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441화 (434/1,404)
  • #441화 용맥 (5)

    드래곤 슬레이어?

    얻는 위치나 방법부터가 범상치 않더니… 심지어 서버 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일 아이템이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입수하는 것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뭐 어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목적, 그 이상을 이룬 이상 지금 상황에서는 최상의 결과였다.

    한 손으로 녀석을 잡자마자 바로 인벤에 집어넣은 뒤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지금 여기서 일일이 확인하고 있을 여유는 전혀 없었다.

    단 1초라도 시간을 아껴야 하는 상황.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저 멀리서 경계를 넘어온 칠흑의 용아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그라운드 핸즈로는 얼마 붙잡아 놓지 못하는구나.

    분명 그라운드 핸즈는 상위의 마법이었다.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잡고 나온 마법이니까.

    문제는 스킬 레벨.

    낮은 숙련도로 스킬 랭크가 낮아 제 위력을 발휘 못 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막내별의 레벨과 용아병의 레벨 차이도 스킬 지속 효과가 줄어드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쩌고 있지?

    지금쯤 전부 뭔가를 들고나왔어야 하는 데.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자 각기 다른 방에서 우리 팀원들이 한 명씩 뛰쳐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칠흑의 용아병만 여기에 있다면 여유를 부려도 어느 정도까지는 커버될 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녀석 혼자가 아니지…….

    갑자기 우리가 넘어온 경계가 크게 확장되면서 거대한 뭔가가 지나오는 듯한 출렁거림이 심해졌다.

    드래곤.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단단해 보이는 녀석의 각 잡힌 붉은 뿔이 경계를 서서히 넘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게 쭉 찢어져 착 가라앉은 새빨간 안광이 경계를 지나 우리를 주시했다.

    벌써 여기까지 와버렸나.

    그걸 보자마자 급하게 외쳤다.

    “다들! 뛰어요!”

    각자 방에서 나오다가 내 외침에 뒤를 돌아보고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꺅! 드래곤?”

    “세상에! 벌써 왔어?!”

    “빨리 뛰어요!”

    “언니 손!”

    막내별, 나르샤 누나, 챠밍, 이쁜소녀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화들짝 놀라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르샤 누나는 막내별의 손을 잡고 뛰고, 이쁜소녀 역시 챠밍의 손을 잡아채고 빠르게 달려왔다.

    전사 형, 재중이 형도 나오자마자 드래곤을 발견하더니 인상을 팍 쓰고는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아씨! 저게 왜 벌써 와 있어?!”

    “뒤돌아보지 말고 일단 뛰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촉박한 상황.

    어느 정도까지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

    드래곤이 최하층으로 내려오는데 따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한 번에 내려올 방법이 있다는 소리겠지.

    “크라아아아아!”

    머리와 목만 빠져나온 드래곤에게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단순히 음파만으로 이 커다란 드래곤 레어 전체가 들썩거릴 정도로.

    “크윽!”

    그러자 스턴까지는 아니지만 순간적으로 모두의 움직임이 다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설마 경직인가?

    이렇게까지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 영향력이라니.

    신체 내부가 진탕되는 것 같은 역겨움을 느끼며 빠르게 르아 카르테로 팔을 그어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경직이 전혀 풀리지 않았다.

    칫.

    이거 막아둔 거야?

    아님 레벨 차이?

    네임드라서?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요즘은 스턴이나 경직에 걸릴 일이 없어서 확인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걸리고 나니 눈앞이 캄캄한 기분이 들었다.

    스턴에 걸리는 사람들 마음이 이런 건가?

    초초한 마음에 상태 창을 보니 숫자가 3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는 않고.

    그나마 다행이군.

    3.

    2.

    1.

    마치 1분 같은 3초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직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이 풀리긴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칠흑의 용아병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 팀은 드래곤과 거리가 가까웠던 탓인지 아직 몸이 풀리지도 않았고.

    다들 낭패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어쩔 수 없나?

    스펙을 확인하지도 않았고, 강화가 되지 않은 드래곤 슬레이어로는 당장 싸울 수 없기에 르아 카르테와 데몬 블레이드를 들고 경직된 우리 팀을 향해 뛰었다.

    그렇게 우리 팀을 지나쳐 우리에게 달려오던 칠흑의 용아병 앞을 막아섰다.

    “여기서부터는 더 못 가지.”

    우리 팀이 경직이 풀리는 시간까지만.

    최대한 버텨본다.

    확인해보니 드래곤도 머리뿐만 아니라 길게 뻗은 목까지 모습을 드러내며 서서히 경계 너머로 넘어오고 있었다.

