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330화 착각은 자유 (2)
“네임드…… 입니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말인지 사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음. 네임드라면 네임드일 수도 있는데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무슨?”
“아, 그런 것이 있어요.”
경험의 부족.
저 사람들이 네임드를 잡아봤어야 알지.
늘 네임드를 잡아 오던 우리가 봤을 때는 이상한 점이 몇 가지 보였다.
현재 진짜 제대로 된 네임드인 리치는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데스나이트도 여러 템을 주는 것을 봐서는 네임드라고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같은 개체가 존재한다는 것에서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온전히 자기 영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론, 계속 이동해서 다니는 네임드도 있다고는 하지만.
네 마리 중 두 마리를 잡았을 뿐인데, 두 번째에서는 최초 킬과 같은 드랍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이것만 보면 최초 킬을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과 별개로 네임드라 칭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건 그만큼 강해서다.
어중이떠중이가 절대 잡을 수 없을 만큼.
네임드라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아까의 당당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조금은 주저하는 그런 모습.
“솔직히 그런 네임드를 잡기 위해서 그쪽을 포섭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보고 네임드를 잡아 오라고 하심은…….”
“흐음, 이건 그냥 기본적인 건데요. 그냥 까놓고 이야기할게요. 아저씨 같으면 격 차이가 심한 길드와 동맹을 맺고 싶으세요?”
“……격 차이입니까?”
“네, 잘 들으셨네요.”
격의 차이라는 말에 사내와 내 사이에 잠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사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우리를 누르거나 혹은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동맹을 제의했을 것이다.
아니면 이런 식으로 협박이 섞인 투로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비빌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온 태도.
그리고 난 그 자세를 완전히 눌러버리고 싶었다.
지금 너희는 우리와 비빌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부가적인 것은 보너스.
“여기 유적지 로테가 누구 소유인지 아시죠?”
“……그쪽 소유겠죠. 아마도.”
“네, 잘 아시네요. 그럼 여기 존재하던 네임드는 누가 잡았을까요?”
그 말에 사내의 입이 싹 닫혔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거든.
“우리가 여기 있던 네임드를 잡은 지가 한참 지났네요. 그런데 지금 던전에 돌아다니는 네임드는 그 네임드의 아랫급이죠. 전 그 녀석을 잡아 오라고 말하는 겁니다.”
내 설명에 사내의 표정이 확 굳어버렸다.
잡은 지 한참 지난 네임드의 그 아랫급을 잡아 오라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하면 수준 격차가 너무 벌어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잡아서 그쪽을 한 번 테스트하고 싶네요. 과연 우리와 어울릴 수 있는 깜냥이 되는지 안 되는지.”
“하하, 자격 테스트군요.”
“쪽수가 많다면서요. 설마, 그 인원으로 반쪽짜리 네임드 하나 못 잡진 않겠죠?”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무려 네임드 급이다.
그렇게 잡기 쉬웠으면 지금껏 이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사내의 말에 마치 잊고 있었다는 듯한 마디를 더 꺼냈다.
“참고로 그 녀석, 지금 여기 있는 여섯 명이 잡았습니다. 외부 도움 하나도 없이.”
“에이, 농담도…….”
사내가 웃으려다 우리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진짜군요.”
“네, 그러니까 자격을 보여주세요. 우리처럼 여섯으로 잡으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그건 그쪽에 너무 가혹한 조건이고 그 정도까진 기대도 하지 않아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기만 하면 됩니다. 딱 5일 드리죠. 그 이상은 우리도 기다려주기는 힘드니까요. 지금 네임드 한 마리면 어느 정도의 값어치인지 아시죠?”
내 말에 사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스트 스카이를 하는 사람이 네임드의 값어치를 모를 리가 없다.
황금알을 낳는 닭.
그런 네임드를 5일이나 잡지 않고 기다려준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선심을 쓰는 것이다.
“못 잡으면 이쪽이 미안한 상황이 오겠군요.”
“미안할 필요는 없고요. 제안은 그쪽에서 했고. 우린 우리가 생각하기에 제일 적당한 대답을 돌려드린 겁니다.”
“만약, 시간 내 우리가 못 잡는다면요?”
“음, 하긴 우리가 너무 밑지는 느낌이 있죠? 그럼, 지면 이 연합은 5일 뒤 해체합니다. 어때요?”
내 제안에 사내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현재 로스트 스카이 최고의 길드인 우리를 손에 넣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을 걸고 하는 내기다.
그럼 내기만큼이나 큰 것을 걸어야겠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잠시 기다려줬다.
“제 선에서 처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윗선에 연락 좀 해도 되겠습니까?”
“……좋으실 대로.”
이 사람이 책임자가 아니었나?
한참을 누군가와 연락을 하던 사내가 곧 허락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5일. 이 내기에 지시면 두말하지 않고 이쪽 연합으로 오시는 겁니다.”
“형, 어때요?”
내가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만 으쓱했다.
“재밌겠네. 해봐.”
재중이 형의 허락이 떨어지자 자연스럽게 거래가 성립됐다.
