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
#290화 선택의 기로 (1)
시스템 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썬더볼트라는 발판이 사라지자 내 몸이 추락을 시작했다.
“형!”
“간다. 가.”
다급하게 재중이 형을 외치자, 형은 트리스탄을 몰아 내 밑으로 날아와 나를 받쳐주었다.
트리스탄의 선체가 내가 떨어진 충격으로 잠시 휘청거렸지만, 곧 중심을 잡고 썬더볼트가 뱉어낸 아이템이 있는 쪽으로 날아올랐다.
“이제 안전하니까, 바로 아이템 회수부터 해.”
트리스탄을 모는 재중이 형을 대신해 내가 모든 아이템을 루팅했다.
“으음, 이거…….”
“왜 ”
“꽤 재밌네요.”
아이템 구성이 좀 다르다.
대부분 원하는 아이템으로 나왔지만 일부는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였다.
이건 앞으로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베록 역시 우리가 있는 장소로 접근했다.
“일단, 착륙한다.”
트리스탄이 빠르게 기동하긴 좋지만 오랫동안 앉아 있기 편한 구조는 절대 아니었다.
오직 ‘전투’라는 상황을 고려하고 만들어진 트리스탄에 편의 시설 같은 것은 1도 없었다.
챠밍도 생각보다 많이 좁다는 말을 했었고.
체구가 작은 챠밍이 좁다는 것을 보면 정말 좁은 것이 맞으니까.
기동성을 살리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느낌.
베록이 유로 트럭이라면 트리스탄은 늘씬하게 잘빠진 스포츠카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트리스탄에 탑승하면 피로감이 더 강해지는 느낌이라 빨리 내리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한 시간이 넘는 레이드를 했으니 피곤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아무리 긴 레이드라도 몇십 분 전후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그것보다 배 이상의 시간을 이 싸움에 쏟은 셈이었다.
베록에서 내린 나와 재중이 형, 그리고 챠밍은 지쳤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듯 바로 갑판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힘들어.”
“정말 힘드네요.”
재중이 형과 나의 푸념.
“오래는 타기 싫어요.”
그리고 챠밍이 마무리.
셋 다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중에서 내 상태가 제일 좋지 않았다.
여차하면 바로 로그아웃을 해야 할 정도로.
“너 괜찮냐 ”
“너무 오래 집중했어요. 썬더볼트가 날뛰는 데 달라붙어 있겠다고 고도로 집중해서 몸을 사용했더니…….”
“그래, 좀 쉬어라.”
“네, 뒤처리 좀 부탁할게요.”
“일단 너 일어나면.”
“그럼 드랍템 받고 분배 좀 해주세요. 옆에서 듣고만 있을게요.”
재중이 형이 그대로 일어나 엎어져 있는 내게서 드랍템만 받아갔다.
그리고 난 다시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긴장이 풀리니까 머리가 윙윙 울리네.
이런 식은 곤란하다.
레이드 한 번 하고 퍼져 버리면.
일반 유저에 비해 수배에 달하는 스펙이라고 한들 롤러코스터보다 더 요동치는 고속의 비행체에 삼십 분 넘게 매달려 있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이런 식의 레이드는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나라는 규격 외의 존재가 없었다면 분명히 실패했을 것이다.
우리가 갑판에 엎어지자 전사 형과 나르샤 누나, 이쁜소녀가 달려 나왔다.
“괜찮아요 ”
이쁜소녀가 바닥에 슬라이딩하듯 날아들더니 우리의 안부를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렇게 전투 후, 엎어지는 경우는 내가 무리를 해서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아,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이쁜소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줬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얘도 참 마음이 약해서.
챠밍도 날 슬쩍 보더니 옆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자자, 둘 다 애 쉬는데 옆에 있지 말고 이리와.”
전사 형이 챠밍, 이쁜소녀를 반대편 갑판으로 데리고 가고 나르샤 누나, 재중이 형이 뒤따라 사라지면서 그제야 주변이 평온해졌다.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으니 서서히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안에서 수면이 가능하려나
생각이 점차 사라지면서 점점 의식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
“오빠 ”
으음, 달콤한 목소리.
아침을 깨우는데 감미로운 목소리만큼 좋은 것이 없…….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떠보니 집이 아니었다.
여긴…….
설마 진짜로 잠들었나
안에서 잠드는 것이 가능하긴 하네.
내가 눈을 뜨자 날 내려다보고 있는 챠밍의 작은 얼굴이 내 시선에 바로 잡혔다.
목소리 주인공이 얘였군.
집에서 기상하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
“내가 잠들었나 보네.”
“네, 안에서 잠드는 건 처음 봤어요. 정말 괜찮아요 ”
몸을 살짝 움직여보니 아까보단 괜찮다.
