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9
#319화 뼈의 무덤 (1)
방금 전까지 옆에 있던 유저들이 폭발에 휩쓸려 사라지자 다급한 누군가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벽에서 최대한 떨어져!”
“뼈 근처에 가지 마!”
이미 벽에 가깝게 걸어가던 유저들은 전부 한 줌의 흙이 되어 사라졌다.
지금 살아 있는 유저들은 중앙이나 혹은 벽에서 거리를 두고 걷던 사람들.
그리고 후방에서 따라 들어오던 사람들밖에 없었다.
던전으로 들어왔던 유저의 1/3 정도가 이 함정 하나에 그대로 녹아 버렸다.
그동안 이 정도 위력의 함정은 한 번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패닉 상태에 빠진 사람 중 몇몇이 급하게 벽에서 떨어졌다.
일단 벽에 있는 뼛조각 장식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지만 그 행동들은 더 큰 참사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급하게 움직이던 유저들이 바닥에 떨어져 잘 보이지 않던 뼛조각들을 밟는 순간.
콰앙!
또다시 폭발이 일어나며 뼈를 밟은 유저를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그리고 폭발의 여파로 튀어나온 뼛조각들은 주변에 있던 유저들을 그대로 덮쳤다.
라지 쉴드를 들고 있던 몇몇은 방패를 전방으로 들이밀고 방어를 했지만 폭발력이 워낙 강해 방패째 뒤로 튕겨 나갔다.
제대로 방어를 한다면 생존은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그런 방패가 없는 유저들은 뼈 폭발에 휩쓸려 그 자리에서 죽음의 빛으로 변해 죽어버렸다.
단순히 밟은 사람만 죽는 것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죄다 쓸려나가는 함정.
이런 함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는데…….
예전에 7층까지 내려갔을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솔직히 방심한 면도 있었다.
【 라이트 쉴드! 】
전사 형은 바로 미스트 쉴드에 빛을 입혀 우리 앞을 막아섰다.
그 덕에 대부분의 뼈 폭발의 피해에서 벗어났다.
대신 전사 형의 체력이 바닥에 가깝게 사라져 버렸지만 어떻게든 버텨 냈다.
다만 방패 위를 추가로 타격하는 뼈 폭발에 전사 형이 인상을 썼다.
추가 타격까지 이어지면 아무리 전사 형이라도 지금은 힘들어 보였다.
【 와이드 힐! 】
그때, 챠밍의 연이은 힐 샤워와 물약의 회복력으로 전사 형의 체력이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땡큐!”
하지만 전사 형이 커버하는 범위보다 커버 하지 못하는 범위가 더 넓았다.
그리고 그런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터지자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대략…….
물건에 닿고 나서 2초쯤 뒤에 터지나?
지금 사람들이 정신이 없어서 무작정 방패로 막거나 피하거나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물건에 닿고 난 뒤 잠시 튕겼다가 터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 세 곳 길드에서 쓰는 라이트 웨폰은 닿자마자 터지는 것을 보면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걸 파악하자마자 바로 기술을 썼다.
【 다크 웨폰! 】
카스카라를 꺼내서 어두운 기운을 씌우자 주변의 환한 라이트 웨폰들과는 정반대로 시커먼 기운을 냈다.
그리고 전사 형이 커버하지 못하는 장소로 튀어오는 뼛조각들의 끝을 아슬아슬하게 검면으로 빗겨 쳤다.
틱!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졌어야 할 뼛조각이 긁히는 소리만 내고 난 뒤 다른 곳으로 튕겨 나갔다.
“어라?”
“안 터져요.”
나와 전사 형의 뒤에 있던 이쁜소녀와 챠밍이 놀란 소리를 냈다.
튕겨 나간 뼛조각은 천장의 한 곳에 맞더니 터져 나갔다.
천장은 그나마 함정이라 할 만한 것이 없어서 주변으로 터지지는 않았다.
천장을 밟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당연한 건가…….
몇 번 더 뼛조각을 쳐낸 뒤 블레이드에 사용한 다크 웨폰을 바라봤다.
속성이라 것.
연구할 가치가 있겠네.
날아다니는 뼛조각을 좀 더 자세히 보니 뼛조각의 곁에 검은 기운이 씌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여기서 속성 이득을 보겠다고 라이트 웨폰만 주구 장창 쓰면 난이도가 수십 배는 올라갈 것 같았다.
닿으면 조금 지나서 터지는 뼛조각이 즉발로 변해 버리니까.
그걸 보고 있던 재중이 형도 다크 웨폰을 써서 창으로 뼛조각을 날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건 재중이 형도 다 할 수 있으니까.
전사 형은 라이트 쉴드를 꺼버리고 바로 온몸을 두르는 다크 아머를 시전했다.
