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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20화 (318/1,404)

# 320

#320화 뼈의 무덤 (2)

전사 형뿐만 아니라 다수의 유저가 마구잡이로 주변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번거롭게 됐네.”

달려들던 한 유저의 공격을 막아낸 재중이 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리고 유저들의 돌변에 깜짝 놀란 이쁜소녀 역시 공격은 하지 못한 상태로 뒤로 연신 밀렸다.

이쁜소녀가 몬스터 상대로는 날아다니겠지만, 지금 이 상황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그런 상황.

연습도 아니고 평소 알던 사람을 대상으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이쁜소녀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사 형.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전사 형은 그것도 힘들다.

나르샤 누나의 걱정과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난감하네. 대체 언제 풀리는 거야?”

대략 십여 초가 넘게 지났음에도 다들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하고 같은 편을 공격하기만 했다.

스칼렛이 칼과 아로하의 호위를 받으면서 뒤로 빠지다가 내게 급하게 외쳤다.

“방법 없어요?”

그 말에 그저 고개만 저었다.

방법이 있을 리가 없지.

우리 길드뿐만 아니라 달 길드와 치맥 길드 모두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챠밍을 봤는데 챠밍 역시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는 스킬 중에 아무것도 안 먹혀요.”

역시 그런가?

예상은 했지만 직접 입으로 들으니까 아예 눈앞이 깜깜해졌다.

전사 형이 돌진을 쓰면서 내게 달려들자 더 이상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 오우거 하트! 】

라지 쉴드를 앞세우고 달려드는 전사 형의 돌진에 빠르게 몸을 옆으로 날리면서 하르 블레이드로 휘둘러 라지 쉴드의 옆면을 쳐냈다.

쩌엉!

방패가 옆으로 밀려나면서 달려들던 전사 형의 균형이 무너졌다.

거기다 달리던 힘을 해소하지 못해 두 다리가 꼬이면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나 대단한진 몰라도 AI가 이런 돌발 상황까지 컨트롤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전사 형의 갑옷을 양손으로 잡고는 강하게 발을 굴렀다.

“전사 형, 미안요. 잠시만 쉬고 있어요.”

오우거 하트로 끌어올린 힘 덕분에 전사 형의 몸이 붕 뜨자 바로 내 몸을 회전시키면서 전사 형을 스윙하듯 통로 저편으로 날려 버렸다.

평소 같으면 고함을 질렀겠지만,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전사 형이 하늘을 날았다.

그걸 보던 스칼렛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들어서 날려요? 무슨 힘이…….”

그 말에 그저 난감한 미소만 지었다.

사실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니까.

오우거 하트만 있으면 어지간한 사람도 다 따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것을 본 이쁜소녀 역시 오우거 하트를 발동했다.

단기적으로 큰 힘을 내는 대신 마력 소모가 심해 원래라면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쓰지 않았겠지만, 이미 사냥은 물 건너갔다.

이젠 더 이상 마력을 아낄 이유가 없었다.

이쁜소녀가 주변에 변해 버린 유저와 대치 중인 아군에게 달려가더니 뒤로 돌아가 역시 갑옷을 통째로 잡아들었다.

“응차!”

자기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남성 유저를 잡은 채, 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 회전력으로 통로 저 멀리 날려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작은 아가씨가 대단한데?”

“휘유! 분홍 소녀 대박.”

이쁜소녀의 방어구가 전부 분홍색이라 그런지 더 눈에 띄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환호하자 오히려 이쁜소녀가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저런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

재중이 형도 오우거 하트를 시전하곤 주변에 있는 유저들을 집어던졌다.

그렇게 셋이 돌아다니면서 유저들을 집어던지자 압박감이 많이 줄어든 정상적인 유저들이 겨우 라인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만약, 우리가 나서지 않고 그대로 흘러갔다면 대부분의 유저가 변하거나 바닥에 누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때, 스칼렛이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덕분에 살았네요. 정말 전멸하는 줄 알았어요.”

“아직 안 끝났어요.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다 모아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요.”

솔직히 지금 상황에서는 나나 우리 팀도 어렵다.

최고의 탱커이자, 팀원인 전사 형이 스킬에 걸렸는데, 제대로 된 사냥이 가능할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일반적인 탱커가 어지간한 공격을 몸으로 다 때울 수 있다지만, 이번 경우만큼은 예외다.

