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11화 (309/1,404)

# 311

#311화 칼바람 둥지 쟁탈전 (2)

“그게 가능해요?”

유적지 패치 이전에 확인했을 때 던전은 굉장히 컸었다.

그 정도 규모의 던전을 길드 하나가 소유할 수 있다는 건가?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방어전의 메인 보스를 잡아야 얻을 수 있는 유적지인데 이 정도 혜택은 받아야지.”

“근데, 그 얻었던 방법이 운영자가 원했던 방법은 아니었을 텐데…….”

이 시점에서 리치가 잡히거나 뚫리는 것은 운영자가 그린 그림이 아닐 것이다.

전사 형 말대로 긴 시간을 개고생하면서 얻었어야 했을 텐데, 그걸 냅다 가져와 버렸다.

아마 비상이 걸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패치를 하기엔 상황이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넘겨줬을지도.

“리치는요?”

사실 이쪽이 더 궁금했다.

“그건 사실 모르겠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봐야 알 것 같지만 패치 전과 같다면 우리가 리치 하나를 독점할 수도 있겠지.”

리치 하나?

조금 이상한데?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거라면 던전이 하나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네요.”

“아, 내가 말을 안 했던가? 로테 외곽에 비슷한 던전이 몇 개는 더 있더라. 제대로 체크는 아직 못했지만.”

“그 말은 리치가 여러 마리일 수도 있겠네요?”

“뭐, 내려가 봐야 알겠지. 한 마리를 공유하는지 아니면 여러 마리인지. 아니면 우리만 잡을 수 있는지.”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내려가 봐야겠네요.”

어떻게 패치됐느냐에 따라서 향후 플레이 방향이 완전 바뀔 수 있었다.

재중이 형이 내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그 전에 할 일이 있지. 칼바람 둥지부터 지켜야 해.”

“공성전 오늘이죠?”

“어, 오늘. 어차피 로테야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여기까지 찾아오기도 힘들 거고 공성전 걸만한 시간도 없어. 하지만 칼바람 둥지는 다르지. 위치가 확실히 알려져 있으니까.”

이번 공성전에 로테가 포함된다고는 하지만 로테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칼바람 둥지.

지금 유저들 대부분 칼바람 둥지를 거쳐 왕국으로 넘어가는 타이밍이었고, 뽑아낼 세금이 무궁무진한 곳이라 절대 넘겨줘서는 안 된다.

“간만에 한바탕 해야겠네요.”

“어, 투자도 좀 하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 지키는 건 욕심이겠지. 전에 말한 칼바람 둥지에 포탑 설치하는 것 지금 좀 해야겠다.”

일단, 명목상 칼바람 둥지는 신화 길드 소유다.

지금 길드장이 나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내가 손수 배치를 해야 하고.

어디 보자…….

칼바람 둥지의 시스템창을 띄우자 여러 가지 선택사항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리고 현재 가장 필요한 방어 시설을 내 앞으로 가져왔다.

칼바람 둥지를 얻었을 때부터 형들과 함께 의논했던 사항이었다.

공성전이 일어나면 추가해야 할 것들.

애초에 공중에 떠 있는 유적지라 다른 공성전과는 방어 방법 자체가 달랐다.

최소 공중 탈것이나 비공정을 상대로 방어를 해야 하니까.

그렇기에 단순히 NPC만 추가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직접 조작할 수 있는 자동 포탑까지 추가하는 것이다.

그것도 칼바람 둥지를 쭉 둘러치는 방어 포대를.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드네요.”

단지 몇 개를 추가할 뿐인데도 억, 소리가 그냥 나는 포탑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이거면 그냥 몸으로 때우는 편이 좋지 않으려나…….

내 의견에 재중이 형은 그저 어깨만 으쓱거렸다.

“우리 개개인의 전력이 월등히 좋다고는 해도 쪽수 차이가 있어. 이번엔 돈을 투자할 수밖에.”

썬더볼트.

트리스탄.

베록.

우리가 소유한 비공정이나 탈것.

이제 겨우 브링어나 스탄을 살 수 있는 유저들 상대로 전력 자체는 정말 압도적으로 좋을 것이다.

하지만, 방어할 수 있는 곳의 범위가 너무 넒었다.

“어쩔 수 없네요.”

살짝 떨리는 손가락으로 눈을 질끈 감고 포탑의 개수를 계속 늘려갔다.

그렇게 숫자 하나 올릴 때마다 돈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만들고 난 뒤 회수라도 가능하면 아깝진 않겠지만 한 번 배치하면 끝이라 과하게 설정하면 그대로 돈을 날린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을 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있었다.

아, 모르겠다.

일단 지키고 보자.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든 생각 덕분에 내가 포탑의 수를 마구 늘리자 우리 팀의 표정이 전부 경악으로 휩싸였다.

***

“또 뵙네요.”

베록을 타고 칼바람 둥지에 도착하니 스칼렛이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스칼렛 옆에는 여전히 칼이 스칼렛을 보좌했고 아로하는 별 관심 없다는 듯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내가 베록에서 내리자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봤다.

