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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90화 (387/1,404)

# 390

#390화 잃어버린 상징을 찾아서 (4)

미치광이 리치가 전이문을 여닫으면서 몬스터들을 소환하는 역할을 했다.

전이문을 여는 스킬.

바로 이 전이문에서 하계 악마형 케르베로스가 튀어나왔고.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왜 전이문을 닫는 것은 신경을 안 쓰는 걸까?

스킬을 시전하면 전이문이 열린다.

반대로 스킬을 해제하면 전이문이 닫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건 반쯤은 엉터리 시도에 불가했다.

보통은 잘 신경 안 쓰는 그런 시도.

그래서 혹시 잘못되면 죽어도 혼자 죽을 생각으로 파티원들에게는 따로 언질을 안 했고.

혹시 잘못돼 우르르 끌고 가서 다 같이 죽으면 뒤도 없다.

그런 생각으로 미치광이 리치에게 전이문을 닫으라는 명령을 내리자 당연하다는 듯 미치광이 리치가 손을 뻗어 전이문을 그대로 닫기 시작했다.

물론, 검은 불꽃 마법 몇 개가 전이문 틈으로 날아 들어와 날 공격했지만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로 하나씩 옆으로 튕겨내었다.

급하게 막아낸다고 튕겨낼 때마다 몸이 쿵쿵 울리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전이문이 검은 마법 몇 개를 들여보내는 것을 끝으로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아주 흔적도 없이.

『 네 이 녀석!! 거긴 안 된다! 』

전이문 너머로 악마형 케르베로스의 절규 같은 외침이 들려오다가 점점 희미하게 사라졌다.

전이문을 통과하는 게 저렇게 당황할 정도로 문제가 있는 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고함을 듣고 예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뭔가 있다.

물론,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 암흑 대기가 주변에 가득합니다. 》

《 암흑 대기를 이길 아이템이 없습니다. 》

《 암흑 대기로 인해 체력 저하가 시작됩니다. 》

《 빠르게 이 지역을 벗어나거나 암흑 대기를 버틸 수 있는 아이템을 착용하시길 바랍니다. 》

기묘한 시스템음.

지금껏 들어본 적 없던 시스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시스템음이 경고했던 대로 시야가 붉은빛으로 변하더니 체력바가 계속 줄어드는 게 보였다.

어쩔 수 없이 물약을 꺼내 마셨고.

이상한 지역에 와서 체력이 줄어드는 것은 이해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문제는 물약에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악마형 케르베로스와 싸운다고 체력 물약 대부분을 소진했다.

몇 개 남았지.

총 다섯 개.

지금 체력이 떨어지는 속도를 봐서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체력이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였다.

칫.

여기까진 좋았는데 다음이 문제인가.

체력 물약이 넉넉할 때 넘어왔다면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시간적 여유는 전혀 없었다.

뭔가를 찾아내던지.

내가 먼저 죽던지.

딱 두 가지 선택지만 남아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시커먼 대기로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마치, 한밤중 어둠 속에서 길을 걷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한 발 떼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시야가 나빴다.

혹시나 싶어 미니맵을 보니 미니맵 조차 검게 변해서 먹통이고 전체 맵을 열어 확인하니 이곳이 어디인지조차 표시되지 않았다.

최악인데.

혹시 나르샤 누나가 있으면 제3의 눈으로 어떻게든 확인을 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은 그런 나르샤 누나도 옆에 없었다.

전부 다 같이 들어와 볼 걸 그랬나.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다른 곳으로 유인한 뒤, 우리 팀원 전부를 전이문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만 할 뿐.

이미 벌어진 일에 후회를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문득 인벤 속에 있는 증표를 보았다.

잃어버린 상징을 찾는 매개체.

전이문으로 넘어오기 전,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가리킨 적이 있어 넘어오고 나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증표를 인벤에서 꺼내자마자 증표가 하얀빛을 발하면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얼떨결에 된 건가?