“으음, 컨디션이 꽤 돌아온 것 같네.”
“다행이다. 너무 오래 자서 깨워야 하나 걱정됐거든요. 안에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나도 안에서 잘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
내가 깨어나자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며 기다리던 우리 팀이 하나둘 자리로 모여들었다.
다들 걱정되는지 한 번씩 안부를 물었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긴 어디예요 ”
미니맵을 보니 원래 있던 위치와 꽤 다른 위치였다.
내 말에 재중이 형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보였다.
『 썬더볼트의 핵 』
내가 저것도 넘겨줬구나.
그냥 다 넘겨줬더니 아예 잊어먹고 있었다.
“이거 좀 독특해. 꺼내니까 위치를 광선 무튼 그런 빛으로 알려주네.”
말과 동시에 썬더볼트의 핵에서 빛이 새어 나와 한쪽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저기가 어디죠 ”
“일단 유적지.”
“흐음, 역시 그런가요 ”
“그래, 위치를 알려줄 테니 찾아가라 그런 거겠지. 지금 바로 앞에 와 있어.”
“그러면 왜 안 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
내릴 거라면 벌써 내렸어야 하지 않나
“일단 결정이 안 나서. 너 일어나면 의견을 들어보고 결정하려고.”
“유적지 활성화요 ”
“바로 아네. 사실 의견이 둘로 나뉘었거든.”
둘이라…….
“그래서 너 기다린 거지. 유적지를 활성화하면 주변 번개 폭풍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쉽게 지나올 수 있겠지. 그래도 브링어로는 바로 통과를 못 할 테니까 무조건 여기를 들려야 하고.”
“반대는요 ”
“그냥 두는 것. 굳이 왕국에 사람들이 빠르게 오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전체적으로 통행세를 다 떼먹을 기회와 아예 접근조차 못 하게 만드는 쪽이라…….
썬더볼트를 잡으면서 이야기가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형, 상위 길드들…… 곧 통과할 것 같지 않아요 ”
“사실 나도 그게 좀 걸리네. 걔들은 곧 넘어올 것 같던데…… 블러디 가고일이 효자 노릇하니까. 너 쉬고 있는 동안 그쪽은 완전 전쟁터다.”
재중이 형이 신호를 주자 전사 형이 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누군가 찍어 올렸는데 하늘 위엔 이벤트를 하려는 브링어가 수도 없이 떠 있었다.
각기 다른 마크를 달고 있는 수많은 길드가 서로 블러디 가고일을 끌어당겨서 잡는 모습이란.
잡는 방법이 알려진 뒤, 경쟁이 너무 치열해 서로 적대하는 길드까지 나와 버렸다.
잠시 확인한 후 영상을 껐다.
흐음.
어쩐다.
“어쨌든 저쪽도 곧 건너오긴 하겠네요.”
“아마도.”
어차피 방법은 알려져 있고 좀 날고 긴다는 길드들은 이미 저 대열에 동참했을 것이 자명한 상황.
단순히 유적지만 포기해야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제부턴 저들을 저지할 썬더볼트 역시 잡지 말아야 한다.
유적지의 통과세와 썬더볼트 두 가지를 포기하는 대가로 사람들을 잠시 억눌러 놓는다라…….
“그럼, 일단은 하지 말죠 ”
“넌 그쪽이냐 ”
“아뇨, 완전히 하지 말자는 소리는 아니고, 당분간요.”
돈은 뭐, 어떻게든 괜찮다.
이제 급한 불을 껐으니까.
전처럼 돈이 필요해서 뭔가를 파는 일은 굳이 안 해도 된다.
물론. 썬더볼트가 아깝지만 그렇다고 경쟁자들을 얌전히 이곳으로 모셔오는 것은 아니지.
그래서 딱 중간 지점을 택했다.
‘당분간’은 두고 본다.
그리고 썬더볼트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넘어오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때부터는 풀어주면 된다.
그것도 아주 비싸게.
중간 다리로 맡길 사람도 있고.
이득이 된다면 무조건 오케이 하는 누군가가 있다.
아마 거절하지는 않을 터.
우리가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그 뒤는 일사천리다.
썬더볼트를 다시 잡는 시점은 아마 그쯤이 될 것이다.
그것도 오버된 썬더볼트를.
우리가 이미 한 번 잡았으니까 지금부터는 무럭무럭 클 것이 분명했다.
“어때요 ”
“흐음, 양쪽 의견을 두 개 다 포함하네. 나쁘지 않아. 일단 억제하고, 나중에 크게 해 먹는다…….”
“그만큼 준비할 게 많을 거예요.”
적어도 새 지역에서 충분히 앞서 나갈 필요가 있었다.
밀려드는 적을 누를 수 있을 정도로.
***
노선이 결정되고 난 뒤엔 바로 템부터 확인했다.
