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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78화 (375/1,404)

# 378

#378화 한 번 같이 죽어 봐? (1)

로스트 스카이에 이런 아이템도 있었나?

그간 얻은 스킬북하고는 종류 자체가 달랐다.

스킬 쿨타임 초기화.

이게 계속 적용되는 것인지 한 번만 적용될지, 한 스킬에만 쓸 수 있는 것인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굉장히 유용한 스킬이라는 것은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스킬만 해도 이런 데 다른 아이템들은 또 어떨지.

애초에 NPC가 아이템을 드랍한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상상 이상의 아이템이 떨어졌다.

이건 뭔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데?

쉴라가 죽은 뒤 가장 큰 변화는 일단 아군 쪽 NPC 전부 적대 표시로 변해 버렸다.

로가슈 왕국 경비병이라는 이름이 원래는 하얀색으로 보였다면 지금은 붉은색으로 보이는 식으로.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급히 다가오더니 신호를 했다.

“일단 빠지자.”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왕국 경비병들 전체와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재중이 형의 신호에 사장님, 스칼렛, 이슬두잔도 빠르게 길드원들을 챙겨서 뒤로 빠져나갔다.

최대한 왕국 경비병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왕국 경비병도 잡으면 뭔가 떨어뜨리겠지만, 굳이 왕국 경비병들하고 붙을 이유는 없었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곳곳에 로가슈 왕국 경비병들이 있어서 충돌을 아예 피하진 못했다.

대략 우리와 비슷하거나 높아 보였다.

무기를 휘두르는 움직임만 봐도 대충 어느 정도인지 딱 나오니까.

왕국 경비병이 이 정도라면 쉴라는 아마 더 높았을 것이다.

스킬을 쏟아붓지 않았다면 절대 넘볼 수 없을 만큼.

“형, 처리해야겠어요.”

“그래, 피할 순 없지. 사고를 쳤으니까.”

그 말과 함께 왕국 경비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금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우리에게 달려든 왕국 경비병은 총 서른 남짓.

다행스럽게도 수적 우위에 있어 둘러싸인다거나 하는 위험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경비병들의 움직임이 굉장히 버거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대여섯 명이 하나의 팀을 이뤄 경비병을 상대로 싸우기 시작했다.

경비병이라고 해도 유저들에 비해 워낙 레벨이 높고 강하기 때문에 저렇게 싸우지 않으면 금방 밀려 버릴 것이다.

우리를 제외하고 경비병에게 제대로 버틸 수 있는 건 아로하 밖에 없었다.

데스 나이트 장비가 아님에도 경비병에게 밀리지 않고 싸우고 있으니까.

확실히 재중이 형이 눈독 들일 만하네.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최강 길드 사람들 두셋이 모여서 경비병과 싸웠고, 데스 나이트 장비가 있는 우리 팀은 거의 개인이 1:1로 붙어서 시간을 끌었다.

나와 재중이 형은 각자 둘 이상을 동시에 상대했다.

둘 다 스킬과 아이템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으니까.

경비병들에게 밀릴 요소가 하나도 없다.

【 다크 웨폰! 】

【 더블 크래쉬! 】

더블 크래쉬를 쓰자 경비병들이 움찔거리면서 경직에 걸리는 것이 보였다.

그런 경직된 경비병의 창을 스치듯 뛰어 들어 목과 관절을 베어 넘기자 눈에 띄게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그 상태로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로 계속 뒤를 잡고 베어 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병이 그대로 무너졌다.

죽음의 빛으로 사라진 경비병이 있던 자리에 아이템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 +0 로가슈 왕국 제식 부츠 / 방어력 16

민첩+3 』

이건 기본적으로 로가슈 왕국에서 제작이 가능한 방어구였다.

그것보단 경비병이 아이템을 드랍한다는 것 자체가 더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드랍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유저가 경비병을 죽이는 일 자체가 없었나?

물론, 효율로 치면 썩 좋지는 않았다.

제작 가능한 아이템 하나 얻자고 경비병을 죽였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지금이야 마음대로 죽이지 평소에 이런 식으로 했다가는 왕국에 발도 들여놓지 못할 것이다.

재중이 형 역시 경비병을 쓰러뜨리고는 다음 타깃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렇게 눈앞의 경비병들을 쓰러뜨린 후, 주변을 둘러보니…….

경악과 혼돈.

이벤트 NPC를 죽인 것도 모자라 왕국을 지키던 NPC까지 죽여 버리자 사람들이 경악을 했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상식을 깨버렸으니까.

그런 상황과 별개로 쉴라의 버프가 사라지자 그동안 미치광이 리치와 데스 나이트를 막아내던 사람들이 볏짚처럼 쓰러져 나갔다.

그만큼 쉴라의 버프가 해주는 역할이 컸다.

추풍낙엽.

올 스탯과 신성력 때문에 유저들의 낮은 스펙으로 상대가 됐지, 그게 아니라면 무너져도 한참 전에 무너졌어야 정상이다.

오버가 된 것을 감사해야 할 정도로 전세가 기울여졌다.