분명히 악마형 케르베로스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근처에 케르베로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증표는 확연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전이문을 가리켰는데 케르베로스가 나올 때 겹쳐 있어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때 귓속말이 울렸다.

<불멸> 살아 있냐?

음? 귓속말은 되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은 안 되는 건가?

그럼 완전히 다른 지역이라는 소리인데.

<주호> 네, 일단은요. 그런데 곧 죽을 것 같아요.

일단 물약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가만히 서 있는 시간조차 사치였다.

귓속말을 하면서도 증표가 가리키는 빛을 방향을 따라 서서히 걸음을 내디뎠다.

물론 조심스럽게.

컴컴한 어둠 속에서 언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주변을 먹어치운 어둠 때문에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가 마치 보이지 않는 검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카스카라는 제법 환한 빛을 내뿜었고.

상대적으로 환한 카스카라가 표적이 될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적에게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카스카라를 집어넣으려다가 다시 꺼내 들었다.

어차피 증표가 빛을 발하고 있어 굳이 넣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판단했다.

<불멸> 이쪽은 난리 났다.

<주호> 무슨?

<불멸> 너 넘어가고 미쳐 날뛰고 있어.

역시.

내가 넘어온 것이 문제가 되는구나.

<주호> 어째 정답이라고 확인시켜주는 느낌이네요.

<불멸> 크크,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주호> 버틸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놔두고 온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미치광이 리치를 잡아 실험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었다.

<불멸> 굳이 버틸 필요까지 있을까? 그냥 도망가려고. 어차피 이 녀석 못 잡아. 지금은 한켈 할아버지가 와도 못 잡을걸.

<주호> 으음. 그럼 다행이지만요.

<불멸> 일단 전사만 두고 다 도망가려고.

<주호> 그래도 돼요?

<불멸> 어, 전사가 걸친 데스 나이트 템이야 떨어뜨려도 어떻게든 다시 구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거든. 우린 죽으면 곤란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네. 전사가 우리 먼저 튀란다.

<주호> 끙, 혹시 템 떨어뜨리면 제가 구해줄게요.

<불멸> 뭐,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됐고. 넌 그쪽이나 신경 써. 잘하면 대박 터질지도 모르니까.

대박이라…….

<주호> 그런데 케르베로스는 어떻게 되는 거죠?

<불멸> 모르지. 혼자 역소환되거나 혹은 살아서 여기 있을 수도 있고.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혹여나 역소환되어 여기로 돌아올 경우다.

그럼 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 악마형 케르베로스와 정면으로 마주칠지도 모른다.

아마 그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 되겠지.

<주호> 시간 조금만 더 끌어주세요. 아직 여기 살펴보질 못했어요.

<불멸> 오케이. 최대한 끌어줄게. 잘 해봐.

<주호> 고마워요.

그 말을 끝으로 귓속말을 끊었다.

물약이 먼저 떨어지던가.

케르베로스가 역소환되어 다시 돌아오던가.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구나.

다행히 아직까지 덤벼드는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지역의 몬스터라면 적어도 레벨 100대는 넘어갈 것이 분명하다.

가뜩이나 물약이 모자란 데 그런 몬스터와 이런 환경에서 싸우기라도 했다가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을 떼면서 주변을 살폈다.

바닥도 질척거리는 게 뭔가 기분 나쁜 느낌이고 공기도 매캐한 것이 짙은 스모그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얼마나 그렇게 더 움직였을까?

크륵.

인기척이 느껴지면서 순간 떼던 발을 그대로 멈췄다.

분명히 뭔가가 스쳐 지나가긴 했다.

하지만 바닥에 닿는 소리는 굉장히 작게 느껴졌다.

눈은…….

지금은 방해인가?

차라리 감는 편이 나을 정도.

공간을 왜곡하는 것 같은 흐릿한 어둠이 오히려 시야를 더 방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대로 눈을 감고 바닥의 진동과 공기의 흐름, 청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몸이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처음으로 들더니 점차 주변으로 점점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유혜선 팀장이 말한 가능성인가.