“스탄 거래 이후 처음 보는 건가요?”

“화상으로는 많이 봤잖아요. 덕분에 요 며칠 정말 바빴어요. 지금은 깡통이지만.”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수 있어요.”

“네, 그러잖아도 정리하려고 했어요. 경쟁자가 많아지니까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라이덴이나 썬더볼트를 만나지 않는다면, 브링어나 스탄도 아슬아슬하지만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다.

바로, 이 칼바람 둥지를.

베록 급을 사지 않는 이상, 무조건 거쳐야 하는 곳이 이곳 칼바람 둥지다.

“재중이 형에게 들으셨죠?”

“네, 물론 참가해야죠. 떨어지는 것이 한둘이 아닌데요.”

우리 모두 NPC가 쏘는 하르 포탑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격 능력이야 좋겠지만 돌발적인 상황에선 NPC의 인공지능에 기대는 것은 금물.

결국, 인력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스칼렛의 달 길드와 이슬두잔의 치맥 길드를 다시 끌여 들였다.

로테 지하의 광산 던전을 사용하게 해주는 대가로.

이건 꽤 크다.

주변 사람들의 견제를 받지 않고, 자리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원하는 시간대에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메리트가 있었다.

이 조건을 걸자마자 스칼렛과 이슬두잔은 별다른 말없이 합류했다.

“이슬두잔 님, 오랜만입니다.”

“길마님께 이야기 미리 들었어요. 그래서 어디까지 도와드리면 돼요?”

확실히 이슬두잔 쪽은 협조적이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하면서 봐온 것이 있기 때문이려나.

이번에 걸린 것도 크기도 하고.

전력 쪽 이야기가 나오니 재중이 형이 앞으로 나서서 말을 꺼냈다.

“타격조는 우리 쪽이 맡을 겁니다. 문제는 NPC가 커버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런 곳을 자율적으로 날아다니면서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때, 이슬두잔이 손을 들었다.

“저희 쪽 비공정은 어떻게 됐어요?”

“당연히 준비했죠.”

재중이 형이 전사 형에게 신호하자 전사 형이 이슬두잔에게 스탄 열 대를 넘겨주었다.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받고.

비공정 한 대 값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두잔이 저렇게 사들이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번 공성전에서 수없이 많은 비공정이 떨어질 것이다.

그중 일부를 분배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저희도 이번에 정말 무리해서 사는 거예요.”

이슬두잔의 부담스럽다는 말투에 재중이 형이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

“후훗, 꼭 그렇게 되어야 할 거예요. 아님, 저희 길거리에 앉아야 하거든요.”

“넉넉하게 올려드리죠.”

“믿어볼게요.”

우리나 저쪽이나 부담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은 똑같았다.

다 얻거나 다 잃거나.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전설 쪽은요?”

그때, 이슬두잔이 궁금했는지 물어보았다.

몇 번이나 동맹으로 함께 했으나 저번부터 우리와는 다른 노선을 걸었다.

“뭐, 그쪽은 별생각이 없는 것 같군요. 이번에는 적으로 만난다 생각하면 됩니다.”

재중이 형의 말에 이슬두잔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인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관심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공성전 시간 때문에 리젠이 된 썬더볼트와 라이덴은 그냥 두었다.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공성전 시간이 꽤 애매했으니까. 뭐, 중간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애도.

아마 꽤 많은 수의 비공정이 추락할 것이다.

“고생 좀 하겠네요.”

“지들 복이지.”

재중이 형의 말에 이 장소에 모인 사람 모두가 가볍게 웃었다.

일단, 사장님을 비롯한 최강 길드 자체가 다 넘어오다 보니 다른 유적지는 전부 포기해 버렸다.

하르페부터 에띠앙, 페르타까지.

분명 아직도 돈이 되지만, 거리도 멀고 전력을 나눌 정도로 우리 전력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쪽을 노린다고 떨어져 나간 길드들도 제법 있어 보였다.

저쪽은 이제 어쩔 수 없다.

지금 가질 수 있는 곳만 집중하면 된다.

그렇게 공성에 들어가기 전, 사장님이 몇 가지 지침을 내려주셨다.

“이곳 유적지가 아니면 공중에 있는 시간 동안 계속 폭풍에 피해를 보니 최대한 버티는 운영으로 가자. 방어조는 포탑 NPC들이 죽지 않게 잘 케어하고. 타격조는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고 어차피 시간만 끌면 이기는 경기다. 절대 무리하지 마라.”

예전에 시도했던 한 번 내주고 마지막에 되찾는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공중에 있는 동안 대미지를 입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유적지를 내어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리가 좀 더 유리하기 때문에.

그 외에도 길드 간 신호, 방어조 편성에 좀 더 공을 들였다.

원활한 기동력과 안정성이 뒷받침된다면 승률은 좀 더 올라간다.

