썬더볼트에 올라타자마자 거대한 레비아탄의 몸체가 요동을 치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로 아귀를 강하게 닫아버렸다.
그걸 보자마자 등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씹혔겠는데?
저 정도의 크기의 이빨에 씹히면 아마 남은 체력이고 뭐고 그냥 한 방에 죽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한 내겐 레비아탄의 저런 공격은 치명타지.
최대한 원거리 위주의 공격으로.
그리고 그러기 위해 준비한 녀석들.
바로 손을 뻗어 하늘에 날아다니는 브랜디슈 블레이드 부대를 레비아탄을 향해 쏘아냈다.
그러자 수십 자루의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거칠게 성을 내는 레비아탄의 안면을 그대로 강타해 버렸다.
콰콰칵!
쇠와 쇠가 갈리는 듯한 격타음.
유효한 공격이 될 줄 알았던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레비아탄의 안면을 제대로 타격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와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눈을 노리고 날린 건데 생각보다 더 견고하네요.”
세세한 조절은 힘들지만 일단 날리다 보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목 부위를 칠 때보다 더 단단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안면이 약점인 경우가 많은데 레비아탄은 전혀 아냐. 아예 박히지도 않잖아. 특히 눈 부분에 이중으로 엮인 저 비늘을 못 뚫으면 눈은 무리다.”
결국 아까와 같은 방법을 쓰거나 정석적으로 타격을 줘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한 발 남은 용격을 최대한 아끼는 선에서 공격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레비아탄의 주변 바다에 푸른빛 마법진이 다수 생겨나면서 바닷물을 끌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의 창이 생성되었다.
“시작했네.”
그렇게 순식간에 생성된 물의 창들이 쏜살같이 날아오자 재중이 형의 표정이 굳어졌다.
입으로 쏘는 단순한 물 폭탄과는 숫자와 속도부터 달랐다.
“꽉 잡아!”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의 고개를 올려 묘기를 부리듯 좌우로 흔들며 위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십여 개의 물의 창을 피해내는가 싶었는데 변수는 그때 일어났다.
“형! 아래!”
“응?”
당연히 피했을 거라 생각했던 물의 창이 급격하게 궤적을 꺾으면서 유도탄처럼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하, 역시 그냥 네임드는 아니라는 거지?”
지금껏 쏘아져 지나간 마법이 방향을 꺾어가면서 날아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재중이 형도 손이 좀 꼬인 것 같았고.
이미 썬더볼트를 크게 움직인 상황이라 날아다니는 물의 창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바로 수십 개의 물의 창이 상승하는 우리의 뒤를 바싹 뒤쫓았고 그리고 양옆으로도 물의 창들이 비슷한 숫자로 우리를 덮치는 중이었다.
“꽉 잡아라!”
치아를 으득, 하고 가는 소리와 함께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의 날개를 크게 펼쳤다.
그 순간, 썬더볼트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걸리면서 몸이 공기에 짜부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윽!
마치 달리던 차가 급격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몸이 앞으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썬더볼트의 날개를 좌우로 살짝 비틀자 썬더볼트가 크게 뒤틀리더니 공중에서 롤링을 하면서 바다를 향해 빠르게 하강을 했다.
썬더볼트가 수직 낙하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자 날아들던 물의 창들이 갑자기 갈 곳을 잃고 서로 부딪치면서 공중에서 터져나갔다.
“휘유, 피했다.”
“윽, 다음엔 좀 말을 하고….”
휘청거리는 썬더볼트에 매달려 있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
“피했으면 됐지. 또 온다!”
한 번 움직인 물의 창은 멈출 생각 없이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것도 유도가 되는 물의 창이.
전에 보여준 물의 창들은 맛보기였나?
난이도를 비교하면 이쪽이 수십 배는 어려웠다.
이미 피했다 생각한 물의 창이 되돌아와서 추가적으로 쫓아오니까.
단 한 사람에게 몰리는 이런 집중포화는 재중이 형 정도의 미친 컨트롤이 아니면 절대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이거, 너무 화나게 만들었는데?”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피하기만 하다 보면 이쪽이 먼저 지친다.
“형! 일렬로 모아줘요.”
“응? 알았다.”
내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이 썬더볼트를 몰아 우리 뒤쪽으로 물의 창이 몰리게끔 비행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가라!”
