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5
#275화 로가슈 왕국 (5)
퀘스트는 기존에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느 지역에 어떤 몬스터가 존재한다.
가서 잡아 와라.
그럼 보상을 주겠다.
심플하고 좋은 방법이다.
운영자도 편하고 사냥하는 사람들도 편하고.
딱 하나의 문제만 빼면.
그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
아무리 퀘스트가 심플해도 그걸 사냥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면 절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게 사냥 퀘스트였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블러디 가고일은 어떤가.
높은 고도.
비공정이라는 한정된 장소.
높은 레벨.
강력한 보호막.
모든 것이 유저가 열세인 상태로 상대를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기여도 보상이 기가 막히게 높았다.
일단, 블러디 가고일만 잡아낼 수만 있다면 나머지 과정은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귀환.”
재중이 형이 신호하자 하나둘 귀환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트로아 요새 한복판.
“베네아로 바로 귀환하면 더 좋겠지만…… 보상은 여기서 받아야 하니까.”
그 말에 나르샤 누나가 다른 의견을 내었다.
“그냥 비공정을 타고 여기까지 와서 베네아로 귀환하는 편이 좋지 않아 그럼 기여도 5천을 아끼잖아.”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시간을 생각해야지. 비공정을 타고 여기까지 날아오느니 5천을 소모하고 바로 베네아로 가는 편이 나아.”
“그렇다면 그렇게 하고.”
순식간에 의견 조율을 마친 뒤, 보상인 기여도를 받고 다시 베네아로 날아가 비공정에 올라탔다.
어차피 네임드 잡템은 퀘스트를 완료해서 이어링으로 바꾸지 않으면 그대로 존재했다.
다른 말로 하면 무한 반복이 가능하다는 소리고.
“이거 막히겠죠 ”
“나 같으면 빠르게 막지. 아니다…… 내가 운영자면 일단 네 계정부터 삭제시키고 볼 것 같은데 ”
“하하…….”
재중이 형이 날 보면서 의미심장하게 웃는 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했다.
이거 참.
앞으로 좀 자제해야 하나
“시간이 정말 없네요.”
“그러니까 최대한 해 먹어야지. 길어봐야 반나절 더 적을 수도 있고. 지금 새벽이니까 출근하자마자 확인하고 서버 내려 버릴걸 ”
하긴 하루 종일 우리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지금이 기회라면 기회다.
“자자, 밤은 짧아. 최대한 즐겨보자고.”
그래, 피를 토해 쓰러질지언정.
오늘은 달린다.
***
재중이 형의 불편한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 5분 뒤 임시 점검이 있을 예정입니다. 고객님들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
= 또
= 미친 것 아냐
= 아, 진짜 욕나오네…… 점검한 지 얼마나 됐다고.
= 적당히 좀 해라.
VRS 커버를 열자 바깥 공기가 시원하게 폐로 들어왔다.
나오자마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비스듬하게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하, 하얗게 불태웠어.
정말 토 나올 정도의 강행군을 했다.
잡고, 타고, 텔 하고, 무한 반복.
마치 오늘이 마지막 서비스 날이라는 것처럼 1분 1초를 아껴가면서 달렸다.
“2레벨…… 대략 50만 인가 ”
한 번이 어렵지 두세 번 반복하니 몰이도 점점 익숙해졌다.
사냥 시간은 20분에서 10분이 되고, 다시 10분이 5분이 되는 기적을 보여주었고.
나중엔 비공정을 타고 가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정도로 사냥 시간이 줄어버렸다.
다만, 블러디 가고일의 숫자가 적기도 했고 우리 레벨도 한계점까지 올라서 그런지 레벨은 거의 올르지 않았다.
점검이 끝나면, 시간이 없어 창고에 몰아넣은 블러디 가고일 드랍템들과 오우거 로드의 드랍템들을 전부 분배해야 했다.
그리고 기여도로 살 수 있는 아이템까지 모두 구매하면 트로아 요새와는 끝이다.