계속 쓰면 마력이 부족할지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 증거로 전사 형의 체력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뼈 폭발이 터질 때 터지더라도 다크 아머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대미지를 경감해주는 것 같았다.
이쁜소녀 역시 쳐내는 작업을 도왔고, 챠밍은 꾸준히 힐을 넣으며 안정감을 찾아갔다.
나르샤 누나는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조금 적지만 전사 형에게 힐을 넣었다.
그렇게 전사 형이 굳건하게 앞을 막아서고 뒤를 받치자 겨우 상태가 호전됐다.
좀 전까진 대답할 정신도 없었는데 여유가 생기자 전사 형이 겨우 말을 꺼냈다.
“와, 진짜 무슨 던전이 이따위야.”
다들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함정 하나로 인원의 반을 잃었다.
벽 쪽으로 많이 움직였던 달 길드와 치맥 길드는 우리보다 피해가 더 컸던 것 같고.
스칼렛이나 이슬두잔은 후방이라 그런지 다행히 무사해 보였다. 사장님 쪽도 괜찮고.
일단 아는 얼굴은 대부분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중 다수가 다크 웨폰을 쓰고 있었다.
다크 아머는 난이도 있는 네임드를 잡아야 해서 구하기 정말 어렵지만 다크 웨폰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블러디 가고일이 꽤 뱉어내고 있으니까.
달 길드나 치맥 길드도 몇 명은 다크 웨폰을 쓰고 있었다.
나나 재중이 형처럼 대놓고 쳐내지는 못했지만.
“긴장 풀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재중이 형이 옆에서 사람들에게 외쳤다.
우리의 더 큰 문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것.
다들 뼈 폭발로 정신이 팔렸는데 진짜 중요한 것은 통로 저편이었다.
아까부터 들려오는 뼈 부딪히는 소리.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여럿이다.
함정만 해도 이런데 이 이상은 어떨까?
“빈집털이했다고 너무 쉽게 봤어.”
재중이 형 말처럼 다들 너무 방심했다, 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대편에서 강력한 파공음과 함께 수십 발의 뼈 화살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검은 화살?!
“방패 들어!”
다급한 외침과 함께 앞 열의 탱커들이 빠르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쾅!
충분히 버티리라 생각했던 탱커들 대부분이 화살의 힘을 해소하지 못하고 방패째 뒤로 쭉 밀려 나갔다.
다행히 뒤에 있던 유저들이 받아주면서 겨우 몸을 멈추기는 했다.
문제는 라지 쉴드를 든 팔을 덜덜 떨고 있다는 것.
“화살 한 방에?”
이건 심각할 정도로 힘의 격차가 났다.
던전 밖에 있던 해골 따위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
아니, 비교하기엔 그냥 격의 차이가 너무 컸다.
“설마 네임드인가?”
“아뇨, 네임드가 저렇게 많을 수 없습니다. 엘리트겠죠.”
사장님의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날아오는 화살을 제자리에서 단독으로 버틴 것은 전사 형밖에 없었다.
파워 글러브, 오우거 벨트, 올 스탯 악세들. 장비에 붙은 힘 스탯 등.
여기 있는 유저들과는 힘 차이가 제법 많이 났다.
다른 말로 하면 전사 형 정도의 스탯빨이 아니면 여기서 제대로 버틸 수가 없다.
지금 전사 형 외에는 모두 뒤로 튕겨나거나 주저앉거나 힘을 해소하지 못해 밀려나 버렸다.
재수 없었던 유저는 그 자리에서 방패를 놓치고 난 뒤 후속 화살에 꽂혀 죽음의 빛으로 변했다.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냐.”
사장님이 질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보면 대략 30~40마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르샤 누나가 빠르게 스킬을 시전했다.
【 라이트 웨폰! 】
활시위를 매겨 빛의 화살을 어둠 속으로 날려 보내면서 동시에 시야까지 넓혔다.
【 싸이클롭스의 눈! 】
화살이 날아간 어둠 속이 주변이 조금 환해진다 싶더니 그 사이로 우리 쪽을 향해 검은 뼈 화살을 겨누고 있는 수십의 뼈다귀가 보였다.
몸이 온통 검은 뼈로 만들어진 형상에 다들 신음을 흘렸다.
누렇고 삭은 뼈를 가진 필드의 몹들과는 아예 형상 자체가 달라 보였으니까.
골격 크기도 궁병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컸다.
시야가 좋아진 나르샤 누나가 이름까지 확인했다.
“엘리트네요. 커스 아처.”
저주로 만들어진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 다시 한 번 커스 아처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아까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버틸 수는 있다.
다만 문제는 저쪽에서 멀티 샷을 쓰기 시작했다.
하나의 커스 아처가 여러 발의 화살을 쏘기 시작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커스 아처들도 동시에 멀티 샷을 시전했다.