공중에 떠서 우리를 따라오던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을 물의 창과 정면에서 부딪치게 만들었다.
퍼퍼엉!
브랜디슈 블레이드와 물의 창들이 공중에서 부딪치면서 폭발이 일어났고 물의 창들이 분해되어 사방으로 비산되어갔다.
“오케이. 잘했어.”
“결국 저 물의 창이 문제네요.”
지금 사방으로 물의 창들이 날아다녀서 전사 형은 물론이고 이쁜소녀, 챠밍 할 것 없이 도망 다닌다고 정신이 없었다.
누가 누구를 챙겨주기에 역부족인 상황.
원래라면 물의 창은 수많은 유저가 레비아탄을 둘러싸고 레이드를 할 때를 위해 만들어진 마법이지 않을까?
그걸 소수인 우리가 상대하다 보니 한 명에게 쏠리는 물의 창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소수의 유저가 레이드를 한다고 물의 창의 숫자를 줄여줄 정도로 친절한 시스템은 절대 아니지.
너무 많은 물의 창을 피해 다닌다고 정상적인 레이드가 되지 않자 인상을 썼다.
저 물의 창을 어떻게든 해야…….
“형, 레비아탄에게 최대한 접근할 수 있어요?”
“실패하면 우리 둘 다 죽는다. 알지? 이 이상 접근하면 나도 힘들어.”
외곽은 물의 창을 피해서 어느 정도 피할 공간이 나지만 레비아탄에 가까워지면 정말 물의 창들이 바글바글했다.
“네, 알고 있어요.”
굳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재중이 형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가보자. 지금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돼. 실패하면 죽기밖에 더하겠냐.”
재중이 형이 다시 묘기를 부리면서 물의 창들을 피해 억지로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계속 이렇게 쫓겨 다니면 우리 쪽 비행시간이 줄어서 결국은 패배다.
그럼 정면 돌파밖에 없다.
들어갈수록 압박이 심해지는 가운데 오직 하나만을 집중했다.
레비아탄 주변 바다에서 돌아가는 마법진들.
그리고 적절한 거리까지 좁혀지자 바로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을 마법진을 향해 쏘아냈다.
되려나?
안 되면 곤란한데.
그렇게 쏘아진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이 바닷물 위에 생성된 마법진과 닿는 순간.
키긱!
돌아가던 마법진의 끝이 갈려나가면서 마법진이 하나씩 와해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물의 창이 소멸하면서 압박이 풀어졌고.
마법진을 파괴하면 마법이 사라지는 걸, 몇 번 겪어봐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통했다.
그렇게 레비아탄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법진을 하나씩 파괴하자 허공에 날아다니던 수많은 물의 창이 분해되어 바닷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방패전사>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유도해서 날아오는데 어휴.
전사 형이 피곤해할 정도로 이번엔 압박이 심했다.
“네가 체력을 많이 깎아서 페이즈가 자동으로 넘어간 것 같은데? 유도탄은 생각도 못 했네.”
“확실히 다르긴 하네요.”
마법진이 모두 깨진 뒤, 레비아탄의 두 눈이 갑자기 붉게 물들면서 크게 포효를 했다.
그리고 이번엔 레비아탄을 중심으로 아주 큰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바닷물이 요동치면서 끌어올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물의 창 같은 건가?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끌어올려진 바닷물이 서로 뭉치면서 거대한 물기둥으로 변해 급격하게 회전을 하더니 마치 태풍이라도 된 듯 주변의 물이고 대기고 할 것 없이 모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떠 있는 이곳까지 영향을 줄 정도의 엄청난 풍압이 형성되자 썬더볼트와 트리스탄, 레서 드래곤 모두 공중에서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레비아탄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형!”
“최대한 빠져나가고 있어! 꽉 잡아!!”
재중이 형이 아예 레비아탄 반대 방향으로 날개를 펼칠 뒤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빨아들이는 힘이 워낙 강해서 속수무책이었다.
<챠밍> 오빠! 트리스탄 조정이 안 돼요!
<나르샤> 같이 당기는데도 전혀 못 버텨!
<이쁜소녀> 까악! 어떻게 해요!
<방패전사> 이거 계속 딸려갑니다!
<막내별> 와, 진짜 이 스킬 미쳤네!
우리 팀도 당황한 기색이 가득했다.