    【 헤이스트! 】

    드래곤이 더 넘어오기 전.

    우리 팀의 경직이 풀리는 시점.

    그때까지 딱 몇 초만 버티면 된다.

    웨폰 기술까지 모두 걸고 난 뒤 그대로 칠흑의 용아병과 부딪쳤다.

    먼저 데몬 블레이드로 시선을 끌고.

    데몬 블레이드를 강하게 횡으로 휘두르자 칠흑의 용아병의 아이기스가 반사적으로 옆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데몬 블레이드를 흘려내기까지.

    아이기스가 옆으로 움직이자 반대편이 비어 르아 카르테로 바로 찔러 들어갔다.

    이번엔 똑같이 브랜디슈로 내 르아 카르테를 막아섰다.

    브랜디슈와 르아 카르테가 부딪히는 순간 칠흑의 용아병이 흘리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르아 카르테에 힘을 빼고 검과 검의 날을 수평으로 겹쳐냈다.

    녀석이 흘린다면…….

    난 그걸 역이용한다!

    곧 브랜디슈의 칼날과 르아 카르테의 칼날이 완전히 겹쳐지더니 곧 내가 휘두르는 방향대로 브랜디슈가 그대로 딸려 나오면서 궤적이 완전히 어긋나기 시작했다.

    스으윽!

    검과 검이 부딪쳤음에도 전혀 그렇지 않은 마찰음.

    아니, 마찰이 거의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이 브랜디슈를 휘두르는 힘, 속도, 궤적, 방향.

    모든 것을 내 통제 속에 두고 완전히 브랜디슈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키킥?!”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칠흑의 용아병의 얼굴.

    확실히 이것까지는 못 따라 하는 것 같네.

    이건 어떤 데이터 같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손끝부터 온몸으로 느껴지는 흐름을 매 순간 감각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극한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이런 기술을 데이터로 만들기에는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브랜디슈를 흡착시켜 완전히 바깥으로 밀어낸 뒤 빠르게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어 용갑의 투구 사이에 비어있는 단 한 곳을 캐치했다.

    내가 확인할 수 유일한 빈틈.

    용갑이 관통을 막아주는 용도라면.

    시야를 위해 벌려져 있는 미간 사이의 이곳밖에 없다.

    그렇게 오색의 웨폰이 넘실거리는 르아 카르테의 칼날 끝으로 녀석의 눈 사이를 바로 찍어냈다.

    쾅!

    “크에엑!”

    역시.

    용갑만 아니라면 관통이 통한다!

    그동안 관통의 확률을 올려놓은 보람이 있는지 바로 관통과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얼굴이 터져나가자 녀석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일단 한 방 제대로 먹였으니까 이쪽은 됐고.

    고개를 들어 경계를 보자 경계에는 여전히 드래곤이 몸을 밀어 넣으면서 넘어오는 중이었다.

    이젠 정말 여유가 없다.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

    드래곤과 곧 일어날 칠흑의 용아병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이쪽이 많이 불리하지.

    뒤를 돌아보자 재중이 형을 포함해 모두가 경직이 풀려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재중이 형이 경직된 몸을 풀고는 혀를 찼다.

    “하, 이런 데서 발목이 잡히네.”

    “빨리 움직이죠. 몇 초 없어요.”

    “알아! 바로 넘겨!”

    빠르게 재중이 형에게 달려가 내가 가지고 있던 미치광이 리치를 넘겨주었다.

    전에 확인한 꼼수.

    전이문은 패치로 하루에 한 번밖에 쓰지를 못한다.

    그런데 이걸 내가 쓰고 난 뒤, 다른 사람에게 주면 또 이야기가 바뀐다.

    곧 재중이 형이 미치광이 리치를 소환해서 그 자리에 전이문을 만들어냈다.

    “이거 정말 위험할 때 써먹으려고 했는데 아깝네.”

    “형, 지금이 그 진짜 위험할 때에요.”

    “크, 어쩔 수 없지. 얼른 뛰어 들어가.”

    그런데 그때 몸을 거의 다 경계에서 빼낸 드래곤의 몸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풍선처럼 배와 등을 부풀리면서 드래곤의 크게 벌어진 입가로 주변 공기가 압축되듯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거기다 드래곤의 정면에 투명하게 생긴 거대한 마법진들이 무려 사중으로 생성되더니 각각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꺅!”

    “몸이 떠요!”

