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바다의 왕 (3)
레비아탄이 처음으로 브레스를 사용했을 때는 시야가 안개에 가려져 있어서 미처 생각을 못 했다.
거기다 브레스를 쓴다는 것 자체를 선택지에 넣어두지 않아 반응할 수 없었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일단, 레비아탄이 용종 계열이라는 것은 이미 몇 번의 공격으로 충분히 확인했다.
드래곤의 브레스.
레비아탄의 브레스.
그리고 두 개체가 같은 계열이라면 브레스도 같은 성질을 가질 테니까 용격이 통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뭐, 아직 드래곤의 브레스로 실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심적으로는 이미 판단이 섰다.
될 것이다.
아니, 안 되면 곤란하지.
시간의 서를 사용해 드래곤 슬레이어의 옵션 중 하나인 용격의 쿨을 돌려놓자 검게 변해 있던 용격 스킬이 바로 활성 상태로 돌아왔다.
활성화가 된 것을 확인한 순간, 내게 쇄도하는 바다 빛의 브레스를 향해 드래곤 슬레이어를 크게 휘둘렀다.
그렇게 레비아탄의 브레스와 드래곤 슬레이어의 충돌이 일어나자 예의 예상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바로 울려 퍼졌다.
《 레비아탄의 브레스를 흡수했습니다. 》
《 용격이 100% 충전되었습니다. 》
단지 부딪쳤을 뿐인데 한 번에 용격이 100%까지 차올랐다.
이건 레비아탄 브레스가 최소 레서 드래곤의 열화판 브레스스무 개 분량의 대미지를 넘어간다는 뜻.
문제는 그 뒤,
추가로 나오는 메시지에 상황이 복잡하게 변해 버렸다.
《 드래곤 슬레이어가 충전 한도에 도달했습니다. 대미지를 더 이상 상쇄할 수 없습니다. 》
순간 시선이 두 곳으로 분산되었다.
한 곳은 체력 바.
그리고 다른 한 곳은 드래곤 슬레이어와 레비아탄의 브레스가 맞닿은 부분.
《 레비아탄의 브레스에 체력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
《 레비아탄의 브레스에 체력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
체력 바가 눈에 보일 정도로 쭉 줄어들면서 체력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렇게 흡수를 어느 정도 하고 난 뒤, 브레스의 크기가 작아졌지만 여전히 드래곤 슬레이어의 날을 잡아먹을 듯 밀고 들어왔다.
가뜩이나 체력 수치가 적은 내게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칫.
그냥 전부 흡수하는 것이 아니었나?
이대로 그냥 두면 남은 레비아탄의 브레스 대미지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스치는 생각.
드래곤 슬레이어로 전부 흡수가 불가능하면 다른 쪽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르아 카르테를 들어 올려 드래곤 슬레이어와 십자로 교차를 하듯 레비아탄의 브레스를 내려쳤다.
그러자 르아 카르테가 파랗게 물들면서 레비아탄의 브레스 일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역시.
순간의 기지였지만, 확실히 이쪽도 흡수를 한다.
비록 용격처럼 스킬을 쓰도록 충전하는 용도는 아니지만, 마력을 빨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레비아탄의 브레스에 들어간 마력이 내 마력으로 전환이 되면서 마력 바가 급격하게 차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완벽한 언밸런스.
체력은 쭈욱, 내려가고 마력을 쭈욱, 올라가고.
당연히 지금 이 상황은 내겐 좋지 않았다.
꽤 많은 양을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레스가 밀고 들어오는 힘을 이기지 못해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가 동시에 튕겨나듯 밀려 올라갔다.
이대로 밀려 버리면 내 쪽이 직격타로 맞게 된다.
그건 곤란하지.
바로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자 자연스럽게 타고 있던 썬더볼트도 움직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의 각도를 정밀하게 기울였다.
마치, 하나의 반사판이 되는 것처럼 비스듬하게.
그러자 브레스의 힘을 이기지 못한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를 잡고 있던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근력이 부족한 게 여기서 발목을 잡나?
찰나의 순간을 나눠가며 어떻게든 각도를 최적으로 맞추자 팔의 진동이 조금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힘에 부친 느낌이었다.
조금 더 밀려나라.
조금만 더.
내 체력이 전부 소모되기 전에.
지금도 체력이 쭉, 떨어지면서 겨우 물약으로 한 번씩 채워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브레스와 줄타기를 하다 조금씩 궤적이 비틀어지더니 결국 브레스가 사선으로 밀려나면서 먼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휴.
어떻게든 밀어낸 건.
이번엔 진짜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고.
체력 바도 최악의 수치까지 떨어졌다가 겨우 물약의 회복력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묘기에 가까운 일도 드래곤 슬레이어와 르아 카르테가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기다 강화 수치가 조금만 낮았다면 대미지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나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각도를 조금만 잘못 느껴서 확 꺾었더라면 바로 죽었겠지.