탈것의 컨트롤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아무리 컨을 잘해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젠장, 이쪽도 다 먹통이다. 날아다니는 유저들 엿 먹이려고 만든 스킬 같은데.”
레비아탄 상대로 수많은 비공정이나 탈것이 날아다니면서 레이드를 하면 그걸 저격하는 스킬인건가.
역시 편하게 잡으라고 만든 네임드는 절대 아니었다.
스킬 하나하나가 우리에겐 치명적이었다.
“용격 없지?”
“아껴야죠.”
“젠장, 저걸 무슨 수로 저지 시키라고? 이 상태면 레비아탄 코앞까지 배달되게 생겼네.”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중이라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레비아탄 앞으로 가게 된다.
그럼 조종이 불가능한 탈것은 먹기 좋은 밥이 될 뿐이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킬을 집어넣어 놨는지.
저걸 파훼할 방법이라…….
진(眞) 썬더볼트 소환도 있긴 했지만, 이건 정말 마지막까지 아껴야 하는 수였다.
레이드 중 딱 한 번밖에 못 쓰니까.
방법이 없나?
순간 내 주변에 떠다니면서 우리와 함께 빨려 들어가는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되려나?
상태창을 보니 지금도 마력이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브랜디슈 블레이드들을 바라봤다.
분명히 스킬을 쓰면 한꺼번에 걸렸지?
귀신에 홀린 듯 바로 스킬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공중에 떠 있던 브랜디슈 블레이드 몇 자루에 하얀 반달이 검신을 타고 길게 생성되었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미친. 그게 돼?”
“되네요.”
설마 이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원거리에서 스킬이 걸린다는 것은 이미 웨폰 기술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반월참이 동시에 걸릴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르아 카르테가 전달해주는 마력이 차오르고 떨어지길 반복하면서 나머지 브랜디슈 블레이드에도 하나씩 하얀 반달이 추가로 생겨났다.
마치, 마력이 부족해서 켜지지 않았다는 듯.
마력을 잡아먹으면서.
그렇게 점점 많은 브랜디슈 블레이드의 검신이 새하얀 빛에 물들어갈 때 썬더볼트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레비아탄에게 끌려들어 갔다.
“이젠 더 못 버텨!”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돼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재중이 형이 최대한 썬더볼트를 끌어당겨서 속도를 늦췄다.
하늘에 떠 있는 모든 브랜디슈 블레이드가 거의 대부분 하얀 빛이 새겨질 때쯤.
더 버틸 수 없게 되자, 썬더볼트가 완전히 물기둥의 태풍 앞까지 끌려들어갔다.
솔직히 나도 반월참을 이렇게 많이 생성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된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씨익 웃어 보였다.
“큭, 재밌겠네.”
과연 반월참 수십 발 어치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이젠 나도 궁금해졌다.
“그럼 갑니다!”
공중에 떠 있던 모든 브랜디슈 블레이드에 반월참을 장전하곤 바로 물기둥 태풍으로 날려 버렸다.
그리고 물기둥 속을 파고드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 반월참! 】
쾅!!
콰앙!!
콰아아앙!!
수십 발에 달하는 반월참이 일제히 터지자 물기둥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던 레비아탄에게서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키에에에엑!!
심지어 반월참의 위력에 마법진이 한 번에 캔슬되어 버리고 하늘로 치솟던 물기둥도 바로 와해되어 비처럼 쏟아졌다.
그것도 모자라 물줄기들이 증발되어 사방으로 수증기 안개를 만들어 내었다.
거기다 반월참이 수증기 안개 속에서 계속 연쇄 폭발을 일으켜서 끊임없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뭐 핵폭탄 수준인데?”
재중이 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고, 우리 팀도 겨우 자세를 추스르고 그 모습을 넋 빠진 듯 구경했다.
얼마 후, 안개가 걷히고 난 뒤.
비늘이 전부 그슬리고 완전히 통구이가 된 레비아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레비아탄 주변으로 떠다니는 뭔가가 보였다.
【 레비아탄의 비늘 / 제작 재료. 】
【 레비아탄의 비늘 / 제작 재료. 】
:
그것도 수십 개가.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자동으로 부위파괴가 되어 비늘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이거 용격보다 훨씬 쎈 거 아냐?
뭔가 미친 조합을 만들어버린 듯한데?
무한의 마력.
이건 진짜 미쳤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