    공기가 빨려 들어가면서 우리 쪽에도 영향을 주는 듯 챠밍과 막내별의 두 다리가 붕 뜨면서 드래곤이 있는 방향 쪽으로 몸이 쏠렸다.

    이 정도라니…….

    반면에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어 조금 밀리기만 한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바로 둘을 잡아채더니 공중에서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날아가면 안 되지.”

    “언니, 잡았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 형과 이쁜소녀까지도 끌려갈 정도로 더욱 강해졌다.

    저건 대체?

    그걸 본 나르샤 누나는 전에 이 광경을 본 적이 있는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브레스! 빨리 튀어!”

    설마 전에 드워프 지하 왕국을 한 방에 날려 버린 그 브레스인가?

    설마 이런 지하에서 그런 걸 쓸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것도 자기 레어 안에서 쓰다니.

    “튀어요!”

    다들 혼비백산해 전이문 안으로 바로 뛰어 들어갔다.

    모두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나와 재중이 형이 마지막에 전이문을 향해 발을 올리려는 순간.

    “크아아아아!!”

    드래곤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눈이 부실 정도로 광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깜짝 놀라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전이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전이문을 지나자마자 각자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몸을 굴렀다.

    전이문이 저걸 막아줄 거라고는 전혀 믿지 않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닫히던 전이문이 뭔가의 충격에 완전히 뒤틀리더니 곧 무너져 내리며 그 사이로 브레스가 뚫고 지나왔다.

    거기다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가 용암에 녹듯이 새빨갛게 끓어올랐다.

    그것도 우리가 구른 바로 옆으로.

    “휴, 조금만 늦게 굴렀으면 브레스에 녹았겠다.”

    재중이 형이 코앞으로 지나간 브레스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여기까지 와서 죽으면 개죽음이지. 진짜.

    전이문은 바로 파괴.

    덕분에 어떻게든 드래곤 레어와의 연결은 끊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잘 된 건가?

    죽은 사람도 없고.

    만약 못 빠져나올 경우를 상정해 전이문을 피난처로 생각하고 들어갔다.

    암흑지대가 위험한 것을 제외하면 몸을 빼기엔 최적의 장소니까.

    “바로 움직이죠.”

    분명 소란을 듣고 악마형 케르베로스나 고르곤이 움직일 것이다.

    나 혼자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는 피하겠지만 지금은 무리지.

    두 개의 검에 웨폰을 전부 불러내자 내 주위로 확연하게 빛이 밝아졌다.

    하나하나는 빛이 약하더라도 웨폰이 하도 많이 걸리니까 이런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따라오세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내 빛만 보고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터.

    그렇게 악마형 케르베로스와 고르곤이 있을 만한 장소를 피해 멀리까지 이동했다.

    위험도를 생각했을 때 처음 장소에서 최대한 움직이는 편이 좋았다.

    한참을 그렇게 이동한 뒤.

    재중이 형이 미치광이 리치를 전사 형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전사 형이 전이문을 새로 열었다.

    “과연 어디로 빠지려나?”

    재중이 형의 말에 전사 형이 먼저 전이문 앞에 섰다.

    “제가 먼저 살펴보죠.”

    패치로 위치가 랜덤으로 변하면서 일단 드래곤 레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전사 형이 라지 쉴드를 들고 전이문을 지나갔다.

    얼마 후.

    반대편에서 전사 형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십쇼. 안전합니다.”

    그제야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보이는 익숙한 장소.

    챠밍이 바로 기억이 나는지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여기는… 말라버린 숲이네요.”

    다행이네.

    정말 멀리 오기는 했는데 충분히 안전지대로 넘어왔다.

    장소를 확인하자마자 다들 진이 빠지는지 그대로 자리에서 철푸덕 주저앉았다.

    몇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고.

    정말 긴장을 엄청 했었구나.

    “고생했다. 다들.”

    재중이 형의 말에 모두 환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전리품을 한 번 살펴볼까?”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서 뭘 가지고 나온 지 아무도 모른다.

    재중이 형이 먼저 나를 바라보자 마주 보면서 미소지었다.

    “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사실 나도 제대로 살펴보질 못했으니.

    품에서 드래곤 슬레이어를 꺼냈더니 다들 눈이 화들짝만 하게 커졌다.

    그도 그런 것이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무기였다.

    단순히 보상의 등급만으로 치면 거의 끝판왕에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스펙을 확인하자마자 재중이 형이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하아, 유일템이 맞긴 맞구나. 용을 먹고 크는 검이라니… 이거 다시 돌아가야겠네.”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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