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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37화 (335/1,404)

# 337

#337화 물어뜯기 (3)

내가 내뱉은 말에 발끈한 마법사 사내가 버럭, 화를 냈다.

“뭐? 해체?! 이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입을 놀려!”

“됐고.”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겐 길게 이야기하면 내 입만 아프다.

그래서일까? 그저 디딤발을 내디딘 채 데스나이트 블레이드를 던졌다.

그 사내에게.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단말마가 미세한 차이를 낸 뒤, 그 남자는 죽음의 빛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자기 PR의 시대라지만 단순한 공격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말이 저렇게 많은지.

남자가 서 있던 자리에 떨어진 블레이드를 줍기 위해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주변에 있는 유저들이 한 발씩 뒤로 빠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튀어 나갈 것처럼 살짝 모션을 취하니 주변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보였다.

재밌네.

내 몸짓 하나하나에 녀석들의 눈빛이 고정되어 있었다.

하긴, 지금껏 당한 숫자만 해도 벌써 백여 명 이상.

내가 피해를 입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정작 내가 당한 피해는 거의 없으니까.

“지금 꺼지면, 살려줄게.”

뜻밖의 솔깃한 제안.

그 말이 마치 동아줄이라도 된 듯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면서 동요했다.

“……발, 이 자리에 남아 있어 봐야 죽기밖에 더해?”

“튀려면 지금 튀자.”

“그걸 믿어?”

“야, 받아먹은 건 어떻게 할 거야?”

“그 새끼들 조건에 저런 놈은 없었잖아. 이 정도 숫자면 피해 없이 할 수 있다면서.”

“저거 잡다가 떨어뜨린 템 값이 더 나가겠다. 난 안 할래.”

단 한 명과 백여 명이 넘는 인원이 대치하고 있는데도 덤빌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딱 10초 준다. 갈 놈은 가라. 남을 놈은 남고.”

내 말이 마치 사형선고라는 되는 듯 들은 사람들이 흠칫하고 놀랐다.

그리고 부랴부랴 통로 바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템 떨어뜨린 건 그냥 두고 가라. 녹화 중이니까 들고 가면 죽을 때까지 따라가서 죽인다.”

내 말에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주우려던 녀석이 깜짝 놀라 손을 떼고는 그대로 달려나갔다.

어차피 잠시 동안 소유권이 나에게 있어 줍지도 못하겠지만.

그렇게 약간의 시간의 흐르자, 동쪽 통로가 휑하게 비어버렸다.

구경을 하던 구경꾼들도 괜히 휩쓸리는 것이 싫은지 아예 자취를 감춰 버렸고.

구경하다가 죽는다면 그것만큼 웃긴 것도 없다.

그리고 잘못하다가 우리와 적대 관계에 놓이면 그것도 억울한 일이고.

“정말, 이겼네요.”

어느새 스칼렛이 다가와 믿지 못하겠다는 놀란 표정으로 텅 빈 통로를 바라봤다.

아로하는 서 있기도 힘든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내가 오기 전 한참 전부터 스칼렛을 지키면서 싸운다고 한계까지 쥐어짜서 전투를 하고 있었을 테니까.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하네.

아마 로그아웃하면 그대로 파김치가 될 것이다.

“남은 인원은?”

“부끄럽지만…… 사실 전멸했어요. 저희가 마지막이었죠.”

“흐음, 길마님께 말해서 보상할게요. 덕분에 시간을 벌었으니.”

“그러시면 저희야 고맙죠.”

스칼렛과 달 길드는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충분히 성의를 보였다.

그럼 그만큼의 보상은 해야겠지.

보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남쪽에서 걷은 드랍템도 적지 않고 지금 여기의 드랍템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 시스템 신호가 떴다.

《 데스나이트 변신 해제까지 5초. 》

:

《 데스나이트 변신 해제까지 1초. 》

《 데스나이트 변신이 해제됩니다. 》

몸에서 검은 물이 빠지듯 내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기운이 모조리 허공으로 흩어졌다.

변신이 풀릴 때 나오는 이펙트.

“어머?”

스칼렛의 놀란 음성.

그도 그럴 게 이 주변에서 지금 믿을만한 것은 내 데스나이트 변신밖에 없었다.

그런 변신이 싹 풀렸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혹시 제한 시간이 있는 건가요?”

“네, 그래서 아까 다 쫓아 보낸 거예요.”

“아……!”

사실 변신이 끝나면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는 이쁜소녀의 변신으로 확인했다.

