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310화 (308/1,404)

# 310

#310화 칼바람 둥지 쟁탈전 (1)

라이프 베슬.

정확한 용도는 상세 사항만 봐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도 미치광이 리치를 테이밍하거나 혹은 죽이거나.

설명을 단순하게 해석한다면 테이밍하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이쪽은 미치광이 리치를 만나야 해결될 문제다.

잠시 그 문제는 접어둔 채, 주변을 둘러보니 지하의 리치의 방이 아닌 전혀 다른 풍경이 보였다.

말 그대로 광산 마을.

그저 텅 빈 광산만 즐비했던 이곳엔 작업복에 곡괭이까지 짊어진 광부 NPC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곳곳에 철로가 놓여 있었고 광석차들이 당연하다는 듯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동안 봐온 곳과 상당히 다른 풍경.

그리고 저 멀리, 돌을 쌓아 올린 튼튼한 방책과 그 위로 NPC가 돌아다니는 모습, 그리고 광산 지역 대부분을 둘러싼 모양새가 꽤 안정감을 주었다.

또한, 방책 위에 있는 NPC들은 로가슈 왕국에서 파견 나온 것 같았다.

그곳에서 보던 복장과 거의 비슷했으니까.

제대로 된 마을이네.

얼핏 보이는 NPC 숫자나 마을 규모 자체는 트로아 요새와 거의 비슷한 수준.

하나의 마을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마을과 광산으로 연결된 입구에 경비 NPC가 추가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소유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나?

<불멸> 접속했네.

<주호> 네, 좀 늦었죠?

<불멸> 아니, 그렇게까지는. 바로 중앙에 제일 큰 건물로 와라. 형 아지트다.

따로 아지트도 준 건가?

내가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 바람에 재중이 형이 길드를 탈퇴한 뒤, 개인적으로 다시 광산 마을 로테를 먹었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유적지를 먹는 것은 예전에도 종종 했으니까.

별다른 제약이 없기에 아직은 잘 써먹고 있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공지사항은 조금 있다가 확인해야 할 것 같고.

곧장 광산 마을 로테의 중앙 도로를 가로질러 중앙 관제 건물에 도착했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하얀 벽돌로 꾸며진 화려하게 그지없는 건물이기도 하고.

주변 건물이 다 광산 마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칙칙한 색임을 생각하면 정말 이질적인 건물이었다.

그런 곳에 들어가니 재중이 형과 길드원들이 모두 모여서 가운데 큰 원탁에 둘러앉아 뭔가를 의논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사장님도 보이고, 길드원 대부분이 사냥하지 않고 의논을 하는 것 같았다.

옆으로 돌아가 전사 형 옆으로 가니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가 날 보고는 반겨주면서 인사했다.

챠밍은…….

나와 눈이 마주친 챠밍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제 모두 돌아간 뒤,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여자가 눈앞에서 우는 것을 보고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생각과 달리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지켜볼 수밖에.

“잘 쉬었어?”

챠밍에게 물었더니 챠밍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네, 일찍 들어가서 좀 쉬었어요. 그…… 어제는 제가 너무 못난 꼴을 보였죠?”

“아니, 예쁘기만 하던데?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래도…….”

“그리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있으니 차차 생각해 보자. 괜찮지?”

“알았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보일 듯 말 듯, 아주 잠시 스쳐 간 그 미소에 갑자기 내 속의 뭔가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느낌은 뭐였지?

이상한 감각에 빠져 있을 때 전사 형이 옆에서 다가왔다.

“잘 잤냐?”

“아, 생각보다는요.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가.”

“나도 마셨으면 좋았을 것을.”

“다음에 기회가 되겠죠.”

“흠, 너 공지사항 아직 안 봤지?”

“네, 급하게 들어온다고.”

“일단 그거 봐야지 이야기가 될 것 같네.”

“무슨 일 있어요?”

“음,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쁘고.”

꽤 애매한 답변이네.

* * *

[ 공지사항 ]

▷ 광산 마을 로테가 추가됩니다.

▷ 광산 마을 로테에 NPC들이 돌아옵니다.

▷ 제3 하르 광산 던전이 광산 마을 로테에 귀속됩니다.

▷ 광산 던전은 길드장의 허가를 통해 입장 가능합니다.

▷ 탈것을 탄 유저의 민첩에 따라 탈것의 이동속도가 추가됩니다.

▷ 비공정 유지에 하르가 소모됩니다. 비공정의 등급이 높을수록 소모되는 하르의 양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 왕성 창고에서 구입하는 모든 물품에 추가 구입비가 붙습니다.

▷ 기여도로 교환하는 모든 물품에 구입비가 추가됩니다.

▷ 블러디 가고일을 대폭 추가합니다.