총 스물한 대의 스탄 배치 역시, 달 길드는 열한 대로 북쪽과 서쪽 방면을 막고, 치맥 길드는 열 대로 남쪽과 동쪽 방면을 막기로 했다.

그리고 새로 사들인 베록 두 대를 포함한 베록 세 대, 그리고 트리스탄, 썬더볼트로 진영 이곳저곳을 헤집는 역할을 맡았다.

“주호와 내가 썬더볼트, 소녀하고 챠밍은 트리스탄. 전사하고 나르샤는 베록을 끌고 길드원 최대한 태워. 쉬는 하르포 없게.”

하르포는 모두 베록에 맞춰 최대한 강한 것으로 교체했다.

준비가 끝난 뒤 트리스탄에 올라타려는 챠밍에게 말을 걸었다.

“압축 하르포와 썬더볼트 압축포를 날리면 바로 베록 사이로 되돌아가. 무리하지 말고.”

“네, 알았어요. 오빠도 조심해요.”

“그래, 살아서 보자.”

옆에서 보고 있던 이쁜소녀에게도 전했다.

“챠밍이 쏘기 좋게 각만 만들어주면 돼. 몰린다 싶으면 바로 뒤로 빠지고. 알았지?”

내 말에 이쁜소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파이팅하는 자세를 취했다.

“네, 조심할게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사실 우리 전력의 반이나 마찬가지다.

트리스탄의 위력이 그만큼 압도적이니까.

베록이 있어도 추락시킬 정도인데 하물며 브링어들이라.

“슬슬 모여드는군요.”

“대략 수천 대는 넘어 보이는데?”

전사 형과 재중이 형이 누군가의 개인 방송을 보면서 상황을 체크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공성전 시간이 다 되어가자 꽤 많은 비공정이 모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꼭 방송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도 공중에 바글바글하게 모인 브링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스탄도 상당수가 섞여 있었다.

이 짧은 시간에 저건 또 무슨 수로 샀을까?

길드 마크를 보니 꽤 유명한 길드들이었다.

“저게 다 얼마야.”

스칼렛이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하늘을 수놓은 브링어들을 바라봤다.

하긴 떨어지면 죄다 돈이긴 하네.

사장님과 이야기를 해서 추락하는 비공정을 찾아올 회수조를 따로 만들어놓았다.

마지막에 얼마나 건져올 수 있을지 벌써 기대가 되네.

《 20:00부터 공성전이 시작됩니다. 공성전에 참가하지 않는 인원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렇게 잠시 기다리니 전체 메시지가 떴다.

《 기다리시던 공성전이 지금 시작됩니다. 》

《 5. 》

《 4. 》

《 3. 》

《 2. 》

《 1. 》

《 승자에게 축복을! 》

공성전이 시작되자 같은 동맹 빼고는 사방이 전부 붉은 아이디로 표시됐다.

공성전이 시작되자마자 일선의 브링어가 일제히 날아들었다.

너무 많은 브링어가 섞여 있어서 길드 마크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브링어 중 단 한 방향만 봐도 정말 바글바글했다. 합치면 정말 많은 수가 참여했을 것이다.

머리수로 어떻게 해볼 생각인 것 같은데…….

그 정도로 될 것 같으면 우리도 이 고생을 안 하지.

그럼 어디 시동을 걸어볼까.

칼바람 둥지 맨 끝 라인에서부터 쭉 이어진 강화 하르포들이 순서대로 고개를 들었다.

저건 전부 베록에 장착되는 강화 하르포였다.

브링어의 장갑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NPC들이 강화 하르포에 배치되자 삼백여 대가 넘는 하르포가 일제히 브링어들을 향해 불꽃을 뿜어냈다.

그렇게 하늘을 수놓은 삼백여 푸른색 빛줄기가 전진하던 브링어들을 단번에 꿰뚫어 격추했다.

브링어의 기동력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

거기다 NPC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포 쏘는 것 하나만은 진짜 정밀하다.

삼백 발 중 대부분이 브링어에 맞으면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터지고.

튕기고.

밀리고.

자기들끼리 부딪혀서 추락하고.

그야말로 개판.

“으악! 뭐야?”

“피해! 공격이다!”

“무슨 대미지가……!”

“브링어로 못 버텨!”

“추락한다! 뛰어내려!”

선체부터 갑판까지 한 번에 뚫고 지나가자 앞서 날아들던 브링어에 타고 있던 유저들의 표정이 전부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그리고 강화 하르포에 스치고 지나간 브링어들도 역시 비틀거리다가 번개 폭풍에 대미지를 입고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

<이슬두잔> 와, 역시 믿을 만하네요.

<스칼렛> 대체 방어포대에 돈을 얼마나 들인 거예요?

<주호> 들으면 아마 심장이 멈출만한 돈요.

재중이 형도 날 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으니 말 다 했지.

눈을 꾹 감고 막 질렀다.

그게 지금의 이 결과였다.

대-추락쇼.

흐~!

화련이 이 맛에 현질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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