우선적으로 체력과 마력 90프로 감소, 회복 불가, 일시적인 스탯 저하, 착용한 아이템 능력치 하락, 그리고 아이템 스위칭 불가.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스킬 사용 금지와 스태미나 저하로 인한 무기력증까지.

그러한 페널티가 겹치고 겹쳐 이때만큼은 정말 위험한 상태가 된다.

사실 변신 시간제한만 없었으면 이 자리에서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녹여 버렸을 것이다.

살려둘 필요가 없으니까.

“만약 목숨 걸고 덤볐다면요?”

“아마 튀었겠죠?”

내 농담조에 스칼렛이 실없이 웃어 보였다.

“그게 뭐예요.”

“정말 튀어야 한다니까요.”

살려면 튀어야지.

“도박을 걸었네요. 배짱이 두둑하다 해야 할지…….”

“아마 다음엔 힘들 거예요.”

다른 유저들이 변신이 가진 페널티를 아는 때가 온다면 이런 수는 먹히지 않겠지만 지금은 최고의 결과를 가져왔다.

“어차피 이제 더 올 사람도 없을 테니, 같이 가죠.”

내 말에 스칼렛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로하를 불렀다.

“나른해.”

아로하의 한 마디.

이쪽은 거의 탈진 상태인가?

전투에 도움이 될진 잘 모르겠네.

“일단 아이템 수거부터.”

스칼렛이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는 아이템들을 가리키고는 후다닥 달려나가 아이템들을 줍기 시작했다.

정말 돈 되는 일은 최고로 빠르네.

완전히 퍼진 아로하는 잠시 내버려 두고 아이템을 모두 수거했다.

당장 내게 필요한 아이템들은 아니었지만 팔면 제법 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템 수거를 하면서 물어봤다.

“혹시 저쪽 연합 어딘지 알아요?”

굳이 내가 물어보지 않고 그 남자를 바로 죽여 버린 것도 옆에 알 만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네, 3세대 때부터 악명 높은 연합이죠. 그때 좀 더럽게 놀았거든요. 쪽수로 누르는 것은 다른 곳도 하니까 넘어가더라도, 유언비어 퍼뜨리고, 현피한다고 협박하고. 상대방 연합 길드 중 몇 곳 돈으로 매수해서 이간질하고. 허구한 날 다른 길드 레이드 방해하고. 그냥 게임 속에서 할 수 있는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닌다고 보면 돼요.”

“그렇게 하고도 살아남았어요?”

“비슷한 놈들끼리 뭉치면 그게 또 무섭거든요. 그렇게 모이고 나면 부수기도 힘들죠. 진짜 자기들이 게임 속에서 무슨 왕이라도 된 줄 안다니까요? 2서버로 갔다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쪽 길마님도 잘 아실 거예요. 3세대 때 꽤 자주 부딪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이 일 끝나면 진지하게 한 번 이야기해 보죠.”

재중이 형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한 번 받은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칼렛과 아로하를 데리고 중앙 방으로 이동했다.

<주호> 남쪽, 동쪽 정리 끝났어요.

<카이저> 좀 전까지 밀리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벌써?

<주호> 사실 치트 좀 썼어요.

<카이저> 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아무튼 남쪽, 동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주호> 네, 다만 달 길드는 전멸이고, 치맥 길드는 지원 갈 겁니다. 버틸 수 있으세요?

<카이저> 좀 버겁긴 한데 버틸 수 있다. 우리 장비가 얼마나 좋은데. 입구만 틀어막아도 물약이 남아 있으면 절대 못 들어와.

하긴, 그간 가져다준 장비들을 생각하면 밀리면 더 이상하지.

장비 자체가 한 티어 이상 차이 난다.

길드원들이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주호> 그럼, 전 전사 형 도와주러 갈게요. 지금쯤 위험할 거예요.

<카이저> 알았다. 조심해라.

<주호> 사장님도요.

연합에 대한 것은 나중에.

지금은 집중해야 해서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한 번쯤 마주쳤을지도 모르겠고.

연락을 마치고 스칼렛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래요?”

중간을 다 빼먹었지만 스칼렛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했다.

“최강 길드 쪽 지원 갈게요. 어차피 제가 데스나이트 공략에 낀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요.”

저 말과 달리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챠밍을 좀 더 자유롭게 해줄 수도 있고.

다만, 다 잡아가는 데스나이트의 지분을 나눠준다는 점에서 좀 껄끄럽긴 하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아이템은?”