▷ 블러디 가고일의 리젠 속도가 줄어듭니다.

▷ 트로아 요새에 비공정 판매 NPC가 추가됩니다.

▷ 주말 동안 신규 광산 마을 로테를 포함한 모든 유적지에서 공성전이 실시됩니다.

* * *

전사 형이 따로 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실, 공성전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주기적으로 때가 되면 해야 하는 행사니까.

그런데 의외의 공지가 있어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블러디 가고일과 비공정 판매.

기존보다 개체 수를 추가하고 리젠 속도를 줄인다라…….

거기다 비공정 판매까지 트로아 요새에서 가능하게 바꿔 버렸다.

“이게 대체 왜?”

이유를 물어보는 내게 전사 형이 오히려 되물었다.

“게시판 안 봤지?”

“네.”

일어나자마자 바로 접속해서 따로 볼 시간이 없었다.

“점검 동안 난리였거든. 우리 동영상이 퍼져서.”

“아…… 그랬죠.”

우리가 썬더볼트를 잡아서 테이밍하는 영상.

챠밍 문제를 신경 쓴다고 동영상 쪽은 사실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었다.

굳이 가질 필요도 없었고.

전사 형이 동영상 게시물 중 하나를 열어서 보여주었다.

-썬더볼트?

-근데 왜 저렇게 약해 보임?

-노노, 전혀 안 약함. 비공정 씹어 먹는 것 못 봤음?

-아니, 그런데 주호네한테 완전히 발리잖아.

-저 큰 비공정은 대체 뭐냐? 저렇게 큰 비공정도 있었나?

-의외로 날렵하게 생긴 작은 비공정이 더 쎈 듯. 공격할 때마다 썬더볼트가 맥도 못 추잖아.

-심지어 이미 썬더볼트 탈것도 있네. 옆에서 물고 늘어지는 것 봐봐.

-대체 얼마나 앞에 있는 거냐? 우리는 손도 못 대는 네임드를 아예 가지고 노네, 놀아.

-거기다 1서버 점검 분명히 재들 때문임.

-광산 마을 로테도 재들이 먹었겠지?

-진짜 광산 마을은 듣도 보도 못했다.

-아직도 트로아 요새에서 오우거 잡고 있는 우린 뭐지. 똑같이 산맥 통과했을 텐데…….

-1서버 랭커들 대체 뭐하냐? 완전 비교 불가네.

-참나, 돈을 처발라도 못 따라가는데 어쩌라고.

-이대로 놔두면 정말 못 따라감. 한 번 밟을 필요는 있지 않나?

-뭐, 만나야 싸우던가 하지. 지금은 답도 없다.

대부분이 압도적인 격차에 대한 내용이었다.

동경심.

부러움.

경계심.

한탄.

사람들의 이런 감정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딱히 문제까지는 안 되는 것 같은데…….”

이제까지 봐왔던 그냥 그런 글이었다.

그럼에도 전사 형이 보여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라.”

“무슨 계산요?”

“평범하게 기여도를 쌓아서 퀘스트로 폭풍 지대를 넘어가는데 걸리는 시간.”

예전에도 전사 형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시간과 그걸 계산할 이유도 없어서 그냥 넘어갔었다.

원래는 기여도만 쌓으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다.

충분한 기여도만 있으면 싸이클롭스를 잡던, 안 잡던 퀘스트를 통해서 어떻게든 로가슈 왕국으로 넘어올 수가 있게 된다.

이건 사장님이 뒤에 확인시켜준 일이기도 하고.

그 시간이 길어서 문제지.

“두 달.”

“두 달인가요?”

역시 대략 예측했던 것만큼이나 길다.

“그래, 만약 블러디 가고일이 없었다면 말이지.”

여기서 변수.

블러디 가고일.

압도적으로 빨리 기여도를 쌓을 수 있는 꼼수.

분명히 그것을 노리고 화련이 블러디 가고일을 잡아대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넘어올 수 있으려나?

“다만 경쟁이 심해서 제대로 잡을 수가 없는 게 문제였지. 그마나 선두는 경쟁이 약했는데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이 몰렸다고 하더라. 우리 서버도 마찬가지고.”

공급보다 수요가 더 큰 상황인 건가?

“원래라면 2달이 걸리든 3달이 걸리든 크게 신경 안 썼겠지만…….”

들어보니 대충 답이 나오네.

“우리가 눈엣가시였겠네요.”

“그렇겠지. 지들은 폭풍 지대도 제대로 못 넘어가는데 우린 벌써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광산 마을까지 먹었으니까. 2달이라는 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고. 결국,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모양이다. 개체 수를 늘려달라고. 자기들도 넘어가고 싶다던가.”

“지들이 못하는 것을 왜 운영자에게…….”