이런 식으로 변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엘리트급의 몬스터가 한 곳에 너무 많이 몰려 있는 것도 문제였다.

방어구나 다른 장비 수준도 있었고.

전사 형을 제외하면 우리 팀도 저 검은 화살에는 안전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체감해 보니 지금 사냥하라고 만든 던전이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퇴각을 준비할 때, 멀리 집어던졌던 사람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 기분 드럽네.”

“말도 안 나오고 짜증.”

“컨트롤이 전혀 안 돼.”

마법에 걸렸던 대부분의 유저가 동시에 불만을 토로했다.

전사 형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아, 미안. 이거 진짜 난감한데? 주호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컨트롤이 안 돼요?”

내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에 디버프 시간이 20초다. 20초. 후, 컨트롤 패널은 붉은색으로 막혀 있고……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로그아웃인데 이거 했다간 진짜 망하지.”

“20초라…… 너무 기네요.”

말이 20초지.

정말 중요한 순간에 변하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지금도 20초가 20분이나 된 것 같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일걸? 이거 풀 방법 없으면 이곳에서 사냥은 절대 불가야!”

“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다행스러운 것은 정상적인 유저들은 뒤로 조금씩 빠져 압박의 강도가 현저히 약했다는 것이다.

뼈 폭탄도 몸으로 때워서 그런지 더 이상 터지지 않았고.

그렇게 후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자 스칼렛, 이슬두잔, 사장님이 동시에 후퇴 신호를 했다.

“빠지자.”

사장님의 말에 모두 던전의 입구를 향해 달렸다.

급하게 입구를 통과하자 밝은 빛이 바로 눈에 쏟아졌다.

마치 희망의 빛이라도 되듯.

던전에서 나온 유저들은 하나 같이 질렸다는 표정과 함께 바닥에 앉거나, 누웠다.

무려 세 개의 길드가 들어갔는데 정작 살아나온 것은 1/4 수준도 안 된다.

평소 시원하게 웃으면서 길드를 관리하던 이슬두잔도 이런 전멸에 가까운 피해 때문인지 의기소침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이슬두잔이 죽은 길드원의 숫자를 체크하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난이도가 정말 미쳤어요. 화살 하나를 못 막아서 밀려나다니…… 우리 장비로는 여긴 안 되겠어요.”

이것은 스칼렛 역시, 남아 있는 인원수를 확인하고는 이슬두잔과 똑같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적당한 난이도여야, 다시 도전할 생각이라도 하지, 이건…….

우리도 사실 빠듯한데 저들은 어떨까?

지금은 답이 없어 보였다.

“당분간 이쪽 던전은 패스다.”

사장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거지?

그간 했던 수준을 아득히 넘어버리니 나도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걸 재중이 형에게 이야기했더니 재중이 형이 뭔가를 생각하다가 혼자서 웃어버렸다.

“왜요?”

“생각해 보니까, 우리가 너무 쉽게 봤어. 우리 로테를 날로 먹었잖아. 난이도가 쉽다면 이상한 거지. 정상적으로 일반 몬스터들을 잡아가면서 장비를 업글하고 엘리트도 좀 잡고, 장비나 스킬 배우고 그러고 내려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걸 완전히 다 건너뛰었으니까.”

“하긴, 정말 그렇네요.”

우리가 아무리 무기가 좋다고 한들 나머지는 그냥 전 세대 방어구나 스킬들이다.

사실 무기도 나 외에는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다들 아직 강화 작업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외곽 던전에서 좀 놀아야 할 것 같은데.”

“거기도 난이도가 이 정도면요?”

“음, 일단 가보고.”

최강 길드도 지금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일단, 살아서 빠져나온 것에 감사해야 하나?

바라보니 사장님이 스칼렛과 이슬두잔에게 가서 뭔가를 의논하는 중이었다.

재중이 형을 봤더니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던전 사용에 대한 이야기겠지. 지금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으니. 그걸 조건으로 공성전에 도움을 줬는데 지금 상황에선 저쪽이 받을 게 없지.”

“어느 정도 보전은 해줘야겠네요.”

“공성전 때 얻은 이득 중 길드 몫에서 일부를 떼 주던가 하겠지. 그 이상은 우리도 힘들고.”

사장님과 두 길드장의 대화로 어느 정도 해결점을 찾았는지 서로 악수를 하고 흩어졌다.