더 이상 여기서 해 먹을 것이 없다.
굳이 따진다면 싸이클롭스인데, 아직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패치도 되었고.
그렇기에 지금은 불가능했다.
길드원들 스펙도 낮은 편이었으니까.
공지를 확인해 보니 이번 점검은 공지를 정확히 내걸고 시작했다.
임시 점검할 만한 것이 우리 쪽밖에는 없을 테니까.
이미 강행군으로 꽤 지친 상태였는지 소파에 머리를 기대자마자 바로 잠들어 버렸다.
***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78.
> 로딩 중…….
전보다 2레벨이 오른 78.
아마, 이 레벨이 이 지역에서는 거의 한계선일 것이다.
물론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사냥을 한다면 레벨은 오르겠지만 로가슈 왕국으로 가면 더 많이 치고 나갈 수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 * *
[ 공지사항 ]
▷ 비공정 퀘스트를 반복 수행할 수 없도록 수정합니다.
▷ 기여도 퀘스트 중 비공정 퀘스트와 관련된 비정상적인 기여도 획득을 할 수 없도록 변경합니다.
▷ 일반 기여도 퀘스트의 획득 기여도를 대폭 상향합니다.
▷ 트로아 요새 입장 제한을 기존 무기 제한에서 레벨 제한으로 변경합니다.
▷ 비공정 퀘스트의 난이도를 대폭 하향합니다.
* * *
점검 내용은 더할 나위 없이 심플하네.
전부 다 우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개중 몇 가지는 의심되는 것도 있었지만.
이건 재중이 형과 이야기해 봐야 하나
접속하니 다들 내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목록에 보였다.
위치는 방어구 상점.
다들 아이템을 보고 있나
이번에 얻은 기여도가 50만.
10만도 아닌 무려 50만이었다.
이 정도의 기여도면 방어구 상점에 있는 아이템을 전부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방어구 점에 들어가자 전사 형이 날 먼저 알아봤다.
“여! 늦었어.”
“아, 좀 잠들어서요. 한 번 잠들면 일어나기가 힘드네요.”
“사실 전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다 늦잠 잤거든.”
“다행이네요.”
챠밍,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와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재중이 형에게 공지에 대해 물었더니 바로 답을 해주었다.
“뭐, 우리 쪽 막힌 건 알 거고 다른 것 말이지 ”
“네, 몇 가지 더 붙어 있던데요 ”
“임시방편이겠지만, 우리의 기여도가 터무니없이 높으니 조건을 확 바꿔 버렸네. 이대로는 후발주자가 도저히 못 따라오니까.”
“……그래서 기여도 획득을 올렸나 보네요.”
“그렇지, 거기다 트로아 요새도 레벨만 되면 입장 되도록 바꿔놓고.”
“으음, 이건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
“웃는 쪽 어차피 트로아 요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금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니까.”
“나쁘진 않네요. 세금만 보면…….”
“어차피 다른 길드 애들이 물약이나, 아이템을 팔아대면 수익이 확 감소할 거야. 이쪽이 차라리 낫지. 장기적으로 보면. 싸이클롭스가 언제 잡힐지 모르는데 그동안은 독점이나 마찬가지니까.”
“그쪽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운영자가 유저들이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게 허들을 낮췄지만 이건 오히려 이쪽을 도와주는 거지.”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득을 많이 보게 됐다.
“너 아직 방어구 못 봤지 ”
재중이 형이 날 데리고 방어구 상인 NPC에게 다가갔다.
“깜짝 놀랄 거다.”
깜짝 놀라
무슨 아이템이기에.
방어구 상인 NPC와 대화를 하는데 전에는 기여도가 안 되어 아이템 목록에 없던 것들이 새로 생겨나 있었다.
『 중화시킨 블러디 가고일의 피부와 하르를 소량 섞어서 짠 트로아 요새 정식 경갑 방어구에요. 가벼우면서 보다 높은 방어력과 부가 능력을 자랑해요. 』
방어구를 파는 여인 NPC의 말에 바로 능력치를 확인했다.
