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
#391화 잃어버린 상징을 찾아서 (5)
혹시 이거…….
너무 많이 온 것 아냐?
증표에서 나오는 빛이 내 정면이 아니라 정확히 내 뒤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건 두 번째 블링크로 뛰어넘은 거리 안, 어딘가에 상징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저 녀석을 떼어낸 것은 좋았는데 너무 많이 와 버렸다.
어쩔 수 없나?
혀를 차면서 곧장 뒤로 돌았다.
지금 당장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 정체불명의 적에게로.
인간 형태가 아닌 4족 보행하는 동물형이라 그런지 몰라도 몸으로 느끼기에 확실히 악마형 케르베로스보다 빨랐다.
이동기를 다 써버린 지금 마주치면 절대 떨쳐내지는 못한다는 소리고.
하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지.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차피 이 암흑 기운 안에서 죽게 될 것이다.
당장은 뾰족한 방법도 없고.
그럼 달려들 수밖에.
못 먹어도 고.
【 다크 아머! 】
한 방이라도 더 버티려면 다크 아머가 필수다.
이제 남은 것은 운에 맡기는 일뿐.
조금이라도 빨리 찾길 빌어야겠지.
그 순간 잊고 있던 스킬이 생각났다.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이 있었는데 이제껏 뭐한 거지?
생각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서 바로 스킬 목록에서 빠르게 라이트를 찾아 시전했다.
【 라이트! 】
스킬을 사용하자마자 라이트가 그대로 꺼져 버렸다.
뭐지?
암흑 기운이라고 하더니 상성 때문에 뭔가 막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이러면 어지간한 스킬은 다 막힌다고 봐야하는데…….
그렇다면,
【 라이트 웨폰! 】
후, 이건 다행히 가능했다.
다만 범위가 워낙 좁아 이걸로 뭔가를 확인하기에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나.
이 어둠 속에서 믿을 것은 오직 내 감각뿐이었다.
바로 뒤로 돌아서 그 정체불명의 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려나갔다.
블링크를 써도 순식간에 따라오는 것을 봐서는 한 번 어글을 잡은 상대를 놓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럼 이번에도 똑같이 따라올 터.
뒤로 달려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녀석이 어둠 속에서 달려오는 진동이 노면의 흔들거리는 상태를 통해 느껴졌다.
역시.
빠르다.
순식간에 내가 있는 위치까지 따라와서는 어둠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검은 뿔?
총 네 개나 되는 검은 뿔이 시야에 확 들어왔다.
몸체에서 온통 불길한 검은 기운을 흘리는 거대한 검은 짐승이 어둠 속에 얼핏 형태만을 드러내었다.
넘실넘실 거리는 외형에 정확하게 파악은 안 되지만.
일단 컸다.
높이만 거의 4m는 되어 보이는 모습에 뒤로 주춤할 정도.
어둠 뒤로 보이지 않는 길이까지 치면 아마 훨씬 길 것이다.
그리고 보자마자 왜 이렇게 주력이 빠른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체격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저 정도 체격이면 한 발을 내뻗는 간격 자체가 다르다.
그것도 4족이니 더 빠를 수밖에.
순간 내 앞에 다다른 녀석의 네 개의 검은 뿔이 동시에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바로 옆으로 굴렀다.
뭔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상.
맞으면 정말 죽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쏜살같이 날아와 내가 구르기 전의 자리를 타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친 땅이 아주 반듯하게 사라져 있었다.
뭔가가 날아오는 기척만 느꼈을 뿐.
어둠 속이라 눈으로 제대로 쫓지도 못 했다.
그리고 순수하게 땅을 일자로 뚫어버렸다.
위력이…….
뭐가 저래?
보통 유저가 저 정도의 위력을 내려면 정말 강력한 스킬을 써야 했다.
그것도 온전히 부수는 것도 아닌 터뜨리는 방법으로.
심지어 케르베로스가 쓰는 기술도 땅을 밭고랑 갈 듯 갈아버리는 정도지 이 수준으로 뚫고 지나가지는 않는다.
직격 당했으면 아마도 체력이 그대로 바닥났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니, 그냥 그 자리에서 삭제됐을지도.
설마 저런 스킬을 연달아 쓰진 않겠지?
그런 내 바람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 뿔만 보이는 녀석이 계속 해서 사방에 보이지 않는 마법을 뿌려댔다.
레벨 99, 그리고 민첩에 올인한 나도 겨우 감으로 피하는 속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유저가 저 녀석을 만나면 그냥 재앙이다.
