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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49화 (347/1,404)

# 349

#349화 적의 적은 아군? (2)

하긴 정말…….

내가 말했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웃었다.

화련이 무슨 이유로 우릴 도와주겠는가.

우리와 붙어서 매번 깨지고 손해 본 것이 얼마인데 우리와 원수를 지면 졌지, 반대의 경우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마 저쪽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실례했네요. 그쪽이 이쪽을 도와줄 필요가…….”

내 말에 화련이 고개를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날 바라봤다.

이건 또 무슨 의미지?

“흥!”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음,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건가?

떠올려 봐도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묘해진 상황에 내가 아무 말 못 하자 재중이 형이 나서서 퍼스트클래스의 길마인 리더와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일단 반갑다는 말부터 하죠.”

“저도 마찬가지군요.”

리더 역시 손을 내밀며 재중이 형의 손을 잡았다.

이쪽은 확실히 우군에 가깝지.

학자풍의 외모를 한 리더가 도수도 없는 안경을 고쳐 쓰며 옆에 있는 폭군을 소개했다.

“이번에 이쪽에서 스카웃했죠.”

폭군이 퍼스트클래스로?

길드 마크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은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퍼스트클래스가 정예화를 거치면서 폭군을 포섭한 것 같았다.

폭군도 한 길드의 길드장이라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수완이 대단하네.

“아시다시피 이쪽은 돌격대를 맡을 사람이 좀 부족해서요. 제가 마법 계열이다 보니 직접 나서기는 어렵고.”

필요에 의한 스카우트인가?

아마 본인은 오더를 내릴 테고.

전방에서 싸워줄 에이스급이 필요해서 스카우트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이제부터는 숫자 싸움으로 해결이 안 되니까요. 좀 더 타이트한 구성이 필요했죠.”

그러면서 나와 재중이 형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번갈아 바라봤다.

우리를 보고 벤치마킹한 셈이네.

소수 정예.

리더가 말한 것은 재중이 형과 생각과 거의 같았다.

폭군이 앞으로 나서더니 재중이 형보다는 내게 먼저 다가왔다.

“오랜만입니다. 전엔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말을 마친 폭군이 고개를 돌려 화련을 한 번 노려봤다.

그러자 화련 역시, 폭군을 노려보더니 눈을 찌푸렸다.

아직 앙금이 남았구나.

쉽게 풀릴 인연은 아니지.

리더가 난감하다는 눈빛을 보내더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하, 아직 좀 그렇죠?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어떻게 이 말도 안 되는 조합이 가능했나 궁금했는데 중간에 리더가 있었군.

“……어떻게 하셨는지 물어보진 않겠습니다.”

분명 굉장한 난관이 있었으리라.

리더도 그걸 떠올렸는지 바로 한숨부터 쉬었다.

마치, 십 년은 늙어버린 표정에서 고생한 흔적이 여실히 느껴졌다.

길드장도 정말 할 것이 못 되네.

그러고 보니 리더 역시 화련과 대판 싸운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민감한 이야기지만, 리더 님은 괜찮으신가요?”

화련과 함께 해서라는 말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지.

리더 역시 바로 알아차리고는 곤란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뺨을 살짝 긁적거렸다.

습관인가?

“음,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어제 싸웠다고 오늘 동료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굉장히 파격적이시네요.”

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면전에 칼을 대고 싸우던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도 정말 보통은 아니었다.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천상 연합, 그 녀석들이 너무 설치는 바람에 이쪽도 꽤 곤란해졌거든요.”

“이렇게 모여야 할 정도로요?”

“흐음, 굳이 말하자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만드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느 정도 수준이면 넘어가겠는데 닥치는 대로 다른 길드를 먹어치우면서 크고 있어서…….”

“미꾸라지가 아니라 뱀장어쯤 되나 보네요.”

“굳이 이야기하면 지금은 아나콘다 정도 됩니다. 덩치만 따지면요. 대략 길드 이백여 개 정도가 합쳐진…….”

“네?”

뭐지?

사장님과 재중이 형이 말하던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세력을 불리는 것이 너무 빨라서요. 다단계 아시죠?”

“……그런 이야기도 한 번 했었죠.”