『 트로아 제식 경갑 상의 15 / 민첩+2 』
『 트로아 제식 경갑 하의 14 / 민첩+2 』
『 트로아 제식 경갑 부츠 12 / 민첩+2 』
『 트로아 제식 경갑 투구 12 / 마력+2 』
음 뭐야, 이 템들은.
내가 잘못 본 건가
“형, 이거 오우거 로드 플레이트하고 방어력이 같지 않아요 거기다 스탯도…… 완전 네임드 템인데.”
내 의아한 표정에 재중이 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놀란다고 했지 ”
“솔직히 놀랐어요.”
이건 네임드 템 수준이 아니라 그것보다 상위의 템이었다.
경갑이 중갑하고 방어가 같으니까.
다만, 하르 무기와 동일하게 넷 다 강화가 불가능했다.
“강화가 안 되는 건 아쉽긴 한데, 그래도 수치가 워낙 좋아. 굳이 강화를 안 해도 될 정도로. 전부 스탯까지 달려 있고.”
“확실히…….”
이 정도면 강화가 필요 없다.
나중에 더 나은 템이 나오면 그때 가서 바꾸면 된다.
“외형이 베네아에서 비공정 NPC들이 입고 있던 것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요 ”
“어, 그런 모양이더라.”
제복 형식에 가까운 푸른 경갑.
한때 디자인이 괜찮다고 생각은 들었는데 이런 식일 줄이야.
“이건 코스튬이 없어도 충분히 입고 다닐 만 하겠네요.”
내 말에 옆에 있던 챠밍과 이쁜소녀가 차마 웃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알아, 나도.
로브에 경갑을 섞어 입는 게 이상했다는 걸.
“으음, 흑색으로 염색 좀 할게요.”
간만에 경갑다운 경갑을 입고 다닐 수 있겠네.
챠밍은 헤어에 맞춰서 푸른색 로브를.
이쁜소녀는 확고한 분홍빛으로 경갑을 물들여놓았다.
“헤헷, 예쁘다.”
뭐, 이쁜소녀는 취향이 확실하니까.
전사 형은 중갑을 착용했는데 방어력이 무시무시했다.
방패 대신 몸으로 때워도 될 정도로.
방어구 하나에 10만.
다 사고 나면 딱 10만 정도가 남았다.
“이거 여러 개 살 수 있어요 ”
하르 블레이드가 한 자루 더 가지고 싶어서 물어봤다.
신성력 5를 추가할 수 있다면 정말 매력적이니까.
“아쉽게도. 한 사람당 한 번뿐이더라. 무기 선택이 정말 신중해야 해.”
“그런가요.”
“대신 잡화 쪽에 악세가 있지.”
재중이 형이 알려준 NPC에게 가서 말을 거니 몇 가지 악세를 보여줬다.
그중 하나를 바로 집어냈다.
『 하급 하르 브리슬렛 / 신성력 +3 』
좋네.
이걸로 부족한 신성력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악세를 사는데 남은 기여도를 썼다.
특히 챠밍은 로브가 한 벌이라 악세를 두 개나 맞출 수 있었고.
그렇게 50만으로 각자 필요한 아이템들을 상점에서 싹 털었다.
오우거 로드의 템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배했다.
심장과 돌진 스킬은 이쁜소녀에게.
오우거 벨트, 휠 윈드는 전사 형.
위기 탈출, 혹은 급하게 딜을 쌓아야 할 때 쓰기 위해 전사 형이 받아갔다.
오우거의 외침은 재중이 형이 챙겼다.
전과 같이 서브 탱으로 어글을 잡을 일이 있을 때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 외에 마법 스킬은 있어서 일단 다 창고에 넣어놓았다.
나와 나르샤 누나는 이제 오우거 로드에게서 얻을만한 것들이 없어 나중에 마법이나 아이템을 팔아서 나오는 돈을 따로 받기로 했다.