“나중에, 지금 더 들면 무거워서 전투 못 해요.”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그 자리에서 스칼렛, 아로하와 갈라졌다.

스칼렛과 아로하는 지원을 가는 쪽으로.

난 데스나이트를 다시 잡기 위해.

중앙 방의 한 가운데로 뛰어가자 예의 전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곳엔 오버 된 데스나이트와 전사 형의 피 말리는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전사 형이 악에 받친 듯 데스나이트 쉴드로 강하게 휘둘러지는 배틀 액스를 겨우 쳐내면서 외쳤다.

“우와씨! 이 새끼! 이젠 좀 뒤져라!”

휴!

아직 건재하네.

혹시 누구 하나 죽었으면 어쩌나 했다.

“형, 저 왔어요.”

“어?”

전사 형이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내가 깜짝 놀라서 외쳤다.

“앞! 앞!! 봐요!”

그런데 전사 형이 바로 자세를 낮추더니 다시 한 번 빠르게 휘두르는 배틀 액스를 쳐냈다.

“아! 이거? 이젠 눈 감고도 쳐내지.”

약간의 허세가 들어가긴 했는데 뭔가 오버된 데스나이트에 맞는 요령이 생긴 것 같았다.

“흐흐, 너도 한 수백 번 맞다 보면 익숙해져!”

……꼭 그렇게 하고 싶진 않은데.

그리고 챠밍도 힐을 적재적소에 잘 넣고 있었다.

챠밍도 피가 많이 빠지는 순간을 보는 요령이 생긴 모양이다.

“안 다치셨어요?”

“응, 멀쩡해.”

“다행이다. 혼자 가서 어쩌나 했거든요.”

내가 별다른 피해 없이 온 것을 보더니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변신이 좋긴 좋더라.”

변신 주문서가 떨어지면 정말 가문의 가보로 남겨야 할 정도로 좋았다.

오히려 재중이 형과 이쁜소녀는 전사 형의 주변을 돌면서 보조해준다고 정신없이 싸우고 있었다.

“야! 왔으면 빨리 합류해! 힘들다.”

재중이 형의 재촉에 몸의 상태를 확인했다.

“잠시요. 디버프 안 풀렸어요.”

“아, 그거? 오케이!”

내가 말하자 재중이 형이 바로 알아들었다.

변신 페널티를 달고 싸웠다간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한 방에 아웃이다.

30초 동안 자세히 보니 더블 어택은 재중이 형이 데스나이트 스피어로 어떻게든 걷어내고 있었다.

저 형도 진짜 못 하는 게 없다니까.

페널티가 끝난 뒤, 내가 가세하자 레이드의 분위기가 우리에게 넘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력이 다 한 듯 오버 된 데스나이트가 바닥에 쓰러지면서 검은 빛을 내뿜고는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바닥에 아이템만 남겨두고.

“꺄! 쓰러졌다.”

다들 레이드가 끝나자 탈진해서 바닥에 엎어졌다.

전사 형은 말할 것도 없고.

덜덜 떨리는 팔을 겨우 몸 위에 얹혀두고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나르샤 누나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전사 형에게 다가가 괜찮은지부터 확인했다.

아닌 척해도 신경을 많이 쓴단 말이야.

챠밍도 우리 쪽으로 다가와 자리를 잡았다.

“정말 고생했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은 허리를 툭툭 치면서 앓는 시늉을 했다.

“아이고 허리야, 진짜 죽겠다.”

그 말에 다들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챠밍이 날 보면서 미소지었다.

“오빠가 진짜 고생했어요. 통로랑 여기 왔다 갔다 하신다고.”

“너도 고생했다. 혼자 부담됐을 텐데.”

블링크나 갑자기 덤벼오는 데스나이트를 피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사람 일일이 찾아가면서 힐 넣고, 수시로 걸리는 저주 풀어주고, 그 와중에 빈틈을 보면서 공격하고…….

우리 중 가장 바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정말 조만간 부담을 줄여주긴 해야지.

“자자, 시간이 없네. 빨리 회수하고 도와주러 가자.”

쉬는 시간도 잠시.

아직도 북쪽과 서쪽은 전쟁 중이었다.

나왔으려나?

오버된 녀석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특수 아이템.

딱 그것만 찾으면 된다.

다른 것이야 어떻게든 얻을 수 있으니까.

드랍된 아이템 목록을 살펴보는데 딱 있었다.

그 녀석이.

『 데스나이트 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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