한 번에 쏟아지는 수백 발의 검은 화살에 사람들이 아연실색했다.
“젠장! 전부 튀어!”
이건 앞을 막고 있던 탱커도 어떻게 할 수 없는지 뒷사람들에게 모두 도망가라고 외쳤다.
문제는 멀티 샷이 아니었다.
콰칭!
도저히 방패로 막았다고 볼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방패가 뚫리면서 탱커의 가슴을 방어구 채 뚫어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탱커가 화살에 꽂힌 채 뒤로 튕겨 날아가더니 바닥에 형편없이 굴러버렸다.
“투사?!”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린 보면 안다.
우리가 매번 쓰던 스킬이니까.
그런 투사가 잔뜩 날아오자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도망갔다.
그나마 일부 정신이 있던 유저가 외쳤다.
“애들 아이템 챙겨!”
손실을 최소한으로 하려면 저들 입장에선 죽을 때 죽더라도 비싼 아이템은 챙겨줘야 했다.
상황이 꼬이자 아수라장이 되어 도망가거나 아이템을 줍고 화살에 뚫려서 죽거나 하는 유저들로 나뉘었다.
공격?
화살이 저렇게 많이 날아오면 공격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특히 이렇게 일반적인 통로였을 경우는 더더욱.
양옆으로 넓게 퍼질 수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싸워보겠지만 지금은 버티면서 대놓고 전진해야 하는데 이미 이쪽은 전열이 무너져 버렸다.
다들 전사 형 급이라면, 버티면서 들어가는데 지금은 전사 형 혼자 버텨야 하는 판이라…….
아무리 전사 형이 잘 버텨도 저건 힘들지.
재중이 형이 이마를 찡그리는 것을 보면 이미 틀렸다.
좀 더 스펙을 올리고 준비를 해서 다시 들어오거나.
다른 방법을 찾거나.
그,때 어둠 반대편에서 다 끊어져 가는 께름칙한 영창 소리가 들렸다.
【 마인드 커스! 】
설마 마법사도 있었어?
아까 볼 때는 없었는데?
순간 내 발밑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 나는 보라색 기류가 빠르게 솟아올랐다.
뭔지 몰라도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다.
【 백스탭! 】
준비를 하고 바로 빠져나와서 그런지 다행히 이 이상한 마법에 걸리지는 않았다.
【 블링크! 】
챠밍도 역시 빠르게 사라졌다가 나타나면서 저 이상한 기운을 피했고.
조금 후방에 있던 나르샤 누나도 역시 무사히 빠져나갔다.
우리 팀 모두 스킬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우리 말고도 아직 많은 유저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다들 한 가닥 하는 유저라 회피 스킬 정도는 보유하고 있겠지.
그럼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이미 뼈 폭발 함정과 멀티 샷과 투사가 걸린 검은 화살을 피한다고 스킬들을 다수 소모해 버렸다는 점을.
전방에 있던 최강 길드뿐만 아니라 달, 치맥 길드 유저 중 대다수가 저 보라색 마법에 발이 묶여버렸다.
그리고 마법에 발이 붙들린 유저들이 잠시 반항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온몸을 늘어 뜨렷다.
경직 마법 같은 건가?
그럼 이미 살리기에는 늦었다.
저쪽 커스 아처들이 벌집을 만들어버릴 테니까.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커스 아처들이 보라색 마법에 걸린 유저들을 전혀 공격하지 않았다.
음, 대체 저게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는데 고개를 숙였던 유저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크아악!”
괴성을 지르는 유저들의 두 눈이 보랏빛으로 물들 광경에 신음을 삼켰다.
주변을 보니 무려 삼십에 가까운 유저들이 저렇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달려들더니 우리를 향해 검을 들이대면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냥 커스 아처만 상대해도 힘든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하, 마인드 컨트롤도 해?”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는지 표정을 구겼다.
남아 있던 유저 모두 당황한 눈치로 우리를 공격하는 유저들을 막아섰다.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너 돌았냐? 왜 우릴 공격하고 지랄이야.”
“아! x발 뭐 이딴 스킬이 다 있어!”
어쩔 수 없이 막아섰지만 차마 공격을 할 수 없어 다들 손발이 묶여 버렸다.
저 멀리 어둠 속은 커스 아처의 강력한 화살 공격
바로 앞은 변해버린 유저들.
뒤는 언제 어디서 또 터질지 모르는 뼈 함정까지.
거기다 바닥에 수시로 보라색 기운이 올라와 멀쩡한 유저들을 잡아들였다.
“크으!”
그때 가까운 곳에서 예의 그 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엔 다른 유저들을 막다가 발이 묶여 눈이 보랏빛으로 변한 전사 형이 신음을 흘리면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농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