전과 같으면서도 꽤 다른 아이템 구성.
그 차이는 대부분 제작 템에 있었다.
제대로 된 완제는 없는 이상한 구성이기도 했고.
『 썬더볼트의 눈물 보석 』
『 썬더볼트의 눈물 조각 (x3) 』
『 라이트닝 웨폰 (x5) 』
『 다크 아머 (x3) 』
『 썬더 플레어 (x5) 』
『 썬더 웨이브 (x2) 』
『 썬더 레인 (x2) 』
『 썬더 캐논 』
『 썬더볼트 압축포 』
『 썬더볼트의 뿔 / 제작 재료 (x15) 』
『 썬더볼트의 이빨 / 제작 재료 (x30) 』
『 썬더볼트의 뼈 / 제작 재료 (x50) 』
『 썬더볼트의 피 / 제작 재료 (x50) 』
『 썬더볼트의 비늘 / 제작 재료 (x100) 』
『 썬더볼트의 가죽 / 제작 재료 (x100) 』
그리고 싸이클롭스는 딱 하나밖에 주지 않았던 다크 아머를 무려 세 개나 줬다.
그만큼 잡기 힘든 네임드였다는 뜻이 아닐까
“이거 지금 잡으라고 놔둔 네임드는 확실히 아닌 것 같죠 ”
“아마 너 없을 때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확실히 공중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좀……. 난이도가 두 배 이상이어야 정상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아마도 그랬겠지.”
싸이클롭스도 강한데 이 썬더볼트는 더 했다는 소리다.
확인하던 중 특이한 템도 보였다.
“썬더볼트 압축포는 뭐죠 ”
“아, 이거 우리가 쓰는 템이 아니더라. 비공정에 다는 템. 압축 하르포 같은데…… 아마도 이쪽이 성능이 더 위겠지. 돌아가면 확인해 봐야 해.”
비공정 특화 템인가
이제껏 그런 템이 없어서 그런지 좀 생소했다.
“일단 왕성으로 돌아가 봐야 알겠네요.”
제작 템도 그렇고 지금은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그만큼 기대가 된다.
그래서 바로 비공정을 돌렸다.
지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로가슈 왕성으로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도착하자마자 제일 궁금했던 무기 공방을 먼저 들렸다.
이걸 보여주면 어떤 반응이 있으려나
전에 우리가 미완성 하르 블레이드를 고치기 위해 왔을 땐 자격이 안 된다고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제작 재료 중 하나를 꺼내 무기 공방의 장인 NPC에게 보여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끈기 있게 망치만 두들기던 할아버지 NPC가 화들짝 놀라면서 표정을 싹 바꾼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 오! 이것은! 그대들이 진정 그 폭풍 속의 악마를 잡았나 드디어…… 그 악마가! 따라오시게나. 그대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있으니. 』
《 로가슈 왕국 무기 장인의 호감도가 최대치까지 상승합니다. 》
한 번에
이 정도의 네임드였나
무기 장인의 태도를 돌변할 정도로
그런 무기 장인 NPC를 따라 숨겨진 공방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장인 NPC가 다시 말을 걸었다.
『 그대가 가진 그 미완성 하르 블레이드를 제대로 된 녀석으로 만들어주겠네. 』
드디어 바꿀 수 있게 된 건가
우리 팀과 시선을 한 번 마주치고 난 뒤 미완성 하르 블레이드를 꺼내서 장인 NPC에게 넘겨주었다.
“먹고 튀진 않겠죠 ”
“설마.”
미완성 하르 블레이드를 받은 장인 NPC가 지하에 설치된 거대한 화로에서 정신없이 망치를 두들겼다.
오래 걸리려나
지금 가진 템도 한두 개도 아닌데 여기서 시간이 끌리면 난감한데.
그런 걱정과 다르게 화로에서 바로 빛이 번쩍이며 새 아이템이 탄생했다.
전과는 확연히 다른 영롱한 빛이 검신 전체에 맴도는 것을 보니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모양이었다.
『 받게나. 그대를 위한 최강의 무기일세. 』
《 미완성 하르 블레이드가 완성된 하르 블레이드로 변경됩니다. 》
그렇게 장인 NPC의 손에서 완성된 하르 블레이드를 넘겨받았다.
손에 ㅤㅊㅘㄱ 감기는 그립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변경 전 :
『 미완성 하르 블레이드 / 출혈 15 타격 7
마력 +5 / 신성력 +5 / 강화 불가 / 거래 불가 』
변경 후 :
『 완성된 하르 블레이드 / 출혈 22 타격 15
마력 +10 / 신성력 +10 / 강화 불가 / 거래 불가 』
“미쳤네요.”
정말 미쳤다.
수치나 스탯이나 모두.
이게 대체 몇 강짜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