정말 아무 짓도 못 해보고 그대로 녹아버릴 것이다.
혹은 방어구와 함께 뚫려 버린다든지.
무슨 이런 몬스터가 다 있지?
위력 면에서 그간 만났던 몬스터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녀석을 오래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내겐 없었다.
물약이 벌써 네 개나 떨어졌나.
이제 남은 물약은 하나.
녀석의 공격을 피해 다닌다고 시간을 너무 끌어버렸다.
이 녀석을 지나가야하는데…….
앞으로 전진할 틈을 주지 않으니 난감함이 배가 되는 기분이다.
할 수 없나.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려 오직 녀석이 날리는 검은 기운에 집중했다.
옆으로 피하면 반드시 추가타가 날아온다.
그럼 계속 뒤로 빠지면서 피하기만 하는 상황이 이어질 터.
지금은 오직 전진뿐이다.
【 다크 웨폰! 】
라이트 웨폰이 걸린 카스카라에 이어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에 다크 웨폰을 걸고 정면으로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게 직진으로 날아오는 검은 기운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분명 내가 느끼기로 정확하게 정면으로 온다.
그리고 범위는 이미 녹아버린 주변 땅을 살펴보며 대략 파악했다.
아마, 딱 한 번.
내게 기회가 딱 한 번 올 것이다.
녀석의 검은 뿔이 흔들리는 딱 그때.
바로 몸을 뒤틀면서 우측으로 움직였다.
그것도 정면으로 계속 나아가며.
그리고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를 강하게 휘둘렀다.
치익!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와 검은 무언가가 마찰하면서 타들어 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런 손의 감각을 통해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의 각도를 조절했다.
조금만 강해도 튕겨 나가고 조금만 약해도 밀려 나온다.
오직 손에 느껴지는 감각 하나만 믿고 이걸 밀어내야 한다.
적어도 속성 면에서 아주 밀리지는 않는지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로 녀석의 기술을 잠시나마 옆으로 빗겨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인가?
스킬의 간격과 정면만 공격하는 성향.
그리고 뿔이 움직이고 난 뒤 검은 기운이 날아오는 속도와 방향까지.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리듯 그려졌다.
나머지는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으로 정말 스치듯이 검은 기운을 피해낼 수 있었다.
비록 어깨와 팔이 스치면서 체력이 쭉 깎여 내려가긴 했지만 일단 한 방에 죽는 사태만은 피했다.
거기다 연속으로 날아오는 스킬의 간격까지 모두 몸이 기억한다.
3.
2.
1.
지금.
【 투사! 】
그간 아껴두었던 카스카라에 달려가는 힘과 투사를 걸어 녀석의 뿔 부근에 집어던졌다.
몸체는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노릴만한 곳이 뿔밖에 없기도 하고.
누가 보면 13강 무기를 집어 던진다고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혹시 회수를 못 하면 정말 13강 카스카라가 날아가니까.
쫙 뻗어 나가는 카스카라의 하얀 궤적에 녀석의 실루엣이 얼핏 드러났다.
그리고 정확하게 네 개의 뿔 중 가장 아래 뿔에 카스카라가 날아가 박혀 들었다.
콰아앙!
음?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폭발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재수가 좋았네.
스킬의 캔슬 정도를 생각하고 던졌는데 생각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폭발의 위력이 상당히 되는지 녀석의 큰 동체가 그대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타격이 있었다.
【 대쉬! 】
폭발로 인해 녀석의 모습과 실루엣이 잠깐이나마 드러났다.
그 찰나, 녀석의 앞다리를 달리듯 차고 올라가 뿔에 박힌 카스카라를 뽑아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던 녀석의 이름이 보였다.
『 고르곤 』
정말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날 때 보이는 시뻘건 색.
역시.
레벨 차이가 심했구나.
이름만 확인하고는 그대로 고르곤의 머리를 박차고 등으로 뛰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한 사람 정도는 가볍게 등에 뛰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등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기 등을 공격하진 않겠지.
가능하다면 이대로 빠져나가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보이진 않는 뭔가가 위에서 확 내려쳐지는 파동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냥 바로 등에서 뛰어내렸다.
시야가 이렇게 엉망인 곳에서 다 보고 난 뒤에 판단하면 늦는다.
쿠웅!
“크허엉!”
뭔가가 고르곤의 등을 내려쳤는데, 그것은 묵직한 해머로 내려찍는 소리와 비슷했다.