내 말에 전사 형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근데 또 운영자는 난감하겠지. 적어도 2달 걸릴 퀘스트를 우리가 넘어가 버렸으니까. 거기다 이젠 리치 방을 털면서 광산까지 해 먹었고. 이것도 한두 달은 계획했던 걸 텐데…….”

“운영자가 돌아버리겠네요.”

“그런 셈이지.”

“그래서 칼을 뽑은 건가요?”

“아마도? 우리가 광산을 공짜로 해 먹으면서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그동안 조용하다 했다.

운영자들이 잠시 웅크리던 것은 이렇게 점프해서 한 방 먹이기 위함인가.

“조만간 어떻게든 넘어오겠네요.”

“적어도 2달보다는 짧겠지.”

“준비할 게 많겠네요.”

아마 그런 것 때문에 재중이 형과 사장님, 길드원들이 저렇게 회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기다리니 회의가 끝나고 재중이 형과 사장님이 우리에게 왔다.

“오래 기다렸냐?”

“아뇨, 잘 끝났어요?”

“대략적인 가이드는 잡았는데, 어느 정도 파급력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네. 하나씩 보면서 맞춰가야겠지.”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공성전이다.

얼마나 적들이 왕국으로 넘어오느냐가 관건.

그리고 어느 정도 규모로 함선을 대동할 수 있느냐도 관심거리였다.

“스칼렛이 바쁘겠네요.”

“해 먹을 수 있는 기간이 확 줄어들었으니까. 지금 제일 바쁘려나.”

아니나 다를까, 스칼렛에게서 귓말이 왔다.

<스칼렛> 아, 진짜! 저 패치 대체 뭡니까?

미안…….

우리가 사고 좀 쳤어.

운영자를 절벽 끝으로 밀었더니 불사조처럼 살아나서 우리를 극딜 중이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스칼렛> 우리 경쟁 길드들이 죄다 브링어 사서 띄우고 있단 말이에요. 운영자 완전 미쳤어. 어떻게 저런 패치를 해.

스칼렛 입장에서는 빡칠만 하다.

스탄을 산다고 꼬라박은 돈이 적지 않거든.

이미 패치 전에 사람들을 실어 나르면서 그 돈이야 다 회수했겠지만 더 확실하게 못 벌어들인다는 것이 아쉽겠지.

<스칼렛> 항로에 지금 경쟁 길드들이 사람들 실어 나르고 난리네요. 어떻게 해요? 손 떼요?

사실 우리 입장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스칼렛이 비싸게 티켓을 안 팔아도 칼바람 둥지를 지나치면 어차피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하니까.

단기간에 당길 수 있는 세금은 이쪽이 훨씬 많을 것이다.

<불멸> 일단 그대로 가는 걸로. 정 수익이 안 나오면 손 떼도 좋아. 판단에 맡기지.

<스칼렛> 칫, 모처럼 크게 한탕 하나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불멸> 근데 다른 일이 있는데 혹시 사람 좀 많이 동원할 수 있나?

<스칼렛> 무슨 일인데요?

<불멸> 광 캐는 일.

<스칼렛> 흐음? 자세히?

<불멸> 광도를 몇 개 얻었는데 사람이 부족하거든. 하르는 우리가 전량 사는 걸로 해서.

<스칼렛> 역시 광산 마을이라더니 뭔가 있네요. 다른 곳보다 확실히 잘 나오는 것 맞죠?

<불멸> 아마도? 다만 광도 안에 언데드가 있는데 좀 강하고, 레벨도 높아. 그건 일단 우리 쪽에서 잡아줄 게. 어때?

<스칼렛> 어머? 우리 너무 낮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불멸> 흠, 뭐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고. 말리진 않아.

<스칼렛> ……꼭 그럴 필요는 없겠죠? 일단 잡아줘요. 같이 잡아보고 괜찮다고 판단되면 우리끼리 해볼게요.

<불멸> 하르만 많이 캐서 넘겨주면 무기도 맞춰서 넘겨주지. 그럼 사냥도 될 거야. 현재 사냥터 중에서는 제일 높은 곳이니까 고맙게 생각하라고?

<스칼렛> 제가 언제 고맙지 않다고 하던가요? 오케이. 접수했어요.

하르 부족 문제는 재중이 형이 단번에 해결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공지에 광산이 마을에 귀속된다고 했었던가?

“형, 혹시 귀속된다는 말이?”

“어, 그걸 이제 물어보냐? 난 보자마자 물어볼 줄 알았는데. 일단, 내 허가 없으면 광산 던전에 못 들어가.”

그 넓은 던전에 허가가 없으면 아무도 못 들어간다고?

지금 잘못 들은 것 아니지?

“……정말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더없이 사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었다.

“어, 그 던전 다 우리 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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