잡는다면 저쪽 동맹으로.
지면 저쪽 동맹은 해체.
말만 들으면 실로 간단한 거래다.
물론, 이제부터 저쪽은 피똥을 싸겠지만.
“아, 카운터는 내일부터 할게요. 오늘 잡아야 할 녀석을 못 잡아서요. 괜찮다면 좀 지나가도 될까요?”
“……그러시죠. 얘들아, 손님들 가신다. 길 터라.”
언제 모여들었는지 사내 뒤로 우르르 진을 치고 있던 녀석들이 바닷길이 열리듯 옆으로 쫙 갈라졌다.
혹시나 해서 일단 말은 해두었다.
“아, 영상 찍어놨으니까 괜히 나중에 울고 불면서 물리기 없습니다.”
내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니라면 그냥 나서서 직접 해체시켜 버리는 방법도 있고.
“재밌겠네요. 정말.”
연합을 지나 광산 던전 입구로 가자 거기서부터는 누구도 따라오지 않았다.
“아, 죄송해요. 제 마음대로 결정해서.”
즉흥.
이렇게 하면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해서 한 것인데 우리 팀의 의견을 묻지 않았으니까.
내 사과에 챠밍이 고개를 저었다.
“확신이 있어서 한 일이죠?”
“뭐, 그렇지.”
“그럼 됐어요. 오빠 하는 일은 믿고 있으니까.”
“미안, 다음부터는…….”
전사 형이 내 어깨에 손을 턱 얹히고는 웃어 보였다.
“어차피 못 잡는 거 너도 알고 우리도 다 알잖아. 그치?”
그 모습에 나도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카드를 뒤집어볼 필요도 없이.
이건 무조건 저쪽이 지는 싸움이다.
재중이 형도 역시 잘했다는 듯 웃었다.
“저 녀석들 우리 간만 쏙 빼먹고 내 칠 생각이었을 거다. 노하우만 어떻게든 익히면 우린 필요 없다고 생각할 거니까. 흔히 쓰는 방법이야. 많은 자금과 숫자를 동원해서 당장 얻을 수 있는 이득으로 혹하게 하고 기술만 빼먹는 건. 얻을 것을 다 얻고 나면 그때부터는 찬밥이지.”
“그래서 처음에 매몰차게 거절했죠?”
“거기다 굳이 엮어봐야 우리가 좋을 것이 없으니까. 통제를 밥 먹듯 하는 연합에 들어가 봐라.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 무너지는 거 한순간이야. 아마, 너 광고 붙던 것들 싹 날아갈걸?”
“딱히 찍고 있는 건 얼마 없지만 억울하긴 했겠네요.”
당장은 하고 있진 않더라도 이런 일로 날려 버리기는 솔직히 아깝지.
“강하게 앞서나가는 확고한 이미지를 선망하는 사람이 많아. 이딴 일에 소비해서는 안 되고. 너 하루 이틀하고 그만둘 건 아니잖아.”
“그렇죠.”
이젠 이쪽이 내 삶이다.
지금보단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었다.
“형은 광고 쪽 일했어도 잘했을 것 같아요.”
“막상하면 다 말아 먹었을 걸. 귀찮아해서.”
그 말에 모두 킥킥거리면서 웃었다.
그런데 챠밍의 의외의 말을 했다.
“오빠, 데스나이트 알려준 건 오버 시키기 위해서 맞죠?”
얘도 이제 척하면 척이구나.
“맞아, 오버하면 어떤 템이 나올지 궁금했거든. 당장은 방법이 없어서 그냥 잊고 있었는데…….”
“딱 저 사람들이 나타난 거네요.”
“응, 그렇지. 귀찮은 혹도 떼면서 겸사겸사 원하는 바도 채우고. 궁금하지 않아? 뭐가 나올지?”
“궁금하기는 해요.”
그러더니 챠밍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꺼냈다.
“오빠, 그러면요. 좀 더 판을 키우면 어때요?”
“응? 무슨?”
“데스나이트요. 그냥 전처럼 공개하면 안 될까요? 여기 사람들이 확실히 오버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구.”
챠밍 얘도 우리 따라다니더니 완전히 물들었구나.
스케일이 남달라졌어.
다만 문제가 있었다.
“아, 그건 나쁘지는 않은데 과연 이번에 사람들이 걸려들까?”
예전에 호수의 여왕 때 낚시로 대참사를 냈었다.
그걸 기억하고 있는 유저들은 어지간해서는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있는 길드들은 나설지도 모르겠지만.
어쩐다……?
확실히 나쁘진 않다.
“어때요? 형?”
“흐음, 나쁘지는 않지. 일반 상태에서 많이 잡아봐야 아이템 몇 개 떨어지고 마는데 오버 상태에서는 드랍률이 대폭 올라가니까. 거기다가 특수 아이템도 나오고. 며칠 걸려서라도 오버만 시킬 수 있다면 그쪽이 남는 장사겠네.”
재중이 형도 비슷한 생각인가?