그리고 블러디 가고일을 잡아서 나온 아이템들.
의외로 심플했다.
『 다크 웨폰 』
『 헤이스트 』
『 강격 』
『 연격 』
『 돌진 』
『 피부 강화 』
『 투사 』
『 하급 마력핵 』
“혹시 이거 엘리트 몹이려나…….”
전사 형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이 높지만 잡는 것이 네임드처럼 엄청나게 어렵진 않았다.
특별히 유별난 아이템을 주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러나 스킬을 이 정도로 주는 것을 봐선 아예 일반 몹은 아니었다.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줬으면 더 좋았겠지만 딱히 아이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마력핵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등급이 있는 것을 봐서는 나중에 더 괜찮은 것이 나올 것 같았고.
스킬은 종류별로 꽤 많이 나와 서로 부족했던 것들을 바로 나누었다.
그렇게 아이템을 대부분 분류해서 나누고 나자 사람들이 어느새 트로아 요새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새로운 요새에 눈빛이 번쩍이면서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우리가 처음 요새에 들렸을 때처럼.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 슬슬 돌아다니네.”
재중이 형의 말에 전사 형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레벨로 제한을 바꿨으니 조만간 우글거릴 겁니다.”
“그럼, 우린 복잡해지기 전에 떠나볼까 ”
“저들은 이제야 트로아 요새에 도착하는데 우린 벌써 떠날 생각을 하는군요.”
“크큭, 그러게 말이야.”
압도적인 격차.
터널을 틀어막고 기여도를 쓸어 담다 보니 아예 요새 하나 정도의 격차가 나버렸다.
이걸 보는 운영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중앙 광장에서 동쪽 끝의 비공정 선착장.
이곳에 도착하자 대기하던 선착장의 NPC가 우리를 알아보더니 쉴라에게 받은 통행증을 확인 후 준비 중이던 비공정에 바로 태워줬다.
전사 형이 그걸 보고 한마디 했다.
“이거 프리패스네.”
“어렵게 얻은 프리패스죠.”
비공정은 우리가 처음 타고 왔다 브링어보다 거의 두 배 정도는 커 보였다.
스탄 1호.
일단 공격이 가능한 마법포도 훨씬 큰 것을 적재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후방에 알 수 없는 기계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이건 어떻게 못 가지겠죠 ”
“가능할 것 같아 ”
그러면서 전사 형이 하늘을 쳐다보는데 아마 운영자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렇게 당해놓고 가능하게 해놨을 리가 없죠. 그보다 이번엔 좀 정상적으로 갔으면 좋겠는데…….”
내 말에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의 안색이 확 안 좋아졌다.
전처럼 추락 쇼는 다시 하고 싶지 않겠지.
그런 모습과는 별개로 일단 날아오르기 시작한 비공정이 트로아 요새를 떠나 일정 고도로 올라가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높은 고도까지는 안 올라가네.”
전사 형의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산맥을 타고 그러면 어쩌나 했는데 오히려 산맥과 숲을 빠져나와 숲이 점점 뒤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날아가는데 전방에 짙은 폭풍이 사방으로 퍼져 있고 그 사이에서 번개가 이리저리 치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우리 혹시 저기 가는 거예요 ”
“번개 엄청 쳐요…….”
챠밍과 이쁜소녀가 깜짝 놀라서 물어보는데 우리도 모르니 그저 침묵을 지킨 채로 일단 지켜보기만 했다.
그때 기관사 NPC가 외쳤다.
『 기관 최대! 전속 전진! 지금부터 마의 폭풍 지대를 지나간다! 』
기관사의 말에 NPC들이 기관에 하르를 엄청나게 집어넣었다.
그러자 뒷부분의 기계에서 하얀 불꽃이 터져 나오면서 비공정의 속도가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저길 진짜 지나간다고
한 번도 쉽게 가는 일이 없구나.
“전부 꽉 잡아요!”