“아신다니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이대로 갔으면 북쪽이고 서쪽이고 할 것 없이 사냥터가 죄다 먹혔을 겁니다.”

이건 좀 충격인데?

무슨 연합이 이 정도의 속도로 클 수가 있지?

“너무 빠르네요.”

“아, 저희도 안 지 얼마 안 됐습니다. 표면에 나와 있던 길드가 적어서 표가 전혀 안 났죠. 다단계 특징이 뭡니까, 바로 분산 아닙니까.”

“골 때리는 집단이네요. 충분히 커질 때까지 숨어 있었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누가 관리하는진 모르겠지만,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어지간해서는 정보망에 걸렸을 텐데, 지금까지 속인 것을 보면요. 사실 우리 쪽 애들 건드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지금 적대 선포를 한 대부분의 길드가 그런 식입니다.”

“건드린다면?”

“사냥터를 뺏거나, 뒤치기도 있었고, 억지로 에이스급을 빼가려고 한 적도 있어요. 사실 다양합니다. 문어발식으로 건드린 곳이 한두 곳이 아니더군요. 그것도 몰래.”

“철두철미하네요. 그 많은 길드를 속이다니.”

“어떻게 보면 서로 그다지 관심이 없으니까요. 완전히 적대 길드가 아닌 이상, 평소에는 랭커 정도만 신경 쓰지, 그 길드의 속사정까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정말 말 안 하면 모릅니다. 스파이라도 집어넣지 않는 이상은.”

스파이를 넣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 그리고 정보도 광범위하게 털렸더군요. 길드마다 쁘락치도 심어둬서 아까도 꽤 위험했습니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요.”

“그쪽은 괜찮았나 봅니다. 아까 북쪽을 혼자 괴멸시키시던데. 그 스킬 보고 얼마나 놀란 지 아십니까?”

그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우리야 워낙 따로 움직이다 보니 길드에 누군가를 넣어두었다고 해도 우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약 내가 진(眞) 썬더볼트 같이 미친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한 자리에 유저들을 모아 두진 않았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데 눈에 화련 쪽 사람들이 들어왔다.

“혹시 화련 쪽도 공격당했었어요?”

“아뇨, 저쪽은 왜 왔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한때 화련이 뒤에 있나 생각해 봤는데 지금 하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가요? 사실 저쪽은 꼼수를 쓰느니 그냥 밀어버렸겠죠, 돈이 많으니까요.”

“흐음, 그쪽이 더 설득력 있군요.”

화련이 좀 막 나가기는 해도 대놓고 정면에서 치고 박는 쪽이지 어설프게 뒷공작까진 하지 않았다.

지금껏 봐온 화련이라면.

“그럼 현재 전장은 어떻게?”

“좀 전에 한 번 격하게 붙고 난 뒤, 지금은 약간 소강상태군요.”

“전력은요?”

“이쪽이 오십 개 길드. 저쪽이 이백여 개쯤 됩니다.”

“상대가 되나요?”

단순 계산만 해도 4배다.

혼자서 4명을 막아야 겨우 동수가 되는 그런 숫자 차이였다.

“너무 적다고 생각하시나요?”

“뭐, 좀 그렇죠.”

“흐음, 일단 이쪽이 레벨이 좀 더 높습니다. 저쪽은 쪽수만 채워서 온 길드도 제법 보이더군요.”

이쪽은 상태가 좋고, 저쪽은 쪽수가 많은 건가.

그럼 충분히 해볼 만하다.

“우리가 가세하면 되나요?”

천상과 우리는 앞으로 충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이기는 수밖에.

“그래 주시면 더 고맙죠. 마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쪽도 연합으로 묶었듯 이쪽도 연합으로 묶여 있었다.

“아! 혹시 그 썬더볼트 한 번 더 불러낼 수 있습니까? 적 후방에 썬더볼트를 불러내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텐데.”

“흠, 그건…….”

꽤 난감하네.

하루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직 다른 유저들은 몰랐다.

그러니까 이 정보는 함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기 힘들었다.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니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알려주면 안 된다는 거지.

“아쉽게도 이건 영업 비밀이라.”

그 말에 리더가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알았습니다. 바로 쓸 수 없는 모양이군요. 쓸 수 있으면 지금 상황에 크게 도움이 될 텐데. 아쉽네요.”