<방패전사> 허, 진짜 저 브레스를 튕겨냈어?
<이쁜소녀> 대박!!
<막내별> 진심 미쳤…….
<챠밍> 괜찮아요?
우리 팀의 감탄과 함께 챠밍의 걱정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주호> 아, 괜찮음. 겨우 살았어.
솔직히 마지막엔 좀 쫄았고.
드래곤 슬레이어가 완전히 브레스를 흡수할 거라는 판단 자체가 미스였다.
처음부터 르아 카르테를 동원했다면 좀 더 수월했을지도.
그러면서 다시 날아드는 물의 창들을 빠르게 피해냈다.
여전히 물의 창은 수백 개가 넘는 마법진에서 미친 듯 쏘아져 올라왔으니까.
주변에 있던 나나 재중이 형에게 너무 어글이 끌려 있어서 그런지 물의 창이 죄다 몰려들어 제대로 회복할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다.
트리플 캐스팅 같은 것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
대체 마법진을 몇 개나 유지하는 건지.
거기다 브레스까지 동시에 쏘고.
일반 네임드와는 격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나르샤> 여기서 시선 좀 끌게. 회복해.
【 썬더볼트 압축포! 】
그러더니 멀리 떨어져 있던 트리스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르샤 누나가 시야가 좋다 보니 아주 멀리서부터도 레비아탄의 머리를 정확하게 맞춰냈다.
그러자 계속 나와 재중이 형을 공격하던 레비아탄의 시선이 바로 멀리 있는 챠밍과 나르샤 누나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비아탄이 바로 트리스탄을 쫓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물의 창들을 유지하던 마법진이 사라지면서 물의 창도 동시에 흩어져 사라졌다.
레비아탄이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르면서 트리스탄을 쫓아갔는데 트리스탄과의 거리를 쉽게 좁히지는 못하는 모습이 보였다.
트리스탄은 완전 전투형이니까.
속도 면에선 베록보다 더 빠르기에 레비아탄에게 쉽사리 잡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따돌리지는 못했지만.
일단 한숨 돌렸나.
그대로 계속 공격을 받았으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어느새 내 근처로 날아온 재중이 형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진짜 망하나 했다. 난 드래곤 슬레이어가 브레스를 통째로 흡수할 거라 생각했거든.”
“저도 그 생각이었는데 빨리 반응 못 했으면 죽었을 거예요.”
“고생했다. 브레스는 이제 확실히 튕겨낼 수 있을 것 같아?”
“으음, 모르겠어요. 이번엔 운이 좀 따른 것 같아요.”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반반 싸움 정도의 느낌이라.
“그래? 흐음, 드래곤도 이 정도 수준이면 정말 빡세겠는데? 거기다 그놈은 날아다니잖아.”
재중이 형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도 브레스를 쏘는 것밖에는 본 적이 없는데 만약 레비아탄 수준의 광역기를 써대고 또 이중 삼중으로 동시 공격이 가능하면 레비아탄보다 훨씬 강하다고 봐야 했다.
레비아탄은 바다에 머물 뿐이지만 드래곤은 아예 공중에 날아다니니까.
특수성을 고려하면 드래곤 쪽이 몇십 배는 까다로울 것이다.
“자, 드래곤은 나중에 생각하고. 쓸 수 있는 카드가 더 있어? 애들 오래는 못 버틸 거야.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지.”
붙어보니 목표는 딱 하나로 좁혀졌다.
지금 레비아탄을 잡는 것은 절대 무리.
그럼 원하는 것 하나만이라도 이번에 가져갈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용격 정도죠. 아, 썬더볼트도 있긴 해요. 비검도 있기는 한데 솔직히 회수하긴 힘들테니…….”
비검을 쓰는 것까진 괜찮다.
다만, 한 번 박히고 난 뒤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묶이기라도 하면 직접 가서 뽑아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 이쪽은 패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트리스탄의 압축 하르포 정도가 전부라 길게 붙으면 붙을수록 우리가 불리했다.
거기다 탈것들의 비행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베록과 같은 버텨줄 수 있는 비공정이 떠 있어야 오가면서 유지를 할 텐데 지금은 어렵지.
“오케이. 다 털어내고 가자.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딱 한 방.
해보고 안 되면 빠진다.
레비아탄을 보자 챠밍이 몰고 있는 트리스탄과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르샤 누나가 한 번씩 하르포를 써서 레비아탄을 방해하는 정도가 끝.
그 이상은 크게 무리를 하지 않고 거리만 유지했다.
재중이 형은 다시 썬더볼트를 몰고 가서 레비아탄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주호> 조금만 더 시선을 끌어주세요.