그리고 고르곤의 비명도 함께 들려왔고.
설마?
자기 몸을 공격한 건가?
다소 흐리긴 했지만, 이제 조금은 적응된 시야엔 등을 내려찍은 뭔가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뛰어내리는 판단은 확실히 옳았다.
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고르곤은 뿔의 마법이 터지면서 피해를 입고, 등을 강하게 가격당해서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경직인가?
그렇다면 움직여야 했다.
바로 고르곤을 지나쳐 증표가 밝히고 있는 장소를 향해 달렸다.
예상 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겨우 빠져나오리라 생각했는데 아직 조금은 더 움직일 여력이 생겼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증표의 빛이 확연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달리다가 증표의 빛이 가장 밝게 나오는 장소에서 바로 멈췄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발 앞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서, 설마…… 절벽인가.”
지형이 참 아름답네.
잘 가다가 갑자기 절벽이 나오고.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절벽을 바라봤다.
이걸 뛰어내려야 하는 건가?
증표는 아무리 봐도 이곳에서 가장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잠시 멈칫하는 사이 고르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 이곳을 향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어어어!”
선택의 여지가 1도 없는데?
어차피 체력이 다 해도 죽는다.
저 녀석이 도착해도 죽고.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물약 하나에 목숨을 걸어보기로 했다.
심호흡을 한 뒤 그대로 어두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렇게 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을 느끼며 뛰어내렸던 절벽 끝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르곤이 고개를 불쑥 내밀고 날 노려보는 것이 보였다.
차마 뛰어내리지는 못하고.
그래, 다음에 오면 넌 꼭 잡아준다.
조금만 기다려라.
몸이 쑥 꺼지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계속 하강하다 보니 증표의 빛이 더더욱 강하게 퍼지면서 절벽 전체를 밝히기 시작했다.
진작 좀 이렇게 밝혀줬으면 얼마나 좋아.
라이트로도 못 밝히던 시야가 죽을 때가 다 된 지금에서야 확실히 환해졌다.
그런데 그때, 절벽 한참 바닥 쪽에 이상한 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확실히 저곳이다.
이제야 고생한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낙하 속도를 낮출 방법이…….
그렇게 방법을 찾다가 여분으로 인벤에 넣어두었던 윙 부츠를 꺼냈다.
【 플라이! 】
그러자 완벽하진 못 했지만 떨어지는 속도를 상당히 늦출 수는 있었다.
그 뒤, 절벽 쪽으로 몸을 붙이고는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를 동시에 벽에 찍었다.
캬가갹!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 계속 감각을 타고 올라왔다.
버텨라.
지금만 버티면 된다.
그렇게 속도를 낮추면서 내려가다가 절벽 바닥에 이르러서야 겨우 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썩 좋은 착지는 되지 못 했다.
낙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몇 번을 바닥에 튕기면서 엎어졌으니까.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속도인가?
아마 절벽이 조금만 더 깊었어도…….
진짜 생각하기도 싫네.
발목과 무릎, 허리가 나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잠시 누워 있다가 곧장 일어났다.
마지막 물약을 소모해서 겨우 살아 있는 목숨이라 낭비할 시간도 아까웠다.
주변을 둘러보자 전부 해골만 가득했다.
그것도 꽤 눈에 익은 복장을 한 해골들이.
로가슈 왕국 제식 복장.
아마도 이 사람들은 로가슈 왕국의 군대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빛이 나오는 한 사람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굉장히 화려한 복장을 한 남자.
그 남자의 품에서 굉장히 환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의 몸을 뒤져 그토록 찾던 물건을 발견했다.
《 로가슈 왕국 1왕자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
《 잃어버린 왕국의 상징을 찾았습니다. 》
《 잃어버린 왕국의 상징을 로가슈 왕국 국왕에게 전하면 메인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
드디어 찾았나.
<주호> 형, 찾았어요.
<불멸> 뭐? 진짜?
<주호> 네. 방금. 아, 도시서 봐요. 저 죽을 것 같음. 체력 바닥이에요.
<불멸> 거기서 죽으면 도시로 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주호> 네? 무슨 문제요?
<불멸> 케르베로스를 놓쳤어.
<주호> 아, 괜찮아요. 상징을 찾았으니까 이젠 놓쳐도 돼요.
<불멸> 아니, 그놈이…….
<주호> 네? 잘 안 들려요!
<불멸> 케르베로스, 그놈이 로가슈 왕성으로 가버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