대충 걸러서 듣는구나.

“그럼 데스 나이트는?”

“음, 그건 가능합니다만. 상황을 봐야겠네요.”

재중이 형에게 데스 나이트 변신 주무서가 한 장 있었다.

필요하다면 변할 순 있지만.

“그럼, 그런 것으로 알고 우리도 합류하죠. 안 그래도 전세가 밀린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잠시.”

그리고 리더가 몇 가지 설정을 건드리는 것이 보였다.

《 퍼스트클래스 연합이 참가를 권유합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

일단 신화 길드의 길드장은 나니까 내게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과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Yes를 눌러 연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연합 채팅창에서 꽤 많은 글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왼쪽 날개! 지원!

-중앙!! 들어가, 빨리!! 딜러 뭐하냐?!

-좌표 453.845 놈들 온다.

-광산 던전 우측, 적들 숨었음.

-남쪽 힐러 지원!! 힘들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채팅창을 통해 각 길드의 사정을 알려왔다.

끝없이 채팅창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상황이 제법 긴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거 여기서 대화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상황이 좋아진 겁니다. 무슨 이유인지 저쪽에서 병력을 상당수 빼버려서.”

병력을 뺐다라…….

혹시 북쪽을 수복하러 간 병력인가?

사장님이 아주 북쪽을 엿 먹여놨는데 지금 그걸 해결하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이쪽으로 온 것을 모른 채.

재밌게 됐네.

우리 비공정이 고도가 훨씬 높다 보니 저들한테는 우리 이동 경로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재중이 형을 바라봤다.

“여기 지금 치면 될 것 같아요.”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사장님에게 전달해서 최강 길드원들을 준비시켰다.

그러자 달 길드와 치맥 길드 역시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린 어디를 맡으면 되지?

사장님이 리더에게 묻자 리더가 미니맵을 띄워서 몇 곳을 찍어 보였다.

“지금 가장 약한 곳들입니다.”

미니맵을 한참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그중 한 곳을 찍었다.

“우린 중앙으로 하지.”

“……정말 괜찮겠습니까? 제일 치열한 곳인데.”

“중앙을 밀고 들어가면 적들을 반으로 갈라놓을 수 있잖아.”

“그렇게 된다면 베스트이긴 합니다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리더가 나와 재중이 형을 굳은 눈으로 바라봤다.

“현재 중앙은 화련 님의 헤라 길드가 주력으로 맡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 비공정에서 내려오면서 봤거든. 주호, 가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재중이 형이 앞으로 나섰다.

“챠밍, 이레이저 준비. 주호. 진(眞) 비월참 준비.”

그리고 한참 헤라 길드를 지휘하던 화련에게 말했다.

“화련, 잠시 애들 좀 빌린다.”

“뭐? 야!”

그러더니 전방에 있던 헤라 길드에게 외쳤다.

-포메이션 B.

그러자 거짓말처럼 중앙을 틀어막던 유저들이 후방으로 뛰어나오면서 적들과 거리를 벌렸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재중이 형의 말을 듣자마자 몸이 반응하는 모습.

거기다 딱 중앙으로 치기 좋게 자리를 비워졌다.

【 소녀 라미아 소환! 】

【 이레이저! 】

중앙이 벌어지자 챠밍이 차징한 이레이저가 중앙을 싹 밀고 지나갔다.

“으악!”

“뭐야?!”

“막아!”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지만 수십 명의 유저가 온몸이 그을리면서도 무기나 방패를 앞으로 틀어막아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이레이저 방출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냥 맞을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방어는 했다.

반사적으로.

그래서인지 꽤 많은 유저가 두 다리를 딛고 그대로 서 있었다.

한 가닥 하는 녀석들이 중앙을 잡고 있었구나.

보통이라면 이레이저 한 방에 다 쓸려나갔을 것이다.

그렇게 손발이 부들거리면서 버티던 녀석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내가 외쳤다.

늘어뜨린 데스 나이트 블레이드에 시커먼 기운을 잔뜩 응축한 채.

“아직 한 발 남았다.”

그 말에 겨우 버텨낸 녀석들의 표정이 완전히 똥 씹은 얼굴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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