<챠밍> 최대한 끌어볼게요.
<불멸> 오케이. 넌 타격에만 집중해.
그렇게 트리스탄과 썬더볼트가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니 레비아탄의 움직임이 상당히 둔화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예의 그 바닷물을 끌어모으는 물의 창이 시전되었고.
완전히 둘에게 어글이 넘어갔네.
그럼 가볼까.
일단 최대한 가까이.
처음에는 레비아탄이 우리를 신경 쓰고 있지 않아서 용격을 적중시킬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리저리 날뛰는 중이라 완벽하게 맞추려면 거리를 더 좁혀야 했다.
절대 용격이 실패할 수 없는 딱 그런 거리.
그것도 정확하게 전에 맞춘 부위를 맞춰야 해서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다.
용격을 맞추기 위해 계속 접근하는데 어느 이상으로 접근하자 결국 물의 창이 내게도 날아오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나?
저 물의 창을 잠시나마 무력화시킬 기술을 쓸 수밖에.
<주호> 그냥 사용할게요. 다들 떨어지세요.
내가 신호를 하자 트리스탄과 썬더볼트가 바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아껴놨던 스킬을 꺼내 들었다.
【 진(眞) 썬더볼트 소환! 】
스킬을 쓰니 바로 검은 구름들이 옆으로 갈라지면서 하늘에 거대한 청록빛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제대로 된 썬더볼트가 소환되어 사방에 번쩍이는 낙뢰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레비아탄의 물의 창과 썬더볼트의 낙뢰.
둘의 광역기가 허공에서 거칠게 부딪히면서 물의 창이 비산해서 흩어졌고 낙뢰의 스파크가 그런 물을 타고 터져나가 주변 필드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생각보다 쎈데?
구 네임드의 환영이라 밀릴 줄 알았는데 단기 결전으로 소환되는 격이라 생각보다 레비아탄을 상대로 잘 버텨주고 있었다.
<방패전사> 완전 괴수들의 싸움이군.
<이쁜소녀> 멋지다.
<막내별> 이런 건 정말 처음 봐요.
어느 정도 호각세를 보여주던 썬더볼트가 입가를 크게 벌리더니 뇌전이 가득 담긴 한방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걸 본 레비아탄 역시 브레스를 입에 가득 물고 차징에 들어갔다.
잠시 후.
차징을 온전히 마친 두 개의 브레스가 쏟아져 나오며 둘의 브레스가 공중 한가운데서 맹렬히 부딪쳐갔다.
파지지직!
콰아아아!
그렇게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브레스가 서로 밀고 밀려 나가며 하늘이 뒤집히고 바닷물이 쓸려나가는 광경이란…….
<불멸> 썬더볼트는 얼마 버티지 못해!
<주호> 네. 들어갑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다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뢰와 주변에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물의 창 사이를 비집고 날아 들어갔다.
아직 썬더볼트의 힘이 남아 있는 지금.
내게 남은 단 한 번의 기회가 존재했다.
어수선한 폭풍 속을 날아가 레비아탄을 보자 브레스를 쏘아낸다고 고개를 잔뜩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완벽하게 무방비인 상태.
그것도 내가 원하는 부위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가자.
지체 없이 드래곤 슬레이어를 조준해 스킬을 시전했다.
【 용격! 】
그렇게 용격을 쓰자마자 변형된 드래곤 슬레이어에서 강력한 브레스가 맹렬히 날아갔다.
그리고 그 한 방은 정확하게 레비아탄의 목 가운데를 관통하며 터져나갔다.
콰아앙!
케에에엑!!
용격을 제대로 맞은 레비아탄이 고통스러운지 온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했다.
레비아탄이 몸부림치자 사방으로 바닷물이 해일처럼 밀려 나왔고.
여기서 끝이 아니지.
두 개의 브레스가 밀고 밀리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한쪽의 브레스가 끊기면 어떻게 될까?
용격에 의해 레비아탄의 브레스가 끊기자 하늘에서 뇌전 다발을 쏘아내던 썬더볼트의 브레스가 압도적으로 레비아탄을 덮쳐 버렸다.
콰지지지직!!
키에에에엑!!
그렇게 차마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뇌전이 바닷물과 레비아탄을 동시에 지지고 태워 들어가자 레비아탄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레비아탄의 뻣뻣하게 세워졌던 목과 머리가 그대로 힘을 잃고 바닷물 위로 무너져 내렸다.
이것이 내가 조합할 수 있는 현재 최고의 수.
빠르게 경직되어 쓰러져 있는 레비아탄을 향해 날아가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찾아다녔다.
제발.
있어라!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주변을 한참 찾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입가가 크게 올라갔다.
【 레비아탄의 비늘 / 제작 재료. 】
됐어!
해냈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