남아 있던 유저들도 도저히 안 된다 싶은지 점점 미치광이 리치와 데스 나이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천상 연합이 그간 해온 공격도 무용지물이고.

돈은 돈대로 쓰고 성과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 해원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형, 슬슬 시작할까요?”

“아아, 이제 분위기가 무르익었네. 나쁘지 않아.”

특히 다수의 유저가 겁을 먹고 빠져준 것이 주효했다.

미치광이 리치의 제물이 될 유저가 줄어들면 들수록 승률이 높아진다.

계속 마력과 체력을 채워주면 우리가 백만 명이 있어도 이길 수 없다.

언데드화 됐던 죽은 유저들도 시간이 흐르자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소환되었던 다수의 언데드도 유지 시간이 있는지 역시 사라졌고.

유저들이 빠진 자리를 경비병들이 막다가 죽어준 것도 좋았고.

더없이 좋은 상황.

나서려면 지금이다.

사장님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는지 빠르게 오더를 내렸다.

데스 나이트 장비를 가진 사람 위주로 전면, 그렇지 않다면 보조를 맡기는 쪽으로.

-힐러 제외 각 길드 궁수, 마법사 전부 미치광이 리치.

화력전.

사실 데스 나이트를 맡는 쪽이 더 힘들 수 있다.

무려 오버된 데스 나이트니까.

우리 편이 시간을 끄는 동안 최대한 빨리 오버된 미치광이 리치를 잡아내는 것이 이번 임무의 핵심이다.

오버된 데스 나이트 쪽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무너지기 전까지 이쪽도 끝을 봐야 한다.

이번에 전사 형은 오버된 데스 나이트를 막기 위해 빠졌다.

수호 형도 마찬가지고.

최종병기 형, 사탕 형도 라지 쉴드를 들고는 앞으로 나섰다.

저 넷이 한 마리씩은 맡아줘야 겨우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는 그림이 나온다.

정말 유능한 형들이라니까.

상황이 상황이라 각자 자신에 맞는 최적의 무기나 방어구를 바꿔 입었다.

거기다 발키리 아주머니, 현역 여대생도 오버된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괜찮겠어요?”

내 물음에 발키리 아주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저었다.

“나? 탱도 해보고 힐러도 다 해봤단다. 맡겨둬.”

“음, 감사합니다!”

이쪽은 수년간 단련된 누님이지.

그리고 현역 여대생도 한마디 했다.

“인생은 실전이죠.”

당찬 목소리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니까.

물론, 우리 편이라는 전제 하에.

할 수 있다면 믿어야지.

이렇게 해도 손이 부족하다.

슬이아빠에게도 데스 나이트 풀셋을 넘겨서 한 마리를 맡게 했다.

“이걸 받아도 되나?”

“나중에 반납요. 엄청 비싼 놈이거든요.”

“그래, 알았다. 잘 쓰마.”

한 마리 더 붙어줘야 하는데…….

누가 좋을까?

그때 스칼렛이 옆으로 왔다.

“혹시 한 세트 더 가지고 있어요?”

“네? 여분은 있죠.”

“그럼, 이쪽도 좀 빌릴게요. 지금만.”

그러면서 아로하를 가리켰다.

구식 장비로 오버된 데스 나이트를 따라잡을 수 있는 소녀.

아로하라면 수십의 역할을 혼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죠.”

어차피 주고받을 게 많은 관계다.

필요하다면 최대한 써먹어야지.

“고마워요.”

아로하가 모처럼 기쁜 표정을 짓더니 데스 나이트 장비를 장착했다.

이 정도는 줘야 표정을 볼 수 있나.

“잘 쓰고 꼭! 반납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앞으로 나섰다.

저쪽은 어떻게든 되려나.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 이쁜소녀는 당연히 미치광이 리치에 붙었다.

개인적으로 오버된 데스 나이트를 맡을 수도 있었으나 우리 무기가 가장 좋으니 빠질 수 없었다.

챠밍은 당연히 이쪽으로, 나르샤 누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막내별도 우리 바로 옆에 와서 붙더니 신나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얘는 긴장도 안 하나?

“신경 쓰지 말고 하시던 대로 하면 돼요. 최대한 맞춰볼게요.”

“잘 부탁할게요.”

조금만 더 들어오면 중앙성이 코앞이다.

중앙성까지 들어가 버리면 오히려 우리가 난감하지.

앞뒤로 적인데.

전사 형, 수호 형, 최종병기 형을 비롯한 각 길드의 탱커들이 전면에 나서 데스 나이트를 한 마리씩 끌고 빠져줬다.

“가죠.”

내가 먼저 뛰어나가고 재중이 형이 뒤를 따라갔다.

“너하고 나, 둘이서 어글 잡는다. 전사처럼 스킬로 꾸준히 잡아줄 수 없으니까 딜로 눌러!”

“네!”

전사 형처럼 강한 공격을 맞아가면서 방어할 순 없었다.

애초에 검으로 막는 것과 방패로 막는 것은 효율 자체가 다르니까.