시각을 철저하게 배제했음에도 다른 감각이 더욱 증폭되어 그 자리를 메워갔다.

피부를 통해 아찔하게 느껴지는 수만 가지의 정보가 이 난해한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마치 레이더망처럼 내 주변의 상황을 전부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그 감각에 걸리는 어떤 존재.

뭔가가 내 주변을 조심스럽게 배회하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걸음은 4족 보행.

주기적으로 건너뛰는 발걸음이 정확히 네 번 연속해서 튕기듯 바닥의 파동을 타고 느껴진다.

파동을 따라 발자국이 움직이는 보폭만 봐도 민첩이 상당히 높았다.

걸음 한 번에 변하는 위치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어쩌면 크기가 엄청 거대할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라면 정말 빠른 케이스다.

내 최대 민첩보다 높고 어쩌면 악마형 케르베로스보다 높을지도 몰랐다.

최소 150레벨 이상.

민첩에 완전 올인한 케이스가 아닐 테니 그 정도는 충분히 넘겠지.

케르베로스만 해도 괴물인데 이 녀석도 만만치 않겠는걸.

휴…….

지금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이 녀석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가 상대할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부터 느껴졌으니까.

적어도 내가 130대는 넘어가야 상대가 될 것 같았다.

혹은 물약이 인벤 속에 가득 찬 상태라던가.

아쉽지만 현재는 둘 다 해당 사항이 없었다.

현재 내가 믿을 것은 주력밖에 없나?

체력이 깎이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이 검은 기운 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리고 전투를 시작하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깎여나갈 것이다.

그럼, 선택은 단 하나.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빠르게 움직인다.

그대로 눈을 다시 떴다.

어차피 증표의 빛을 보려면 눈을 떠야 했으니까.

【 헤이스트! 】

【 백스탭! 】

【 대쉬! 】

적이 뭐가 있든.

전투는 무리.

일단 최대한 이 지역을 돌파한다.

스킬의 가속을 이용해 정지 상태에서 최대 가속까지 순식간에 끌어올린 뒤 증표의 빛이 발하는 장소로 무조건 달려나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무작정 뛰어나가는 기분이란…….

겁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계속 달렸다.

일단, 바닥이 꺼진다든가 하는 그런 함정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 녀석은?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지금 그런 일은 사치에 가까웠다.

한참 예민해진 감각 속에 뭔가가 뒤로 따라붙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마치, 귀신이 등 뒤에 있다면 이런 느낌이 느껴질까?

썩 좋은 감각은 아니네.

백스탭과 대쉬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 번 스킬을 시전했다.

【 돌진! 】

그러자 몸이 다시 한 번 튀어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녀석과의 거리가 다소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돌진이 끝나자마자 아무 고민 없이 바로 스킬을 더 썼다.

지금은 마력을 아낄 때도 아니고.

【 블링크! 】

몸이 슥, 하고 사라지는 기분과 함께 몸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주변의 배경을 확인할 수가 없어 정말 블링크로 옮겨온 것인지 착각될 정도였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블링크의 쿨타임이 걸려 있다는 사실 하나.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던 오싹함이 순간 사라졌다는 것.

마지막.

증표의 빛이 더욱 강하게 변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몰라도 목표에 확실하게 가깝게 다가왔다.

그렇게 떨어뜨리기 무섭게 다시 오싹함이 몰려왔다.

칫.

이렇게 빨리 따라붙었나?

달리던 도중 인벤 속에서 무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요즘은 전혀 쓸 일이 없어 인벤 구석에 박혀 있는 아이템.

네믈리드.

블링크가 내장된 네믈리드를 꺼내 다시 한 번 블링크를 시전했다.

【 블링크! 】

블링크를 시전해 앞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그런데 그때 의외의 일이 생겼다.

뭐야?

증표의 빛이…….

약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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