“허허, 무기를 먼저 공급해주는 조건을 걸더구나. 이대로는 사냥이 힘들다면서.”

“나쁘진 않네요.”

여차하면 일부 길드 수익을 줘야 했을 텐데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어차피 우리 쪽 동맹 먼저 무기를 푸는 것이 맞기도 하고.

“로테 외곽으로 나가봐요. 다른 던전도 이 정도 난이도면 그냥 필드에서 노가다 좀 해야겠어요.”

내 말에 모두 동의하면서 장비를 챙겨 로테를 벗어났다.

***

로데 바깥쪽 필드는 전과 대동소이했다.

지형이 좀 달라진 부분도 있고 존재하는 몬스터는 모두 같았다.

조만간 유저가 몰릴 곳이라 딱히 이 필드에 대한 욕심은 없다.

그렇게 한참 동안 로테 근처의 맵을 뒤져서 알아낸 광산 던전 수는 로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총 4개.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이 없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던전들.

로테 안의 전용 던전까지 포함하면 5개가 된다.

혹시나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우리 팀이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만약, 전과 같은 구조라면 우리 팀 외에는 그냥 다 죽으라는 소리와 같으니까.

“그럼, 들어갑니다.”

전사 형이 먼저 라지 쉴드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우리가 이어서 들어갔다.

이번에는 정말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최대한 신경 쓰면서.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광산 던전 1층은 패치 전인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뼈 폭발 함정도 없고, 그렇다고 커스 아처가 나와서 진을 치고 있지도 않았다.

필드에서 봤던 몬스터가 그대로 나오는데 좀 더 밀집되어 많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전사 형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빠지는데?”

“그러게요.”

필드에 서너 마리가 모여 있다면 여긴 한 방에 적어도 일곱 마리 정도는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잡아봤더니 리젠도 엄청나게 빨랐고.

전사 형이 리젠 시간을 재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드보다 적어도 세 배는 빠르게 나옵니다. 여기 한 방만 잡고 있어도 사냥하는 데 문제가 없겠는데요?”

필드에서 힘들게 뛰어다니면서 굳이 몰이를 안 해도 될 정도로 좋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던전은 던전이네.”

흡족하다는 듯 재중이 형이 웃었다.

그리고 바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장님께 연결했다.

<주호> 1층은 사냥하기 좋네요. 바로 들어오세요.

<카이저> 알았다. 전달하마.

<주호> 근데 리젠 엄청 빨라서 하르 무기 없으면 밖에서 사냥하라고 해요. 못 버틸 겁니다.

<카이저> 그럼, 일단 최강 길드 먼저 자리 잡고 넘겨주도록 하지.

<주호> 편할 대로 하세요. 좀 더 들어가 볼게요. 나중에 봬요.

“전사 형, 우린 2층 넘어가죠.”

내 말에 전사 형이 미리 찾아두었던 2층 계단을 향해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간 2층도 비슷했다.

미로처럼 되어 있는 통로 중간마다 존재하는 큰 방에는 무려 스무 마리에 가까운 몹이 몰려 있어 좀 놀라기는 했지만.

“후아, 여긴 자리가 꽤 좋네요.”

전사 형이 살펴보고는 감탄을 했다.

총 5개의 큰 방.

중앙 방과 모서리 방 네 곳이 특출나게 좋았다.

“여긴 차지하려고 싸움 좀 나겠는데?”

재중이 형이 보자마자 값어치를 알아채고는 사장님께 연결했다.

그리고 1층은 아예 무시하고 2층까지 내려오게 했다.

“여기, 무조건 사수해야 합니다. 중앙 방. 그리고 필요하면 다른 방들도 전부 잡고 놓아주지 마세요.”

“허허, 여긴 진짜 꿀 자리구나. 알았다. 절대 뺏기지 않으마. 얘들 돌려가면서 하면 어떻게든 유지될 것 같은데.”

사장님도 흡족한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필드에서 사냥하는 것보다 몇 배는 효율이 높을 것이다.

사냥만 가능하다면.

다시 최강 길드를 2층에 남겨두고 3층까지 내려갔다.

그런데 3층에 내려가자마자 주변 공기가 무섭게 변했다.

뭐지?

이 위압감은?

고작 엘리트가 이런 느낌을 낼 수 있나?

그리고 발견했다.

어둠을 내뿜으며 일렁이고 있는 그 녀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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