“떡밥만 적당히 있으면 사람들 끌어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사람 욕심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떡밥이라…… 좋은 게 있을까요? 전처럼 아이템 공개? 아니면 하르 무기라도 걸어볼까요?”
“그럼 너무 우리가 낚으려는 것처럼 보이니까. 한 번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두 번째는 안 넘어올 거다.”
의도는 괜찮지만 방법의 문제다.
우리가 안 끼어들면서 무난하게 엮을 방법이 없으려나?
그때 전사 형이 한마디 했다.
“심플하게 갑시다.”
“심플요?”
“어, 이것저것 고려할 필요가 있나? 그냥 내려가서 데스나이트의 실루엣만 보여주는 거지. 그리고 공격 몇 번 받고 도망치는 장면까지만. 그냥 우연히 내려갔다가 네임드를 만나서 탈주. 딱 그거면 돼.”
“진짜 그걸로 될까요?”
이건 너무 쉬운 것 아닌가?
고작 그런 영상으로 걸려든다고?
“네가 데스나이트에 대한 로망을 몰라서 그래. 벌떼처럼 몰려들 거다.”
“확실히 우리가 안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니면 말고. 손해 볼 것 하나도 없잖아?”
“그렇긴 하죠.”
이번엔 정말 모르겠네.
그냥 믿어볼 수밖에 없나?
* * * * *
일단 남은 데스나이트 두 마리는 모두 잡아냈다.
한 놈은 무려 액스와 라지 쉴드를 들고 있어서 전사 형이 만세를 불렀다.
“우오오! 이게 얼마만의 쉴드인가!”
드랍된 아이템 앞에서 제사를 지내듯 넙죽 엎드려 전사 형이 절을 하자 모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액스는 떨어지진 않았지만 딱히 그렇게까지 욕심나는 아이템은 아니어서 그런지 아쉬움을 금방 털어냈다.
『 +0 데스나이트 쉴드 / 방어력 25
다크 쉴드 / 다크 쉴드 마력 소모 50% 감소 』
팔각 형태의 검은 광택을 내는 라지 쉴드.
중앙에 피로 물든 십자가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기괴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외형도 외형이지만 지금까지 봐온 템 중 방어력이 가장 높았다.
거기다 다크 쉴드라는 기술까지 내장되어 있었다.
“어쩐지 이놈 잡기가 진짜 힘들었어요.”
급소 부위를 대부분 라지 쉴드로 막아버리니 잡는 시간이 두 배 이상 걸렸다.
거기다 방패에 걸린 다크 쉴드로 공격 대부분을 무마시켜 버리니 더욱 힘들었고.
다들 기진맥진한 얼굴 퍼져 있으니 재중이 형이 한마디를 했다.
“이거 쟤들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잡아. 내가 장담한다.”
그리고 데스나이트를 잡다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보물 상자.
예전에 나오던 보물 상자는 그냥 철제 상자 같은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 보물 상자는 은색 테두리를 하고 있었다.
일단 발견만 하면 눈에는 확실히 들어왔다.
열쇠는…….
예전에 미믹을 잡고 나온 것으로 어떻게 되려나?
인벤에 그냥 고이 모셔두었던 열쇠를 꺼내 열었는데.
《 동 열쇠가 부러졌습니다. 》
《 동 열쇠가 부러졌습니다. 》
《 동 열쇠가 부러졌습니다. 》
“안 열리는데요?”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남은 열쇠를 들고 이쁜소녀의 손에 쥐여줬다.
“열어봐.”
“네? 네!”
딸칵!
《 은의 보물상자를 열었습니다. 》
“어머? 됐어요!”
이쁜소녀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다가 내 손을 보고 그저 웃어버렸다.
이것도 운인가.
그리고 그 안에 나온 템을 보고 모두 기겁했다.
『 왕국 수호 창고 이용권 (x1) 』
아니,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오호라, 마침 필요했는데 잘됐네.”
“이거 좀 과하지 않아요?”
“뭐 어때? 매번 이게 나오지는 않을 건데.”
“하긴 그렇죠.”
일단, 창고 이용권을 품에 갈무리하고 바로 다음 던전으로 이동했다.
여긴 아직까진 다른 연합이 나선 것 같진 않지만 그냥 두면 아마 비슷한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남은 데스나이트 하나를 마저 잡아냈다.
대검을 들고 있어서 나름 기대했는데 드랍률이 낮아서 그런지 떨어뜨리지는 않아 모두를 실망케 했다.
혹시 보물상자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고.
“그럼, 내일 봬요.”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그렇게 접속을 해제하고 씻고 나와 편한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살피자 전사 형이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 제작한 데스나이트 실루엣 영상을 게시판에 올렸다.
처음에는 잠잠했는데 거기서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동영상은 폭발적인 조회를 자랑하면서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최상단의 베스트 게시물로 변해 버렸다.
엄청나네.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게 반응을 구경하다가 자고 일어났을 때는 이미 일이 눈덩이처럼 커져 있었다.
이거 정말 재밌게 돌아가네.
우리에게 제안을 했던 그 연합.
그냥 해체될지도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