그래도 지금은 해야 했다.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우리뿐인데 한 번이라도 어글이 넘어가면 안 된다.

그렇게 데스 나이트를 잡고 빠져주자 중앙에 공간이 쭉 열렸다.

일단 어글부터 잡아야.

【 반월참! 】

강하게 날아간 반월참을 그대로 맞은 미치광이 리치가 북 터지는 소리를 내면서 뒤로 쭉 밀려 나갔다.

방어력은 확실히 강해졌네.

전에는 반월참을 맞으면 바로 다운이었는데 지금은 버텨냈다.

그래도 아예 경직이 없진 않아 잠시 멈춘 사이 최대한 파고들어 카스카라로 로브 사이의 뼈를 마구 헤집었다.

그리고 쭉쭉 차오르는 마력.

몇 번 가르지 않았는데도 벌써 마력이 최대치에 차버렸다.

역시.

상대방이 가진 마력과도 연관이 있다.

최대 마력이 어마어마한 미치광이 리치에게 있어 카스카라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 반월참! 】

뒤통수에 바로 터진 반월참에 이번엔 완전히 바닥에 코를 박고는 다운되어 버렸다.

아무리 오버된 미치광이 리치라고 한들.

반월참 두 발을 연속으로 맞고 버틸 수는 없지.

“지금! 퍼부어요!”

내 신호에 사방에서 마법과 화살 지원이 들어왔다.

쓸 수 있는 모든 스킬이 지금 이곳에서 펼쳐졌다.

붙어서 딜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도저히 힘들어 바로 뒤로 빠졌다.

쿠쾅쾅!!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마법과 화살을 보다 보니 어느새 미치광이 리치가 일어나 눈을 번뜩였다.

그때 재중이 형이 바로 어글 스킬을 걸었다.

【 징벌의 사슬! 】

타이밍 좋고.

튀어 나가려던 미치광이 리치를 재중이 형이 잡더니 곧장 자신에게 고정시키고 날아오는 마법들을 창으로 쳐내기 시작했다.

탱 능력은 나보다 재중이 형이 좋다.

재중이 형이 충분히 어글을 끄는 것과 동시에 뒤로 들어가서 카스카라로 떨어졌던 마력을 보충했다.

그러면서 스킬을 쓰려고만 하면 끊기 시작했다.

【 진(眞) 비월참! 】

바로 뒤에 붙어 비월참 여섯 발을 날리자 바로 스킬이 캔슬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 진(眞) 비월참! 】

“크아악!”

스킬을 쓸려고 할 때마다 캔슬을 당하니 미치광이 리치가 광분을 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 편 사람들이 딜 하기 편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왜 이렇게 편해?”

“계속 이렇게 딜만 하면 돼?”

“아까하고 같은 리치 맞아?”

뒤쪽에서 워낙 편하게 딜을 하니까 여유가 생긴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덕분에 페이즈가 순식간에 넘어가 버렸다.

“좋아. 이대로만 가자.”

재중이 형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스킬이 계속 캔슬되니까 점점 언데드 숫자도 줄어들었다.

원래라면 이렇게 스킬을 남발하면 절대로 안 되지만.

지금은 믿는 게 있었다.

【 데스 나이트 하트! 】

그리고 다시 미치광이 리치를 패기 시작했다.

어글?

넘어갈 리가 있나.

거기다 스킬 쿨이 전부 다 돌아왔다.

내 변신에 맞춰서 재중이 형도 스킬을 쏟아 낸 뒤 데스 나이트 하트를 써서 변신을 했다.

둘이 대미지가 어느 정도 맞아야 어글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까.

이런 우리 모습을 본 유저들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와, 우리가 그렇게 고생해도 못 막던 걸 단둘이서…….”

“정말 이렇게 깰 수 있는 거야?”

“하, 저 변신 완전 사기네.”

“지금이라도 끼어들까?”

“아, 데스 나이트라도 잡고 싶은데.”

유저들이 성큼성큼 접근은 했지만 전처럼 대놓고 뛰어들지는 못 했다.

이 방어전을 성공시키려면 우리가 리치를 잡아줘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까.

다만.

다 똑같을 순 없었다.

한참 미치광이 리치를 공략하고 있는데 미치광이 리치가 아닌 우리를 향해 수십 발의 화살과 마법이 들이닥쳤다.

“큭!”

급하게 몸을 틀어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와 카스카라로 화살과 마법들을 쳐냈다.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로 몸을 돌렸고.

그 사이 우리를 벗어난 미치광이 리치가 블링크로 사라지더니 사방을 휘젓기 시작했다.

다시 난장판이 되자 방어전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개를 돌려 상황을 보자 멀리 남은 길드원들을 모조리 끌고 나온 그 녀석이 보였다.

“……해원.”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했다.

“저놈을 잊었네.”

“후, 형…….”

내 낮은 부름에 재중이 형의 눈빛도 서늘하게 물들어갔다.

마치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

“오늘 리치 못 잡아도 되니까 일단 저 쥐새끼부터 잡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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